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8월 16일 수요일 맑음
어제 오후 늦게 스웨덴에서 노르웨이 외레이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잤다. 차를 몰고 들어왔는데 국경도 출입국 관리소도 없이 달리다보니 그냥 들어와 있었다. 아침 이슬이 내렸고 약간 쌀쌀하다. 식빵과 우유, 해장국을 끓여 아침을 먹는다. 오슬로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농가를 스쳐갈 때마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유혹했다. 노르웨이는 약간 언덕에, 또는 산에 집이 있고 평지에 있는 스웨덴 농가보다 색상은 좀 떨어진 듯하다. 오슬로는 생각보다 작고 개발이, 도시화가 늦은 것 같다. 몇 번 헤매다가 오슬로 시청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우리는 책에서만 보고, 말로만 듣던 노르웨이의 중심부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산과 빙하와 피요르드의 나라, 인형처럼 사는 여자보다는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외치며 남편과 아이의 곁을 떠나는 여성 노라 - 인형의 집-을 만들어 낸 극작가 헨리 입센이 떠오르는 나라다. 거기에 페르퀸트 조곡으로 익히 친숙한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 베르겐, 표현주의의 원조로 불안과 고독을 화폭에 담은 화가 뭉크의 고향노르웨이다. 강하게 인상 받은 조각가 비겔란. 노르웨이는 예술가의 고향이자 경치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멀고 먼 나라이다.
우선 인포메이션에 들러서 시내 지도와 여러 고장의 홍보물을 골라 나왔다. 그리고 유스 호스텔도 물어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인포메이션 가까이에 있는 시청부터 방문했다. 1050년 하랄 왕에 의해 오슬로 시의 기초가 확립된 후 900년이 지날 때 이를 기념하기위해 건축한 것이 지금의 시청이다. 1931년에 시작하여 19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붉은색 벽돌로 깔끔하게 지어져 있다. 정면을 향해서 왼쪽부터 북유럽의 신화인 ‘에다’가 16개의 목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장료를 받고 있다. 홀을 들여다보니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유화가 1,2 층에 걸쳐 그려져 있다.
시청을 나와 뒤편 해안가에 갔다. 광장에 조각물들이 많다. 해안가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어 아름다웠다. 해안가 조그만 통통 배에서 어떤 중년 어부가 삶은 새우를 kg으로 저울에 달아 팔고 있다. 베르겐에서 사 먹을 계획이었으나 아내의 성화에 밀려 새우를 사서 먹었다. 즉시 속살을 먹으니 엄청 맛있다. 짭짤하다. 싱싱하고 간이 되어서 그냥 먹어도 좋고 반찬으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자.
차를 다시 몰고 지도를 보며 시내 약간 외곽에 있는 비겔란 박물관으로 갔다. 두당 20 크로네를 주고 들어갔다. 사람을 주제로 한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그의 판화작품, 유명인의 흉상 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오슬로는 그리그보다, 입센이나 뭉크보다 비겔란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 같다. 시내 곳곳에 그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길 건너편에 있는 르퐁네르 공원으로 갔다. 일명 비겔란 공원이라고 한다. 입장료가 없어 고마웠다. 비겔란의 조각품들이 늘어서 있고, 잔디와 꽃들로 잘 어우러진 공원이다. 산책이나 조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관광객 보다는 휴식하는 이들이 더 많이 보인다. 정면에 들어서니 오른편에 비겔란의 동상이 있다. 공원 숲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점심을 아침에 준비한 김밥으로 해결했다. 정면 입구 양쪽에 두 길로 늘어선 보리수 가로수 길을 따라 인공 호수 위에 걸린 다리와 동상이 있다.
인간의 일생을 표현한 분수에서는 몇 몇 꼬마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한가롭게 앉아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부모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17m 높이에 260톤의 화강암 덩어리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조각된 탑이다. 주변에는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중년 시절, 노년 시절을 조각해 놓았다. 조각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원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다. 아이와 관광객이 만지고 올라가서 반질반질해진 것도 몇 작품 있다.
더 내려가니 해시계가 있고 마지막에 <인생의 윤회>라는 작품이 있었다. 대단한 조각 작품이다. 인생의 유형을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 대하니 더욱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손을 불끈 쥐고 인상을 쓰며 울고 있는 아이의 작품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서인지 반질반질 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보고, 만지며, 함께 지내는 이들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마음도 아름답고 표정도 밝을 것 같다. 부러운 국민이다. 각박한 환경 속에서 경쟁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다.
시간에 쫓기며 경쟁과 함께 긴장으로 찌들어진 우리의 삶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인다.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되씹으며 차를 몰아 왕궁으로 향했다. 모두 지쳐 왕궁 앞 공원 잔디에서 쉰다. 잠시 후에 왕궁 앞으로 걸어 올라간다. 꾸밈없는 소박한 3층 건물의 왕궁은 약간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카를르 요한 거리를 내려다보듯 서 있는 왕궁은 1822년 착공되었단다. 왕궁 앞에는 당시 스웨덴 왕 카를 요한의 말 탄 동상이 있었다. 현재는 올라브 5세가 살고 있다. 감색 제복의 위병 둘이서 입구를 지키고 있다.
동상 앞에서 내려다보니 카를 요한 거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많은 인파가 북적댄다. 우리는 차를 놔두고 걸어서 가를 요한 거리에 갔다. 오른편에 위엄 있게 서 있는 건물이 오슬로 대학이다. 대학 중앙에 있는 아울라 강당에는 대학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뭉크가 그린 커다란 벽화 <알마와 마르테>가 있었다. 아울라 강당에서는 매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강당을 나와 광장이 있는 거리로 나오니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다양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며 따스한 햇볕아래 휴식을 취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도로변에 그동안 사용했던 헌 책을 두 권에서 많게는 20 여권을 한 두 명도 아닌 많은 학생이 길을 가득 메워 즐겁게 담소하며 팔고 있었다. 책을 파는 것이 그렇게 썩 좋게만 생각되지 않지만 책값이 비싼 요즈음 필요 없는 책을 팔아 필요한 책을 구한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생각이 좋아보였다. 필요 없는 책, 평생 읽지도 않을 책을 폼으로 꼽아놓고 장식하는 것 보다 실용적인 것 같다.
이들 틈을 비집고 구경하다가 길 건너편 수리중인 국회의사당을 보고 국립극장 앞으로 갔다. 거기에는 뒷짐 지고 고개를 숙인 입센의 동상이 서 있었다. 입센이 여자인줄 알았는데 턱수염이 잔뜩 있는 남성이었다. 노라로 인해 자꾸 헷갈린다. 걸어서 국립 미술관으로 다시 왔다. 이태리에 거주하는 한국인 젊은 부부를 만나 반가웠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다. 우리 아들 딸 보다 어려 보였다. 문득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난다.
미술관은 입장료가 없어 반가웠다. 처음 들린 곳이 뭉크의 작품 실 이었다. 사춘기, 절규, 마돈나 등 그의 특이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정말 특이한 작품이다. 밝음 보다는 어두움을, 평안 보다는 걱정이, 넓음 보다는 좁은 것이, 기쁨 보다는 절규가, 오만함 보다는 위축됨이, 긍정보다는 부정이 그의 작품 속에 깔려있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 마네의 자화상, 얼굴과 목이 긴 모딜리니의 작품, 피카소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태어나 처음 대하는 작품들이다.
조금 더 넓게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속 박물관은 열리지 않아 그냥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간다. 차를 몰고 오슬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골목에 차를 대 놓고 대성당에 걸어간다. 문이 닫혀 있어 외부의 모습만 보고 차로 돌아섰다. 차 앞 유리창에 주차 위반 딱지가 붙어있다. 자동 주차비 통에 돈을 넣고 주차 시간을 표시한 표를 받아 올려놓아야 하는 데, 그냥 주차를 한 것 이다. 서툰 영어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니 시청으로 가보란다. 낭패였다.
당황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헤매고 있던 중 교통순경을 발견했다. 뛰어가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니 주차 딱지를 문제가 없다며 찢어버린다. 다행이었다. 차를 몰고 아르케후스 성으로 찾아간다. 주차에 신경 쓰여 옆 차에 물으니 오후 5시 이후는 무료 주차란다. 말을 모르니 실수 연발이다. 성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시간이 늦어서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성에 올라 오슬로 항구를 내려다본다. 정말 아름답다. 잔디밭에 잠시 쉬는 사이에도 대형페리가 계속 밀려들어온다. 1300년 호콘 5세에 의해 세워졌다는 이 성은 1527년 화재로 손실되고, 다시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해 17세기에 다시 세워졌단다.
피곤하다. 생각보다 노르웨이 오슬로 구경을 일찍 끝냈다. 시내에서 숙소를 잡을까 생각하다가 릴레 함메르 쪽으로 벗어나 외곽에서 숙소를 잡기로 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대형 호텔 앞 상점에 잠깐 들러 상품 구경을 한다. 뺏지를 하나 사고 차를 몰아 외곽으로 달렸다. 복잡한 길을 따라 표지대로 달리니 한적한 도로에 접어들었다. E6 도로를 계속 간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넓다는 미에사 호수가 나왔다. 호스를 왼쪽으로 보며 달리다 보니 벌써 오후 9시가 넘었다. 그러나 밖은 아직 훤하다.
하마르에 도착하기 전에 호숫가에 위치한 조용한 캐빈을 425크로네에 빌렸다. 하루의 피로와 짐을 풀고 배를 채웠다. 날씨가 약간 쌀쌀해서 담요를 더 얻어왔다. 일본인 여자 주인과 노르웨인 인 남편이 운영하는 캐빈이다. 남편은 정원을 꾸미는데 열심이었고 여주인은 꾸밈없이 수수한 차림으로 친절했다. 전기스토브를 모두 켜 놓으니 용량이 초과되어 퓨즈가 나가버렸다. 잠시 어두웠다. 퓨즈 모양이 우리와 달랐다. 주인이 친절히 고쳐 주었다. 라면을 끓여 밥을 먹는다. 속이 다 풀린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