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지방
카이사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뛰어났다.
370년 무렵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수도 규칙』은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오늘날까지도 참고하며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레고리오 성인 또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교리와 설교에 탁월하여 '신학자'라고 불렸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흔히 샛별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별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새벽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새벽별은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별이 아니라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별이 하나둘 사라질 때 밤하늘을 지키다가 마침내는
붉은 해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말없이 사라지는 별이 새벽별입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을 6월 24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가장 길었던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탄생 시기는 밤이 가장 길었던 동지에서
낮이 점점 길어지는 때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도 자신의 탄생 시기가 갖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앞서 닦아 놓고
자신은 점점 작아집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욕심이 생길만도 한데,
오히려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심지어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하며 스스로 낮춥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 자신을 낮춥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이들은 고개를 듭니다.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못 알아준다고 서운해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알이 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숙이고 싶어도 못 숙입니다. 알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평소 단식하며 절제했던 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르면 ‘한 발자국’ 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해에게 말없이 자리를 내어 주는 새벽별 같은 사람,
끝까지 변하지 않고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사람,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며 남에게 공로를 돌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게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송구스러운 분’이 없는지요?
그런 분을 알고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첫댓글 세상은 새벽별 같은 사람,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사람,
세례자 요한처럼 남에게 공로를 돌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게 바뀔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이들은 고개를 듭니다.
모르면 ‘한 발자국’ 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