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중순의 날씨는 일교차가 크다.
아침 저녁은 제법 쌀쌀해서 집을 나서려는데 어떻게 입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된다.
그래도 낮엔 17-8도까지 올라간다 해서 그냥 얇은 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왔더니 썰렁한 바람이 종아리로
감겨온다.
다시 들어가 발목 토시라도 하고 올까 했으나 그러면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다.
아랫도리가 서늘하지만 대신 목지퍼를 올려 잠그고 사당역으로 간다.
개찰구를 나와 시간이 조금 있길래 베이커리에서 커피 한잔 주문했는데 팔백원이다.
따뜻하고 맛도 괜찮은데 가격이 대박이다.
사당역 6번출구 밖의 집합장소에 오늘의 참가자 아홉명이 모두 모인 것은 거의 온타임 열시다.
지난달에 이어 하회장님이 오시고, 겨울에 장기간 해외에 계셨던 안고문님 서총장님도 나오셨다.
옛날에 무서웠던 회사 상사들과 일렬횡대로 같이 걸을 수 있는 건 후배들에겐 은퇴 후의 특권의 하나다.
인박님 창준님 영태님 인호님 그리고 우리 대장님, 모두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다.
햇살이 따사롭고 눈부신 이런 날에 산에라도 가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호님이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일행은 곧장 출발이다.
평범한 대로변을 잠시 걸어 들어가자 금방 숲길로 접어든다.
번잡한 사당능선을 피해 한적한 관음사 좌측 계곡길로 방향을 잡는다.
이대장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은밀한 코스로 안내하겠다 한다.
초입의 냇가에 큰 벚꽃나무가 늘어서 있고 아직 꽃들도 볼만하다.
작년에도 이 자리에 있었던 꽃들, 어딘가 갔다가 다시 돌아온 듯이 매년 여기에 있다.
이 화사한 꽃들도 곧 삐어져 나오는 잎들에게 자리를 모두 내어 줄 모양이다.
잎들도 제법 새파랗게 나와있다.
달랑 한군데 있는 조팝나무도 한창이다.
오르는 길은 한적하고 오붓하다.
철조망 옆길은 다니면 안되는 길이라 아무런 이정표도 안내표식도 없다.
우리 일행만인가 했는데, 돌아보니 젊은 학생 서넛이 멋모르고 따라온다.
그러더니 중간쯤에서 바위길이 나오자 겁을 먹고 자신없다며 되돌아 간다.
젊은 아이들이 노인네들 보다 겁이 많다. 도전을 두려워 한다.
나뭇가지마다 도톰하게 살이 올라있다. 신비한 생명의 계절이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혼의 사다리라고 했던가. 하늘로 하늘로 오른다.
기분좋을 만큼 가볍게 바람이 지나가고, 이 타이밍의 연한 녹색이 가장 이쁘다는 생각을 또 한다.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봐도 권태롭지 않은 봄의 색이다.
갓을 쓴 모습이라 하여 관악산이라는데 그야말로 숭악한 암산이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온통 바위덩어리라 웅장한 느낌은 준다.
계곡도 그리 깊지는 않아도 키큰 상수리 물푸레 나무로 운치가 있다.
하지만 돌이 많아 걷기는 불편하다.
시니어 세분 대단하시다!
이 험준한 산을 끄떡없이 걸으신다. 아니, 앞장서 가신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개화가 빨랐지만, 산골짜기의 봄은 아무래도 더디다.
봄산행의 백미는 꽃구경이고, 봄꽃의 여왕은 진달래다.
관악산의 진달래는 엄청난 군락을 자랑하진 않지만, 군데군데 모자라지 않을 만큼 피어있다.
꽃은 누군가가 보아주고 감탄해 주어야 한다.
봄이면 산으로 올라가서 이런저런 꽃에게 이쁘다고 해줘야 한다. 그게 꽃이 있는 이유다.
오늘 하루 꽃에게 좋은 일 한 것 같다.
미국도 계절이 빨랐는지 금년 마스터즈 기간중의 오거스타 12, 13번 그린 주위의 그 아름다운
아젤리아 마그놀리아가 이미 지고 있었다.
햇볕 잘 드는 산중턱에서 간식을 한다.
산에서 술 못먹게 되었다는데, 막걸리 세통과 위스키에다 두릅안주며 갖가지 음식이 푸짐하다.
단지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만으로는 무료하다.
한잔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인박님에겐 더 클듯하다.
내려오는 길에 안고문님의 하모니카가 잔잔히 울린다.
♬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 먼산에 뻐꾸기 울면 / .. 세상은 바람불고 덧없어라 .. ♪
하산길이 등산길보다 훨씬 까다롭다.
계곡을 오르내리다 헬기장을 지나 마당바위에서 잠시 쉬어 보지만, 거의 바윗길이라 조심해야 한다.
옛날에 왔을 때 꽤 고생한 기억이 있는데 그 사이 철제계단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
전부 바위 같은데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있다.
약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꼭 바위 꼭대기로만 다니는 병용님의 묘기를 못봐서 서운하다.
어쨌거나, 한 달에 한 번으로 자주 만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만나면 즐겁다.
매화 필 때부터 이팝나무꽃 질 떼까지가 봄이라고 했는데, 소생하는 봄을 보노라면 에너지가 전해진다.
오늘도 많은 시간 건강문제가 대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많은 건강 징후들은 병이 아니라 자연스런 노화현상일 수 있다.
대개는 늙어서 못노는 것이 아니라, 놀지 않기 때문에 늙는다고 한다.
오늘 대충 다섯시간 11km 만팔천보 정도 걸었다. 잘 놀았다.
뒷풀이는 구운 명태와 오징어 마른안주에다 갈릭어니언 치즈크림 치킨과 매운맛 치킨에 생맥주로
마무리한다.
안고문님이 스폰서해 주셨다.
산에서 오래 걸은 탓에 애프터로 커피 마실 시간이 없어 아쉬웠지만, 제법 뻐근한 기분으로 해산
한다.
다음달엔 청남대라고 서총장님의 안내가 있었다.
아- 즐거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HJ (129)
P.S. : 산을 다 내려와서 동네의 꽃이 보이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잡은 사진 추가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담 모임에 더 많은 한수회원님께서 참석하시면 더 좋겠습니다 특히 최대장님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신록의 산에서 건강하게 보낸 하루, 즐거웠습니다.
대장님, 늘 준비해 오시는 안주들 맛있었습니다! 형수님께 감사의 말 전해 주십시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말하지만 그에 따르는 체력관리를 70세 넘어서도 않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하체 근육이 빠져나가, 몇시간을 걸어가보면서 후회하는 사실을 직감했음니다. 과거 마라톤을 했어도, 관악산 다람쥐 였드래도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잊지마시고 매월 한수회 등산에 꼭 참석하시기를~. 등산을 잘 이끌어주신 안인환고문님· 이우경등산대장님· 김호재총무님 덕택에 9명이 최고의 봄날을 보냈음니다.
하회장님, 산에서 경륜 깊은 좋은 말씀 많이 주시고, 댓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과 맛을 겸한 즐거운 산행, 함께하는 건강에 감사한 마음 가득 입니다. 혼자서는 오지도 못할 엄두를 동행이란 관계에서 완주한 쾌거 였습니다. 늘 관심과 배려로 북돋아 주신 주니어? 의 성원에도 좋은 기분을 더했습니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 지리라 여깁니다. 호재님의 산행기 역시도 정감어린 우리들 행보를 잘 다루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지난 겨울 한참동안 못뵜었는데, 어제 옛날 보다 더 활기찬 속보 산행에 다들 놀랐습니다.
늘 다정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본격 신록의 계절을 잘 담아 주신 실감나는 사진들과 정감있는 산행기가 즐겁고 정겨운 한수회의 산행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것 같습니다. 산행 소식을 잘 소개하신 호재 총무님 수고 많았습니다.
서달산만 가시지 마시고 한번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카페 꾸려가시느라 어느 누구 보다 수고가 많으신데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송구합니다.
미처 몰랐던 유익한 내용 챙겨서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금년은 여러가지 꽃이 한꺼번에 피고 한꺼번에 지는
바람에 산 진달래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응달속에서
늦게 피는 진달래에, 연두빛의 새싹의 조화가 아름다웠습니다.
늘 선후배의 깊은 정을 나누는 산행은 즐겁고 기다려지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동행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유럽가시기 전까지 열심히 다리 단련하셔서 좋은데 많이 걷고 돌아보고, 여행담 들려주십시오.
안고문님, 홍영태님,이우경대장님!
멋진 산행 참여하신 회원님들께 좋은 산행 축하드리며,
동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산행후기만으로 즐기고 있는데, 조속히 동참하고 싶습니다.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