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33. 막고굴 제148굴 ‘보은경변’
일체중생이 여래의 부모임을 아는 것이 보은
본생담 통해 삼보·군자와 부모·중생 은덕에 대한 보답 설법
석존 출가는 지극한 효심서 비롯…중생 은혜 속 성불도 가능
유·불교 사회적 회통점은 은혜 생각하고 갚으려는 마음·행동
막고굴 제148굴 보우경변 중 ‘서품' 장면. 화면의 우측은 바라문이 노모를 업고 걸식에 나서는 모습이다. 좌측 화면은 아난과 노모를 등에 업은 바라문이 마주하고 있는 중에 외도가 석가모니불의 불효를 비난하는 장면이다.
어느 날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법 중에는 부모에게 효도로써 봉양함이 있습니까?”
그때 세존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다섯 빛깔 광명을 놓으셨다. (‘보은경’ 서품)
위 대화는 ‘보은경’ 설법의 계기가 되는 서품의 내용이다. 어느 몰락한 바라문의 아들이 노모를 등에 업고 걸식을 다녔다. 아들은 좋은 음식을 얻으면 어머니께 드리고, 안 좋은 음식은 자신이 먹었다. 걸식에 나섰던 아난이 이 모습을 보고 크게 찬탄하였는데, 이때 한 외도가 석가모니불의 불효와 배은망덕을 비방하였다. 아난은 외도의 비난에 크게 낙심하여 돌아와서 부처님께 질문을 올린 것이다. 과연 외도의 주장처럼 세존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목숨을 여의케 하고, 부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하였으며, 또한 부부의 의를 저버렸으니, 마땅히 불효한 사람이며, 은혜를 모르는 사람인가? 이러한 사회규범과의 모순 여부와 관련하여 불교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강설한 경전이 곧 ‘보은경’이다.
‘보은경’의 원명은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으로 7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체 내용은 총 9품으로 구성되었다. 각 품마다 수사제태자, 인욕태자, 선우·악우 형제, 오백 도적, 우파리, 금모사자 등 다양한 본생담을 통하여 불교에 내재된 보은사상, 즉 삼보(三寶)·군자와 부모·중생의 은덕에 대한 보답을 교설한다.
역자나 번역 시기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으나, ‘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서 현경5년(656년) 현장(玄奘)이 당 고종의 태자에게 ‘보은경변 1부’를 헌상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대 최고의 역경가이자 불학자인 현장도 ‘보은경’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천성의 대족석굴에는 석각의 형식으로 대규모의 보은경변이 남아 있고, 최근 산서성의 고평 개화사에서도 송대에 제작된 보은경변 벽화가 확인되었다.
막고굴 제148굴 보우경변 중 ‘악우품' 선우태자 본생담.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주를 얻는 장면, 악우 태자와의 대화, 악우태자에게 눈을 찔리는 장면, 소가 대꼬챙이를 뽑아주는 장면 등이 차례로 전개된다.
돈황석굴에서 보은경변은 성당(盛唐) 시기 출현해 송대에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현재 35폭의 벽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서품, 효양품, 악우품, 논의품 및 친근품을 위주로 그려졌다. 그중 성당 시기(776년)에 조성된 막고굴 제148굴의 보은경변은 특이하게도 주실 내부가 아닌, 주실로 통하는 통도(通道)의 천장부에 그려졌다. 비록 경변의 중심을 이루는 설법도 부분은 훼손되었지만 각 품의 내용을 표현한 부분을 확인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화면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천장의 중앙에는 ‘보은경’ 설법의 서품, 즉 바라문 아들의 효행과 육사외도의 석존에 대한 비방 장면이 묘사되었다. 그 우측에는 효행품을 표현하였다. 효행품은 서품에서 제기된 ‘불법에도 효행이 권장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으로 수사제(須闍提)태자 본생담을 담고 있다. 효행품의 화면은 여섯 가지 장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우측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진행하면서 피난길에서 수사제태자가 굶주림에 죽어가는 부모를 위해 자신의 허벅지살을 바치는 장면, 제석천이 태자의 보살심을 시험하기 위해 사자와 호랑이로 변하여 공격하는 장면, 태자의 보살심이 증명되어 몸을 회복하는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경문에서 설하길 “보살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되 그 이치를 생각한다”고 하였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보은은 무조건적이거나 응당 해야 할 의무로서가 아니며 “일체 중생이 일찍이 여래의 부모이며” “여래 또한 일찍이 일체중생의 부모가 되었었던” 이치를 아는 것이다. 결국 아난의 질문에 대한 세존의 답은 석존의 출가는 오히려 지극한 효심에서 비롯한 것이며, 성불은 일체중생의 막중한 은혜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서품의 좌측에는 ‘악우품(惡友品)’이 묘사되었다. 총 4개로 구성된 세부는 중생들에게 보시할 재물을 얻기 위해 바다로 나간 선우태자가 용왕의 마니보주를 얻는 장면, 이 사실을 아우인 악우태자에게 얘기하는 장면, 선우태자가 잠든 사이 악우태자가 형의 눈을 대꼬챙이로 찔러 눈을 멀게 하는 장면, 소 떼의 대장소가 선우태자를 몸으로 보호하고 혀로 핥아 대꼬챙이를 뽑아주는 장면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은경’의 서품, 효양품, 악우품은 이후의 보은경변에서도 줄곧 변상의 중심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막고굴 제148굴 보우경변 중 ‘효양품' 장면.
‘보은경’이 중국에서 유행한 이유는 물론 경에서 설하는 보은 사상이 중국의 전통적 사회윤리 규범인 유교와 회통하기 때문이다. 유교의 관점에서 승려가 출가수행하는 것은 부모를 등지고, 사랑을 저버리며 혈육을 떠나는 것이며, 세속의 예법과 도덕의 예속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이후 줄곧 유·불 간의 대립이 있었으며, 남북조시기에 들어서는 극도로 격렬하게 충돌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보은경’과 같이 세속적 윤리 규범의 시각에서 불교의 교리를 조명하는 시도는 필연적이었다. 제148굴의 석굴 설계자가 예외적으로 보은경변을 통도의 입구에 장식한 것은 세간(석굴 외부의 현실)과 출세간(석굴 내부의 불국토) 사이에서 갖는 본 경의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
‘보은경’ 제7권 ‘친근품’에서 세존은 어느 병든 비구의 부스럼에 난 피고름을 몸소 씻어 주신 후 말씀하셨다.
“여래는 이제야 그대의 무거운 은혜를 생각하였고, 여래는 이제야 그대의 은혜를 갚으려 하였느니라.”
결국 ‘보은경’에서 바라보는 유교적 사회윤리와 불교적 가치 사이의 회통점은 은혜를 생각하고 갚으려는 마음과 행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은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자비(慈悲)’에 대한 인식도 재고할 여지를 제공한다. 자비란 어쩌면 타인을 향해 은덕을 베푸는 마음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온 은덕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1683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