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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방언의 내용인 비밀(고전14:2), 그리고 이에 대한 중지론의 이해
이지끼을 추천 0 조회 147 25.12.30 05:0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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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12.30 09:10

    첫댓글
    왜 위와 같이 무리한 해석을 하며 은사의 중지를 주장하는 것일까요?

    비성경적인 지속론(B)에 대한 반발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성령세례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인 것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령세례는 은사를(능력을)주는 성령세례인데.
    많은 이들은, 성령세례를, 은사를 주는 성령세례가 아니라
    중생케하는 성령세례라고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은사를 인정하는 순간, 중생케 하는 성령세례라는 정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25.12.31 06:45

    성령세례로 중생한다는 말은,
    성령세례로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여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인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주장을 정당화 하기 위해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에 12 사도가 아니라 120명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더불어 그날 구원을 얻은 유대인 삼천명도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성령세례를 받아 중생한다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에는 120명이 아니라 12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믿는 사람들 모두가 받는 중생케하는 성령세례가 아니라
    은사를 주는 성령세례입니다.

    여기서 중생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곧 구원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는 것은
    중생론이 다르다는 것을, 곧 구원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원론은 신학의 시작이고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인정하면 자신들의 모든 신학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은사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 작성자 26.01.01 13:09


    저의 글 "성령세례로 중생한다(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다)는 오해"
    ( https://cafe.daum.net/1107/Y4PX/1164 ) 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26.01.02 02:52

    그리고, 저의 글,
    [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성령론 연구보고서"에 있는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에 관한 모순,
    그리고 그 모순으로 정의한 성령세례] 를 보시면
    성령세례로 중생한다는 주장이 성경과 모순된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Y4PX/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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