<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보리암
대동문화201107[한송주의 산사에서 띄우는 엽서]
대중공사라면 절에서 소도 잡아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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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가 신문기자를 할 때 ‘천년가람’이라는 사찰순례 연재물을 삼 년 남짓 맡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규모 중창불사를 막 마친 송광사를 취재했는데 그 과정에서 방장스님을 뵐 기회가 있었지요.
조계총림을 일으키고 중창불사를 주도한 구산(九山)스님이 돌아가시고 일각(一覺)스님이 2대 방장으로 계셨습니다. 일각스님은 취재진 일행을 삼일암(三日庵)으로 초대해 녹차를 대접하고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 쓰인 선묵도 선물하셨습니다.
다담 중에 불초가 아는 체하며 물었어요.
“선방을 돌아보니 젊은 수좌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정진은 열심히들 하십니까?”
“젊은 수좌들, 풋중이라 무시하면 안 돼요. 전과 달라서 요즘에는 대학에서 반듯이 공부한 이들이 출가를 많이 하십니다. 그이들 정진력이 대단하지요.”
“세간에서 막행막식하다가 절집에서 채식만 하고 고행을 하면 건강을 해칠텐데요.”
“건강을 해치면 수행을 하지 못합니다. 수좌들 건강이야 저희 외호대중들이 정성껏 잘 돌보고 있지요.”
이즈음에서 장난기가 도진 불초가 말을 비틀었다.
“한창 때 풀만 먹어서는 안 될 것인디.. 고기도 먹입니까?”
순간, 주위 공기가 좀 썰렁해졌다.
그러나 방장스님은 껄껄 넉넉하게 웃으시더니 뜻밖의 말을 해 일행을 놀래켰다.
“암은요. 절집이라고 고기 먹지 말란 법 있습니까. 스님네들 공부하는 데 필요하다면 대중공사를 통해서 황소라도 한 마리 잡을 수 있지요.”
대중공사라면 소도 잡아먹는다!
그러면서 방장스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승가는 가장 민주적인 공산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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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에는 믿음의 대상이 있습니다. 이를 흔히 귀의처(歸依處)라고 부르지요.
불교에서는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한다고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 스님의 세 가지 보배를 믿고 따르겠다는 거지요. 불교의 창도한 부처님을 믿고, 그가 가르친 진리에 의지하며, 그 진리를 배우고 전파할 사도를 따른다는 다짐입니다.
그래서 예불을 할 때도 삼귀의를 제일 먼저 합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진리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라고 외면서.
이 삼보를 빌어서 우리나라에 삼보사찰이 있어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양산 통도사를 불보사찰이라 부르고, 부처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를 법보사찰, 16국사 등 훌륭한 스님들을 배출한 순천 송광사를 승보사찰이라고 부릅니다.
이 삼보 중의 하나인 승가(僧迦)가 오늘의 주제이어요.
승가는 산스크리트어 상가(saṃgha)의 음을 따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무리(衆) · 화합한 무리(和合衆)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 따라 변천해서 오늘날 승가는 출가한 불교수행자의 모임으로 의미가 굳었지요.
승가는 삼보 중의 하나인 만큼 매우 숭고하게 받들어졌습니다. 불가에 다섯가지 큰 죄(五逆罪)가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를 죽인 죄, 아버지를 죽인 죄, 아라한을 죽인 죄, 부처님을 해친 죄, 승가의 화합을 깨트린 죄입니다.
승가의 화합을 깨트린 죄가 부모를 죽이고 부처님을 해친 죄와 나란히 다루어졌던 거예요. 그러니 승가의 화합을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지요.
승가의 생명은 화합입니다. 그래서 화합승(和合僧)이고 화합중(和合衆)인 거예요. 각기 출신도 성분도 다른 이들이 진리를 탐구한다는 목표 하나로 한 장소에 모여서 생활하려면 화합이야말로 절대조건이겠지요. 그리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과 공정한 의사결정이 전제되어야겠지요.
계율과 대중공사라는 방편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됩니다.
승가의 구성원은 보통 남성수행자인 비구승과 여성수행자인 비구니승으로 나눕니다. 비구승이 되기 전 단계인 사미와 비구니스님의 전 단계인 사미니와 식차마나니 등이 있습니다만 비구스님과 비구니스님이 되어야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승가의 자격을 갖추게(具足)되는 거지요.
구족계를 받아 승가의 일원이 되면 비구승의 경우 250가지의 계(戒)를 지켜야 하고 비구니승은 이보다 더 많은 348가지의 계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승가에 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시겠지요?
수행을 위한 규칙인 계 외에도 승가생활을 위한 규칙인 율(律)이 또한 헤아리기 힘들만큼 복잡합니다. 이 삼엄한 계율을 추호도 어김없이 지켜가야 비로소 ‘정도사문(正道沙門)’으로 인정받아 법등(法燈)을 이어받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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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에 정해져 있는 계율 이외에도 승가에는 나름대로의 청규(淸規)가 있어 구성원들을 속박합니다. 유명한 백장청규(百丈淸規)가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백장회해(百丈懷海)라는 중국 당나라 때 스님은 승가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율을 나름대로 만들어 선농일치의 기풍을 세웠는데 청정근면을 원칙으로 그 내용이 매우 엄중했답니다.
수행자라 해서 탁발에 기대어 놀고먹는 것은 절대 안 되고 ‘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하루 일 안 하면 하루 밥 못 먹는다는 추상같은 규율을 시행했어요. 그 덕분에 승가의 청정가풍이 확립되었지요.
규율만 엄하다고 조직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의사결정과정의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신뢰 속의 화합이 완성되지요.
여기에서 대중공사(大衆公事)가 등장합니다. 대중공사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승가의 모든 일은 크건 작건 간에 대중공사를 통해 처리하는 게 원칙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승가의 구성원 모두가 모여 똑같은 자격으로 의사를 결정하지요. 그리고 여기에서 한 번 결정된 일은 절대 번복될 수 없고 다시 논의될 수도 없습니다.
승가의 대중공사는 일반사회의 의사결정 방식과는 달리, 다수결 원칙이 아니라 만장일치 원칙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표결은 무효가 되고 논의는 미뤄집니다.
물론 의사결정의 효율을 위해 몇 가지 방편을 두기는 했지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완전한 화합을 이루어내는 큰 원칙은 철저히 지켰어요.
대중공사의 표결 방법을 갈마(羯磨: 범어 karman의 음사)라고 하며 그 형식에 단백(單白)갈마, 백이(白二)갈마, 백사(白四)갈마 등이 있으나 더 자세한 것은 줄이기로 하고 우리는 다만 이 속담 하나만 알고 넘어가자.
‘대중이 원하면 소도 잡아먹는다.’
글 한송주<월간 송광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