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
류태영박사의 삶 자체가 바로 드라마다.
예수가 자신을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믿는 '청년' 류태영은 1936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고 18세때 전라도 시골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던 그는 어머니가 마련해 준 차비만 들고 친지 하나, 친구 한명 없는 서울로 올라가 영등포 역에서 구두닦이 생활을 하며 동양공고를 야간으로 다녔다. 구두닦이,신문팔이,행상등을 하면서 대학교를 다녔다.
『영등포 역에서 구두를 닦다가 대방동 미군부대 근처로 구역을 옮겼더니 그곳 구두닦이들이 유학 이야기를 해요. 유학이란 말은 그때 처음 들었어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몰랐죠. 「유학이 뭐냐」고 했더니 「세계적인 선진국에 가서 공부하는 거다」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나도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강렬한 욕망을 갖고서 꿈을 꾸었다. 선진 농업국인 덴마크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욕망을 불태웠다. 그는 두가지를 준비했다. 우선 우리나라 농촌에 관한 논문을 썼다. 비참한 당시 농촌의 현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히 썼다. 그리고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난 자신의 소개서를 썼다.
『오직 내가 바라는 건 한국 농촌이 잘사는 것이다. 당신네 나라처럼 훌륭한 나라에 가서 배워 가지고 우리 농촌을 잘살게 하는 데 내 인생을 바치겠다. 그것을 위해서 장학금 좀 줄 수 없겠느냐고 썼어요. 엉성한 영어였지만 나로선 최선을 다했어요.』 쓰고 나니 보낼 데가 없었다. 오직 책 한 권을 읽고 감명받아서 행선지는 덴마크로 정했지만 덴마크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제일 높은 사람에게 보내기로 결심했지요.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덴마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프레드릭 9세 국왕 이었어요. 그런데 백과사전에 왕궁 주소가 나와 있지 않아요. 그렇더라도 덴마크 우편배달원이 설마 국왕의 집이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편지 겉봉에 「덴마크, 코펜하겐, 프레드릭 9세 국왕폐하」라고 써서 보냈지요.』40일 뒤 답장이 왔다. 동양에서 온 편지에 감동한 국왕이 이 건을 행정부에 넘겼다는 국왕보좌관의 편지였다. 그러부터 2주 뒤에는 덴마크 외무성에서 「당신이 원하는 기간, 당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당신이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겠다.」는 편지가 왔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들어주겠다는 파격적인 지원 약속이 있다. 왕복 비행기표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덴마크 정부 초청의 한국 장학생이 된 것이다. 여권을 내러 간 날, 외무부 직원이 『덴마크의 누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혼잣말로 『임금님을 조금 압니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했다.
유교수가 덴마크에 도착한 것은 1967년. 덴마크 말을 배우기 위해 어학코스에 들어갔다.
그 후 그는 자신이 덴마크에서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그러던 중 그토록 잘사는 덴마크도 100년 전에는 우리나라보다도 형편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100년 전 덴마크에서 일어났던 국민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 전쟁에서 패배했다. 전쟁에 진 덴마크는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옥토를 넘겼다. 덴마크 국민들은 실의에 빠졌다.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돈도 기술도 의욕도 없었던 덴마크가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는가 하는 것에 유교수는 관심을 가졌다. 그 비결만 배우면 우리민족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유교수는 교육가이자 철학자인 그룬트비 목사가 국민운동을 일으켜 덴마크가 오늘날의 선진 복지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덴마크 국민운동을 공부하는데 온 시간을 보냈다. 2년간 공부하고 나니 우리나라 실정에 적용시킬 것은 더 이상 덴마크에서 배울 것이 없었다.
위대함은 높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을 기르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프로가 되겠다는 열렬한 욕망을 가져라.
무엇을 할 것인지를 확실히 정하라.
당신은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어떠한 대가도 치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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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고 *
건국대 류태영 교수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이스라엘 전문가다. 그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벤구리온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1990년 이후 한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그가 이미 뚫어놓은 길을 따라 이스라엘로 유학을 가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한국 유학생들은 유교수를 자기들의 대부라고 부른다. 지난 10년간 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농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연구비를 주고, 상도주고, 농업 종사자들이 외국에 가서 기술을 배워오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육군에서 실시중인「충·효·예 교육」강사로 나가고 있다.「충·효·예 교육」은 구타, 탈영, 자살등 군내의 악습을 막기 위해 중사 이상의 하사관에서부터 중령에 이르는 간부들에게 실시하고 있는 정신교육이다. 「조국을 위해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부모가 원하는 군생활을 하며, 장병 상호간에 예절을 지키도록」하는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