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무거웠던 올 여름이 끝나갈 무렵인 9월 3일, 읍내 계산리 410번지(금동)로 이사를 했습니다. 평생 살 것 같은 집에서 어쩔 수 없이 3천만 원 짜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고 보고 보니 우선 마음은 편안합니다. 2년 전에 아내만 아프지 않았어도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마당 한 평 없는 상가 2층집에서 살기보다는, 생활하기 좋은 1층에 마당이 있어 텃밭으로 사용하면 좋을 집입니다. 2층에는 팔순 가까운 건강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셔서, 부모처럼 생각하고 살면 의지가 될 것 같습니다. 아들 5형제와 딸 둘이 있어도 모두 대전 서울 등지에 살고 있답니다. 며칠 전 벌초하러 온 3형제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보통사람이었습니다. 공무원이라든가 특별히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더랍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부자는, 예를 들면 우리지역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든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이 자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자들이란 기득권자들이며, 놀고먹는(실업자) 사람들이 많아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농민들입니다. 그런데 농민들은 왜 빚만 늘어가고 잘 살지 못합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민주노총 노동자들처럼 똘똘 뭉쳐 단결된 힘으로 싸워나가면 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농민들로서는 쉽지 않고, 그나마 어렵게 모여 큰 목소리로 외쳐도 방송이나 신문이 제대로 보도를 해주지 않으니, 저 하늘 허공으로 사라질 뿐입니다. 특히 '부자신문(조선. 중앙. 동아.)이 농민들 소식만 제대로 보도해주어도 상황은 달라지겠는데, 한나라당 편은 들어줄지언정 이 땅의 농민들을 외면합니다.
토론과 논쟁<농산물개방 왜 반대하나>( 한겨레9월14일치)대담 중, 프랑스에서 온 세계적인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51)는 "농업포기는 주권포기다"라고 했으며, 전세계에는 14억~15억 명의 농업인구가 있는 데 트럭타를 사용하는 농민은 3천만명에 불과하다 했고, "휴대전화 수출한다고 식량을 생산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대담을 이끈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한국 정부의 식량주권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고 시민사회 또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것이 문제다" 이에 대해 보베는 "지금 다국적 기업의 과녁이 쌀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농촌이 망가지고 농민이 땅을 떠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농민들은 물론 한국의 시민사회는 쌀 개방 문제에 배수진을 쳐야 한다" 또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는 끝으로 "한국은 왜 그렇게 미국식 삶의 방식을 따라가느냐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최근의 우리 사회의 긴급한 관심사는 '국가보안법폐지' 찬성과 반대가 맞서고 있는데, 폐지가 당연하다고 보는 것은 '부자신문'들이 주장하는 기사와 '한겨레'의 보도를 똑 같이 펴놓고 읽어보면 폐지함이 옳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부자신문'들의 주장은 억지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신문을 구독할 돈이 없어 못 봅니다. 아니 부자들은 보수적인'부자신문'만 볼 줄 알지, 진보적이고 가난한 신문 '한겨레'를 보지 않습니다. 실례로 지난달에 저는 우리지역의 모 공공기관(법원)에 왜 '한겨레'를 차별하고, 거절하느냐고 <질의서>를 보낸바 있습니다. 아직도 답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답을 보내지 않고, 무시하고 있을 것인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기관에는 직원도 수 십 명이 넘고, 민원실에는 시민들이 찾아오고 있건만 이렇게 '한겨레'를 접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거부하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관의 장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부자신문들의 주장과 의견에 동조하여 국가보안법폐지를 반대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편파적이지 않겠습니까? 특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의 녹을 받아먹고 있는 입장에서, 부자신문만 구독해주고 가난한 '한겨레'를 외면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국가기관에서 저질러진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개인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여론이 옳다고 박수를 보내주시면 반드시 정의는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서민 경제가 어려움을 절감하면서, 어느 기관에서는 예산이 삭감된 관계로 부득이 다음 달부터 신문을 구독할 수 없다고 두 곳에서 전화로 중지요구를 해왔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위의 모 기관은 한겨레간 창간 된지 16년이 넘도록 거부해왔으며, 자타가 아는 친일의 신문(조선)은 줄기차게 도와주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노가 치솟습니다. 어차피 한 세상 살다가 죽고 말 인생이 참으로 서럽고, 가난한 이 삶을 이어가겠노라고 16년 동안 첫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 해 왔건만, 학식 좋고 고시 합격하여 기관장 된 사람들의 태도가 인간적이지 못함에 비애를 느낍니다. 실로 내 신세가 가련함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겨레' 아니었다면 일직이 다른 직업으로 변경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 걸어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육순을 바라보며, 내 나이가 믿어지지 않고, 이제까지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 한 적도 없고 보면 행복하답니다. 두서없이 추석을 앞두고 넋두리를 하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이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만, 한가위 잘 지내시기를 빕니다.
꼬리말 쓰기
난초 꾸준한 외길인생, 누구나 쉽게 할수있는 것이 아닐진대..흰머리소년님의 열정과 노고에 항상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동안 동요와 흔들림도 많으셨을 것이지만 꿋꿋이 걸어오신 흰머리소년님.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진리는 승리할것이라 믿습니다. [2004/09/23]
난초 한가위 잘 보내시기를 바람니다. 새집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 즐거운 기분으로 보내시기를 바람니다. [2004/09/23]
옹달샘 흰머리소년님! 부자 되시고요. 풍성한 가을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2004/09/23]
이상섭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오셨지만 그래도 병원에 입원한번 한 적이 없다는 말씀에 위안을 받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2004/09/23]
언제나청춘.. 더도 덜도말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만큼만 살아가세요. 이세상 어느누구보다도 보람있고 알찬 삶을 살아가고 겠신겁니다. [2004/09/23]
카라 저도 '보베조제'의 대담 글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 중에 "각 나라의 농업은 자본이나, 경제논리로 봐서는 안된다"는 말이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4/09/24]
카라 소년님~~새집으로 가신것 "감축 드리옵니다". [2004/09/24]
김시열 흰머리 소년 님! 너나 할 것없이 사는것이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그래도 늘 건강한 모습 보여주셔서 곁눈질로 많이 배웁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10월에 뵙겠습니다. [2004/09/24]
정재현 항상 건승 하시기 바람니다. [200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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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월 1일 오전 9시 마침내 법원 정문에서 1인 시위 돌입합니다
번호:1453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26 날짜:2004/09/30 22:49
10월 1일 오전 9시 마침내 법원 정문에서 1인 시위 돌입합니다
어제 저녁 식사를 식당에서 까만소님과 함께 하면서, 나의 결단의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마침내 1인 시위를 하겠노라고......'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란 글 속의 공공기관이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임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지난 8월에 '질의서'를 보냈는데 아직까지도 무성의한 태도입니다. 아니 '무시'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겨레 창간이후 16년 동안 배척 당해온 것이 서럽습니다. 군부독재시대 땐 그렇다손 치더라도, 50년만에 정권이 바뀌었고, 다시 노무현 대통령 된 참여정부의 국가기관마저도 여전히 친일과 군부독재의 부역으로 일관해온 신문, 조선일보는 직장과 관저에서도 구독해 주고 있으며, 민주화의 결과물로 온국민의 성금으로 창간된 <한겨레>야말로 이 땅의 민주주의 초석을 다져 가는 언론일진대 배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지어 스포츠 신문이나 종교단체서 만드는 신문도 구독해 주는 것을 탓하진 않겠습니다. 그들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는 스포츠나 지역 일간지도 구독해주면서, <한겨레>는 그 신문들 만도 못하다는 것입니까? 법을 집행하는 법원에서 특정 언론을 전화 한 통화로 "넣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질의를 해도 답이 없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공평하고, 형평성에 맞게 대해주질 않고 유독 <한겨레>에게만 '철올성'처럼 거부해 왔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이런 상황이 전개되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되어 이렇게 나섰습니다.
우리 나라 모든 국가기관의 공무원들이 위의 기관 같다면 어느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저들에게 '녹'을 준단 말입니까.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의 자세치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라면 신문을 구독하지 않겠다는 데 더 이상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국가사법기관의 한 직장에서 '보수신문' 상품은 구매해 주고, '진보신문' 상품은 배제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진보신문이라서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여기 보수신문은 자타가 아는 '족벌언론'이지만, 진보신문이란 '6만 주주'가 참여하고, 편집권도 독립되었고, 사장도 사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언론사가 우리 나라 어디에 또 있습니까.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참언론'을 거부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 배울 만큼 배운 분들에게, 중학교만 나온 저로서는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 대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몸 하나로 살아보겠다고 16년이란 세월을 '신문배달'만 해온 오늘의 결과는, 새로운 출발의 신호탄입니다. 제가 결행하는 1인 시위의 목적이 무엇인가는 이 글을 읽으신 분은 다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위자와 대항자 관계로 상황이 진행되면서, 서로들 얻고 잃는 것이 발생할 것입니다. 내가 위의 기관에 신문 1부 배달해 주고 하루에 500원 얻어먹자고, 아니 한달 구독료 1만2천원 받아보겠다고 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는 수천, 만 배나 값진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저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0월 1일 오전 9시!
그날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속보'소식이 카페에 올라오는 대로 여러분께서는 인터넷세상에 퍼다 날라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노재우 흰머리소년님의 절규와 비장한 행동개시에 절로 머리 숙여 집니다. 이 먼곳에서 한사모 회원님들께 전하려는 것은, 우리가 흰머리소년님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가 ? 생각합니다. 한사모 회원님들께서 좋은 방법이나 수단이 있으면 꼬리글로 의견주시기 바람니다. 정의를 위하여 ! [2004/09/24]
흰머리소년..
10분전에 정보과 '이계장님'이 당직을 하고 있는 서에까지 가서, 1인시위를 할 것인데 당신에게만은 사전에 귀뜀을 줄태니 혼자만 알고있으라고. 이분은 한겨레 창간 독자로서 호형호제 할 정도입니다. 당일날 시위가 있고, 읍내에 소문이 난 후에 당신이 알면 섭섭해 할 것 같고, 또한 나의 믿음을 주기 위한 전략 전술임
10분전에 정보과 '이계장님'이 당직을 하고 있는 서에까지 가서, 1인시위를 할 것인데 당신에게만은 사전에 귀뜀을 줄태니 혼자만 알고있으라고. 이분은 한겨레 창간 독자로서 호형호제 할 정도입니다. 당일날 시위가 있고, 읍내에 소문이 난 후에 당신이 알면 섭섭해 할 것 같고, 또한 나의 믿음을 주기 위한 전략 전술임 [2004/09/24]
흰머리소년..
또 당일 결행 후, 지역 여론과 법원의 '대응' 정보원으로도 협조를 얻을 수 있는 이 싸움은, 이곳에서는 처음있는 일로서 많은 에피소드도 창출 될 것을 상상해 봅니다. 또 청주의 오기자에게도 방금 전화로 통화했으며, 한사모카페에서 상황을 읽어보시고, 당일 사진 올릴 것이며, 한사모님들 아이디어 지원하시길!
또 당일 결행 후, 지역 여론과 법원의 '대응' 정보원으로도 협조를 얻을 수 있는 이 싸움은, 이곳에서는 처음있는 일로서 많은 에피소드도 창출 될 것을 상상해 봅니다. 또 청주의 오기자에게도 방금 전화로 통화했으며, 한사모카페에서 상황을 읽어보시고, 당일 사진 올릴 것이며, 한사모님들 아이디어 지원하시길! [2004/09/30]
1인 시위에 즈음하여 (04.10.1. 오전 11시.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정문 앞)
번호:1487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32 날짜:2004/10/02 18:56
1인 시위에 즈음하여
80년대 군부 독재와 싸워서 이 땅의 민주화의 결과물로서, 88년 5월 15일에 창간된 <한겨레신문은 부자신문(조. 중. 동)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부자신문들의 기사와 사설 등을 <한겨레>와 한자리에 펴놓고 비교해 가며 읽어보면 차별성을 확연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겨레>는 펴 보지도 않고, 한 사건을 일방적으로 부자신문만의 보도를 읽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일 뿐만 아니라 고정관념으로 예단하고 매도하는 결과만 초래하는 것입니다. 사과도 직접 먹어봐야 그 맛이 신지 단지 알 수 있듯이,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신문의 논조와 성향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히 <한겨레>는 노동자, 농민, 서민, 소외계층을 위해서 보도합니다.
분명히 80년대 부자신문들은 물론 모든 신문과 방송이 '관제언론, 노릇만 해왔기에 조국의 미래가 암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만이 살길이라는 희망을 갖고 싸워서 결국 군부독재를 완전 종식시키게 된 것도 '참언론, <한겨레>가 태양처럼 떠올라 사회 곳곳의 음지를 환하게 비쳐 주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5.18광주사태, 사진과 진상을 부자신문들은 꼭꼭 숨겨왔으나 <한겨레>가 창간되면서 온 천하에 알려주었던 그 충격을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망각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 부자신문의 기득권 비호하는 논조에 길들어 가며 <한겨레>를 배척하고 있는데,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거늘 어찌 벙어리처럼 입다물고 허수아비처럼 넋을 놓고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땅의 민주화와 한 맺힌 분단조국의 통일염원을 줄기차게 외치는 <한겨레> 일진대, 차별 당하고 있을 수만 없어 몸으로 항거하고자 나섰습니다.
저는 소액주주로서, 창간지국 장으로서 배달일꾼으로서 당당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창간 된지 16년이 지나도록 국가기관에서 배척 당해왔습니다. 특정 신문은(조선2부)선호하고 <한겨레>를 거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 행위임으로 시정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애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저에 행동이 옳다면 박수를 보내주시고 잘못이 있다면 과감히 비판하고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질의1 영동지원에서 <한겨레>를 구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질의2 친일의 신문,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질의3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질의4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병행하여 구독할 의사는 없습니까
질의5 언제까지 계속 <한겨레>를 거절하시겠습니까
이상 질의에 대하여 본인의 이메일 whitehead-yd@hanmail.net 로 답변을 일주일 내로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런 답이 없을 때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처사로 알고, 상부기관에 재차 질의서를 보낼 것이며, 각 언론사 게시판, 또는 인터넷 사회단체 게시판에 정당성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위 질의는 8월 13일 내용증명으로 보낸 일부 내용입니다.
2004.10.1 한겨레신문 영동지국장 이주형 드림
노재우 흰머리소년님 투쟁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영동지원은 속히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한겨레신문 배척을 철회하고 한겨레신문 영동지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지금 까지의 행위에 사과해야 할것입니다. 흰머리소년님 ! 화이팅 !!! [2004/09/30]
흰머리소년..
피켓<친일반민족 언론/범죄집단/조선일보 구독하는/법원은 각성하라!> 그리고 홍보물<1인시위에 즈음하여 300부> 준비. 일단 10월1일 오전 11시 정각 시위가 정문 앞에서 들어가면 영동지원 직원들 머리에서 쥐가나기 시작 할겨! 또 한사모 카페에는 정오경에, 현장사진과 상황설명이 올라올 겁니다!
피켓<친일반민족 언론/범죄집단/조선일보 구독하는/법원은 각성하라!> 그리고 홍보물<1인시위에 즈음하여 300부> 준비. 일단 10월1일 오전 11시 정각 시위가 정문 앞에서 들어가면 영동지원 직원들 머리에서 쥐가나기 시작 할겨! 또 한사모 카페에는 정오경에, 현장사진과 상황설명이 올라올 겁니다! [2004/09/30]
김시열 흰머리소년님! 늘 앞장서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건강조심 하시구요.... [2004/10/01]
내 생애 처음 1인 시위가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혼자서 초라하고 외로운 투쟁의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끔 심심찮게 신문지상에서, 1인 시위하는 사진을 보면서 때로는 그 현장(서울)으로 달려가 몸소 체험을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절호의 기회(?)을 놓쳤다가는 평생 후회 할 것 같아서 과감히 실천하기로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나의 적나라한 몰골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시쳇말로 쪽팔리는 짓 아닐까요. 그러나 저의 속마음은 마침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로 나섰던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쪽팔리는 게 아니라 어쩌면 조선일보에 중독된 관료주의적인 저 집단(직원)들이 쪽팔리도록 코너를 몰아 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뿐이 아닙니다. 첫 시작은 미미한 것 같지만 끝은 장대하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고서는 덤비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 한 몸 바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적'을 저는 믿습니다.
이마에 내리쬐는 초가을 한낮의 햇볕은 불덩이 같았고, 등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입에 마스크를 쓴 것은 '침묵시위'를 상징함이었으나 좀 답답했습니다. 법원 앞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이 7~8할은 낯익은 읍내 사람들입니다. 전직 군수님도 지나가고, 전직초등학교 교장선생님도 지나갑니다. 이 교장선생님이 현직에 있을 때 신문을 구독하여 지금도 애독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문이 불과 2`30미터 거리입니다. 차동차와 오토바이 합쳐 1분에 10대 이상 지나갑니다. 자동차로 우유배달 하는 아줌마도 핸들을 잡고서 나를 알아봅니다. 미술학원 원장도 손수 운전하며 아는 채하고 지나갑니다. 젊은 청년 셋이서 10여 미터 길 건너 인도로 지나가며 " 맞아, 조선일보 X새끼들"이라며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어떤 이는 "한겨레..." 어쩌고저쩌고 하기도 합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차라리 목욕탕에서 물구나무서서 2~30십분 서 있는 것보다도 더 힘든 두 시간이었습니다. 정보과 형사 계장님도 승용차로 지나다가 서서 생수라도 마셔야지 하면서 걱정하고 급히 다녀 올 곳이 있다며 돌아올 때 사오겠다고 합니다. 또 어느 형사는 법원에서 한 분이 나와서 보자(구경?) "한겨레 한 부 봐주지"라고 말하고 그는 못들은 척 들어갑니다. 뒤에 있어 얼굴을 못 본 나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직원이다"고 하더군요. 낮 12시가 넘자 정확하게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듯 직원들이 나와 내 옆을 지나갑니다. 나도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점심 먹고 돌아 올 때까지는 있고 싶었습니다.
사실 목이 말랐고 시원한 냉수가 간절했습니다. 이럴 때 법원 직원 누가 생수 1병 가져다주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러나 '조선일보에 중독 된 머리'로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물 한잔 대접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겠죠.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12시 18분, 호주머니의 휴대폰소리가 납니다. 아내의 목소리입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점심식사를 하러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먹었어요"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이 짓하고 있는지를 아내는 모르고 있습니다. 미리 말했다가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안겨줄 것 같아서, 일단 나중에 결과로 알려지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난 8월 13일 <질의서>를 내용증명으로 보낸 후, 한 달이 넘도록 답이 없는 걸로 봐서 한 마디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차 질의서를 보내 봤자 시간 낭비만 될 것 같아서 차라리 1인 시위를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추석연휴기간에도 머릿속은 어떻게 행할 것인가 뒤숭숭하기만 했고,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신념이 있는 한 무조건 부닥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추석연휴 4일간 신문이 쉬는 날이어서, 아내는 십 수년만에 고향 강원도를 다녀오고 싶다고 하여 처음엔 동행하기로 했다가 포기했습니다. 인제 원통까지 대전에 가서 버스로 6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고, 여비도 20여 만원이 들 것 같아 부담스러웠던 거죠. 차라리 조용히 쉬고 싶었는데, 때마침 까만소님의 인터넷정보로 읽어보라는 장편소설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를 감동적으로 읽은 '황금의 독서시간'이 된 올해 추석입니다. 정작 보름달은 구름이 끼어 많은 사람이 못 봤지만 나는 아내와 저녁 6시 반에 걷기 운동을 나갔다가 내일의 보름달을 하루 앞당겨 보았던 것입니다. 보름달을 입을 딱 벌려 먹었습니다. 저 달이야말로 연금술사가 된 청년 산티아고가 사막의 밤을 걸어가면서 대화를 하던 '우주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 소설을 두 번째 읽기로 정독을 시작하면서, 1인 시위 끝날 때까지 계속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와 함께! 할 것입니다. 소설을 쓴 파울로 코엘료는 내 또래로서 부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수감되고 고문당했다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들어섰고, 1987년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답니다.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지금까지 3천만 부 판매했다니. 여기 진정한 연금술은 만물과 통하는 우주의 언어를 꿰뚫어 궁극의 '하나'에 이르는 길이며, 마음은 늘 우리에게 말한다."자아의 신화를 살라"고. 평범한 양치기 산티아고는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열고 자신의 보물을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평범한 저도 1인 시위로 나서는 것은 '하나의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출발입니다. 저는 내일도 사막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법원 앞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1인 시위를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아직도 <연금술사>를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 꼭 읽어보시면 모두 연금술사가 되리라 확신하며, 큰마음의 행복도 얻을 것입니다.
휴대폰에서 1시라는 소리가 드리는 순간, 약속이나 하듯이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내 앞에 다가서더군요. 나를 보고 먼저 말하기를 "힘들지 않으세요?" 너무도 기특하게 묻습니다. 그래서 저도 "힘들지"라고 대답했더니 또 "왜 마스크를 했어요" 라고 묻기에 정확한 답변을 생각하다가 대충 "말하기가 힘들어서"라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노재우 하나의 찬란한 진주를 만들기 위해 조개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듸어야 합니까 ? 흰머리소년님의 정성어린 고뇌와 깊은 상념이 위대한 결과로 돌아 올것입니다. 신이여 ! 그에게 건강과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요. [2004/10/01]
언제나청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값진열매가 분명 흰머리소년님과 함께할겁니다. 용기잊지말고 힘내세요.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 보시오.격려박수보냅니다. 짝짝짝!! [2004/10/01]
카라 무슨 말이 격려가 될까요 흰머리 소년님~~종교의 자유를 외쳤던 '강의석'군이 생각 납니다. 그가 그랬다지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고요.그 일로 인해 건강과, 일상이 더 힘들어 지지 않기 만을 바랍니다.
괴산에서 온 위로의 편지
조회:28 날짜:2004/10/02 19:13
흰머리소년 선생님.
힘내셔요.
멀리서 선생님 응원 많이 할게요.
늘 용기있고 씩씩한 선생님 뵐때마다 힘이 나곤 하는데
오늘 선생님 편지받고 저 또한 용기를 내어봅니다.
죽을 수 있는 힘과 용기로 열심히 살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죽을 수 있는 힘과 용기라면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지요.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죄송스럽고 또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이렇게 응원하는 소리는 들리시죠?
엊그제라면 한번 들렀다 오는건데.
어찌어찌된 이유로 고향집은 들르지 못하고
고향땅에 묻혀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술 한 잔 따르고
절 네번하고 돌아왔습니다.
반쪽하고 말이지요.
옥천읍내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정천영화백 생각이 나
전화했더니 벼베다 말고 두발오토바이로 한달음에 달려와서
얼굴 한 번 보고 밥한끼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선생님 생각하며 참 열심히 사시는분이구나 느끼지요.
저도 선생님 생각하면서 한겨레신문 생각하고
괴산에도 한겨레신문지국을 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지국개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든지
개설해주시든지 소개를 시켜주시든지 하면 안될까요?
신문 부수는 열심히 발로 뛰어서 늘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몇 부 늘리면 지국 개설할 수 있는지도 알려주시구요.
괴산에는 이런 쓴소리 바른소리 하는 신문이 필요하거든요.
돈을 번다는 생각은 없고 사회봉사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서민과 노동자와 농민을 위하는 한겨레신문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할 수 있다면 꼭 지국개설하고 싶다고 전해주시고
조건이 무언지 알려주시면 평생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글구 힘 많이 많이 내실려면 밥 많이 드셔야 하구요.
멀리서나마 선생님 건강 빌구요 또 건강 또또 건강하셔야해요.
참 추석명절 잘 지내셨다니 감사하구요.
또 소식전할게요.
괴산에서 김들레 올림
* 김들레님은 옥천 출생 . 정지용문학상 수상 시인. 40대 여성으로 자동차정비사 자격증을 얻고, 남편이 자동차정비사업을 하고 있음
꼬리말 쓰기
노재우 흰머리소년님 ! 위로의 편지라기 보다는 격려의 편지고, 동지를 하나 얻는 반가운 소식이군요, 힘내십시요, 세상은 항상 나보다 어려운 곤경에 처한 사람이 더 많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괴산지국 개설이 눈앞에 보이는듯 합니다. [2004/10/02]
카라 이분이 누군데 울 소년님을 이리 잘 아시는지...??한겨레 폐인으로서 괴산 지국 생기는거 두손, 두발 들고 환영하지요.울님도 모두 카라 맘 같겠지만.... [2004/10/02]
데카르트 흰머리 형님께 대단히 힘을 주는 편지 이군요.어쨋든 용기 잃지 마시고 뒤에서 지켜보는 많은 눈들이 있으니 힘 내십시요. [2004/10/03]
한 편의 귀한 시와 같은 글을 보내주셨군요.
즉시 답장 드리지 못하여 죄송하고요. 고향을 다녀간 그 마음씨 곱게만 느껴집니다. 고향의 감나무도 보고 갔겠죠. 감을 소재로 한 작품 쓰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향의 감나무가 섭섭해한답니다. '감시'를 해마다 1년에 한 작품은 꼭 남겨야 한다고 자신과 지금부터 약속을 해 놓으시면 분명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좋은 작품을 남길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만은 시인들이 시집을 낼 때, 그 시집 속에 '감시' 한 편 없는 너절한 작품들을 보노라면 저는 참 실망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감시' 한 편만 보이면 보석처럼 보입니다. 여기의 감은, 현상적으로 저 가을 하늘을 향해 붉어지는 감나무의 감이기도 하겠지만 소외되어 있는 '농민'이라는 것을 시인들은 이미 아실 것입니다.
편지 읽고 감동하여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늘 용기 있고 씩씩한 선생님"이라 일컬어 주셨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부끄러운 자신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명랑한 동생처럼 쓴 희망이 넘치는 편지글에서 "사회에 봉사한다"는 그 생각 말입니다. 사실 저도 그러한 마음이 아니었고, '한겨레'가 아니었으면 일찍이 신문배달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쉽지 않은 1인 시위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의 '한겨레'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토요일, 두 번째 시위는 11시에 시작 12시 30분에 마쳤습니다. 어제 생소했던 그 자리는 이제 점점 내가 서있을 '내 땅'이라는 정감이 듭니다. 더욱 자신감이 다져짐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1인 시위를 계획하며, 그 짬나는 시간(추석연휴)에 장편소설<연금술사>를 읽은 것을 또 반복하여 얘기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주인공 싼티아고가 보물을 찾고자 사막으로 떠나는 모습이, 바로 "지국을 꼭 개설하고 싶다"는 그 생각과 합일점이 느껴지기 때문인 거죠. 한반도의 분단상황이 사막의 전쟁터와 같은 곳이라면, 여기 '한겨레'야말로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보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진대 그 누군가가 괴산 땅에서 씨를 뿌리겠다는 농부의 자세로 "평생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거리 일 수도 있습니다.
본사에 연락하여 나와 함께 담당직원을 만나보고, 적극 주선하고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젊으니까 무엇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어쩌면 '한겨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가시밭길에 들어서는 비장한 각오를 하시면, 그만큼 영광도 크리라 믿습니다. 괴산 땅에서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내시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수첩 어딘가에 전화번호가 있을 터인데, 이사하느라 당장 찾지 못하여 그 맑은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네요. 좀 답답해도 기다리고 있노라면, 사노라면 그 좋은 날이 오겠죠!
2004.10.2. 1인시위 둘쨋날. 흰머리소년 올림
< 철옹성 >
법(法)이란 흐르는 물길 같은 것이라 하였거늘
한 곳에 고여 있는 저수지물은 보수적이고
소리내어 흐르는 시냇물은 진보적이었지
바위 같은 절대권력으로 막은 저수지일지라도
터지면 범람하여 진보로 변해 하나되어 흘러가지
새시대의 폭포수처럼 치솟은 진보의 물소리가
백두산 천지물줄기 같은 기적의 물소리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116의 25번지 언덕중턱에서
콸콸콸, 수맥이 터져 나온 88년5월15일 그날
새벽의 꿈속에서 나는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남과 북 두 하늘을 잇는 쌍무지개를 보았다지
물은 두레박으로 퍼 올릴지라도 몸 속의 피처럼
흘러갈 목적지가 분명하여 답을 알고 있거니
역류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발등까지 젖어드는
물소리를 못 본 척,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좌측은 보기도 싫어 사팔뜨기가 된 오늘의
관료주의자들은 먼 산 바라기만 하고
숲과 새소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대의 앉은뱅이가 되어 정좌하고 참선하듯
사무실속에 스스로 갇혀 철문 안으로 잠그고,
철옹성의 녹 쓴 열쇠 언제까지 움켜쥐고 있는
저들은 선인이옵니까, 시대의 죄인이옵니까
16년이나 지나도록 땜처럼 버티고 가로막아
스스로 고인 저수지, 보수의 울안에서
그들만의 밥그릇으로 숭늉만 퍼마시고
진보의 물은 독약처럼 마시기를 거부하며
법문만 뒤적거리고 상한 음식만 새김질하는
저들의 귀는 물소릴 듣지 못하는 걸까
한 세상 살면서 눈먼 성직자들도 있어
예수도 진보주의자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가슴속에 철옹성의 문고리 하나씩 잠그고
진보하는 물의 진리를 알지도 못할진대
어이 통일의 아기숨소리를 들을 수 있으랴
< 한 자리에 홀로 서서 >
1인 시위하는 것을 신문지상에서 가끔 보았지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고, 우두커니
편안하게 서 있는 자세로 신문에 사진이 보도되어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현장자료로 남겠구나 싶었지
그러나 정작 내가 그 자리에 허수아비처럼 말없이
홀로 서서 오가는 낯익은 사람들 응시하다가
지긋이 깜기도 하는 데, 크다란 벽시계의 추가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상상도 해보다가
그 시계소리 들리는 듯 착각이 들기도 하다가
그 것도 지겨우면 자동차들이 1분에 몇 대씩
지나다니는가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2시간을 버텨본다
그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자기와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아니 내 두 다리가
콘크리트기둥처럼 튼튼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휴대폰을 상의 호주머니에 넣고 그 무게가 가중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입은 옷도 거추장스럽게 무겁다
단지"친일반민족언론/범죄집단/조선일보 구독하는/
법원은 각성하라"라고 쓴 피켓도 그저 무겁게 느껴지며
이렇게 할 일 없이 서서 허풍을 떨고있는 것은 아니지
첫날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지나다 신통하게도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묻거늘 훗날 어떻게 기억할까
3일째인데, 법원직원 한 분이 나왔다 들어가며
"매일 할거요. 언제까지 할거요"라고 덤덤하게
근성으로 묻는 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출발이다 나도 모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1시까지, 2시간이 힘들면 1시간으로
줄일 수도 있고, 매일하기가 힘들면 격일로 하고
그래도 힘들면 1주일에 한 번씩 할 수도 있으리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이 보장하는 1인 시위이기에
새벽 3시에 맞춰놓은 시계소리에 일어나 준비해서
신문배달마치고, 아침 8시에 식사를 하고 나면 졸음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젠 오전에 잠잘 시간도 놓치고,
이렇게 힘들다고 쉽게 포기할 문제는 아니지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기진맥진하다 쓰러져 죽으면
<조.중.동> 아닌 신문 한 귀퉁이에 아무개 죽었다고
보도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였노라 자위하리라
또 누군가는 자업자득이라는 헛소문도 퍼트리겠지
(2004.10.4)
번호:1510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19 날짜:2004/10/06 23:55
이 한목숨 바치는 것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제야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만, 10월 1일부터 영동법원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하여 오늘6일이 지났습니다. 국가기관에서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현재 2부나 구독해주고 <한겨레>는 창간 이후 16년이 지나도록 외면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지금은 군부독재시대도 아닌 민주정부, 노무현 참여정부하의 사법기관이 특정언론을 배척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 할 수 없어 나섰습니다. 특히 '친일반민족언론' 조선일보가 80년 '광주사태'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광주시민의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을 영웅처럼 보도한 그 증거는 광주5.18민주영령묘지에 가 보시면, 그 때의 신문을 전시해 놓은 것을 저는 5년 전에 직접 가서 보고 왔습니다. 그러한 '족벌언론' '언론재벌'은 특별히 '대접'해고, 민주화에 헌신하고 바른 소리하는 신문, 소위 국민이 모금하여 세운 <한겨레>를 국가기관의 공무원들이 배척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질의서'를 보내도 책임자가 전화 한 통화도 없는, 이 나라의 일부 사법기관 공무원들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국민들은 세금을 열심히 바쳐야 한다는 말입니까. 저 공무원들의 자세가 저러할 진데, 저들의 자녀들은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저는 한나라당이 청와대에 질의서를 보내듯이,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 질의서8월 13일자로 내용증명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서면으로 답을 못하겠으면 전화로라도 답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타부타 말이 있어야지, 대답이 없는 데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답변이 있기 전에는 도저히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일내도 모래도 아니 12월말까지라도, 내년에라도 내가 <한겨레> 영동지국에 몸담고 있는 한, 영동법원 정문 앞 1인 시위 서있는 자리는 '내 땅'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끝으로 " 나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 나는 결과에 집중한다. 나는 커다란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라는 구절을 최근에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쩌면 내 생각과 이렇게 일치하는지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내가 이기나 저들이 이기나 두고 볼 것입니다. 이렇게 싸우다 이 한목숨 바치는 것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어차피 배우지 못한 제가 배울 만큼 배운 똑똑한 저들과의 싸움에 단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이 길을 갈 것을 여러분 앞에 맹세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이만 적겠습니다.
흰머리소년 올림
꼬리말 쓰기
노재우 결연한 의지는 존경스럽습니다만, 장기간 투쟁하여 그들을 굴복시키자면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건강을 돌보며 더욱 굳은 의지를 다지기 바람니다. 급변하는 환절기 날씨에 건강이 걱정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합니다. 그들도 흰머리소년님의 뜻을 곧 알아 차릴것으로 생각됩니다. [2004/10/07]
한백호기자.. 허허 법원장놈이 방우영일가와 일가친척이 되든지 아님.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전형적 수구꼴통 잡배가 아닌가 하오.사법부 위기를 단초요! 육법전서 달달외어 영감자리에 등극한 자 같소! [2004/10/07]
언제나청춘.. 아직은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워야 할때라고 생각됩니다. 힘들겠지만. 조그만한 소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물러서기는 자존심이 허락 하지않지요. 무슨 대책을 논의해야 하지안을까요. [2004/10/07]
흰머리소년..
고맙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자존심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한사모의 명예를 걸고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제가 올리는 글을 잘 읽어주시고 지적해 주시면 '실수' 없이 성공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들이 '철옹성'같고 "신통력'을 부리듯 하지만 사태의 발단을 보더라도 제가 칼자루를 잡고 있고,
고맙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자존심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한사모의 명예를 걸고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제가 올리는 글을 잘 읽어주시고 지적해 주시면 '실수' 없이 성공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들이 '철옹성'같고 "신통력'을 부리듯 하지만 사태의 발단을 보더라도 제가 칼자루를 잡고 있고, [2004/10/07]
파랑새 존경스럽습니다.. [2004/10/09]
번호:1515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12 날짜:2004/10/07 21:08
나의 자존심과 저들의 신통력
법원 정문에서, 고향의 초등학교 한 후배를 만났네
한 때 농사 짓고 우시장에도 다니고 하던 그도
이제 쉰 살 넘고 보니 돈을 좀 모았는지
뭐 하러 왔느냐고 물었더니 경매가 있다해서
왔다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야지 지국장이 이렇게
직접 나서야 되겠느냐고 하는 그는 어느새
내게는 먼 나라의 이국사람처럼 느껴졌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가 대한민국의
능력 있는 지국장은 조.중.동(조선, 동아, 중앙,)과
스포츠, <한겨레> 구분 없이 여러 가지 신문을
한 지국에서 관리하여 떼돈을 벌기도 하지만
나 같이 덩치작고, 배운 것 없고, 밑천도 없이 사는
<한겨레>골수분자는, 판사 변호사는 물론 그들
조직원도 그들의 발뒤꿈치 때만큼도 여기지 않지
옥천서 왔다는 노신사는 몇 발자국 앞에서
내가 바닥에 늘어놓은 1인 시위용 홍보물을 읽더니
독백처럼 "자존심싸움, 감정싸움" 어쩌고 말하네
왜 온 몸으로 나서게 되었는지 본질도 모르면서
잘 씨부렁거리네, '친일반민족언론'을 애독하고
대접해주는 이 나라 훌륭하신 사법공무원 저들은
자존심만 아니라 기득권의 신통력도 발휘하는 듯
16년 동안 배달해 왔고, 평생 신문배달 신세
벗어나지 못할 나에게도 자존심은 있고, 용기도 있고
저 하늘의 태양 같은 뜨거운 신념도 있어 나섰거늘
오늘따라 따가운 가을 햇살이 친구처럼 느껴지고
등줄기에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내 몸의 수정 같네
누군가 얼굴은 알 수 없지만 넉넉한 목소리로
"수고 많습니다"라고 한 마디 던져 힘을 보태주네
꼬리말 쓰기
언제나청춘.. 수고한다는 말한마디가 용기와 힘을 줍니다. 그런사람이 많이 있었야 할텐데... [2004/10/08]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22 날짜:2004/10/08 09:52
< 세상은 이치대로 살아야 하느니>
세상은 이치대로 살아야 하느니
아침해가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땅이 있고 하늘이 있는 것처럼
여자가 있음에 그 뱃속에서 남아가 태어나고
불같은 남자와 물 같은 여자가 상극인 것 같아도
하나의 우주조화처럼 한 쌍의 부부가 되고
사랑의 실천으로 생명은 창조되고 성장하여
역사는 이어져 큰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흘러가며 '한강'이 말해 주고 있거늘
좌측의 왼팔이나, 우측의 오른 팔이나
모두 한 몸의 지체이거늘
좌경은 안되고. 우경은 되고?
<한겨레>는 안되고, <조선일보>는 되는
그러한 불공평한 법이 세상에 어디 있나
국민의 세금으로 존립하는 국가공공기관에서
족벌언론은 끌어안고 구독해 먹여주고
민주언론은 거절하여 굶겨온 16년의 지난 세월이
너무나 잔인한 공무의 소치임을 만천하에 고하여
단죄할지니, 이번 기회에 참회하고
영동지원은, 세상의 이치대로 살아야 하느니
꼬리말 쓰기
노재우 흰머리소년님 ! 공자님 말씀입니다. 흘러가는 이치대로 살아야 썩지 않고, 희망의 나라로 갈수 있습니다. 건강 조심 ! [2004/10/08]
언제나청춘.. 옳의신 말씀 그래서 우리 한사모도 언론개혁을위해 진보적인 신문을 살려보자고 모인거죠. 흰머리소년님도 팔자에 없는 1인시위를하고. 어느구가 그랳던가요. 좌익도 나쁘지만 우익은 더욱 나쁘다고. [2004/10/08]
충북대학교 시인 임보 교수님께서 위로의 글 주셨습니다
번호:1518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23 날짜:2004/10/09 09:37
흰 소년님,
작은 몸으로 고군분투하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달려가서 격려의 말씀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말만으로 위로를 보내드린 걸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올린 글의 내용으로 보아 흰소년님의 주장이 크게 무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개인의 경우라면 취향에 따라 특정한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관공서는 논조가 상반된 다양한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글쎄요. 관공서에 신문구독료가 없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웃으면서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아마 그분들이 흰소년님을 유명하게 만들어드리려고 그러나 봅니다.
아무튼 몸도 잘 돌보시며 시위를 하시기 바랍니다.
운수재.
주) 운수재는 임보 시인님의 호 입니다. 고향은 전남 나주 이시고 올해 66세 이십니다. 제가 애송하고 있는 <우리들의 새 대통령>이란 좋은 명시를 쓰셨습니다. 제가 노사모게시판 등에 많이 퍼다 날랐고, 지난 7월 충북민예총이 제주도에 가서 제주민예총과 서귀포 바닷가 야외무대의 행사장에서, 제가 이 시낭송을 두눈 깜고 하여 큰 박수를 받은바 있습니다. 저는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좋은 작품은 통째로 외워서 낭송을 취미로 한답니다. 이 덕택에 이번 1인 시위하면서, 2시간 동안 서 있는다는 것은 참 지루하기도 하죠. 그러나 외우는 시를 이때 중염불하듯 외우고 있노라면 시간이 잘 흘러간답니다. 이렇게 시위 할 때 써 먹을려고 외웠던가 봅니다. 어떤 성경 구절 보다도 더 좋은 것이 詩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힘이되는 글 주심으로 해서 큰 위로의 힘이되고 있습니다. 반드시 승리 할 것입니다. 오늘 낮 11시 30분에 옥천신문의 안티조선 수장 오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위로해주며, 오마이뉴스 기자가 현장취재차 영동으로 온다는 소식도 살짝 귀뜀해 주고 떠났답니다.내일 오후 3시! 탑골공원에서 뵙겠습니다. 흰머리소년 올림
꼬리말 쓰기
언제나청춘.. 이제 조금씩 흰머리소년님의 1인시위가 알려지는군요. 옥천신문이나 오마이뉴스에 기사화되면 영동이 확 디집어 지리라 생각됩니다. 폰떼을 학실이 보여줍시다.여려분!! [2004/10/09]
정재현 왜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승리 하실것입니다. 항상 건강 챙기시고... [2004/10/09]
<1인시위 11일째>시월의 태양 아래서
번호:1532 글쓴이: 흰머리소년
조회:16 날짜:2004/10/12 18:10
(1인시위 11일째)
< 시월의 태양 아래서 >
이천 사 년 시월 십일일 낮 열 한시
가로수 감나무의 감들도 수줍은 듯
소녀의 얼굴처럼 붉게 물들어 가는 질서도
저 뜨거운 태양의 햇살입김이
포옹해 준 결과이렷다
무더위도 짐승처럼 꼬리를 감추고
가을의 한 복판으로 가는 길목에서
홀로 만나는 시월의 태양이
내 몸뚱어리를 무쇠처럼 달구려는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절대절명의
땀방울들이 신념을 부추기며
내의를 적시고 분노케 한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게 검은 죄업이라면
여기 벌을 서서 온몸을 기름을 짜듯
쥐어짜서라도 검은 땀방울로
빠져나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울부짖느니, 내 몸뚱어리여
이따위 고통쯤이야 감내하리라
그리하여 이 가을의 농익은 과일이 되어
방탄유리 같은 저들의 권위의 발등에
떨어져 산산이 산화하고 싶구나
시월의 태양아래서
漸漸漸漸(점)뜨거워지는 내 영육일치의 떨림은
감나무가로수 나뭇가지 위의 새소리처럼
이름 알 수 없는 청아한 저 목소리로
음정과 박자가 빈틈없이 맞춰가며
큰 파동으로 울려 퍼지리라
뭇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리라
*영동법원 앞에서, 냉담한 저들의 눈에는 내가 들고 있는 피켓 "친일반민족언론/범죄집단/조선일보/구독하는 법원은 각성하라" 구호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나 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도저히 중단 할 수 없습니다.혼자서 힘들면 <1인시위체험단>을 모집해서라도 관철시켜야 합니다.지금 저의 행위는 장난이 아닙니다. 오로지 정당성 하나만으로 일어 선 저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예수도 칼을 들고 일어섰듯이, 저도 지금 칼을 들고 있습니다. 저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칼'입니다. 이제 나는 이 칼자루를 잡고 있으며, 저들은 칼날을 잡고 있는 상황 입니다.이러한 나의 절대절명의 신념은 저 '시월의 태양이'친구가 되어 힘을 보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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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청춘.. 흰머리소년님 고생이 많습니다. 어떤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성과를 내야하는데 무슨 좋은수가 없나 지혜를 짜내야합니다. [2004/10/12]
흰머리소년..
다음 주간 중에 한사모 회원 누구라도 가을의 정취도 맛볼겸 영동에 올 수만 있다면 하루동안 릴레이식 1인(10~20분 간격으로) 시위를 체험해 볼 수도 있겠고, 11월 두째주 한사모 모임을 영동에서 하되, 이 날 본사의 손석춘 논설위원을 한사모 공식 초청강사로 영동에서 가칭 '참언론 강연회'(한겨레 명예찾기)를 개최?
다음 주간 중에 한사모 회원 누구라도 가을의 정취도 맛볼겸 영동에 올 수만 있다면 하루동안 릴레이식 1인(10~20분 간격으로) 시위를 체험해 볼 수도 있겠고, 11월 두째주 한사모 모임을 영동에서 하되, 이 날 본사의 손석춘 논설위원을 한사모 공식 초청강사로 영동에서 가칭 '참언론 강연회'(한겨레 명예찾기)를 개최? [2004/10/12]
흰머리소년..
또 흰머리소년의 이름으로 한겨레 생활광고란에 '1인시위 체험단'을 모집하여 참여하는 분들에게는, <빈 항아리의 울음>(당그레2004년 판)을 지은이 흰머리소년이 직접 사인하여 '처험의 선물'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기타 이벤트나 좋은 아이디어를 여러분들이 짜내시기를!
또 흰머리소년의 이름으로 한겨레 생활광고란에 '1인시위 체험단'을 모집하여 참여하는 분들에게는, <빈 항아리의 울음>(당그레2004년 판)을 지은이 흰머리소년이 직접 사인하여 '처험의 선물'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기타 이벤트나 좋은 아이디어를 여러분들이 짜내시기를! [2004/10/12]
< 내가 서 있는 곳 >
내가 서 있는 곳 , 바로 등뒤에 법원 건물이
철벽처럼 서 있고, 오른 쪽에 검찰지청이
한 울타리 안에 두 건물이 형제처럼 나란히 있다
내가 서 있는 곳 좌측 5미터 거리 울타리 곁에
큰 호두나무가 법원 마당에 그늘을 주고
우측 8미터 거리에 내 허벅지 굵기의 감나무
내가 서 있는 앞 10미터 폭의 도로와 인도사이에
내 무릎 굵기의 감나무 나이는 청소년 정도 될 듯
읍내 다방의 차 배달하는 차들도, 학원차도 지나가고
식당의 점심배달 하는 오토바이도 지나가고
가끔은 미국사람 같은 외국인이 탄 차도 지나가고
포도상자나 감을 실은 차들도 지나가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아주머니나 청년도, 처녀도
초등학생도 지나다니는 이곳 관청의 정문 앞은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데
유독 망부석처럼 내가 서서 입은 마스크x로 봉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그곳에 아직은 잎사귀가 푸른
단풍나무가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이 불 때 마다
신명나게 춤을 추는 곳 바로 뒷벽건물이 세무서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반경 30미터 거리에 초등학교
그리고 60미터 거리에 한국전력지점 이 모든 기관이
<한겨레>를 애독해주고 있거늘, 오직 법원
이 사람들만 거절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창간 된지 16년이 지나도록 전화 한통화로 거절하는
이 국가기관의 말단조직의 힘이 이토록 막강할진대
상층부의 힘은 어떠할까, 그들도 모두 거절할까
내가 서 있는 곳 이 자리가 동해의 독도처럼 외롭다
2004.10.13
*어느새 13일이지났다. 하루 2시간씩을 이렇게 바쳐야 하나, 빼앗겨야 하나, 이렇게 힘들게 신문 1부 확장(?)하기 위해, 한 달 구독료 12000원을 벌기 위해서 이 짓을 하는 것은 아니지.......
새벽 3시반에 일어나 8시까지 배달마치고. 푹 쉬어야 하는 데, 1인시위 쉽게 시작했다가 지금은 감기까지 걸였다. 콧물이 줄줄줄 흐른다. 내일도 오전 11시에 과연 나가 서 있어야 하나. 여기서 포기하자니, 치욕스럽다. 죽드라도 그 자리에 가서 서있다가 쓰러져 죽어야 하겠지......저들은 코방귀도 안 뀐다. 점심시간에 저들은 희희낙낙 신나게 밥먹으러 식당으로 간다. 1시에 마치고 집으로 오면 다리가 아프다......이런 말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내 나이 마흔만 되어도 이런 소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5~6년 전에만 해도 서울이나 부산까지 몇 시간씩 열차타고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도 다녔는 데...
흰머리 소년님께............. !
번호:1542 글쓴이: 데카르트
조회:6 날짜:2004/10/15 12:30
물론 속상하기로 말하자면 저 또한 형님만 못하겠습니까 ?
16 년간이나 변하지 않는 저들의 수구 보수성에 혀를 찹니다.
그러나 이제 충분히 형님의 뜻을 알렸다고 믿습니다.
이제 그만 거두시고 건강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조선일보의 역선전에 말릴까 우려 됩니다.
그리고 어쨋든 형님은 이해 당사자 입니다.
형님이 나서시는 겄은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시민단체에서 나서면 모를까..........
충심으로 드리는 고언 (苦言) 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꼬리말 쓰기
흰머리소년..
저의 건강을 걱정해주시는 것은 고맙스니다만, 이번 사태의 본질에서 빗켜간 의견같습니다. 오해는 없구요. 이쯤에서 만약 포기한다면 저는 '실없고 우스운 장난'끝나고 말 것이며, 저 수구보수들은 더욱 춤추고 기세등등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들의 겉태도는 무관심한 것 같은 데, 장기 전으로 전술을 바꿔야 할 듯 [16:07:39]
흰머리소년..
예를 들면 2시간을 한 자리에 부동자세로 꼬박 서 있다는 것은 심적으로도 힘듭니다. 지금까지는 참아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떠오른 생각은 한 자리에서 무료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느니 2시간 동안 서서 책을 읽을 수 있죠. 그야 말로 일석이조. 또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이색적인 <1인시위 명물>로 홍보효과도? [16: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