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클루니 George Clooney〔1961〕】 “무명 시절 함께한 친구들에게 100만 달러씩 선물"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미중년 배우로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데뷔 후 한동안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30대 후반부터 서서히 구축한 백인 상류층 남성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유지해 오고 있고, 그 이미지를 토대로 연기를 넘어 각종 사업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본인 역시 위대한 아이콘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숨기지 않는 중. 다만 명성에 비해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는 매우 빈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본업 외적으로 유명하다는 비판이 꾸준이 나온다.
1961년 5월 6일, 미국 켄터키 주 렉싱턴에서 태어났다. 클루니 집안은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다. 아버지 닉 클루니는 TV 진행자이자 앵커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미인대회 입상자 출신이었다. 또 친가 쪽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인기 가수였던 로즈메리 클루니와 베티 클루니가 바로 두 고모일 정도로 헐리웃에 친숙한 집안이었다. 조지 클루니는 TV 앵커인 아버지를 따라 5세부터 방송국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가족은 오하이오주 메이슨로 이주를 가서 그곳에서 몇 년간 살다가 중학교 1학년(7학년) 때 다시 켄터키로 이사했다. 학창 시절 그의 꿈은 야구 선수였다. 하지만 오거스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7년 신시내티 레즈의 트라이아웃(입단테스트)에 지원했지만 탈락했고 클루니는 큰 좌절을 느꼈다. 19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에 신설된 학교인 노던 켄터키 대학에 진학하여 2년간 다녔지만 졸업하지 못했다. 훗날 신시내티 대학교에도 잠시 등록한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노던 켄터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사촌이 만든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첫 영화는 찰리 신과 함께 찍었다. 비록 영화는 개봉하지 못했으나 이후 제작자의 눈에 띄어 작품들의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저예산 영화에 출연했었다. 1983년에 식인곰이 나온 호러영화 그리즐리 2에서 맨 처음에 나와 곰에게 아작나는 캠핑커플로 나와 22살 그야말로 풋풋한 시절 모습을 보였으며 1991년 2월 2일 KBS 2TV 토요명화로 소리소문 없이 더빙 방영한 TV영화인 《사랑의 연병장》(Combat Academy/1986/ 비디오 제목은 아카데미 대소동)이라든지, 저예산 호러영화 공포의 크리픈 고교 Return to Horror High(1987), 전설적인 괴작 영화 《토마토 대소동》 2편인 《돌아온 토마토 공격대》(1988) 같은 영화들까지 마구 나오던 시절도 있다. 더불어 전설의 괴작, 《배트맨과 로빈》에서 배트맨으로 연기했다.
10년 동안 워너 브라더스에서 활동하다가 1994년 시작된 TV 시리즈 《ER》에서 지적인 의사로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다. 당시에 반항적인 캐릭터와 시저 헤어스타일이 화제를 모으기도. 1996년 1월 쿠엔틴 타란티노 원작,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로 영화에 데뷔, 로맨틱 코미디 《어느 멋진 날》에서도 미셸 파이퍼의 상대 역으로 출연했다.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과 로빈》에도 배트맨으로 캐스팅되었는데, 흥행에서는 그런 대로 성공했지만 평이 최악이었던 이 작품엔 조지 클루니 본인도 비판적이어서, 스스로 놀려먹을 정도. 후일엔 '촬영장에서 좋은 사람도 만났고 좋은 촬영이었지만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다. 그 슈트는 못 참겠더라. 입을 땐 신경 안 쓰지만.'정도의 대답을 했다. 3편까지 개봉한 '오션스 시리즈'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흥행배우로 입지를 굳혔고 코엔 형제 감독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중동의 석유와 관련된 음모를 다룬《시리아나》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하였다.
특이하게도 코엔 형제 감독 작품에 자주 캐스팅되는데, 항상 바보얼뜨기 역으로 나온다.
가정환경 덕분에 방송가에 진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사실 현재 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출생 성분을 갖고 있다. 전형적인 얼굴만 잘생긴 미국 남부 촌뜨기였던 그의 젊은 시절을 청산하고, 중년이 되어가면서 섹시한 상류층 신사의 이미지를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이 터진 경우다. 실제로 커리어 초기 시절 부업으로 여성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구두를 판매하는 일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과거를 회상하기도.
테킬라 업체 카사미고스(Casamigos)를 마이크 멜드먼을 비롯한 친구 14명 정도와 함께 2013년에 공동 설립하였다. 원래 친구들끼리 휴가 때마다 모여서 테킬라를 증류하고 마셔보던 취미활동으로 시작했지만 판이 커져서 사업화까지 하게 되었다. 이때 클루니는 직접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현재는 영국의 유명 양조기업 디아지오에 팔았다. 이때 디아지오에서 인수한 금액이 $700M(7억 달러). 추후 판매량에 따라 $300M의 옵션도 붙어 있어 총 인수액은 10억 달러(당시 한화 1조 2500억). 카사미고스를 매각한 후 남은 자금은 조지 클루니가 친구들에게 인당 10억씩 나눠줬다고 한다. 이때 클루니가 증여세까지 모두 대납해 줬다. 사실 이는 무명 시절 별 경제적 기반도 없고 허덕이던 조지 클루니를 끝까지 지지하고 먹여주고 재워준 친구들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빈털털이였던 저를 먹여살린 건 저 친구들이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죽으면 이들에게 갈 돈인데 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
첫댓글 "난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 여정을 믿는다."_George Clooney
"유일한 실패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_George Clooney
• "나이가 드는 것은 좋지만, 대안은 죽음뿐이다." _George Clooney
"내 목표는 예순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건 꼭 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_George Clo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