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의 크리스티나(1626~1689) 여왕만큼 세계인들에게 덜 알려진 인물도 없고, 그녀보다 더 신비
한 여성 통치자도 없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만 해도 세계적으로 제법 널리 알려져 있어서, 스웨덴
출신인 할리우드 스타 그레타 가르보 주연으로 《크리스티나 여왕》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가르보가 주연한 왕화 가운데는 흥행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었다. 그녀는 스웨덴 왕 구스타프 2세의
외동딸로 태어났는데, 더 이상 출산이 불가능한 어머니는 딸이 태어난 데 실망하여 크리스티나의 양
육을 외면했다. 크리스티나가 태어난 지 6년 만에 부왕 구스타프 2세가 30년전쟁에서 전사하자 그녀
는 어린 나이에 명목상의 국왕 자리에 올랐다.

구스타프 2세는 스웨덴을 강국으로 키운 성군이었다. 그는 어린 딸을 극진하게 사랑하여 성군의 자
질이 있도록 조기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명목상 왕의 예우를 받던 크리스티나는 겨우 여섯 살에 불과
한데도 국정 전반에 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구스타프 휘하에 있던
훌륭한 신하들이 정책을 전과 동일하게 수행하고 크리스티나를 잘 보좌했기 때문에 국정공백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전두환이 박정희 대통령의 모든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여 고도성장과 물가안정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경우와 흡사했다.

여왕은 라틴어‧불어‧독어‧네덜란드어 등을 배우는 족족 금세 깨우치고 구사할 수 있었으며, 철학‧역
사‧수학‧천문학 등에도 빠른 학습 진도를 보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남장으로 자라면서 성
격이나 행동도 남자에 가까웠는데, 1644년 18세의 나이로 정식 보위에 오를 때도 본인의 의지를 관철
시켜 여왕이 아니라 왕으로 즉위했다. 그녀는 섭정을 받을 때도 왕권을 제한하려는 추밀원의 끈질긴
시도를 번번이 좌절시켰다. 즉위 후에는 모든 정책을 자신의 계획대로 추진했으며, 추밀원도 더 이상
국정에 개입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다.
크리스티나는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는 신하들의 끈질긴 결혼 권고를 끝까지 물리쳤다. 그녀는 결혼
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 숫처녀로 살았다. 수많은 전기작가들이 흠집을 내기 위해 그녀가
레즈비언이었느니, 여행 중 여러 남자들과 난잡한 섹스를 했다느니 하며 무고하는 책을 썼지만 독자
들의 호응을 받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크리스티나는 사촌동생인 카를 구스타프를 일찌감치 후계자
로 지명하여 왕권에 대한 도전을 사전에 차단해두었다. 그리고는 막 28세가 된 1654년 6월, 왕위를
카를에게 물려주고 유럽 일주여행을 떠났다. 그때부터는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헤어스타일에서부터 복장까지 완벽하게 남장을 한 크리스티나는 신분도 아예 도나 백작으로 위장했
다. 그러나 워낙 유명인이다 보니 어느 나라엘 가든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녀를 알아보고 여전히
스웨덴 왕으로 대접했다.

1655년 11월, 함부르크에 도착한 도나 백작은 스웨덴의 국교인 프로테스탄트교회를 버리고 스웨덴에
서는 금기로 되어 있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보위에 있을 때 가톨릭 공부를 많이 해두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오래 전에 이미 가톨릭교도가 되어 있었다. 도나 백작 일행이 로마에 도착하자 수많은
귀족과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그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로마는 이 특별한 개종자를 위해 수개월 동안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장중한 팡파레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교황청에서 보낸 36
대의 호화로운 마차가 도나 백작 일행을 호위했다. 교황과 동일한 의전이었다. 교황은 도나 백작이
도착한 12월 23일을 공휴일로 선포해두고 있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성대한 만찬을 대접받은 뒤 여
행을 계속했다. 교황은 여행하기 편한 특수마차를 제공했다.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도나 백작은 교황의 정중한 요청을 받아들여 교황청에서 학술토론과
음악회를 주관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스웨덴에서 가져온 본인 소유의 수많은 예술품들 외에, 지속적
으로 예술품들을 사들여 교황청에 유럽 최고 수준의 박물관을 설립했다. 이후 30년 동안, 도나 백작
은 잠깐씩 유럽 각지로 여행을 다녀올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교황청에서 보냈다. 교황을
대신하여 여러 예술가‧학자‧작가‧성직자‧정치가 등을 접견했으며, 개인 자금으로 젊은 예술가와 작가
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1689년 크리스티나 전 스웨덴 왕이 서거했을 때, 교황은 성인의 예에 따라 그
녀의 시신을 성베드로대성당 묘지에 안장했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性추문이라는 의미의 스캔들을 저
지른 적은 없지만,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의 스캔들 얘기라면 유럽 역사상 최적의 인물이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다음주 3박5일간의 베트남 다낭,호이안,후에 여행은 친구부인이 7순을 맞는 축하 나들이로 몇달전 팩케이지 구성에 결원이 생겨 급히 조달된 저의 내외 입니다. 날씨가 무더울것 같고 또 태국을 다녀온 연후라 망설였지만 간곡한 동행을 희망하여 함께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맛이 한층 짙은 자유여행이 좋은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어쩔수 없는 팩케이지 여행으로 현지 선택관광의 압박을 마음상하게 받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