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37:1]
히스기야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히스기야 왕이 듣고...보내매 - 본장은 그 내용상 앞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신들의 비통한 보고에 접한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4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사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옷을 찢었다. 인느 극심한 슬픔과 분노를 표시하는 관습적인 행위이다. 둘째, 더 나아가 그는 '굵은 베' 곧 '삼베옷'을 입었다. '삼베옷'은 재난 때에 입는 옷이며 참회의 때에 입는 옷이기도 하다
셋째, 그는 기도하러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이후, 그곳은 공적인 중보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장소로 인정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엘리아김과 셉나, 그리고 제사장 중 어른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냈다. 이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그 위로하심을 듣기 위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해설, 전달하는 자로 높임 받고 있었으며 왕으로부터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을 참조하라. 그러나 왕상 22:9의 경우는 정반대되는 사례이다,. 재난의 때를 당하여 히스기야 와잉 보여준 이러한 행위는 성도가 이세상에서 원통한 일을 당할 때 본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신앙의 본으로 남아 있다.
[사 37:2]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히스기야 왕이 듣고...보내매 - 본장은 그 내용상 앞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신들의 비통한 보고에 접한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4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사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옷을 찢었다. 인느 극심한 슬픔과 분노를 표시하는 관습적인 행위이다. 둘째, 더 나아가 그는 '굵은 베' 곧 '삼베옷'을 입었다.
'삼베옷'은 재난 때에 입는 옷이며 참회의 때에 입는 옷이기도 하다. 셋째, 그는 기도하러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이후, 그곳은 공적인 중보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장소로 인정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엘리아김과 셉나, 그리고 제사장 중 어른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냈다.
이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그 위로하심을 듣기 위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해설, 전달하는 자로 높임 받고 있었으며 왕으로부터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왕상 22:9의 경우는 정반대되는 사례이다,. 재난의 때를 당하여 히스기야 와잉 보여준 이러한 행위는 성도가 이세상에서 원통한 일을 당할 때 본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신앙의 본으로 남아 있다.
[사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 사신들이 전한 히스기야의 말을 통해서 그가 현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환난'은 '누르다', '억압하다'는 뜻의 '차라르'에서 파생되 말로서 외부적인 괴로움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복합적인 영적인 짓눌림까지도 함의하는 말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참회의 시편에 나온다. '책벌'은 호 5:9의 '견책하는 날'과 동일하게 쓰였다. '환난'과 '책벌'은 앗수르를 통해 유다에게 주어진 것이긴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것이다. '능욕'은 '조롱하다', '멸시하다'는 뜻의 '나아츠'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앗수르인들이 '훼방한다'는 의미이다.
[사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 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본문은 '혹시', '아마도'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듣지 못하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는 히스기야 자신의 겸허한 자세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의 경건함은 그가 나라의 새존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받지 않으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주어지기만을 우선적으로 간구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모독은 그들이 하나님을 이방 신들과 혼동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생명없고 무기력한 우상들과 대조, 구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적절하게 '사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사 37:5]
이와 같이 히스기야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이와 같이...나아가매 -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전갈이 끝나고 이사야 선지자의 답신이 곧 시작됨을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사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앗수르 왕의 종들이...두려워 말라 - 이사야의 메세지는 '두려워 말라'는 강한 권고로부터 시작된다. 전에 아하스 왕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떨릴 때도 선지자는 이와 비슷한 권고를 해준 바 있다. 여기서 '앗수르의 종들'로 번역된 단어는 앞절의 '히스기야 신하들'과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어린것들', '풋내기들'을 뜻하며, 경멸적인 어감을 나타내기 위해 선지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