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터 위치 ; 화북1동 4004-1번지. 이곳은 당시에 밭이었던 곳인데 지금은 모 식당의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매장지 위치 ; 화북1동 4602-7번지의 동쪽 하천변. 묻혔던 곳이 지금은 하천정비공사로 사라졌다.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4·3 학살 관련지
1948년 겨울 도두리민 9명(6명이라는 증언도 있음)이 군인들에 의해 집단총살을 당한 곳이다. 1948년 12월 어느 날, 화북국민학교에 모든 주민들은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주민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하자, 지서 경찰은 주민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당시 이곳은 보리밭이었다. 곧이어 군인 트럭에, 화북 주민이 아닌 민간인 9명을 싣고 오더니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일렬 횡대로 밭에 세웠다. 이어서 군인들이 맞은편으로 도열하더니 곧바로 사격명령을 받은 군인들의 M1 소총에서 불을 뿜었다.
목격자의 증언 : 군인들이 쓰리코다(three quarter = 4분의3이라는 뜻. 앞바퀴는 1개, 뒷바퀴는 2개인 소형 트럭)에 6명을 싣고 왔습니다. 한 사람당 3명의 군인들이 담당하여 총살했고 현장 외곽에 보초로 10여명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화북 주민들을 집결시킨 후 ‘빨갱이들 총살 장면을 지켜 보라’고 했습니다. 6명의 얼굴을 검은 천으로 씌우고 손을 뒤로 묶은 뒤에 우선 장교가 권총으로 한 발씩 쏘고 군인들이 확인사살했습니다. 살점이 툭툭 튀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살려 달라 애원하다가 복부에서 내장이 터지는 것을 보고는 어치피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말을 바꾸어) 죽여 달라고 해서 화북지서 순경이 총 한 발을 쏘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2,3일 후에 유족들이 몇 구를 파 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현장 안내판 참조)
이 장면을 지켜본 화북 주민 양치석 씨 등은 “한 사람이 총을 맞고도 살아 도망가는데 군인들이 뒤쫓아 가 총을 쏘더라.”고 말했다. 군인들이 돌아가자 화북 주민들이 경찰의 명령에 의해 시신을 인근 하천변에 매장했는데, 그 중 목숨이 붙은 사람에 의해 도두리에서 잡혀온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한편 김용두, 양치석씨 등 여러 증언자에 의하면 “이곳 인근 하천변에 매장한 시신 중 일부는 후에 연고자들이 찾아갔지만, 상당 기간 찾아가지 않은 시신도 있어, 지금 그곳을 발굴하면 유골이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매장 장소는 총살당한 밭에서 하천 건너 화북천 서변이다. 학살지에서 북쪽(약355°방향)으로 직선 80∼9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희생자들의 매장지는 당시에 흙만 간신히 씌웠기 때문에 야트막한 무덤 형태였다고 한다.(제주4.3유적Ⅰ)
제주4.3연구소 연구진들은 2005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암매장지가 많다고 알려진 제주시 화북동 지역을 방문해 주민들의 증언을 자주 들었다. 당시 김창후 4․3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총살된 도두리 주민들이 화북천 인근 밭에 암매장됐다는 것이 4․3을 경험한 이곳 주민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당시 9명 정도가 암매장됐는데 일부는 연고자들이 찾아가 5구 정도의 유해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제민일보 2006-05-04) 그 과정에서 암매장지로 알려진 화북천 인근 밭이 ‘화북천 재해상습지 하천정비사업’대상지에 편입되어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공사 계획을 알게 되었다. 4.3연구소는 공사 관계자에게 “혹시 암매장지에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사전에 연락을 달라”는 부탁을 했고, 2006년 공사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공사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암매장지로 의심되는 부분만 섬처럼 남아 있는 상태였다. 제주4.3연구소는 제주도 4.3사업소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긴급구제 발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제주특별자치도의 요청에 의해 2006년 5월 4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5월 14일까지 제주4.3연구소가 주도하여 제주4․3연구소와 4․3유족회, 법의학․인류학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제발굴팀이 발굴을 했다. 그 결과 완전 유해 3구와 탄두 등 유류품 18점을 발굴하고 수습했다.
화북천 유해 발굴 과정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선 암매장지의 위치 추정에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증언이 결정적 도움이 됐다. 특히 화북동 주민 모돈만(남, 1933년생)은 발굴 현장에 접한 밭을 경작하고 있었는데, “당시 아버지(총살당한 사람을 묻는 데 동원된 분)가 반장이어서 아버지한테 어디 묻었습니까? 하니 이러저러한 곳에 묻었는데, 5명 중 3구는 유족이 찾아가고 2구를 묻었다. 잔디 있는 곳에 묻었다고 하니 내가 그 위치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곳이 평평하니 2구도 유족들이 수습한 줄 알았다.”고 증언해 위치 파악에 도움을 줬다. 또한 쫓기는 공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공사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려줘 결국 긴급구제 발굴을 할 수 있도록 한 화북천 재해 상습지 하천정비사업 관계자도 그렇다.(제주4.3 70년 어둠에서 빛으로)
이날 발굴된 유해와 유류품은 수습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로 옮겨져 DNA 채취 등의 과정을 거쳐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게 된다. 신원이 파악된 유해에 대한 처리는 유족과 관련 기관․단체 등과 협의해 처리되며 유해발굴 작업이 끝난 이 지역에는 기념비를 세워 4․3유적지로 보존․관리해나갈 방침이다.(제민일보 2006-05-04) 2021년 1월 현재 현장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았다.
《작성 2021-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