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항로 외 1편
김정웅
깨뜨려야 해
가려는 마음조차도
배가 다닐 곳은 못돼
빙하는 단단한 벽
방위를 잃고 떠다니는 마음들이 모인
얼음 기둥들로 가득한 바다를
건너가고 싶어
빠른 길 수에즈 운하를 두고
쇄빙선을 찾다가
결국엔
늦는데도
더 늦을 텐데도
바다를 깨뜨려
나아가야 하니까
배가 달려야 하니까
개척한다는 것은
결국은
누구에게는 등을 보여야 하는 일
등을 돌리는 일보다
등을 보는 일이 힘들었던 기억
번져 가는 뜨거운 상념이
빙하 속에 차갑게 갇히는 시간
나침반이 N극을 잃은 낯선 북극에서
S극만이 서성거리는 우리의 좌표는 해빙되고
산책
그날도 무작정 걷는 날이었다
길이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 놓여 있는 길이 미처
펼치지 못한 안부처럼 남몰래
굽어 있었다
직선으로만 전진했다
이상하게도 곡선구간을 통과했고
이미 방향 감각을 잃었다고 우리는
생각만 했다
속속들이 보이는 정면은 항상
보이지 않는 후면보다 걱정이 많아서 미리
눈을 감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다물었고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직선으로만 생각했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나온 길이
조용히 어려워지고 있었다
김정웅
2019년 애지 등단
여수 스마일치과 원장
dentblind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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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북극 항로 외 1편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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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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