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1,21-23
형제 여러분,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꿈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32년 전 이맘 때 저는 첫 본당에서 새 사제가 되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제 의식의 저편에서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다른 꿈들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미사를 봉헌하는 꿈을 꾸곤 합니다. 새 사제의 첫 미사 강론은 대부분 ‘아버지 신부님’이 해 주십니다. 아버지 신부님은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준 신부님을 말합니다. 아버지 신부님의 강론은 사제생활의 이정표가 되기 마련입니다. 신부님들은 크게 4가지의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샘이 깊은 물과 같다고 하십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고 하십니다. 유혹과 갈등이 찾아와도 이내 이겨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말씀입니다. 사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가까이 하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건강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마련이라고 하십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네 번째는 친교입니다. 사제는 동료사제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 하듯이 사제는 교우들과 친교를 이루면서 지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슴이 사나운 사자에게 잡히는 것은 무리에서 떨어져있을 때입니다.
우리의 뇌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반응입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지체할 수 없는 반응입니다. 우리의 심장, 허파, 신장, 혈관은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뇌가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율신경계라고 합니다. 위험에 처하면 우리의 몸은 생각하지 않고 즉시 피하기 마련입니다. 오랜 시간 뇌는 이런 기능을 통해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습니다. 이것을 본능과 직관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공동체를 이루면서, 문화와 문명을 키워가면서 또 다른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민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에만 머물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방 정리를 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며칠씩 생각만 하기도 합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전화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에 머물기만 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셨고, ‘기쁜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마귀를 쫓아내는 것,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생각에만 머무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정리해 주십니다.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하였습니다. 안식일에 해서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계명과 율법이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안식일의 규정도 버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직원회의를 할 때입니다.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직원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직원이 있습니다. 저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직원이 더 고마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 보면 ‘해결사’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안 되는 방법을 찾는 바리사이가 되기보다는 되는 방법을 찾는 주님의 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