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단대제가 모셔지는 전주시 덕진동1가 산 28번지 건지산 산하 전주리씨의 시조이신 신라 司空公 묘소(면적 : 30,248㎡ )인 조경단(지방기념물 제3호(1973. 6. 23 지정))에서(2005,4월10일) 대제(大祭)봉행이 있다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초청장과 안내 공지를 받았다.
조경단은 태조고황제께서 守護軍(수호군)을 두어 건지산 묘역을 守直(수직)케 했으며 역대 제왕도 묘역일대를 보호 하였다. 특히 태조고황제께서는 광무3년(1899)에 단(壇)을 모으고 매년 1회 제사를 봉했으며 450정보의 단역(壇域)을 마련하게 명하였다.
단은 장방형의 돌을 사용하여 둘레를 쌓아 만들고 단의 주변에는 동서남북에 문이 있는 담을 쌓았다. 서향의 문과 일직선상에 대문을 남향의 문에서 20m비석은 대리석이며 너비 180cm, 두께30cm, 높이 202cm이다. 앞면에는 고종황재의 어필로 된 대한조경단이라고 쓰여진 전제가 새겨져 있다. 비각은 한변이 7.2m의 정방형의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호남지』 전주 단묘에 의하면, 조경단 재건지산 세전 사공공기재차무징 고종기해설 건각입비 수봉관일이라 하였는데, 고종기해는 광무3년이므로, 이때에 건립되었음을 짐작해 알 수 있다.
어제 토요일부터 구름이 오락가락 하드니만 기상청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대제(4월10일:일요일)오전까지 내릴것이라 하기에 염려가 되어 새벽4시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빗줄기가 장대비로 심상찮아 마음이 착잡했다,
아침 06:00정각에 준비한 물품(과일,도시락,떡,음료수,소주,맥주등)을 차에챙겨 싣고 대구시지원 산하 중구분원의 종현들이 운집해 출발할 장소인 대구시 대봉동 소재의 대백프라자 정문앞 시계탑을 향해 세찬 비를 맞으며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출발했다,
07:00정각 남여종현 38명의 합류로 전주를 향해 비를 뚤고 장도에 올랐다.11:00분경 전주에 무사히 도착을하였다.12:00정각부터 시작하는 조경단 대제에 시간을 맞추기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대형 관광버스들로 이미 조경단 근처는 인산인해로 주차장에서 걸어서 조경단 입구까지 오니 예나 다름없는 시골 장터를 방불케 아수라 장이었다.
입구는 갖은 장삿꾼에 포장마차에는 아침부터 소주,맥주,막걸리를 팔며 호객꾼의 고성방가도 있었고, 땡초스님이 핸드 마이크로 뱀을 가르키며 요놈의 본관과 성씨가 전주이가라고 하면서 "뱀쇼"로 종현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대제에 참반하신 많은 종현분들은 연로하신 분들이라 그런지 땡초의 말에는 별 관심이 없는듯 했다.필자가 땡초에게 뱀이 전주이가라고 아무리 장사라도 말을 구분해서 하라고 호통을 치고 돌아섰다.
조경단 앞에는 전국의 참반 종현들로 붐볐고, 여러개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라는 차일(천막)이 쳐져 있었으며,종약원의 임직원,청년단,여성단 관계자들이 팜플렛(조경단대제 안내 유인물)과 비표(임직원,초청인사,경비지원,봉행위원,참반원,안내원) 등 표시표를 나눠 주는 모습이 보였다.
필자는 며칠전부터 3월19일 환국하신 충길황손(미국 롱아일랜드 거주)님이 아헌관으로 봉무하실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조경단대제 공식 팜플렛 종약원 환의 이사장의 인사말에 특별히 올해는 이구(영친왕의 자) 황세손의 4촌이자, 의왕(이강)의 9남 충길황손이 아헌관으로 봉헌한다로 되어 있어, 공식적 종약원 팜플렛 7쪽에 제관 일람에 아헌관 이충길, 고종황제 손자, 의왕 9남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전주의 광춘종현,전북도지원 부지원장, 처음으로 소개받은 2명 도합5명이 담소를 나누며 있던 중, 어가 행렬이 조경단 입구에 도착을 하였다. 우리 일행 5명은 어가를 향해 정면으로 돌아섰다.그런데 5명의 눈을 의아스럽게 한 황당한 사건이 발견되었다.붉은 십이지장복의 황제복을 입은 초헌관이 이구총재 황세손이 아닌, 환의 종약원 이사장을 발견하였다.
필자의 개인적 사견이나마 팜프렛과 행(동)위가 조금은 어색한 대목은 초헌관과 아헌관 구성의 모양세가 그리 부드러워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필자와 전주의 광춘종현이 바로 본원 관계자 임원분 행정책임자(직위나 실명은 공개치 못한점 양해 바랍)에게 다가가서 종사발전을 위해 의견제시차 황손문제에 대해 초헌관 봉심이 이루어 지지 못한점에 대해 알아본즉,이구총재의 불참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초헌관을 환의 이사장으로 교체하게 되었다는 변명의 대답이였다.
이야기 도중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발언 내용을 두고 "그것은 개인의 주장에 불과하다"거나 "그렇게 일방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도 안된다"며 "여기 저기에 둘러대어 말하지 말고 한가지 사안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잔다,그래서 더 이상의 대화가치가 없다고 판단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으로 대하라" 고만 말 한후 광춘종현과 그자리를 떠났다,이러한 모든 사안에 대해 추후 여론이 분분 할것으로 사료 되는바 판단은 종현,네티즌몫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전주이씨의 3대제례 사직대제,조경단대제,종묘대제에 조경단 헌관은 왕과 왕세자가 맡는것인것으로 필자는 알고있다,이번의 경우는 어떠한 경우를 불문하고 환의 이사장보다는 충길황손이 초헌관이 되었어야만 마땅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다,기상상태가 불순하여 흐린날씨에도 불구하고 원거리에서 참반하신 많은 종현들이 위 내용을 바르게 알았다면 참으로 흐믓한 하루였을까 정말 묻고싶다.
이야기로는 이구 황손께서 전날 갑자기 불참하겠다는 것을 전화로 통보하여 부랴부랴 초헌관을 이사장으로 교체를 결정 하였다.어쨋든 그 뒤로 아헌관을 맡으신 충길황손님께서 금관조복을 입으시고 머리를 조아리고 뒤를 따랐다.상기한 표정으로 입장하시는 황손님의 모습에서 필자는 측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황손님은 종약원의 공식제향은 처음이고 아헌관의 직무를 처음 맡으셔서 기쁨으로 임하셨는지는 알수없으나 이것은 정말 전주 일문이 행할 일이 아니다.
우리 참반일행은 조경단 앞의 어느 식당 평상에서 준비해간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으라고 말하고 필자는 제관들을 따라 제실로 가는 도중에 검정색 체어맨이 제관 초헌관 환의 이사장을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머지 제관들은 줄을서서 제실(조경단에서 500미터정도)까지 걸어서 행보를 할때 충길황손님을 따라가 처음으로 인사(상견례)를 나누고 함께 걸어면서 잠깐의 담소를 가진바 너무 온순하다는 느낌이다.
식당 앞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대구 일행과 합류키위해 식당 앞에 도착해보니 종약원 환의 이사장이 조금전 타고 떠난 차량에서 내리고 계신 모습을 목격했다. 필자는 이사장님에게 다가가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대구의 이강문이라고 말하자 환의 이사장님께서는 좋은 감정이나,나쁜 감정이나 암튼 감사하게도 필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두리서(환의 이사장, 필자)손을 잡고 식당에 들어가자 많은 대략3-40명의 임직원과 손님들이 계셨다.환의 이사장님이 이강문이 너 입조심 좀 해야 되겠서 대구시지원 정기총회에서 이사장이 5억을 일년 월급으로 가지고 간다고 이야기 했다며 말씀을 하셨다,필자가 아닙니다 그때 참석하신 성구 부이사장님 여기 계시네예 제가 한 말을 정확하게 말씀하시죠. 하며 성구 부이사장에게 말을하자 성구 부이사장은 답을 못하고 필자의 얼굴을 피해버렸다.그 다음 (환의 이사장님,총무이사,청년위원장,청년위원,충길황손님,필자)와의 대화 내용은 각자 개인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처음 전주를 방문한 종현들을 위해 경기전으로 옮겼다.용희 분원장님 왈 전주에 온 김에 경기전은 꼭봐야 한다였습니다.경기전을 둘러 보는데, 태조고황제 어진 이라고 해야 될 안내판에 "태조왕 초상화"라고 안내하고 흥선대원군에서 민비로 정권이 넘어갔다로 되어있었다.또한 경기전 신도와 어도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공사로 잘못된 공사는 빨리 복원공사를 해야 할 것이다.모든 전각들을 콘크리트 시멘트 공사로 정말 우리나라의 문화재 정책은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이다.그러나 그 분수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쉽기도 하지만 매우 어렵다.그 분수란 자기의 위치를 지키라는 것이다. 이번 조경단제에 참가하여 이러한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다.연세가 70이 넘어도 자기 분수를 모르니 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다.
환의 대동 종약원 이사장님은 관선 전북지사 문공부 장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MBC 문화방송사장까지 지낸 사회 지도층 분 이시다. 정치꾼들이 야 대부분 건달과 날라리 들이긴 하지만 공자님은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이고 七十而從心所欲不 즉 70세에는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을 하여도 결코 법도에 어긋나질 않게 행 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분은 절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실천 할 분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와 느낌을 간단하게 들어보자.
첫째: 대동 종약원 이사장은 솔직이 전주이씨의 대표(수장)는 아니다. 의친왕께서 설립한 종약소를 토대로 몇몇 이사,대의원이라는 분들과 토론 한마디 없이 경쟁(상대)자 한분 없이 무기명 비밀 투표도 아니고 거수로 뽑아놓은 분들이 역대 이사장이라는 분들이다.
거기에 왕따 당할까 반대도 없고 혹 누가 반대할까바 지방 청년위원들 동원해서 경비세우고 촌 노인네들 억압눌러 선출할 정도의 위압으로 뽑은 것이 이사장인데 이환의이사장님이 이렇게 해서 뽑힌 분이다. 그런데 무슨 500만 전주이씨 대표인가?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500만 전주이씨와 이사장(초헌관:임금이나 황세자) 황손(아헌관;제상)을 일개 졸개로 보고 하는 행위이다. 500만 대표인 환의 이사장 말씀 들으라고 모두들 떠나지 말고 그자리에 가만히 계시라는 마이크 맨트가 더 웃긴다. 이것은 3류 코메디다.
두번째: 조경단대제 만큼은 본래 왕실에서 주관하는 제례이다 그런데 엄연하게 황(손)실의 일원이신 의친왕(이강) 아드님이신 충길황손이 참반해 계신데 어찌 이사장 환의씨가 초헌관을 맏아야 하는가?
망령도 급수가 있다면 정말 초특급이다. 환의이사장이 끝내 모반으로 마치 황실을 거느린 꼴이 되어 버렸다. 4월10일은 전주에서 환의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기분이 들었다. 정말 기분 나쁘고 떨떠름 하다.왕 할아버지를 모시는 조경단대제만 아니였으면 역사의식이 강한 열혈 청년들의 테러를 받았을 지도 정말 모를 일이다.
이러한 꼴이 종묘대제에도 재발 된다면 유네스코 문화유산 재현 행사장에서 세계 뉴스 특종 감이 작년에 무당초청에 이어 또 다시 재현 사태가 벌어질 수 도 있으니 종약원은 정말 각성하기 바란다. 차후 벌어질 사태는 일절 환의이사장과 대동종약원의 맹목적 맹신분자를 비롯 담당자들이 책임 져야 할 것이다.
세번째: 도대체 전주이씨에 신분의 고하가 언제부터 있는가? 무슨 제를 지내는데 본부석 있는가? 전주이씨 제사는 의자에 앉아 다리 짝 벌리고 지내는가? 경건해야 할 제사가 무슨 초등학교 체육대회장인가?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제향때 보니 그래도 종약원 간부쯤 되시는 분들의 테도가 불 쌍놈들이나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참반하신 연로 종현님 일반 참반자분들도 예를 다하느라 끝까지 서 계시는데 이건 무슨 종약원 이사니 간부라는 임직원 작자들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짝 벌리고 희희덕 거리고 있었다.
이따위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무슨 전주이씨 대표니 지랄이니 하는가? 방송에 모자를 벗어라,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오라, 제를 지낼땐 안경을 벗어라 이러쿵 저러쿵 자기들만 조상 숭조 하는냥 떠들어 대면서 진작 종약원 이사들인지 먼지는 자신들이 말하는 간부 쯤 되겠지만 이러한 작자들이 제를 올리는데 본부석이라는데 앉아 다리를 짝 벌리고 안경끼고 이야기 꽃을 피워도 과연 되는가? 진정으로 묻고싶다.
이러한 수구,보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꼴통 간부진들이 정말 사라져야 진정 우리전주이씨가 부르짓는 케치프레이져 숭조와 돈종이 된다.전국의 여러 우리 종현분들의 생각은 과연 어떠 하심니까? 필자가 지나치게 별난가요?.
조경단대제를 봉행하며 유인물을 보고(환의 본원 이사장)
4월10일에 있었던 조경단봉행시 본원에서 제작 배포된 인쇄물<조경단대제>의 3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입니다,내용의 중간 부분에 궐사선조 15분에 대한 내용 언급과 관련하여 그 결과에 대한 일체의 언급(해결방법)이 없었다.
들리는 최근 정보내용에,본원 이사장의 불투명하고도 부정적 이중적 태도에 의문이 제기된바 그 사실을 공개합니다,전주시 덕진구에 주소를 둔 "사단법인 전주이씨화수회"에서 궐사선조건에 관한 건의사항에 대해 본원에 화수회 종현들의 의견을 모아 조감도와 함께 정식으로 문서형(양)식을 빌어 제출하였는바 오늘에 이르도록 수년의 세월이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가타부다 결과여부를 통보받지 못하였다,
그러데 이번 조경단 대제를 대비하여 전국의 종현에게 머릿글로 아래와 같이 거론한후 그 결과에 대해 일체의 언급이 없는 가운데,들리는 바에 본원 환의 이사장 왈 "궐사선조문제에 대해서는 전주 화수회에서 추진하는것으로 알고있다"였다,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엄연히 고종황제의 유업에 따라 그 전통을 이어오는 종친부의 핵심적이고 중추적인 위치에 있는 화수회를 겨냥 <불법적인 조직이요 전주이가의 별개의 새로운 조직이라>고 종현들에게 충동질을 해 대니 이게 될 말씀입니까?
103년전 고종황제께서 직접 전주화수회라고 명명해 내려주신 것을 알만한 450만 전주이가 종현 모두가 알고 넘어가야할 중대사로 반드시 매듭 지어져야만 할것이다,지금 본원은 사단법인으로 새로이 출범한 전주화수회에 대해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종사를 위해 화수회의 임원들은 종약원의 건전 대안 세력으로 착실히 발전 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15대조 궐사선조 설단 어떻게 해야 하나? 2005년도 4월10일,본원 주관하에 조경단대제봉향 거행시,당시 본원에서 준비한 인쇄물 3쪽페이지 <조경단 대제를 봉행하며>의 제하의 내용중에 종약원 환의이사장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아래와 같은 내용이 분명히 실렸었다,
조경단 대제를 봉행하며...................................이하생략..............................고종황제께서는 광무3년(1899년)5월에 조경단을 쌓고,그해 7월에는 재상 이재곤으로 하여금 조경단을 돌아보라 하시고,"미심스러운 상거(相距)한 거리가 얼마나 되던가? 그 아래에 또 무덤같은 것이 있다고 하던가?"묻자,이재곤이 말하기를 "윗 무덤과 아랫무덤 사이의 거리는 17척(尺)인데 그 어간에 또 세군데의 미심스러운 곳이 있습니다,
사공공 이하의 15대무덤이 <선원보략(璿源譜略)>에 실려 있지 않으니 지금 이 무덤 구역내에서 감히 흙을 다룰수 없습니다"라고 말 하였습니다,이는 시조 사공공의 아드님이신 自字 延字(2세)로 부터 16세까지 15대조 선조의 묘역에 대환 기록이 없어 그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궐사(闕祀)할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하생략................................위와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따라서 앞으로 종약원 차원에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결론없이 다만 언급하는 선 에서 그쳤다,이는 지난 수년간 "사단법인 전주이씨화수회"에서 조감도와 함께 종약원에 건의한바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현재 그 추진여부와 관련하여 본원 입장을 밝히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고, 최근에는 "그 사업은 전주이씨 화수회가 추진한다 하니까 우리(본원)가 상관할바가 아니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숭조돈종함에 있어 -너와 내가 따로 있어서는 안될- 종사(宗事)임에도 불구하고 사단법인 전주이씨화수회를 지목하여 "불법단체" 로 명명 내지는 종약원보다 먼저 고종황재로부터 전국종친들의 대표성을 갖는 화수회를 향해 일반 이질적인"종친회"라 폄하 하거나 종친간에 "물고 늘어지기,방해공작을 하거나,앞으로 본원의 걸림돌"로 생각을 한다고 전해 들은바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 한 일이다,
-조경단 대제를 봉행하며-라는 주제아래 궐사선조에 대한 내용만을 언급하고 나머지 종약원의 계획들에 대한 답변을 고대하는 종현 자손들의 도리에 대한 갈망은 전면 무시한 환의이사장의 이중적인 사고와 월권적 권위의식 태도에 너무 실망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장족의 발전은 허구였다.
참조:청권사 게시판 강휘종현님 글과, 전주화수회 게시판 광춘종현님의 글을 일부 종합 개작,개사 하여 필자의 재작성 하였습을 사전에 밝히오니 양해를 바랍니다.
이강문/효령대군 18대손(42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