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의 미소]
2. 산중에 사는 사람
--< 편집자 주 >------------------------------------------------------
백련암 방장스님과의 대담 내용 중
큰스님 주변 이야기를 발췌해 수록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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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스님 : 나는 본시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장(늘) 대하는 것은 푸른 산, 흰 구름이지.
푸른 산이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흰 구름이 자유로이 오고가는 것을 보고 살지.
거기에서 모든 것의 실체를 볼 수 있어.
무궁무진한 변화도 보면서 살고 있지.
스님의 섭생방법이 독특하다고 듣고 있습니다.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스님 : 건강 유지,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살만큼만 먹고 사니까, 먹기를 아주 조금 먹거든.
보통 사람들의 3분의 1쯤 될까.
그래서 의사들도 놀라.
어떤 신도들은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
밥 적게 먹고 매운 것 안 먹고 순담식(무염식)으로 수 십년 살았지.
어떻게 걸어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난 괜찮아.
키도 크시고 몸도 크신데, 그렇게 적게 잡수시고 정말 놀랍습니다.
무염식을 하시게 된 동기가 따로 있습니까?
스님 : 뭐, 동기가 따로 있나.
몸에 좋으라고 골라 먹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맵고 단 것 먹는 성질이 아냐.
좋은 음식은 잘 안 먹고, 먹기도 싫어.
젊었을 때부터 생식도 많이 했지.
두루마기는 얼마나 입으신 건가요. 아주 많이 헤어졌는데…
스님 : 이 누더기, 오래 됐어.
한삼십년 될까.
많이 떨어져 앞자락을 좀 고쳐달라고 했더니
새걸 대가지고 옷을 버려버렸어… (웃음)
조금 있으면 또 떨어지겠지.
어떤 종교에서는
오로지 자기네가 믿는 종교의 교조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지,
다른 종교를 가지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그렇습니까?
스님 : 그건 참 곤란한 일이야.
[너는 내 말만 들어야지 남의 말을 들으면 살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을 우리는 인격자라고 할 수 없지.
내 말을 안 듣는 사람까지도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종교가 아니겠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면서
자기만을 내세운다고 해서 자기가 내세워지나?
우리 종교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지,
다른 종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고 우긴다면
문제가 큰 거야.
불교는 일체법이 개시불법(皆是佛法)이야.
모든 것이 불교 아닌 것이 없다고 해.
하나의 법도 버릴게 없다는 것이 불교라는 거지.
불교는 이렇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보아라.
자기를 바로 알고 이웃에 손길을 뻗치라고 하지.
불교에서는 부처님 믿고 안 믿고 큰 문제가 아니야.
자기 마음을 바로 보고 바로 쓰면서 바로 행동하는 것이 근본이야.
그러니 석가모니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해탈(구원)할 수 있어.
요즘 우리나라 종교계 일각에서는
물량주의와 거대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생존의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빚이 많은 실정인데,
수십억짜리 교회나 성당을 세우고
야단스런 법당을 짓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스님 : 정신적인 양식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이 종교야.
사람이란 물질에 탐착(貪著)하면 양심이 흐려져.
그러기 때문에 어느 종교나 물질보다 정신을 높이 여기는 거야.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호사스런 왕궁을 버리고 다 헤진 옷에 맨발로 바리때 하나 들고
여기저기 빌어먹으면서 수도하고 교화했어.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교화의 길에서 돌아가셨어.
철저한 무소유에서 때 묻지 않은 정신이 살아난 것이야.
또한 그 산 정신을 널리 공급한 것이지.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그 의미를 알아야 해.
우리가 진정한 불교도요, 기독교도라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생활 태도를 그대로 본받아야 할 것 아닌가.
정신이 병든 것은 물질 때문이야.
종교인이 청정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 자족할 수 있어야지.
여유 있는 물질은 반드시 사회로 환원해야 죄를 덜 짓게 될거야.
우리 민족의 과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통일입니다.
분단체제로 인해서 민족의 저력은 남이나 북을 물을 것 없이
부질없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도 마침내 이 분단체제의 틀에 걸리고 맙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국가나 통일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스님 :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잘은 모르지.
우리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국제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됐다고 보아야지.
38선이 혹은 휴전선이 몇 개 그어졌다 해도
남쪽이나 북쪽이 다 같은 핏줄, 한 민족 아니야.
선을 그어 놓았다고 피가 달라지겠나.
민족이 달라지겠어.
언젠가는 하나를 이루고 말텐데…
미리부터 서로가 인내력을 가지고 아집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한 덩어리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스님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스님 : 생사란 바다의 파도와 같아.
끝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났다가 죽었다 하지.
그러나 바다 자체로 볼 때는 늘고 줌이 없지.
생사 자체도 그래.
인간뿐 아니라 만물의 자체는 바다와 같이 광대무변하고 영원해서
상주불멸 불생불멸(常住不滅 不生不滅)이야.
그러니 결과적으로 생과 사는 하나이지 둘로 볼 수 없는 거야.
요즘 절에는 없는 것이 없더군요.
TV, 냉장고, 가스렌지, 전화 심지어 자가용까지도 있고…
스님 : 승려는 최저 생활을 하며 남을 위해 기원하는 거야.
출가한 남자를 비구라고 하지.
그 비구라는 말이 걸인이란 말이야.
얻어먹는 사람이지.
옷도 마음대로 입는 게 아니야.
버린 헝겊을 주워 깨끗이 해서 지어 입는 거지.
그것도 두벌 이상 가지면 안돼.
옷은 헌 것을 업고 밥은 얻어먹고 이게 부처님이 가르친 철칙이지.
부처님의 법을 지켜야하는 승려들이니,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검소하게 살아야지.
내가 오늘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꼬치꼬치 물어서 죄송합니다.
좌우명 같은 것이 있으면…
스님 : 내게 무슨 좌우명이 있겠나.
「차나 한잔 마셔라」하는 것으로 좌우명을 삼지.
차란 불교 안 믿는 사람도 마시지 않아.
고민하는 현대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나 할까요.
현대인들에게 삶을 위한 법문(法門) 좀 주시지요.
스님 : 그거 별 것 아니야.
[내가 사람이다]하고 생각하면 모든 고통이 없어질 거야.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하거든.
개, 돼지 같은 짐승처럼 날뛸 수 없다는 말이야.
개는 똥만 보면 뛰어가지.
사람들도 물질만 보면 쫓아가는 이들이 있지.
뭐 다를 게 있나.
욕심의 노예가 되면 동물이 되어버리는 거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지.
사람들이 욕심을 없애면 바로 이곳도 극락이야.
사람이란 「사람」을 발견해야 해.
그런데 도대체 천지간에 「사람」 이 없단 말이야.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사람이다」하고 살아야지.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산다면 뭐 걱정할 게 있겠나.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날카로워야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냐.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칙이란 무엇입니까?
스님 : 인과법칙이란 우주의 근본원리야.
불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가 되지.
남을 위해 기원하면 나를 위한 것이 되고
남을 해치면 결국 나를 해치는 게 되는 거야.
생태학에서도 그렇다고 할거야.
농사에서도 그렇지 곡식이 밉다고 곡식을 해쳐봐.
누가 먼저 배고프겠어.
불교에 이런 말이 있어.
어떤 사람이 죄를 많이 지어 지옥에 떨어졌거든.
지옥 문 앞에 가서 보니 그 고통 받는 중생들의 모습이
도저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야.
보통사람 같았으면 [저 속에 들어가면 저렇게 될 텐데…]하고
어떻게 피해볼 방법이 없겠나 했겠지.
그런데 이 사람은 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야.
[저렇게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잠깐만이라도 내가 대신 받아
저 사람들을 대신 쉬게 해줄 수 있다면…]하는 착한 생각을 한 거지.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지옥이 없어졌더래.
그 순간에 이 사람은 극락에 간 거지.
중생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으려고 하니 지옥이 없어지고
자기가 먼저 극락에 간 게야.
모든 것이 일체유섬조(一切唯心造)란 말이야.
이른 아침부터 오랫동안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좋은 말씀 널리 퍼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법문 출처 : 해인지 <해인법문>
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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