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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5일(목)
* 시작 기도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주님...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전한 복음은 사람들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한 계시복음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 곧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보니 그 내용이 자기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복음과 같았습니다.
하여 그는 자신이 직접 받는 계시복음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복음 곧 전승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고전 15:1-4).
왜냐하면 자기가 직접 받은 계시복음은 객관성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전승복음은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복음으로 객관적인 복음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을 전하기 원하여 나 자신의 먼저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은혜를 부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롬 9:25-33
제목 :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데 두노니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나의 묵상
주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결코 우리의 자랑이나 나의 의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나는 범죄하여 도무지 구원 받을 수 없는 자요 전적으로 타락하여 나로써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다 타서 시커멓게 된 쓸모없는 나무나 썩어 문드러진 베 조각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다.
이런 나를 다시금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신 것이다.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일컬어 ‘긍휼의 그릇’이라고 말한다.
이 긍휼의 그릇은 유대인들에게도 베풀어 주시지만, 구원과 전혀 상관없이 동떨어진 이방인들에게도 베풀어 주셨다.
그렇게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시므로 구원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써 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을 떠나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는 자리까지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부르시고 그에게 명하시기를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도록 하셨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녀인 고멜과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낳는다.
첫째는 아들로써 이스르엘이라 이름을 짓고 둘째는 딸로써 로루하마라 지으며, 셋째는 아들로써 로암미라 짓는다.
그런데 이 3명의 자녀 이름이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은 북이스라엘 왕이었던 아합이 빼앗은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이다.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이 나봇을 잔혹하게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는 등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큰 악행을 저지르는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을 심판하여 개들이 그곳 이스르엘에서 그들의 피를 핥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왕상 21:19) 너(엘리야)는 그(아합)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그 후에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아합의 아들 요람을 이스르엘 땅에서 죽여 그의 시체를 나봇의 포도원에 던졌다.
그리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도 죽여 이스르엘 땅 들판에 버려 개들이 그 시체를 먹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후는 아합의 아들들을 비롯하여 남은 자손들을 모조리 죽이고 더 나아가 전국에 있는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인다.
이런 예후를 하나님께서는 칭찬하신다.
그러나 그가 점점 하나님을 떠나 잔악한 행위를 일삼는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동기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육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그 진노는 호세아 1:4절의 말씀처럼 그가 처형했던 아합 왕가의 피를 이스르엘에 쏟아부었는데, 그 이스르엘의 피로 하여금 예후의 죄값을 치르게 하신 것이다.
결국 첫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붙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후 왕조에 대한 심판을 속히 단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이름이다.
따라서 호세아 1:5절에서는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호 1: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둘째 자녀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의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이다.
셋째 자녀의 이름은 로암미로써 이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이스라엘이 그들의 교만과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그리하여 그 심판이 속히 실행되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실 때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게 되고 그 때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 공식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언약 안에 머물지 않으므로 결국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지도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이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신다.
(호 1:10-2: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실 것이라고 했는데 그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완전한 회복이 일어나 멸망당한 저주의 땅 이스르엘이 이제는 큰 이스르엘의 날이 될 것이다.
또한 로루하마 곧 긍휼을 입지 못하던 자들이 루하마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이 될 것이다.
나아가 로암미 곧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이제는 암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것이다.
본문 27절에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남은 자만 구원 받을 것에 대하여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하나님께서 씨(남은 자)를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완전히 멸망당했을 것이다.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멸망당한 저주의 땅 이스르엘이 큰 이스르엘이 되며, 로루하마가 루하마가 되고, 로암미가 암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닷가의 모래처럼 그 수가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나 노력 또는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그러나 의를 따라간 이스라엘이 의를 얻지 못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의가 아니라 율법에 의한 의였기 때문이다.
(31-32)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처럼 부딪힐 돌, 걸림돌, 거치는 반석에 걸려 넘어질 때에 비로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는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은 자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나는 걸림돌이나 거치는 반석을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나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감추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걸림돌을 두어 넘어지게 하셔서 나의 추하고 더러운 모든 치부를 드러내게 하신다.
나의 부끄러운 치부가 온 천하에 공개되면 우스운 존재가 되어 비참한 자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도 내가 목사요 선교사인데, 내가 장로의 아들인데, 내가 모태신앙인인데,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무화과 옷이 되어 사람들에게 보란 듯 하고 멋지게 포장하게 하였다.
그야말로 나는 3A의 정점에 서서 나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일에 선두주자 역할을 하곤 하였다.
은밀하게는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의 눈은 의식하면서도 하나님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는 그런 자가 바로 나였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였으며 그 심판으로 죽어야 할 자였다.
그러나 나는 그 심판을 두려워하였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걸림돌을 피하려고만 하였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은밀한 곳에서 나의 신앙양심이 썩어 들어가곤 하였던 것이다.
나는 예후와 같은 자요, 로루하마나 로암미와 같은 자였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속에서는 주님 없이 바알과 아세라를 나의 주님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였다.
쾌락의 신과 풍요의 신이 나의 우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서 한 몫 잡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자 하였다.
학원 사업도 성공적으로 잘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신학을 하고 전도사 강도사 목사가 되어서는 하나님의 일들(?)도 능력 있게 잘 하였다.
교회 개척이 어렵다고들 말하는 시대에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눈에 띄게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개척 신화로 언급될 정도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정말 성도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기도 하였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이루고자 나의 온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그것이 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악행이요 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죄를 먹고 마시던 자였다.
그런 나에게는 걸림돌이나 거치는 반석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걸림돌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요리조리 도망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피하고 도망 다닌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걸림돌이요 거치는 반석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친히 심판하셨다.
그 심판은 곧 나를 심판하신 것이다.
이제 내가 주님의 심판 안에 연합하면 된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 나도 연합하여 함께 십자가를 진다.
주님이 장사되신 무덤에 나도 연합하여 함께 장사된다.
그 때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나도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게 된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은혜다.
거치는 반석에 부딪혀 깨지고 부서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은 나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그의 메시야적 행위인 십자가이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혀 깨지는 것은 아픔이요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부끄럽고 비참하지만 그러나 그 길만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고 아들 안에 있는 이 생명, 곧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을 때에만 온전한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죄성과 악행을 주의 심판 앞에 내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으로 인하여 내가 넘어지는 것은 여전히 싫다.
왜냐하면 몹시 부끄럽고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이 바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져야 한다.
그것도 빨리 무너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다.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그 공의의 심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두 손으로 죄악된 입을 가릴 뿐이다.
그저 주의 심판을 노래하며 기쁨으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신 주님을 소리 높여 찬양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죄인입니다.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재와 티끌에 앉아 회개하나이다.
이 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로루하마였던 이 죄인을 루하마로 여겨주시고, 로암미였던 이 종을 암미라고 불러주시며 더 나아가 이러한 죄의 그을음투성이인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오니 감사하나이다.
내가 바로 멸망당해 저주받은 이스르엘이오나 이제는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긍휼의 그릇으로 변화 되었사오니 나를 품어주소서.
질그릇인 나를 주의 긍휼의 그릇으로 품어 주의 소유된 자로 삼으셨사오니 이제는 내가 아들의 생명을 품은 자로 살게 하소서.
나는 연약하여 넘어지기 쉽지만, 주의 보혈 의지하여 파레시아로 굳건하고 담대하게 서기 원합니다.
오늘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눈물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