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③ 내가 정신과에 가야 한다고?
창피하고 두려웠던 그 때의 기억
셔터스톡
친정에서 돌아온 아내가 내 몰골을 보더니 곧바로 나를 이끌고 동네 내과로 갔다. 몸에 큰 이상이라도 생겼나 덜컥한 것이다.
나를 진찰한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종합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신체적인 문제라기보단 정신적인 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일종의 공황장애 증세 같네요.”
공황장애는 개그맨 이경규가 TV에서 공황장애를 앓는다고 밝혀서 알게 됐다. 그때만 해도 남의 일로 여겼다. 인기 연예인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특유의 과장법과 호들갑을 섞어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공황장애’를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왔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으로 공황발작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땀이 나는 등의 신체 증상 등이 나타난다.”
바로 내가 겪은 그대로였다. 일종의 공황발작이 일어난 것이며 이 증상이 반복되면 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병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둘러 평소 다니던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순환기 계통의 내과 전문의를 만나 내 증상과 상황을 설명했다.
“5개월 전에 제가 하려던 일을 접었는데 그 뒤부터 극심한 스트레스가 일어났습니다. 잠자다 벌떡 일어나고 땀이 뻘뻘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3월 중순쯤부터는 증세가 더 나빠져 불면증이 생겼고 지난 한 달 반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공황발작 같은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의사는 여러 체크를 하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자율신경계가 헝클어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원인은 갑상샘 같은 신체 문제가 아니라 정신 문제로 보입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면증, 좌절감이 우울증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정신과로 가보시죠.”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신과라니…. 말도 안 돼.
“정신과에 가지 않고 치료할 수는 없습니까? 제 의지로는 안 될까요?”
의사는 그런 나를 안됐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아무리 건강한 운동선수라도 감기 몸살에 걸려 꼼짝 못 할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죠. 그냥 놔두면 진짜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피하고 두려웠다. 정신과에서 진료받았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을 먹기도 싫었다. 정신과 진찰을 받아보라는 의사의 권유는 마치 내가 인생 부적응자나 실패자가 된 듯한 생각을 하게 했고 그러다 평생 약물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과도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의사가 처방한 진정제와 수면제를 먹었다. 덕분에 그날 밤 참으로 오랜만에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계속〉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