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02월08일(일요일) 제천시 [옥순봉 출렁다리&비룡담저수지 마법의성&의림지&제천역전한마음시장&한방엑스포공원&배론성지] 탐방일정
회비 16,998원 1월16일 국민은행 / 750602-01-190920 노블레스클럽 전진보 계좌로 송금 완료
2열2번 좌석 예약
탐방지 : 제천시 [옥순봉 출렁다리&비룡담저수지 마법의성&의림지&제천역전한마음시장&한방엑스포공원&배론성지]
탐방일 : 2026년02월08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6시간40분 소요)
08:10~10:5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교대역 13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77-16 번지에 있는 제천옥순봉출렁다리 제1주차장으로 이동 [2시간 40분, 168.0km]
10:50~11:30 옥순봉 출렁다리를 탐방
[옥순봉 출렁다리
청풍호반 수면 위에서 제천 10경 중 하나인 옥순봉을 가장 가까이에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옥순봉 출렁다리는 2021년 10월 22일 개장하였으며, 길이 222m, 너비 1.5m의 연결다리 및 408m 길이의 생태탐방 데크로드와 야자매트로 이루어진 트래킹길까지 더하여 호반과 옥순봉을 둘러볼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다리를 건너며 느낄 수 있는 아찔한 스릴과 함께 자연 속에서의 힐링을 동시에 제공하는 장소이다. 특히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사진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주변에는 등산로와 전망대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 단위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즐기기에 적합한 관광지이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20)
[동절기(11월~2월)] 10:00~17:00 (입장 마감 16:20)
쉬는날 :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첫 번째 평일) / 설·추석 연휴 / 근로자의 날
주차시설 : 가능
신용카드 가능여부 : 가능
문의및안내 : 043-641-6738
관련 홈페이지 : https://tour.jecheon.go.kr/tour/
상세정보
입 장 료
- 일반 3,000원
- 제천시민 1,000원 ]
11:30~12:3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제천옥순봉출렁다리 제1주차장을 출발하여 충북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992-5 번지에 있는 비룡담 저수지로 이동 [1시간 5분, 39.7km]
[‘제2 의림지’ 비룡담 저수지
의림지는 의구하되, 제2 의림지는 변신한다. 요즘 의림지 못지않게 제2 의림지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의림지보다는 산골 깊숙한 곳에 있는 비룡담 저수지는 숲속에 둘러싸인 비밀의 성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마법의 성’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아름다운 경치와 유럽 캐슬 형태의 구조물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저수지 주변에는 수변데크길이 조성돼 산책을 즐기며 제천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탁 트인 풍경과 성 구조물, 저수지가 만나 아름답고 선명한 반영을 볼 수 있어 포토존 명소로 자리 잡았다. 눈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도 치유된다고 해 이곳을 ‘제천 의림지 한방 치유숲길’이라고 부른다. 한방 치유숲길은 솔향기길과 물안개길로 이루어져 있다.
비룡담 저수지 가운데에 있는 비룡담 쉼터에는 동물 포토존, 의자 등이 마련돼 있어 여행자의 피로한 다리를 잠시 쉴 수 있게 한다. 비룡담 저수지부터 한방 생태숲을 돌아 다시 비룡담 저수지로 돌아오는 ‘물안개길’은 경사도 8% 미만의 데크길로, 산책하기 쉽다.]
12:35~13:10 비룡담 저수지에 있는 마법의 성을 사진촬영
[제천시 비룡담 저수지
미디어전략팀 기자cbnews365@naver.com
충북일보 웹출고시간 2024.11.27. 11:12:02, 최종수정 2024.11.18. 13:40:07
'제천 저수지' 하면 많은 분들이 의림지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제천에는 또 다른 매력적인 저수지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넘어 야경까지 아름다운 명소로 SNS에서도 유명한 '비룡담 저수지'다.
낮에 방문해도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특히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변해 '마법의 성'이라는 애칭까지 가지고 있다.
간략히 비룡담 저수지에 대한 역사를 먼저 짚어본다.
비룡담 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보조수원으로 모산동과 고암동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1968년에 착공하여 1970년에 준공됐다. 이 저수지는 제천시의 중요한 농업 기반 시설로, 지역의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비룡담 저수지는 일반적으로 제2의림지로도 불린다. 그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해가 지고 난 뒤 비룡담 저수지를 다시 찾았을 때,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아름다운 조명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수지 물 위로 비치는 반짝이는 조명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특히 저수지의 물은 주변의 불빛을 고스란히 반사해 마치 거울처럼 빛나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다.
평일에 방문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산책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이곳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비룡담 저수지의 야경은 제천 시내의 경치도 함께 즐길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책로는 안전하게 걷기 좋은 데크길로 조성돼있어 어린이와 노약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산책로 양옆으로 비치는 컬러풀한 조명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는 포토존도 있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기에도 좋다. 또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누구와 함께 와도 부담 없이 걷고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저수지의 웅장한 모습이 점점 가까워진다.
가까워 질수록 한층 더 감동적인 순간을 제공합니다. 저수지에 설치된 조형물은 멀리서 봐도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그 매력이 더욱 빛난다. 전망대에 서면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빛나는 비밀의 성이 저수지 위에 떠 있는 듯한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물결이 일렁이며 만들어내는 빛의 춤은 정말 장관이다.
개인적으로 비룡담 저수지를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이곳이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낭만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특히 저녁 시간의 비룡담 저수지는 그야말로 황홀한 경관을 자랑한다.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힐링의 공간이다. 제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비룡담 저수지에서의 야경을 꼭 경험해보시길 바란다. 이곳에서의 특별한 순간들이 여러분의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제천시 SNS서포터즈 서성진]
13:10~14:10 의림지 솔밭공원과 의림지를 탐방
[의림지 솔밭공원
의림지 솔밭공원은 제천 제1경인 ‘의림지’에서 용두산 쪽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가 제2 의림지인 비룡담 저수지 둑 아래에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공원이다. 이리저리 휘며 자란 소나무들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빼어난 공원으로, 숲 속에 인공 물길을 만들어 물소리와 새소리를 정겹게 감상하면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80년대 제천시 승격 이후, 제천 의용소방대에 의해 아카시아와 돌밭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난 소나무를 의림지와 연계해서 제천의 명물로 탄생시킨 공원이다. 잔디마당을 비롯한 솔숲에 물길을 만들어 솔숲 길을 산책하기 좋아지도록 하여 시민들의 휴식처 및 각 학교(어린이집 등)에서 소풍 장소로 많이 찾는 곳이다. 2020년 솔숲 내 자연형 인공수로를 만들어 여름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제천 의림지와 제림(堤川義林池와 堤林)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241
시대 : 고대/삼국 시대
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12월 4일, 2021년 11월 19일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저수지와 버드나무 숲.
개설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湖西) 지방이라고도 불렀는데,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의림지는 용두산[874m] 남쪽 기슭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저수지로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다. 고려 성종 때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하였는데, 제천의 옛 이름인 ‘의(義)’자에 저수지의 이름인 ‘임지’의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의림지의 정확한 축조 연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于勒)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고 전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는 설도 있으나, 제천의 고구려 때 이름이 ‘내토군(奈吐郡)’인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 둘레 약 1.8㎞, 면적 15만 1470㎡, 저수량 661만 1891㎡, 수심 8~13m의 대 수원지로 현재까지도 의림지가 제천의 중요한 농업 생산 기반으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제천 지방의 대표적인 명승지로서 북으로는 용두산이 내려다보이고, 호수 둑에는 노송과 수양버들, 30m의 자연 폭포 등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을 제림(堤林)이라 부른다.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暎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는 관광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였으나 지정이 해제되었고, 문화재청이 의림지와 주변의 정자 및 소나무가 어우러진 제천 의림지와 제림을 2006년 12월 4일 명승 제20호로 지정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명승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의림지는 제천 지역의 최대 평야 지대인 제천 분지를 관개하는 농경용 수리 시설로 만들어졌다. 의림지는 주변의 수전 개발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농업 생산량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류를 저수하여 가뭄과 홍수로부터 안전하게 전답을 보호해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제천의 의림지를 언제 처음 쌓았으며, 언제 고쳐 쌓았는지에 대한 자료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의림지의 시축 시기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삼한 시대 축조설로서 김제 벽골제 등과 같이 삼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는 입장인데,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둘째는 6세기 중반인 신라 진흥왕대의 악성 우륵이 축조했다는 설이 있다. 이는 의림지에 우륵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기초로 한다. 셋째는 조선 시대에 박의림이나 정인지(鄭麟趾) 등의 인물에 의해 축조되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의림지 시축에 관한 견해들은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서 입론된 것이 아니라 제천 지역에 전해오는 구비 전승에 의존하고 있어 정설화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다만 의림지는 제천 지역이 고구려의 영유기인 5세기 후반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제천은 고구려 영유기 때 이름이 내토군(奈吐郡)이었는데, 이는 시내[川]를 의미하는 말인 ‘내(奈)’에 방죽이나 제방의 뜻을 갖는 ‘토(吐)’의 결합어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는 바로 의림지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의림지 시축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제천시의 의뢰를 받아 1999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의림지의 바닥에 있는 유기질 점토층에 대한 지질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1999년 조사에서는 의림지 바닥의 표층 퇴적물 시추공 시료의 최하부 지층 연대를 추산한 결과 보정 연대 1,034~1,223년 전으로 추정하였다.
이어 2009년 실시한 2차 조사에서는 의림지 제방의 축조 연대를 퇴적물 시료를 분석한 자료에 의거하여 1,900~2,000년 전인 서기 100년 전후라는 연대 측정값을 제시하였고, 아울러 식물 파편을 분석한 자료에 의거하여 1,200~1,100년 전인 800~900년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각각 추정하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제방 축조에 사용된 의림지 바닥 퇴적물보다는 식물 파편 연대를 의림지 제방의 안정적인 축조 연대로 보고 지난 2000년 조사와 같이 통일 신라 시대에 해당하는 800~900년경에 의림지 제언이 축조된 것으로 보았다. 다만 바닥 퇴적물의 분석을 토대로 하여 100년경으로 축조 연대를 소급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의림지가 처음 축조되었을 당시의 제언은 제천천 주변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소규모로 만들어진 저수지였을 것이다. 의림지가 삼국의 중심 지역에서 너무 떨어진 변경 지역에 있었고, 또한 지세가 궁벽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되어 축조한 김제 벽골제처럼 중앙의 지배 세력이 제언 축조에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삼국 시대에 처음 축조된 의림지가 이후 수축을 하게 된 것은 통일 신라 시대인 800~900년대로 보인다. 이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팀이 2000년과 2009년에서 의림지 밑바닥 식물 파편층에 대한 편년 분석에서 안정적 연대로 제시한 800~900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서 8세기 말기인 원성왕 대[785~798]에서 헌덕왕 대[809~826]까지 수해와 한재 등 자연 재해에 관한 기록을 조사해 보면 이 시기에 의림지 수축에 관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의림지도 이러한 배경 하에서 정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의림지가 몇 차례 수축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 수축한 이래 고려 시대에도 제언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제방을 높게 수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토대로 조선 시대에 제방을 복구하는 수축 작업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세종 때 박의림이나 세조 때 정인지가 쌓았다는 전승과 1474년(성종 5) 홍윤성(洪允成)의 건의로 수축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의림지는 연안의 남대지(南大池), 상주 함창의 공검지와 함께 조선의 3대 저수지로 일컬을 정도의 농업 경제상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농업 생산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저수지 수축을 추진하였다. 이때 저수지와 보를 관리하는 규정에 따라 수리 조합이 조직되었다. 제천의 의림지수리조합은 1914년에 결성되었는데 이는 충청북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된 것이다. 1914년~1918년에는 의림지수리조합에 의해 의림지에 대한 대대적인 수축 공사를 벌였다. 관개용 수문을 개축하고 통관, 개폐 장치, 간선 수로, 인입 암구(引入暗溝), 넘쳐흘러 나가는 구멍[溢流口] 등을 수축한 것이다. 그 결과 270㏊의 몽리 면적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쌀 생산량은 1,400석에서 2,170석으로 대폭 늘어났다.
해방 후인 1972년에는 큰 홍수로 인해 의림지 제방이 붕괴되자 이듬해 의림지에 대한 대대적인 수축 공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1972년 8월 18~8월 19일에 홍수가 발생하면서 의림지의 제방 구조의 일면을 알게 되었다. 1972년 당시 의림지는 만수 면적이 15.3㏊[115만 3000㎡]이고, 유역 면적 750㏊[750만㎡], 최고 수심 13.5m, 몽리 면적이 270㏊[270만㎡]였다.
위치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제천 시내로부터 북쪽으로 약 4㎞ 떨어진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제천 IC에서 나와 박달재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약 1㎞ 이동하면 신동교차로가 있으며, 여기에서 제천 순환로를 타고 영월 방면으로 가다보면 나온다.
형태
의림지는 제천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두학천에서 약 5㎞ 북쪽에 위치하는데, 제천시 북쪽 용두산[874m] 남사면과 직치[피재]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점에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 물을 제방에 시설되어 있는 북서쪽 수문을 통해 제천 분지에 있는 논에 관개를 하는 역할을 한다. 의림지는 그 하류의 곡지 중앙과 충적선상지에 대한 관계용 용수 조달의 필요성에 따라 상류부 곡지 하천의 자연 입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의림지는 산골짜기에서 흘러 들어오는 계곡물과 샘에서 분출하는 용수(湧水)를 활용한 ‘심(心)’자 형태의 산곡형(山谷型) 저수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제방은 자연의 경사면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심이 깊고 면적 또한 넓어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북쪽에는 동서 길이 약 170m 정도의 토축 제방이 있는데, 이곳 취수구를 통해 북서쪽 피재에서 갈라져 흘러내리는 물을 의림지에 저수하고 있다. 그 서북쪽에는 만수위 물 이상의 물이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도록 만든 수문인 월수구(越水口)가 설치되어 있다. 이처럼 의림지의 월수구를 통해 넘친 물이 흐르는 하소천과 함께 제방에 설치된 수구를 통해 배수되는 수로가 4~5갈래로 분기되면서 남북 약 5㎞ 정도로 넓게 형성된 들판을 관개하게 된다. 그 남쪽에는 약 300m 정도의 긴 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현황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현재 제천 지방의 대표적인 관광 명승지로서 호수 둑에는 100년~200년 된 노송 400여 그루와 버드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명승 제20호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그 서쪽에는 최근 높이 30m, 폭 15m의 대형 인공 폭포와 최고 높이 162m의 수경 폭포를 설치하였다. 폭포 밑으로는 250m 길이의 인공 동굴이 만들어져 있으며, 자연 폭포인 용추폭포 등과 어우러져 좋은 경관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진섭헌, 임소정, 호월정, 청폭정 등과 같은 정자와 누각이 건립되었으며 또한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우륵대[연자암]이 있어 예로부터 예술가와 시인 묵객들이 즐겨찾는 격조 높은 문화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暎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 등이 관광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벽골제와 수산제는 이미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지만 의림지만큼은 여전히 현재까지 중요한 관개 수리시설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에서 의림지가 농업 경제에 차지하는 위상과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천 의림지와 제림 [堤川義林池-堤林]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용추폭포 유리전망대 — 폭포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한 경험
제천시 모산동에 위치한 용추폭포 유리전망대는 용추폭포 위에 설치된 인도교로, 투명 유리와 불투명 유리가 섞인 바닥이 특징이다. 철제 기둥에 설치된 센서를 지나면 불투명했던 유리가 투명하게 변하며 발아래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직접 내려다볼 수 있다. 이는 마치 폭포 위를 산책하는 듯한 아찔한 감각을 선사하며, 아래에서 바라보던 폭포와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주변 풍경은 폭포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14:10~14:24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충북 제천시 모산동 208-5 번지에 있는 의림지 공영주차장을 출발하여 충북 제천시 화산동 262 번지에 있는 제천역전한마음시장으로 이동 [14분, 6.2km]
14:24~15:20 제천역전한마음시장에서 점심식사
[제천 역전한마음시장
충북 제천 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
1997년까지 중앙시장에서 5일장(2, 7일)이 열렸으나 교통수단의 발달과 대형할인점에 밀려 재래시장이 없어진 뒤 1998년 처음 이곳에서 5일장이 부활됐으며 매 3, 8일에 장이 선다. 노점상을 포함한 120여 점포(상인 350명)로 노점상이 대부분이나 5일장이 서는 날이면 강원도 원주와 영월, 충주, 단양 등에서 20여 명의 장꾼(준회원)들이 다양한 물건을 트럭 등에 싣고 와 합류한다. 또 농촌에서 직접 생산한 각종 농산물을 들고 와 파는 할머니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상설시장이나 다른 시장에 비해 물건의 가격이 싸고 다양한 상품이 거래돼 훈훈한 인정이 넘치며 장날이면 상인과 소비자들 사이에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가 정겨움을 안겨준다.
주로 거래되는 품목은 과일과 야채류를 비롯한 농산물과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황기, 당귀 등의 약초류, 생선. 어패류, 의류, 신발 등의 잡화류가 주를 이룬다. 최근 제천 역전재래시장과 전통 5일장(場)인 풍물시장이 ‘한마음 역전시장’으로 통합하여 전통시장 활성화와 1차 식품 위주인 풍물장을 시장으로 유치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여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고, 또한 저렴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15:20~15: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제천역전한마음시장을 출발하여 충북 제천시 한방엑스포로 19 번지에 있는 제천한방엑스포공원으로 이동 [10분, 6.0km]
15:30~16:30 제천한방엑스포공원 탐방
[제천한방엑스포공원
제천은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온 3대 약령시장의 하나로서 전국 약초 생산의 30%, 황기 유통의 80%를 점하고 있는 한약재 생산과 유통의 중심도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명성을 잇기 위해 ‘한방’과 ‘웰빙’을 콘셉트로 제천한방엑스포공원이 건설되어 제천에 자리 잡고 있다. 한의약의 원리·진단·치료법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인 한방생명과학관, 발효식품의 유래와 효능을 알 수 있는 국제 발효박물관, 사계절 내내 한방약초를 관람할 수 있는 약초 허브 식물원, 한방 마을 약초 판매장 등이 있다. 또한 공원에서 근육의 이완을 돕고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한방 발 관리 체험, 향긋한 한방 샴푸 만들기, 약초 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한방 체험이 마련되어 있다.]
16:30~16:44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제천한방엑스포공원을 출발하여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15 번지에 있는 배론성지 주차장으로 이동 [14분, 8.8km]
16:44~17:30 배론성지 탐방
[제천 배론성지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구학리 623]
시대 : 조선/조선 후기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3월 2일, 2021년 11월 19일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
개설
70여 호의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배론은 주변의 자연 환경 여건상 인근에서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인들은 숨을 곳을 찾아 배론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에는 황사영(黃嗣永)이 배론의 토굴에 숨어 백서를 집필하였고, 그해 능지처참을 당해 순교하였다. 1855년(철종 6)에는 배론에서 조선 최초의 성요셉신학교가 개교하였는데, 11년 만에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강제 폐쇄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배론은 해방 이후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위치
제천 배론성지는 행정 구역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다. 이곳은 제천 중심가에서 13.9㎞ 떨어져 있으며, 원주 시내에서는 35㎞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를 지나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후 배론은 자연스럽게 다시 교우촌으로 형성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2년에는 장호원 본당 관할에 있던 배론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공소 회장으로 안창현을 임명하였다. 또한 1929년 4월 30일 원주본당 정규량 레오신부가 경향잡지에 배론의 역사, 지형, 학당, 최신부 묘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군난 때 미담’ -군난시대를 감상케하는 제천 배론-을 기고하였다. 1940년에 배론은 제천 본당 관할로 구역이 정해지며 그해 제천 본당 박일규 신부가 배론을 방문하여 최양업 신부의 묘소에 묘비를 세우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지만 일제의 압력으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후 1945년에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정비되었다.
1956년 배론공소에 79㎡짜리 강당과 26㎡짜리 사택을 완공하였다. 원주교구는 1972년 성지개발 10주년 계획을 수립하고 교구 재단과 성심학원재단이 1976년 제천 배론성지를 공동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개발사업에 들어갔다. 1988년에 이르러 당시 배론 관리소 소장 신부였던 양대석 신부가 서울대학교 이원순 교수의 고증에 의해 토굴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6·25 전쟁 때 불탄 성요셉신학교는 2003년에 복원되었다. 2006년에는 제천 배론성지 내의 배론공소가 준 본당으로 승격되어 배론성당이 되었으며, 2010년에는 성지 내에 배론문화영성연구소가 개관되었다.
현황
제천 배론성지가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것은 이곳이 천주교가 시작된 초기에 순교 신앙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곳에 지금도 남아 있는 여러 유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백서를 썼던 토굴이 있으며, 최양업 신부의 묘가 남아 있다. 또한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보존되어 있다. 제천 배론성지는 현재 재단법인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이외에 제천 배론성지 경내에 종교 시설로 ‘순교자들의 집’, ‘성요셉성당’, ‘황사영순교현양탑’, ‘사제관과 경당’, ‘최양업신부기념성당’ 외 많은 부속 건물들과 ‘봉쇄수녀원’이 있으며, 사회복지 시설인 ‘살레시오의 집’이 있다.
제천 배론성지는 천주교사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3월 2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천주교 성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성립 과정에 있어 중요한 성지로, 지금도 전국 각지의 성지순례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특히 천주교 원주교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 원주 지역의 교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교인들을 위한 순례 코스를 만들어 놓았는데, 약식 코스, 기본 코스, 묵주 기도 코스, 박달재 산행 코스, 묘재·용소막 코스, 제천 관광 경유 코스가 있다. 순례자는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피정의 경우 개인 피정과 단체 피정이 있어 미리 신청해서 방문하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천 배론성지 [堤川-聖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저는 조선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7월 한 달 동안만 같은 집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고 언제나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습니다. 중국에서 서울까지 여행한 것을 빼고도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5000리를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이처럼 긴 여행과 이 모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은 늘 좋았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 …열심인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죄악과 세속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담배와 조를 심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산속에서도 오래 살 수는 없습니다. 신자로 사노라면 점차 외교인들한테 알려지게 돼 박해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 최양업 토마스 신부(자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쓴 편지 중)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배론’이라는 명칭은 지형이 마치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좁은 입구에 경사가 비스듬히 있어 안쪽 지형이 잘 보이지 않는 특징과 동시에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원주, 충주 등 여러 도시와 연결되어 있는 산길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천주교는 박해당하던 종교였기에 신자들은 이렇게 요새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신앙촌을 구성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한편 배론성지는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천주교 정신을 이어온 곳으로써, ‘국내 최초의 신학당’,‘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황사영 백서 토굴’등 국내 천주교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신앙유산으로 가득합니다. 배론성지의 유명한 단풍절경과 함께 그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내어 준 옛 성인들의 숭고한 넋을 생각하며 엄숙한 마음을 담아 성지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국내 두번째 서품을 받은 천주교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를 박해로 모두 잃고, 자주 도피생활을 해야했지만 신앙심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올라가 열다섯살의 나이에 프랑스 선교사에게 김대건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는 국내로 돌아와 활동하기 위해 중국, 요동 지역에서 사목하며 기회를 엿보았고 결국 13년여 만에 성공해, 하루 100여리, 매년 2,800여km의 산간벽지를 직접 발로 뛰며 성사를 집전하였습니다. 11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목하며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는 동시에 신분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사회개혁을 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사목활동 보고를 위해 서울로 가던 중 과로와 장티푸스로 선종하였습니다.
한편, 2016년 4월 26일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 대해 교황청 시성성은 ‘가경자’로 선포하였습니다. ‘가경자’란 ‘시성(諡聖,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선언하는 행위로 그 선언에 따라 해당 인물은 성인목록에 등재됨과 동시에 즉시 성인으로 인정받아 전 세계 교회에서 공경받음)의 전단계로 ’존엄한 자, 존경스러운 분‘ 이라는 칭호로, 시복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시복 후보자에게 잠정적으로 부여되는 명칭입니다.(현재 복자 등재를 위한 기적심사가 교황청 시성성에서 진행 중이라고 하며,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로 반열에 오른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정말 남다릅니다.)
대역죄와 순교의 아이러니 : 황사영 백서사건
황사영은 1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래가 촉망되던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조카사위로 해당 집안에서 서학을 접하며 공부했습니다. 추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이 동굴에서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위해 주교에게 보낼 편지를 토굴에서 작성합니다. 해당 백서는 현재 바티칸 민속박물관 고문서연구실에 전시되어 있는데, 가로62cm, 세로38cm인 작은 비단조각에 1만 3천자가 넘는 한자를 빼곡하게 오타없이 적어낸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박해를 막고 신앙의 자유를 찾기위해 천주교를 포교할 방안을 담은 내용이나, 외세의 군대를 이용해 정부를 뒤집자는 반란적 요소가 들어있어 검문에서 걸리게 되고,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거열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이 백서 이후로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더욱 거세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황사영은 순교자이면서도 시복시성이 오랫동안 미뤄졌다가, 2013년 교황청 시성성에서 가경자 전단계인‘하느님의 종’칭호가 공식적으로 부여되기도 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신학교 : 성요셉 신학교
천주교 프랑스인 신부들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로, 철학과 신학을 중심으로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가르쳤습니다. 라틴어를 중심으로, 일반상식과 과학지식, 의술,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뤄, 포교활동 및 초·중·고등 교육을 함께 실시한 근대학교의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이후 천주교 박해가 심해지며 많은 교직자들이 순교하게 되자 신학생들도 모두 흩어지고 학교는 창립 11년만에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17:30~20: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배론성지를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로 이동 [2시간 30분, 130.0km]
[비룡담 저수지&의림지] 지도
제천역전한마음시장 지도
제천한방엑스포공원 지도
배론성지 지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