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붉은 얼굴의 중년 남자가 힘든 얼굴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힘들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같다. 한손에는 삽을 들고 있고 등에 메고 있는 자루엔 부러진 나무막대기들이 가득차 있다. 흙투성이에 땀투성이인 온몸이 보기 좋지만은 않다.
"후우...어쨌든 어제오늘로 일은 거의 끝낸거 같구만..."
산 중턱에서 잠시 멈추더니 삽과 자루를 옆에 던지고 잠시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드는 남자... 불을 붙인 다음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어이...거기 일은 다 끝났는가? 생 구덩이 파헤치는게 쉬운 일은 아니제? 하하...아무튼간에 대충 끝내고 30분 뒤에 산 입구에서 보자고. 오늘 찾아가면 될거여 아마. 엥? 아직 끝낼라면 멀었다고? 인간들이 고양이고기를 삶아먹었나...대충 하고 내려오셔. 대충대충 파도 된다고 했으니께...근처 밥집에서 식사나 하자고~"
전화를 끊은 남자는 잠시 담배를 피우며 무언가를 생각한다. 어두워지는 산자락 건너편의 마을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감돈다. 다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그...
...띠리리리리...띠리리리리....지금은 고객의 사정으로....
"음...뭐하고 안받는겨?"
...음성 메시지 사서함입니다....
"여보쇼? 부탁받은 일 어제오늘로 끝냈응게 이따가 전화하면 꼭 받으쇼잉? 돈은 일당 20만원 주는거 확실히 해두고? 알았소? 저녁식사 하고 다시 연락하것소~"
음성메시지를 남기고도 몇번 더 전화를 해보던 남자는 그만두고 피우던 담배꽁초를 던져버린 뒤 삽과 자루를 챙겨들고 산으로 내려간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삽을 흔들고 있다....
그런 남자의 20미터 정도 떨어진 뒤에서 작은 벌레들이 몇마리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30여분 후...'살인 사건 발생 지역' 이라는 집을 마주한 산의 입구에서 네사람의 남자들이 모여 있고 한명이 거의 내려오고 있다. 외딴 지역이고 다른 집의 사람들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거나 집에서 저녁식사라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마지막으로 내려온 남자가 그들이 짐을 모아놓은 곳에 삽과 자루를 던지면서 내뱉듯 꺼내는 한마디...
"아이고..허리야...그거 다 처리하느라 죽는줄 알았구만..."
"내도 허리가 끊어지것소. 아따 뭔노무 산을 타면서 삽질을 해야 하는 일이 다 있당가...대체 그 일 시킨 놈이 어떤 놈이여?"
"내도 모르제...아까 전화해보니까 안받더만. 음성 남겨놨응게 좀 있으면 전화 올것이요. 어쨌든 일은 좀 힘들어도 일당 20씩 이틀에 40이 아무데서나 하는 일잉가. 인자 다 내려왔응게 어디 가서 식사하면서 막걸리나 한잔 걸치제?"
"좋고!"
모든 남자들이 흔쾌히 동의한다. 주섬주섬 그날 하루종일 땀을 흘리며 끌고다녔던 삽과 자루를 챙기려는 그들의 귀에 어디선가 오토바이 100대 정도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따 뭔놈에 시골동네에 폭주족이 지나간디야..."
붉은 얼굴의 남자가 시끄럽다는 듯이 멀리 보이는 도로를 바라본다. 도로에 지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잉? 아무것도 없는디...이게 뭔소리라냐?"
"아따 겁나게 시끄럽네...진짜 이게 뭔소리라요?"
남자들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본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시끄러운 소리만이 커져가고 있을 뿐...
....우우우웅.....우우우우웅............
이상한 느낌이 든 남자들은 뒤를 돌아본다. 그들이 내려온 산의 숲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점점 커져가는 소리....아무리 귀를 파고 자세히 들어봐도 그 소리는 자신들에게 점점 가까워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이게...진짜......뭔소리라요...?"
남자들의 얼굴이 하나 둘 알 수 없는 공포로 일그러져 간다. 맨 앞에 있는 남자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다 걸음이 빨라지려는 순간...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산에서 뭔가 시커먼 물결 같은 것이 솟아오른다! 언뜻 봐도 엄청난 크기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형체. 시끄러운 소리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고막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기겁을 한 남자들은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처 발걸음을 떼지 못한 한 남자가 있었다. 10미터정도 달아나며 경계선이 있는 그 집앞에 도착할 때쯤에 남자들은 생전 처음으로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아아악! 아악! 살려줘!!"
그 시커먼 물결중 일부가 멈춰 있던 남자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미 남자는 그 물결에 휩싸여 보이지 않았지만 물결치는 그것들의 움직임에 언뜻언뜻 남자의 허우적거림이 드러났다. 미친듯이 발버둥치는 남자...어디선가 피가 튀어오르는 것 같긴 하지만 절대 피가 땅에 흘러넘치지는 않으며 새카만 물결에 둘러싸인 사람이 발버둥치는 기괴한 광경...뭔가 북북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비명소리와 버둥거림이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자 시커먼 그것은 완전히 시체 모양으로 변한 채 남자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이 미친듯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달아나던 다른 남자들도 멀리 가지는 못했다. 한옥 주변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남자들은 모두 하나하나 그 물결에 잡아먹혀 갔다. 모두 참혹한 비명을 질러대며 버둥거렸지만 빠져나오긴 커녕 더욱 기운만 빠지는 듯했다. 주변엔 역시 그들을 도와줄 만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있더라도 누가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나마 가장 멀리 도망간 붉은 얼굴의 남자도 마침내 그 검은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다.
"으아악!"
온몸에 감겨 들어오는 날카롭고 꺼끌꺼끌한 불쾌한 느낌...예전에 리비아에서 잠시 일할 때의 모래폭풍과 비슷한 느낌이다. 갑자기 자신의 온 몸에 단속적으로 따끔한 충격이 전해져 온다. 그와 거의 동시에 온 몸의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 그러면서도 괴로울 정도로 온 몸이 가려워 온다. 아니 남자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온 몸에 미칠 듯한 가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 그의 입과 콧속으로 파고들어오며 미친듯이 두개의 날카로운 대롱이 달린 주둥이를 교차시키는 모기를 보며 그의 의식은 끊겼다.
30분 후....
남자들이 서있던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이 들고 다니던 삽과 나무막대기 자루, 그리고 아까까지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참혹하게 찢긴, 그럼에도 피한방울 떨어져 있지 않은 오래된 지점토로 만든 것 같은 시체 다섯 구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죽어가는 피까지 모두 빨아먹어 버린 모기들도 지금은 어디 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달빛이 참혹한 시체들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17. 답메일 - 2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말이에요..."
병원 식당에서 현수의 말을 들으며 동희가 말했다. 문석은 계속적으로 들이닥치는 충격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도대체 난 어떤 동네에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모기는 음지 지향적인 동물이에요. 그 밤나무숲은 산의 계단형 지형에 위치해 있고 동쪽을 향해 있어서 아무래도 햇빛을 잘 받는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곳에서 그렇게 많은 모기들이 서식하려면 뭔가 어떤 다른 요소가 존재할 수 있죠. 그렇지만 그런 것 때문에 멀쩡한 동물들이 기형이 됐다는 건 좀 받아들이기 힘든데요?"
"음...그럼 결과적으로 내가 대충 알아낸 게 모기들이 난리를 치고 다니는 거랑 반 정도는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럼 이거 좀 읽어볼래? 이건 그 저주와 기형이란 글을 쓴 사람한테 메일을 보내니까 날아온 답장이야."
병원에 도착해 동희에게 모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본 현수는 배고프다며 그들을 식당으로 끌고내려온 뒤 저주와 기형이란 글의 내용을 간단히 문석과 동희에게 전달한 후 그들에게 답메일 내용을 프린트한 종이를 나눠주었다.
현수의 헛소리를 한귀로 흘리며 문석은 천천히 a-4용지를 훑어내려갔다.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마치 장난처럼 써놓은 메일이었다.
...님께서 문의하신 내용은 많은 분들께서 이미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제가 흥미로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업데이트를 해놓지 않았던 것 같군요. 조만간에 체계적으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저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결된 기록은 아니지만 제가 파주시의 각종 사고일지를 살피다 보니 날짜상, 시간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제가 임의적으로 끼워맞춘 이야기입니다. 사실 신빙성은 전혀 없단 말이죠..^^
1987년 4월 22일에 평화로운 파주시 XX면 OX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마 그곳은 지금은 공장들이 철거되고 전원주택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죠? 어쨌든 피해자는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 윈스턴 블레어라는 필리핀 사람이었습니다. 프레스기계 조작중 기기고장으로 인해 팔이 잘려나갔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수많은 외국인노동자들과 그들을 개만도 못하게 다루는 악덕 사업주들 때문에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장 기록에 보면 그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이면서도 꽤나 유식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심령, 최면 등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그 사람이 특히 좋아하던 것이 곤충이었다네요. 어쨌든 그 사람이 자기가 살던 곳에서 가지고 들어온 수많은 벌레들 때문에 공장 숙소가 상당히 시끄러웠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사고를 당하게 되고 악덕 사업주는 그렇지 않아도 눈에 거슬리던 윈스턴을 당장 내쫓았다고 합니다. 물론 불법체류중이었기 때문에 산재보상금은 물론이고 다른 보상금도 받을 수가 없었구요. 아마 그런 유식한 사람이 불법 체류자로 한국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건 상당한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이 공장에서 쫓겨났으니 막막했겠죠. 회사 사장을 꽤나 욕하지 않았을까요? 그후 윈스턴은 실종되었죠. 물론 아무도 찾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 실종이란 말을 쓰는 것도 우습네요.
그러던 도중 1987년 6월 20일 경 주변의 산을 오르던 공장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합니다. 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 온 몸에 피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 사고를 기점으로 해서 그 주변 공장들과 꽤나 떨어져 있는 마을들에 전에 없던 모기에 의한 피해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때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리 문을 꽉꽉 닫아놓고 모기향으로 도배를 해도 최소 하루에 20군데 이상씩 모기를 물렸고 동시에 마을엔 이상한 전염병까지 퍼져나갔다고 하죠. 의료 일지를 살펴보니 그때 그 마을에 유행했던 병의 이름은 황열병이었다고 합니다.........
'황열병?'
글을 읽어나가던 문석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 종이에서 잠시 눈을 뗀 채 현수를 바라보았다. 전에 없는 심각한 표정의 현수...아무 말도 없이 그 다음을 읽어보라고 손짓한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방역업체를 불러도 모기는 아무 거리낌없이 달려들었죠. 이후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과 공장 사람들은 결국 무당을 불러 굿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당은 산 여기저기에 구멍을 파고 나무막대기를 설치한 뒤 이틀밤낮을 굿을 하다 결국 쓰러져 죽었다는군요. 그렇지만 그 뒤로 모기들이 잠잠해졌답니다. 이후 윈스턴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모기들이 돌아다니던 산 중턱 밤나무 숲 고목 아래에서였답니다. 그리고 그의 몸에는 피가 한방울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밤나무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기록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거의 제가 꾸며낸 이야기니까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종이에서 눈을 뗀 문석은 잠시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희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수를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다면 지금 출몰하고 있다는 살인 모기들은 결국 이 필리핀 노동자의 저주 때문에 생긴 것인가? 무당의 힘으로 구덩이를 파고 나무막대를 설치한 뒤에...굿을 해서 노동자의 저주를 잠재우자...모기도 사라졌다?
이런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가 내가 살던 곳에서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동희가 말을 꺼냈다. 언제부터인가 동희는 다시 넥타이핀을 꺼내 손에 쥐고 있다.
"어제 산에 오를 때....어떤 구덩이에 발이 빠진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눈에 어떤 나무막대기가 잡혔던 거 같아요. 그 막대기가...꽤나 이상해 보이던데...아무래도 이 메일의 이야기가...사실일수도...."
"다 좋은데 말이야..."
현수가 말을 꺼냈다.
"이런 말 믿고 이런 토론을 하는 것도 참 웃기는군...그렇지만...어쨌든간에 이 이야기가 맞다면...그리고 그게 어제 동희가 봤다는 수만마리의 모기떼와 연관이 있다면...그때는 무당이 있는 힘을 다해 굿을 하고...윈스턴이란 인간의 저주를 잠재워놨는데...왜 16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모기들이 나타나는 거지?"
문석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넥타이핀을 들고 있음에도 얼굴이 핼쑥해진 동희가 다시 말을 꺼냈다.
첫댓글 끄어어어~~~ 기대만빵..제가사는곳이 안산인데여 안산원곡동초지동에 외국인 노동자들 디기많아여..뉴스에서도 제2의이태원이라고 나왔어여..말이조아 이태어ㅜㄴ이지..ㅡㅡ;;에고..암튼..외국인 노동자들..무시하면 앙대연..그들도 사람이자나연...외국인노동자 윈스턴씨에게 명복을..아멘~
사...사실...윈스턴은 제가 좋아하는 담배이름인데..-_-;;;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담배를 안펴서..^^;; ㅈㅅㅈ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의 궁금함에 눈물이 ... 주르륵~~ 언능 올려주세요 담편~~
엄청나군여....재미써..오오..-_ㅜ
우어~~~~진짜 재밌당...흑...흑..... 모기가 넘 무서워지네염....허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