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16]졸지에 읽어본 판타지동화 두 권
한강 작가의 산문 <여름의 소년들에게>를 읽다가 알게 된 환타지 동화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1983년 1쇄, 2017년 개정3판 5쇄 창비 발행, 343쪽)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마침 아내의 책꽂이에 있어 다행입니다. 칠십이 다 돼 읽어보는 동화책이 이렇게 재밌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심지어 ‘동화를 써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답니다. 한가한 얘기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제 말을 들어보면 생각을 달리 할 것입니다.
린드그랜(1907-2002)이 스웨덴 출신으로 동화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를 을 세계적인 동화작가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한강(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딸의 이름을 ‘한강韓江’이라고 지었을까요? 정말 운명적인 이름입니다) 작가의 산문 <여름의 소년들에게>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독후감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그는 열두 살 때 처음 읽은 감동이 오래 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초판이 나온 게 83년입니다. 번역한 김경희씨는 스톡홀름에서 유학 중인 82년 린드그랜를 아파트에서 만났는데, 작가는 “그 나라에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이 있거든 나 대신 얼마든지 들려주라”고 했답니다. 83년에 읽었는데도 80년에 읽은 것으로 오랫동안 착각한 것은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인 듯합니다. 어쩌면 그가 쓴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도 된 듯하더군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 줄거리는 대강 이렇습니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얼마 후 요나탄이 불 속에서 칼을 구하다 죽습니다. 뒤이어 죽은 칼이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뜨고, 형을 만나 이웃마을의 독재자 텡일을 물리치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용감한 이들은 ‘사자왕 형제’로 불립니다. 한강 작가는 30년 후 이 책을 다시 완독을 하면서 ‘이 형제는 어떻게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형제를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홉 살 때 실제로 본 그 도시(광주)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년’들의 넋이, 두 번의 죽음과 재생을 겪는 사자왕 형제에게로 연결되어 한강 작가의 몸속 어딘가에 잠재적으로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 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통과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이 동화가 靈感이 되어 창작의 불을 밝힌 것같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년들'의 사진을 함 보세요.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격인 동호는 실제로 15살 문재학 군이었습니다. 재학이의 아버지는 생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동호' 이름만 나오면 괄호로 '재학'이라고 써놓았더군요. 아무튼, 저는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음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과 실상이 전세계에 알려지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또한 <동학혁명>과 <4.19혁명>의 모든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革命'으로 거듭나게 된 것 역시 민족적으로 경하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을 사수하다 끝낸 숨진 26살의 시민군은 야학선생이었다더군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고 쓴 그 시민군의 ‘마지막 일기’ 한 구절을 한강 작가가 읽은 것입니다. 그것이 <소년이 온다>를 쓰게 한 것일 터이지만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작가의 갈등은 계속됐을 것입니다.
아무튼, 연약한 동생 칼과 용감한 형 요나탄은 성격이 판이하지만, 서로 깊이 사랑했답니다. 이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낭기열라)로 함께 떠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골짜기를 누비며 자유를 억누르는 악당에 맞서는 모험이 가슴을 졸일 만큼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죽음과 삶, 억압과 자유,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 童心의 시각으로 쓴 '판타지 고전작품'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맛보지 않으시렵니까?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으뜸이라는 것을, 남는 것은 결국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상상속 재미’가 쏠쏠했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