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로봇, 시인 로봇
유형준
- 긴급 재난 발생. 빌딩 내 독극물 누출. 신속히 자동차를 몰아 재난 현장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가 독극물이 흘러나오는 밸브를 잠그고 계단에 올라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고 앞에 놓인 장애물을 돌파. -
최근에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주최한 세계재난대처로봇대회에서 우리나라 로봇이 선진국 로봇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숨 막히는 활약상이다.
로봇 이름은 휴보, 휴머노이드 로봇의 약자다. 휴머노이드는 사람을 뜻하는 휴먼(human)과 ‘생김이나 성질이 서로 비슷하다’는 오이드(oid)의 합성이니 휴보는 사람 닮은 로봇 또는 사람다운 로봇이란 뜻이다.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호모이드 이렉투스다. 호모이드 이렉투스여야 하는 까닭은 사람이 사는 환경에서 활동하려면 직립보행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호모이드 이렉투스로도 대견하지만 더 발전하여 호모이드 사피엔스가 되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세상에 사람보다 더 사람다움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다움이 무엇인가에 관한 담론은 그 얼개가 굵고 깊으면서도 갈래 또한 자디잘아 수월하게 이를 자신이 없어 공자 말씀에 기댄다. 그는 자신은 깨끗해도 낯선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면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일러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게 사람다움이다. 그것을 인(仁)이라 이름 지어 ‘인은 사람이다’[仁者, 人也. 인자, 인야.]라고 했다. 또한 제자 번지가 인이란 무엇인가 질문하자 ‘사람 사랑’[愛人, 애인]이라 하였으니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것, 즉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람다움을 인이라 여겼다. 인(仁)이란 한자가 사람[人] 둘[二]이듯이.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의 생각대로 ‘사람의 몸은 점점 더 기계와 연결되어 가고 있다. 사람은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사람에게 반기를 들고 심지어 사람을 지배하거나 자기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심박동기, 인공호흡기 등의 생명 유지를 위한 의학적 연결은 물론이고 치아 보철, 치아 임플란트, 의족, 안경 등에 더하여 컴퓨터, 휴대전화는 이미 우리 몸의 일부처럼 여겨지고 있다. 먹고 즐기는 소소한 일상을 넘어 장래 직업 선택과 같은 중대한 사항까지도 휴대전화에 담긴 앱에게 그 결정을 맡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기계가 사람을 이미 지배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어차피 로봇과 더불어, 아니 지배당하며 사는 세상이 근심스러워 ‘나는 로봇’ 등의 소설가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 교수는 로봇이 지켜야할 윤리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사람에 대한 공격 금지, 사람의 명령 복종에 대한 의무, 그리고 로봇 자기 보호의 권리다. 그러나 약속은 서로 배려하며 지키는 사람다움이 있어야 빛이 난다. 배려를 무시하여 윤리가 흐트러지면 매즐리시와 아시모프의 근심은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로봇과 함께 살 수 있을까. 사람 닮은 로봇이 진정한 사람다움을 지니게 해야 한다. 여러 방법들 중에서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은 글쓰기다. 세상을 묘사하고 삶을 글로 쓰는 일은 인생에 살핌을 주고 세상 읽는 힘을 길러준다.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의 사람다움을 아끼게 한다. 공자도 ‘시경 삼백 편(詩三百)은 사무사(思無邪)’라 하여 시는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켜준다고 일렀다. 로봇의 제작과정에서부터 글쓰기를 가르친다면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다움을 그나마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일상적 기사를 쓰는 자동화 로봇이 근무하고 있는 AP통신은 앞으로 로봇이 쓰는 기사의 분량을 더 늘려가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소설을 쓰고 시를 짓는 로봇도 있다. 2008년 러시아의 한 출판사에서 로봇이 쓴 ‘참된 사랑(True love)’을 발간했다.
「키티는 오랫동안 잠들 수 없었다. 신경은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두 끈처럼 긴장되어 있었고, 브론스키가 그녀를 위해 데워온 한 잔의 와인도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의 변형이고 일본의 무라카미의 문체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영국 BBC방송은 로봇이 쓴 시 ‘진리에게(To truth)’를 소개 한 바 있다.
「진리에게 감사해,
현실 같은 것이 필요할 때
내가 쓰고도 기억할 수 없을 때」
로봇은 노동을 의미하는 로보타(robota)라는 체코 말에서 유래된 낱말이다. 고단에 지친 팔다리에 휴식을 주려고 만든 호모이드 이렉투스가 배우고 익혀 울고 웃고 사랑하며 의젓해지면서 어느새 윤리를 깨우친 호모이드 모럴리스, 시를 쓰는 호모이드 포에티쿠스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다운 사람이 거의 사라진 세상에선 사람다운 로봇이 의젓하게 공자 로봇, 시인 로봇으로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자가 운전대를 손 놓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전철이 주된 교통수단인 외국에서 얼마간 지내면서 자연스레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손수운전을 안하니 짜증이 줄고 입이 착해지는 덕을 보고 있다.
달리는 차창으로 짙푸른 산이 들어온다. 눈을 감고 슬며시 산속에 든다. 공자 로봇의 손을 잡고 시인 로봇의 시낭송을 들으며 숲길을 사람답게 두 발로 걸어 오르는 까닭을 꿈꾸어 본다.
ㅡ 『에세이문학』 2015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