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2일, 포체투지 29일 차
4호선 서울역~혜화역
[편집자 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6월 3일부터 100일 간의 출근길 지하철 포체투지(匍體投地)에 나섰다. ‘포체투지’에 대해 전장연은 “오체투지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 기어가며(기어갈 포匍) 행동하는 시민불복종 행동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전장연이 포체투지에 나선 이유는 단 하나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국가와 지자체가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22대 국회에 장애인권리법안 7개를 1년 내에 제‧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에 대한 해고 철회를 촉구한다.
이제까지 불구의 신체가 바닥을 기어가는 행위는 ‘구걸하는 행위’로 읽혔다. 그러나 전장연은 이를 “시민불복종 행동”이라고 명명하며 ‘싸우는 신체’로 규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버려진 신체를 출근길에 고스란히 내보이는 행위는 어떻게 싸우는 행위로 변모하는가. 비마이너는 그 싸우고자 하는(鬪) 의지(志)를 쫓아 기록하고자 한다. 이른바 ‘투지일기(鬪志日記)’다.
캐리어를 끄는 승객 여러 명이 엘리베이터가 오길 기다린다. 사진 하민지
12일 7시 28분, 4호선 서울역. 캐리어 끄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한다. 1-1칸부터 끝 칸까지 한 바퀴 돌았는데 보안관은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용자 수를 세기로 한다.
7시 43분, 캐리어 끄는 사람과 노인 사이에서 드디어 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나타났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다.
“대표님! 대표님!”하고 쫓아갔는데 전동휠체어 속도가 너무 빠르다. 비장애인인 내가 따라잡기 어렵다. 목소리를 크게 내면 혹시 보안관이 들을까 봐 이형숙을 크게 부를 수도 없다. 전속력으로 달려 이형숙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형숙이 묻는다. “어머! 어머! 하 기자님! 하 기자님! 어디 가요?” 기자가 답한다. “저 포체투지 사진 찍으러 왔죠. 대표님도 포체투지 하러 오셨어요?” 이형숙이 말한다. “나는 아니에요. 몸이 아파서 포체투지는 아직 힘들어요. 오홍홍홍. 하 기자님 안녕!” 이형숙은 열차에 승차한 후 어디론가 떠난다.
7시 35분부터 8시 14분까지 서울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 캐리어 끄는 사람 34명, 무거운 짐을 든 사람 1명, 임산부 1명, 노인 13명, 카트를 끄는 청소노동자 1명. 모두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약 40분간 휠체어 이용자는 딱 2명 있었다. 이형숙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두 사람을 포함해 휠체어 이용자가 1명도 없었던 승강장에는 “특정 장애인단체의 시위가 예정돼 있습니다. 열차가 지연될 수 있으니…”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포체투지를 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시민 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열어주십시오!”, “22대 국회, 장애인권리입법 제정 촉구.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100일 포체투지 29일 차”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포체투지를 하고 있다. 그의 등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대표가 열차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팔꿈치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17분, 박경석은 열차에 타자마자 휠체어에서 내려와 열차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숨을 몰아쉬며 기어간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권리스티커를 붙이며, 굳은살 박인 팔꿈치로 느리게 나아간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 무릎을 이마로 밀며 나아가려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의 다리 사이로 시민에게 호소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1분,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열차에 나타난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강압적인 목소리로 “열차 내 허가되지 않은 연설, 권유는 금지돼 있습니다. 그만하세요. (권리스티커를) 그만 붙이세요”라고 말한다.
박경석은 그제야 소리친다. “시민 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중증장애인 400명을 해고하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시민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휠체어 이용자를 지원하는 발판으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막아서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 이용자를 지원하는 발판은 오늘(12일)도 방패처럼 쓰인다. 베이지색 티셔츠를 입은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그만 붙이시라고요”라며 거칠게 권리스티커를 빼앗는다. 휴대전화를 꺼내 박경석을 영상으로 촬영하며 불법채증도 한다.
박경석은 11분 만에 퇴거당했다. 8시 28분, 혜화역에서 하차하려고 하는데 베이지색 티셔츠를 입은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발판을 던지듯 박경석의 휠체어 앞에 놓는다. 발판은 놓인 게 아니라 떨어졌다. 심지어 뒤집힌 채 놓였다. 발판 위로 손잡이가 올라와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지나가기 어렵다.
그러나 박진용 고객안전지원센터 부장은 박경석에게 “열차 지연행위 하는 건가요?”라며 쏘아붙인다. 결국 발판은 치워졌고, 박경석은 위험을 감수하며 하차한다.
박경석이 하차하며 열차 내 승객에게 인사한다. “시민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장애인들은 매일 아침 시민에게 만남의 인사를 하고 헤어짐의 인사도 한다.
혜화역에서 631일 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하다 퇴거당한 활동가들이 혜화역 2번 출구 앞에 모여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3분, 혜화역 밖으로 나오니 ‘631일 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하다 강제퇴거당한 장애인들이 모여 있다. 이형숙도 여기에 있다. 쫓겨난 사람들 사이로 흐린 여름의 미풍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