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의 발명】
Percy Lebaron Spencer는 생후 겨우 18개월이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네 집에 맡겨졌다.
7살이 되자 이모부도 세상을 떠났고 스펜서는 이모와 함께 남겨졌다.
12살이 된 스펜서는 이모와 같이 먹고 살기 위해 학교를 떠나 하루 종일 지역 방앗간에서 일을 했다.
스펜서는 16살이 되어 근처에 현대적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제지공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시골이었던 그의 고향에서는 전기라는 것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스펜서는 새로 떠오르는 이 기술에 대해 독학을 시작했다.
공장에 지원할 무렵 스펜서는 꽤 많은 지식을 갖춰, 따로 훈련을 받거나 전기 이론에 대해 공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제치고 새로운 전원 장치를 설계할 수 있는 3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18살이었던 스펜서는 어느 날 아침 신문을 집어 들었다가 타이타닉호의 비극에 대해 읽었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무선 통신 교환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 놀랍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해군에 지원했다.
그는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라디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지식을 모조리 습득했다.
나중에 스펜서는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나는 밤에 보초를 서면서 산더미 같은 책을 붙들고 독학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할 무렵, 스펜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레이더 튜브 설계자로 성장했고 레이테온이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이 회사는 미국 국방성에 납품하는 업체로, 스펜서는 이곳에서 전력 증폭관 부서를 이끌었다.
그는 전투용 레이더 장비 개발에 깊숙이 몸을 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쟁에서 연합군이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맨해튼 프로젝트 다음으로 우선순위를 두는 분야였다.
당시 스펜서는 마이크로파 신호의 개발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해당 장비를 개발하는 더욱 효율적인 방법을 시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능동형 레이더 장비 앞에 서 있던 스펜서는 실험실에 있을 때면 주머니에 넣었던 초콜릿 바가 부드러워져 녹는 경우가 잦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현상의 이유를 조사한 사람은 호기심 많은 성격인 스펜서가 처음이었다.
그는 레이저 장비 앞에 옥수수 알갱이를 담은 접시를 가져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1분도 되지 않아 팝콘이 튀겨졌다.
다음으로 스펜서는 주전자에 달걀을 담아 실험을 계속 했다.
그 결과 주전자를 살펴보던 동료의 얼굴로 달걀이 폭발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것을 본 스펜서는 세계 최초로 금속 상자 안에 고밀도 전자기장 발생기를 넣은 마이크로파 오븐을 만들었다.
여기서는 더운 안전하고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스펜서의 소속 회사인 레이테온 사는 1945년 10월 8일에 특허를 신청하고 이 기계를 ‘레이더레인지’라고 불렀다.
최초의 레이더레인지 오븐은 높이가 1.6m였고 무게는 500kg이 넘었다.
이 덩치 때문에 이 기계는 다량의 식품을 빠른 시간에 조리해야 하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오븐은 가격도 3,000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에
철도 회사나 조선소, 예산이 부족한 큰 큰 식당에서만 구매를 희망했다.
이 오븐이 가장 성공을 거둔 경우는 1947년 1월 뉴욕의 센트럴 스테이션에 있는 핫도그 자판기에 설치되어 핫도그를 빠른 시간에 딱 맞춰서 내는 데 성공했으 때였다.
하지만 이 핫도그를 먹어본 사람을은 프렌치프라이가 바삭하지 않고 고기는 갈색으로 충분히 익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오븐의 가장 큰 망신은 레이테온 사의 회장이었던 찰스 애덤스의 개인 세프가 계속 레이더레인지로 요리를 해야 한다면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이 오븐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1967년 가정용 전자레인지는 495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시판됐다.
하지만 이 오븐이 주방에서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되기까지는 15년이 더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