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가을이 묻어난다.농익은 햇살도 고맙고, 쪽빛 하늘도 고맙고, 유난히 교활했던 지난 여름을 밀어내는 가을이라 더 고맙다.타고나길 단명이라 애틋한 가을을 잠시라도 오롯하게 붙잡고 싶은 사람 떠나라.역사가 묻어있는 풍경과 골라 즐기는 재미가 덤으로 갈마드는 '700년 대백제의 꿈', 제53회 백제문화제면 안성맞춤이다.
공주속으로
사각사각 비명을 지르는 둔치 모래를 밟고 청사초롱이 호위하는 섶다리를 건넜다.
발아래로 미끄러지는 금강물 냄새가 뭉근하게 배어난다.다리너머 독특한 문양의 형형색색 깃발이 나부끼는 모양은 백제의 진지를 연상케 했다.
공북루(拱北樓)를 통과하니 나즈막한 구릉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원형의 공산성 성안마을이 반갑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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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섶다리 건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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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향이라고 하던가. 백제마을을 재현해 놓은 곳인데 조금 속아주면 상상 속의 민속촌에 온 듯하다.페이스페인팅, 탁본 및 복식체험을 통해 백제사람이 돼 보기도 하고 토기며 수묵화·와당 비누·금동관·정림사지석탑·토기·곡옥 만들기 등은 백제를 느껴보기에 손색없는 체험마당이다.마을 내 엽전 환전소에 가면 2000원에 하나인 백제전(錢)을 바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500원짜리 동전 같아 흥미는 반감되지만 백제에 가면 백제법을 따라야 하는 법, 먹거리 장터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청해 보니 돈은 분명 돈이다.축제기간 내내 펼쳐지는 고마나루전국향토연극제는 시간이 맞지 않아(공북루 오후 6시 30분·쌍수정 오후 8시 30분) 구경하지 못했지만 작정한 사람들이라면 운치있는 문화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만점의 분위기다.해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금서루(錦西樓)의 배웅을 받아 주무대로 발길을 옮겼다.백제문화제 기간 중 가장 분주한 곳이다.
퀴즈쇼! 백제인의 도전, 중국 허베이성 예술단 공연, 캄보디아 압살라댄스 공연, 프랑스 부르통민속음악 공연, 일본 이시가와 KITA 무용단 공연, 백제문양 패션쇼, 박동진제자 판소리 공연 등이 일자별·시간대별로 배치됐다.팸플릿을 챙기는 센스를 발휘한다면 주무대 공연 두서너 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주무대인 만큼 인파가 몰린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토속된장찌개, 따로국밥, 채소쌈밥, 항아리 김치찌개 등 이름만으로도 입맛을 자극하는 향토 대표 먹거리집을 찾기가 수월하다.
연문광장을 지나 자리잡은 예술의 거리도 빼놓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자칫 고전이나 사극처럼 침잠될 수 있는 백제문화제의 활력충전소다.
밴드와 락밴드, 마술, 랩, 댄스페스티발, 용춤, 아카펠라 공연이 젊음을 발산하고 캐리커쳐, 저글링, 삐에로, 설치미술, 타로 등 거리를 장식하는 붙박이 공연도 흥미롭다.
생기가 돌았다면 그 길을 따라 웅진백제시대의 상징, 무령왕릉을 찾아보자. 무령왕을 알현할 수 있다.무령왕 이야기 극장, 단룡환두 공방촌, 무령왕릉 축조재현 체험, 백제왕궁, 무령왕릉 유물체험, 무령왕릉 현장 역사교실 등 6개 주제 23개 프로그램이 당신을 기다린다.
거리는 짧지만 무령왕릉과 금강교를 오가는 오픈 관광차를 타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
3D입체영상 '백제문화의 숨결'(10.12-10.14·문예회관소공연장), 알밤축제(10.11-10.15·금강둔치), 웅진성 수문병 교대식(10.11-10.15·공산성), 농특산물 판매 한마당(10.11-10.15·금강둔치), 패러글라이딩쇼(10.11-10.15·행사장 상공) 등 상설 행사도 챙겨보자.
▣ 공주 주무대열전
대백제 기마군단 행렬, 퍼레이드 백제문화 판타지, 개막식, 백제문양패션쇼, 퀴즈쇼 백제인의 도전, 계백장군과 오천결사대 훈련무, 고마나루 공연, 박동진제자 판소리 공연, 충남국악관현악단공연, 프랑스 부르통민속음악 공연, 송파구 예술단 초청공연, 일본 야마구찌 민속춤 공연, 일본 이시가화현 KITA무용단 공연, 중국 예술단 공연, 캄보디아 압살라 댄스공연, 민요한마당.
| | 부여속으로
통합개최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공주따로 부여따로일 뿐 축제 프로그램은 대동소이하다. 중국 장쑤성 경극공연, 백제역사문화행렬, 전국소년계백선발대회, 전국백제토기물레경연대회, 계백장군 출정식 및 행렬, 궁녀제, 수륙제, 오리엔탈익스프레스 콘서트, 백제기악공연 등이 부여의 열기를 토해내기는 하지만 정림사지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백제향, 예술과 젊음의 '모둠' 예술의 거리, 대백제 기마군단 행렬과 백제문양 패션쇼·해외 공연 등이 바통을 주고 받는 주무대, 성왕사비 천도행렬·무왕즉위식 및 행차천정대 재상임명식이 재현되는 사비백제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하드웨어 동선도 꼭 닮았다.
감칠맛이 일품인 장어구이와 부여가 아니면 경험하기 어려운 장어막국수, 마밥, 연잎밥을 맛보지 못하면 후회막심할 듯.그래서 700년 고도가 박제된 부여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그 시작과 끝은 부소산성이다.축제도 즐기고 잃어버린 백제의 흔적을 더듬는 일석이조의 재미가 쏠쏠하다.월색만 고요한 황성옛터도 아니고,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지도 않았다.
고즈넉한 역사에 가을이 살포시 내려 앉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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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백제국 깃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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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 구곡간장 찢어진다 했다.7칸에 4칸을 더한 조그마한 사찰에서 어찌 애절한 감상을 빚어냈을까 싶지만 숲이 뿜어내는 고요한 향과 굽이도는 백마강이 연출하는 풍경이 잘 짜여진 시나리오 같다.
뒤켠의 터줏대감 고란초를 감상하고 약수 한모금을 즐기는 여유는 돈 들지 않는 객의 몫.이웃 낙화암도 늘 그 자리다.삼척동자도 익히 아는 사연을 곱씹으니 삼천궁녀의 한(限)이 이입된다.백화정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은 한 떨기 꽃으로 진 그니들의 속을 알까?산성 길을 쫓아 그들을 기린 궁녀사를 가 보면 무딘 당신이라도 패망의 쓰라림을 곱씹을 수 있다.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앞뒤가 맞지 않지만 왠지 구슬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산성 둘러보기를 마쳤다면 정림사지로 내려가자.백제의 백미 정림사지 5층석탑이 단아한 자태로 의젓하게 환대한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 표현, 얇고 넓다란 지붕돌의 형태가 세련되고 정제된 기품을 발산한다.
▣ 부여 주무대열전
대백제 기마군단 행렬, 퍼레이드 백제문화 판타지, 백제문양패션쇼, 퀴즈쇼 백제인의 도전, 계백장군과 오천결사대 훈련무, 사비백제의 부활, 계백장군 출정식 및 행렬, 백제역사문화행렬, 국악한마당 잔치, 백마강 콘서트, 오리엔탈익스프레스 콘서트, 서동의 노래, 청소년댄스페스티벌, 캄보디아 압살라 댄스공연, 중국예술단 공연, 부여군 충남국악단 정기공연, 백제 기악공연, 폐막식.
| | /이인회 기자·사진 제공 (재)백제문화제 추진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