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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지구, 천체, 나를 돌아본 산행이었다. 너무 거창한지 모르겠다. 조금 초를 치자면 그랬다.
28일 오전 1시반쯤 몸서리가 처져 눈을 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탱크가 누워 있었다. 간밤에 마신 술기운 탓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잠들었는데 거의 맨바닥에 몸을 뱀 또아리처럼 틀고 있다가 추위에 정신이 번쩍 든 탓이었다. 댕기의 코곯이는 기상 나팔이었던 셈이고.
텐트 밖으로 나오니 대명천지다. 달빛이다. 거의 대낮처럼 환하다. 꼬맹이가 영 잠이 안 온다는 표정을 짓다가 화들짝 놀란다.
둘이 간헐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서넛이 차례로 일어난다. 모두 감탄한다. 이렇게 달빛이 밝나. 태양이 정반대로 사라지지만 멀리 반사된 빛을 받은 달이 저리도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는 점을 아는 이들만 알 것이다.
댕기와 아톰, 누구 코곯이가 더 큰가를 얘기하다 가뭇이 개기월식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오른쪽 아래가 기울기 시작한가 싶어 여럿에게 그렇게 얘기했는데 조금 있으니 왼쪽 위부터 기울기 시작한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상당히 빨리 달이 먹히는 구간이 넓어졌다. 4시 40분쯤 되자 거의 먹혔다.
정말 신기한 게 처음에는 태양 빛이 지구 그림자에 가리는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달이 전체적으로 빛을 잃자 붉은 색으로 비친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숱하게 개기월식 기사를 봤는데 왜 이런 점을 간과했을까 안타까움을 토할 수 밖에 없었다.
난 그 순간 일출이 궁금해졌다. 동쪽 하늘은 암흑 천지처럼 보였다. 3시쯤 한 번 올라갔던 그 능선을 다시 올랐다. 500m쯤 밟았을까? 멀리서 볼 때 나무처럼 보였던 것이 살짝 움직였다. 사슴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녀석들이 날 보자마자 도망가지 않고 날 지켜보는 것이었다. 내가 살짝 움직이면 딱 그만큼 움직였다. 내가 멈추면 따라 멈췄다. 마치 장난하듯. 속으로 내게 ‘너 미친 거 아냐’ 묻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슴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전날 저녁 내려왔던 길을 되짚어 올랐다.
참 재미있는 길이다. 전날(27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덕적도로, 다시 굴업도로 옮겨와 한나절 오후를 보내다 올라챈 개머리능선이다. 총의 개머리판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 파도 철썩이는 소리, 매미인지 괭이갈매기인지 구분 안 가는 소리, 풀섶에 살랑이는 바닷바람 소리 등이 어우러진다. 대략 그날 새벽 내가 본 사슴 무리는 네 무리 정도. 가족 단위로 보이는 녀석들이다.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독일과의 3차전이 열린 카잔의 호텔에서 본 사슴 무리가 떠올라 내내 후훗 거렸다. 기자들의 직군에 따라 소망하는 게 달라 밤새 호텔을 옮기네마네 시끄러울 때 임모가 카톡에 올려 단숨에 화제를 돌리고 ‘이 호텔 괜찮네’ 여론의 향배를 돌렸던 그 사슴들이었다(엄청 긴 얘기다. 그런가 보다 하시면 그만이다.)
멀리 동이 트려니 날이 더워진다. 전날 오솔길이 한참 머물렀던 소나무 아래 바위에서 윗옷을 벗었다. 어차피 이 새벽 누가 올라오겠나 싶었다. 그렇게 맨마지막, 해변에서 올라서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민박집이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위에 해무는 가실줄 모른다. 조금 더 길끗한 전경을 희망했으나 틀린 것 같아, 단톡방에 기상 시간을 공지하고 돌아섰다.
돌아갈 때는 다른 코스, 오른쪽 바위 절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나비가 지천이다. 화들짝 잠에서 깬 듯 날갯짓을 한다.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며 모차르트 교향곡 주피터를 들으며 걸었다. 그렇게 텐트로 돌아오니 일행들이 정말 놀란다. 옷 벗고 어딜 돌아다니느냐고. 변명하고 싶지 않아 웃고 말았다.
이미 몇몇은 식사를 마쳤다. 새벽에 다시 잠이 들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마포나루를 깨워 식사를 마치고 나니 6시 30분, 이곳 해안 풍광에 정 들은 이들은 좀처럼 떠나고 싶지 않은 눈치다. 하루 더 자고 가자는 얘기를 하는 이도 있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전날의 심란했던 코펠과 배낭 등을 챙기고, 음식쓰레기를 처리하고, 텐트를 햇볕에 말려 개키고 오전 8시쯤 정리를 마치고 민박집으로 출발했다.
27일 오전 2시쯤 잠을 깼다. 설레서 였는지 열대야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니 오전 5시쯤이다. 전날 싸놓은 배낭을 점검하며 제발 회원들이 큰 배낭을 좀 가져오길 빌었다. 문자를 날릴까 하다 그만 뒀다. 뚝섬역에서 한 번 갈아타고 용산역에 내리니 오전 6시 18분인가 그랬다. 내린 플랫폼에 그냥 서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개찰구 쪽으로 나왔더니 동인천행 급행 타는 곳 안내가 보인다. 다행히 떠날 준비를 하는 급행에 올랐다.
그렇게 7시 조금 넘어 동인천역 1번 출구로 나와 택시 타고 7시 반쯤 연안여객터미널에 이르렀다. 8시까지 대략 모두 모였는데 한숨이 터져나왔다. 짐이 너무 많고 모두의 배낭은 너무 작다. 조금 웃는 얼굴로 짐을 나눠야 하는데 긴장하고 걱정했던 일이 현실화됐다는 생각에 얼굴이 굳어진 모양이다. 나중에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속좁은 인간이라 그렇다. 모두 용서해주길.
그렇게 짐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신분증 모아 승선표를 챙겼는데 청천벽력 소식이 들린다. 8시 30분 출항 예정인 배가 오전 9시까지 연무 대기한다는 것이다. 터미널 안에 탄식이 터졌다. 일행은 풀썩 주저앉아 김밥을 뜯었다. 그런데 시작에 불과했다.
9시에서 10시로, 그 다음 두 차례 더 낮 12시로 옮겨졌다. 어떡하지? 이러다 배가 영 안 뜨면 장 본 것(무려 40만원 어치)은 어떡하지? 플랜B를 짜야 하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의도로 가는 방안도 생각해뒀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오전 11시가 12시로 연기됐을 때는 정말 이러다 연안부두에서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모두의 비원이 통했는지 안개가 걷혔다며, 하지만 단서를 달길 덕적도에서 굴업도 들어가는 배는 곧바로 연결될지 모르겠다는 설명과 함께 승선이 시작됐다. 모두들 손들에 짐꾸러미를 들고 배낭을 매고 배에 올랐다. 갑갑한 터미널을 벗어났다는 기쁨에 덕적도는 금세 도착했다. 배를 내리니 저 멀리, 걸어 600m는 족히 될 것 같은 땡볕을 걸어야 했다. 출항은 거의 5분 남은 시점이었다. 오후 1시,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난다. 그래서일까 갑판에서 소주 추렴이 시작됐다. 바다사나이 그린랜드 형님은 오래 전 서해 바다를 훑던 기억을 되짚어낸다. “저기가 덕적도인데 저 산을 오르면 좋아. 제법 경사도 있고 험한데 재미있어. 다음에 한 번 꼭 가봐”라고 천지사방 구분도 못하는 내게 말씀하신다.
아톰과 희망과용기는 무슨 주제인지 모르는 얘기를 엄청 열성띠게 늘어놓는다. 그 옆 호랭이는 졸고 앉아 있고.
어쨌든 굴업도 선착장에 내리니 민박집 트럭들이 여러 대 나와 있어 아무렇게나 섞여 탔다. 5분쯤 달려 서이수 전 이장댁 마당에 내리니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가 점심 먹을 곳은 고 앞, 고씨민박, 왜 그 유명한 ‘티끌 모아봤자 티끌’ ‘가장 값진 보상은 현금으로’ 등 명언이 적힌 담벼락으로 이름 난 곳이다.
배고파 환장한 냥 철퍼덕 앉아 닥치는 대로 먹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그린랜드 형님은 “비린내 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반찬 평을 했지만 난 아귀가 들었는지, 고사리도 맛있고 알타리김치도 맛있고 열무김치도 맛있었다. 바지락 된장국도 시원했고, 할매 음식솜씨가 정감 있었다. 톳처럼 생긴 것을 일행이 궁금해 하자 우리랑 한배를 탔던(?) 이 집 따님이 “가시리”라고 답했다. 설탕 적당히 넣어 튀긴 것이었는데 시장이 반찬이었던 것 같았다. 맛있긴 했는데 일인당 9000원 할 일은 아니었다.
밥 먹고 나니 3시가 다 됐다. 배가 부르니 만사 귀찮아진다. 땡볕은 장난 아니고. 해서 오후 5시에 짐 꾸려 개머리해안 오르자고 했다. 자유시간, 외치고 나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 30분쯤 잤나 보다. 일어나 동네 마실을 했다. 마을 전경을 훑고 바닷가로 갔더니 막걸리 술판이 한창이었다. 트럭 운전을 하던 레게 모자 차림의 아저씨가 마치 카리브해 해안의 바 주인인냥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철지난 팝송을 틀고 앉아 있다.
멀리 섬 정보를 검색할 때 보아 뒀던 개머리 해안 출입을 삼가달라는 경고문이 적힌 입간판이 보였다. 저리 오르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날 주목하거나 술 권하는 일행 없어 개머리해안 미리 올라보자 했다. 이장 댁 뒤편으로 가니 오르는 길이 나온다. 찾기 쉽지 않다. 임도 같은 것을 관리 안해 엉망이 돼 오르기 쉽지 않은 길을 헉헉 대고 올랐다. 길이 흉하다. 그렇게 안테나 기지국 같은 데 오르니 오롯이 숲으로 이어진 길이 나온다. 가도 되나 마나 싶었다. 이게 무슨 나무일까 궁금하기도 해 내처 걸었다. 동백도 아니고 희한했다. 5분도 안돼 널따란 초지가 확 펼쳐진다. 그리고 내리막이다. 영화 ‘동막골’처럼 몸을 굴리면아래로 쉬 굴러 갈 것 같다.
그렇게 내달렸더니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 아까 봐뒀던 경고판 나오는 곳이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려갔더니 얼마 뒤 민박집 할머니가 얘기한 문 하나 나오고 그 앞에 경고문이 서 있다. 발걸음 옮기기 힘든 백사장을 걸으니 아직도 막걸리 추렴이다. 판 걷읍시다, 하고 돌아와 오후 5시 예정대로 짐 챙겨 되짚어 개머리로 향했다.
정말 개머리능선 언덕에 피란 행렬이 피어난다. 프라이팬을 햇볕 가리개로 쓰는 오솔길을 필두로, 댕기가 허리 아프다며 떠넘긴 텐트를 목에 올린 희망과용기, 이장님 댁에서 매운탕 끓이라고 준 냄비를 든 꼬맹이, 덕적도에서 떠난 배에 실려 있던 회가 담긴 용기를 앞에 든 산바람 형 등등.
사진 찍을 곳이 많아 쉴 요량으로 짐을 내려놓으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앞선 자들이 마지막 마포나루가 닿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난 그곳에 가지 않고 가만 서서 이 풍경 속 하나의 점이 되려 했다. 왼쪽 능선, 위험해 보이는 곳에 사슴떼가 가만 지켜본다. 멀리 사람이 나타나 풍경에 녹아들 때까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플러버 회장은 왜 빨리 안 오느냐고 보채며 어느 정도 높이에 올라 짐을 받아 든다.
사실 이런 여정 쉽지 않다. 우선 금요일 출발했다. 한창 일할 나이들인데 이렇게 뜻 모으기 쉽지 않다. 개기월식에 보름달, 물때 맞춰야 하고, 덕적도에서 굴업도 들어오는 배가 홀수날, 짝수날 어떻게 운행하는지 따져야 했다. 짐 줄이고 버리는 것 줄여야 하니 민박집에서 점심과 다음날 점심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한끼 캠핑을 준비하기 위해 그 많은 짐 꾸리게 하는 일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냅니다. 더욱이 내가 영 뜨악한 표정으로 분위기 싸하게 했지만 크게 불협화음이나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해냈다.
아톰 형은 캠핑지로 내려가며, 대단한 결단과 영도력 아니면 어려운 일이라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그래 대단한 일이라고 큰 박수 보냈다. 정말이다. 서해 굴업도 가자고 해서 16명 조직화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텐트 칠 곳 놓고 잠깐 줄다리기가 있었다. 정말 좋은, 오른쪽 절벽 쪽으로 우리가 들어갔으면 그만일 곳에는 같은 배를 타고 온 두 청년이 이미 튼튼히 차려 놓고 여유롭게 석양 즐길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부럽긴 했지만 그나마 이 정도 자리를 미리 확보한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4인용 텐트에 1인용 둘, 그늘막을 대용 텐트로 쳐놓으니 조그만 마을 정도 됐다. 왜 이렇게 짐 많이 갖고 왔나, 장도리까지 챙겨온 댕기의 장비 욕심에 화를 냈던 난 슬그머니 후회가 됐다. 그리고 고마웠다. 덕분에 민박집에 당초 내려가려 했던 여성 회원들이 모두 숙영지에 머무를 수 있었고, 온전히 개기월식 쇼를 즐길 수 있었다. 댕기야 고맙.
캔맥주 24개가 든 백을 넘기며 댕기가 그랬단다. 김치라고, 그걸 들고 오느라 평소 그러지 않는데 유난히 자주 멈춰서 가뿐 숨을 내쉬던 노들강이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캔맥주였다. 텐트 친 보상 차원에서 캔맥주 하나씩 둘러앉아 깠다. 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저유명한 장면을 떠올렸는데 늘 그렇듯 반응이 썰렁하다. 얘기 재미없게 하기로 워낙 유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만사지당 형님이 자꾸 주변을 정리하시려고 해요, 어쩌구 하면서 코펠과 버너를 꺼낸 뒤 매운탕을 두 코펠에 나누고 불을 피웠다. 장난 아니게 양이 많은 고기를 사왔다고 뜬구름에게 눈을 흘겼는데 그가 구워낸 삼겹살과 목살 맛을 본 순간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보통 밖에 나오면 무조건 맛있다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정말로 근 10년 래 먹어본 고기맛 가운데 최고였다.
컴불 형이 꺼낸 발렌타인 양주를 일회용 잔에 따라 모두 돌리고 건배를 제의하는 순간 석양 쇼가 시작한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찬탄이 쏟아진다.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쫙 들이켰다. 컴불 형이 속삭인다. 대장 고생했으니 너만 한잔 더 먹어, ㅋ 이렇게 고마울수가. <내일 조금 더 이어 쓰겠습니다.)
첫댓글 사진은 산행 내내 카톡에 올렸고 해서 당분간 올리지 않고 나중에 2주쯤 지난 뒤 올리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우, 재밌네, 상세하고, 쓰느라 애쓰셨고!
함께 해주신 선후배들,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속편이 더 기대되는군
열심히 길게 잘 썼네. 재미나게 읽었어. 캠핑 무사히 끝마치느라 수고했다. 아무튼 많은 회원들이 참여해서 더욱 좋고 즐거운 시간이었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