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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아서일까? 달빛에 취해서일까? 아침 연안부두부터 이어진 짜증과 긴장이 비로소 풀린 탓이었을 것이다. 매운탕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밥을 조금 떠먹었는지도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포나루 형이 체코 인어공주 루살카 얘기를 들려줬고 드보르작의 ‘달에 부치는 노래’를 검색한 기억은 오롯하다. 익히 들었던 노래였다. 또 주위의 네 군데 텐트 이웃들에게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구는 것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점심에 이장댁 평상에서 만난 아들딸 데리고 놀러 온 가족은 우리 노랫소리를 듣고 '아, 우리보다 한참 위 연배시구나' 했다고 점잖게 꾸짖었다)
좁다랗고 길다란 언덕이지만 제법 초지 느낌도 나 몇년 전 네이멍구에서 들었던 ‘야생마’를 듣겠구나 싶었던 피플러버 회장님 18번이 다른 노래여서 제법 놀랐고, 날 시키면 해야지 마음 먹었던 ‘상아의 여인’을 누군가 읊조려 화들짝 놀라 등짝을 가볍게 손등으로 쳤던 기억도 있다. 내 얄팍한 기억력으로는 난 3시간쯤 노닐다 텐트에 자러 기어들어갔다. 첫 편 첫 머리에 소개한 대로 탱크의 텐트라 일찍 새벽에 깨었고 하릴 없이 개기월식을 바라보다 새벽 잠행에 나섰고 미친 X 소리를 듣는 상의 탈의 복장으로 텐트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아침 9시까지 민박집에 복귀했다.
참, 술자리에서 수박이 한때 화제였다. 전날 오후 3시쯤 희망과용기 형이 냉장고에 수박을 넣는다고 하길래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연안부두부터 내가 가슴에 안고, 덕적도 포구의 그 땡볕에도 안고 온 수박이 개머리언덕 오르는 내내 보이지 않아 설마했는데 민박집 냉장고에 그대로 둔 터였다. 술이 몇 순배 돈 뒤 수박이 화제에 오르자 그린랜드 형이 “어느 산행에나 여행에나 가보면 꼭 미련하게 수박 들고 오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데 제대로 못 먹기 일쑤고, 버리는 일이 예사다. 제발 그러지 좀 않았으면” 했다.
난 “그러면 제가 빨리 내려가 가져올까요”라고 했고, 예상했던 대로 많은 이들이 말려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잠행 때 민박집 근처 해변에 내려 닿는 언덕 내리막길 초입까지 갔으니 민박집 냉장고 터는건 일도 아니었다. 아서라, 난 상의 탈의 중이었다. 입성만 제대로였다면 대수가 아니겠지만 웃통 벗은 인간이 산에서 내려와 냉장고 열더니 수박 자르게 식칼 내놓으라고 하면 민박집 누이가 기겁을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해서 그만 뒀다.
아침 8시 조금 못돼 짐 꾸려 민박집 도착하니 난 40분 남짓이었다. 아침이지만 벌써 땀범벅이었다. 샤워를 간단히 하고 함께 떠난 댕기(모든 무거운 짐들은 허리 아프다며 선후배에게 떠넘기고도 맨나중에 내려왔다)와 아톰, 가장 먼저 떠났지만 둘보다 조금 앞서 도착한 마포나루 셋을 빼고 모두 둘러앉아 밤새 냉장고에 모셔졌던 수박을 우적우적 먹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고 시원했다. 희망과용기 형이 좋은 선택을 했다.
간밤에 랜턴 밝혀 민박집에서 둘씩 잠을 이룬 산바람, 지리산, 법상, 호랭이는 아침도 안 먹었다고 했다. 괜찮겠느냐고 했더니 어제 너무 많이 먹어 아무 생각 없다고 했다. 간단히 의사를 물으니 연평산 가겠다는 이는 나와 산바람, 지리산 뿐이었다. 물병 하나씩 들고 9시 15분쯤 출발했다. 손바닥만 한 섬이라고 민박집 담에 붙은 지도를 대충 보고 요리조리 가면 되겠네 한 것이 조금은 화근이 됐다.
10분쯤 걸었을까, 이건 누가 봐도 지름길이겠다 싶은 길이 나온다. 사실 섬에 간단 없이 떠밀려오는 어구 쓰레기 모아둔 곳이었다.400m쯤 걸었을까? 사구(dune)가 나온다. 어랏, 서해에 사구가 있는 섬이 있다니? 사구 있는 섬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긴 한데 그곳이 굴업도일 줄은 몰랐다. 어디쯤에선가 연평산 윗봉우리가 해무 위로 슬쩍 비치길래 저리 가면 되겠구나 싶어 사구를 올랐다. 그곳을 오르면 능선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해식 절벽이다. 오른쪽으로 우회를 하려 했는데 500m쯤 나아간 곳은 또 낭떠러지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내처 걸었더니 높이가 30m쯤 되는 사구가 나온다. 엉덩방아 썰매를 타고 내려오니 연평산 갈 길이 막막해진다. 해무 때문에 연평산은 숨었다가 얼굴을 비쳤다가를 반복한다.산바람 형 얼굴이 안 좋아진다. 우리 둘은 조그만 생수를 들었는데 욕심 많은 형은 2리터 대형 병을 들었으니 더 힘들지.
백사장이라 하긴 뭐하고 녹슨 철 색깔의 모래밭을 무작정 걸으니 연평산 오르는 길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한다. 또 사구다. 가급적 풀섶이 있는 쪽을 택해 올랐다. 산바람 형은 정상을 5분여 앞둔 솔밭에서 그만 가자고 했다. 나도 능선을 내려갔다가 다시 0에서 시작해야 하나 싶어 계속 나아가자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리산과 둘이만 잰걸음을 옮겼더니 금세 어느 정도 시설을 갖춘 등산로가 나온다. 5분이면 오를 수 있겠다 싶은 예감이 적중했다. 조금 거친 오르막을 줄 잡고 바위 잡고 오르니 연평산 정상이다. 땡볕이다. 그런데 해무가 발생하는 원인이 날은 무덥고 해수면은 차가워 발생한다는 사실을 오롯이 알 수 있게 섬 곳곳의 바다와 면한 지점에 해무가 피어오른다.
사진 찍고 더 날이 개일 전망 희박하다는 결론 내려 하산을 시작해 산바람 형 다시 만나고 사구 내려서니 해수욕객인지, 굴 채취하는 동네 아낙들인지 모를 여성들 7명 정도가 해안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왔던 길 되밟았다. 중간에 숲길이 나와 한시라도 빨리 씻고 싶다는 지리산 먼저 보내고, 숲길에 들어 산바람 형과 신발 속 모래 털어내고, 형 먼저 가라고 하고, 조금 걸었더니 전날 배 내렸고 이따 배 탈 포구가 바로 아래다.
아무튼 민박집 돌아와 다시 씻고 짐 챙겼더니 12시가 조금 안됐다. 덕적도 떠나는 배가 하루 한 편, 오후 1시 30분에 떠난다며 서둘러 점심 먹으란다. 헐레벌떡 샤워 마치고 갔더니 밥이 아직 안됐다며 조금 기다리자고 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전날 해변에서 이어지던 막걸리 추렴이 또 이어지는 모양이다. 새벽 4시반쯤인가 소줏잔 돌리자던 이도 거기 있는 모양이었다. 징허다.
그런데 귀신처럼 밥때 맞춰 돌아와 이장댁 거실에 마련한 밥상 주위에 둘러 앉아 또 막걸리를 주문한다. 전날 점심보다 뭔가 더 격식이 있는 집이다. 그릇이며 시원한 아귀탕이며 메뉴도 그렇다. 난 머위무침에 꽂혔다. 보통 머위는 들깨가루와 함께 무치면 맛있는데 이집 머위는 뭔가 삶는 방식부터 달라 보였다.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아주머니에게 물어봐야지 했는데 깜빡했다. 다음에 굴업도 가면 이 집에서 아예 숙식을 모두 맡겨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았다. 개머리 숙영지까지는 짐 없으면 40분 살랑살랑 걸어도 되니 낙조 보고 걸어와도 되고, 아예 이른 저녁 먹고 간단한 안주와 술만 챙겨 해거름에 올랐다가 달 구경 마친 뒤 돌아와 편안한 잠자리 청해도 좋을 것 같아서다.
아무튼 다시 트럭에 올라 영 안 올 것 같다가 어느 순간 오른쪽 절벽 끝을 돌아 순식간에 정박한 배에 올라 덕적도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을 향해 달린다. 원래 우리가 타려 했던 인천 가는 배는 4시 반이라 2시간을 보내야 한다. 커피향 그윽한 집에 들어가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팥빙수(싸고 맛있었다) 들며 책 같은 것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금세 시간이 갔다. 또 술 먹으러 우르르 일어나는 이들이 있었고, 아톰 형이 배를 왜 타냐고, 어디 딴 데 가서 타는 거냐고 뜬구름과 전화 통화하며 농을 하는 것 같았다.
뒤늦게 배를 탄 뒤 인원 점검한다며 사람들 헤아리고 화장실에서 시름을 더는 그린랜드 형에게 기어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잠에 곯아 떨어졌다. 내릴 때 보니 영락없는 홈리스다.
여객터미널 빠져나와 7분쯤 걸으니 병일이가 잡아놓은 일식집 야스이가 나온다. 이미 상은 차려져 있고 17명을 4명씩 네 테이블에 몰아 앉히지 않고 좌우 끝은 그렇게 하고 중간 3개를 3명이 앉게 한 주인장의 머리 씀씀이가 비상했다. 보니까 서빙 종업원 한 명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손님들 불편하지 않게 했다. 수완 좋은 그 여인네는 값싼 재료로 손님들 만족도를 높이는 메뉴(예를 들어 숭어구이, 생태내장 샐러드)에다 메뉴를 상에 올리는 순서까지 치밀하고 정교했다. 언변이 좋은 것은 물론이었고.
병일은 직장 상사가 그린랜드 형과 인천고 동창이란 인연을 내세운 것은 물론, 모든 참석자와 한잔씩 권커니 자커니 하는 품새를 보였다. 나도 일박이일 동안 서운했거나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 같은 이들과 돌아가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2시간 조금 모자라게 8시 조금 넘어 술자리를 파했다.
돌아가는 길. 동인천역 가면 서울까지 하세월이다. 강남 인원이 5명이 돼 택시를 타면 애매해질 것같아 슬쩍 빠져 뜬구름 차로 갔더니 정원이 다 차 트렁크를 뜯어내야 했다. 그렇게 뒷좌석 한쪽에 짐 몰아넣고 아톰 형 주절대는 소리 들으며 짐에 쓰러져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홍대입구역 근처, 합정역 내려달라고 해 전철 타고 집에 돌아오니 밤 9시 40분. 전날 새벽 5시40분쯤 집을 출발한 지 정확히 40시간 만이다. 일박이일이지만 누군가 말마따나 어디서 사박오일쯤 한 것 같은 장도가 마무리됐다.
모두 고생했다. 법상이 얘기한대로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며 좋은 여행을 했다. 다음 개기월식이 2021년 5월 26일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짬이 더 나는 이들이 많을테니 그린랜드 형이 좋다고 얘기한 덕적도 산 종주를 엮어 더 길게, 더 가볍게 다녀왔으면 한다.
뱀의 발. 여행 다녀온 며칠 뒤 카톡에 ‘훌륭한 추억은 남고 카드 빚도 남았다’고 적었는데 그 뒤에 많은 글들이 올라와 파묻혔다. 그 사연을 얘기하려 한다. 이번 여행은 애초에 출발하면서부터 회원들 부담 적게 하고 적립된 회비 보조를 받으려 했다. 실제로 민박집 10만원, 장보는 비용 40만원을 회비에서 지원 받았다. 따라서 8월 3일 회비 잔금은 50만원남짓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결국 야스이 뒷풀이 비용 65만 5000원 가운데 병일이가 20만원 현금 지불하고 나머지는 내가 카드로 결제했다. 해서 사실 뒷풀이 전부터 회장님을 비롯한 몇몇 선배들과 상의를 했다. 더 이상 회비를 축내면 안된다. 그러면 이 자리를 갖기 전 얘기하고 회비를 더 걷느냐, 그러자니 조금 모양새가 그랬다.
해서 내가 한 주쯤 지난 뒤 회원들에게 호소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월요일엔가 전화를 걸어와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난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귀찮고 힘들어서 어떡하느냐고 한다.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드린다. 농협 056-12-151683으로 일인당 3만원씩 부쳐주시기 바란다.
첫댓글 두 번으로 나눠 산행기 쓰느라 수고했다. 근데 알도 정신이 없긴 했나보다. 자기가 내린 곳은 홍대입구가 아니라 호랭이를 여의도에 내려주고 난 뒤 2호선 탈 수 있는 충정로역이었어. ㅎㅎ 비몽사몽이었구나. 또하나 가족 캠핑객은 우리에게서 귀한 물을 두 통이나 얻었기 때문에 나쁜 인상을 갖진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은행계좌 예금주는 임병선?이겠지.
덕분에 즐거운 굴업도 여행도 했는데 맛깔난 후기까지.
알대장은 역시 산악회 보배야~
또 잘 읽었고, 처음부터 회비 10만원 주장했던 사람으로, 이번 여행은 그래도 경비를 알차게썼다고 생각드네.. 다만 술을 적게 먹는 이들 한테는 다른 먹거리로 대체를 해야하는데, 사실 마땅한 방법이 없는 듯. . 추가회비 보냈시요!
알 대장! 애 많이 썼다. 내가 알 대장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하네. 노래는 내가 많이 불렀지만 수다는 아톰이 더 많이 떨었고, 막걸리는 그린란드 형이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마신 것 같은데. 나한테만 너무 눈총 주지 말게. 나도 지금 3만원 입금했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진작 말하지. 어쩐지 우리가 쓴 돈에 비해 회비가 너무 적다 했지. 더구나 연안부두 뒤풀이까지.
재밌다 또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