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3월 초라 하나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대니 이런 게 꽃샘 추위라고 했던가. 늙어감에 날씨 춥고 더움이 새삼 무에 그리 마음 쓰일까만 공연히 바람 부는 날은 허전함에 가슴이 아린다. 문득 그 옛날 국어 고문 교과서에 실린 작자 미상의 시조 한 수가 생각난다. 그때 고전 담당 선생님은 아마 김동수 선생님이셨으리라. 3학년 때 1반 담임 선생님이셨지 아마?
설월(雪月)이 만정(滿庭)한데 바람아 불지 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은 판연히 알건만은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나이가 들어감에 더해 요즘처럼 이웃간 왕래마저 뜸한 시절 행여 임이 오실까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에도 하마나 하고 귀를 기울이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지만, 나야 뭐 애초 그런 생각이야 꿈엔들 했을까만 해서리 월탄(月灘) 선생은 다정도 병이라 했던가.
하긴 뭐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지만 마음을 비우면 하릴없는 바람 소리에 임이 신발 끌며 오는 소리로 여기는 건 쫌 거시기하긴 하겠지? 하지만 말이다, 왜 그 있잖은가? 미국의 작가 아나이스 닌(Anais Nin)이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그가 처한 위치에 따라 사물을 본다(We don't see things they are, we see them as we are).'고 했으니. 그러니까 어쩌면 바람소리도 신발 끄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만, 쩝...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도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는 기다림이란 건 겪어 본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안다. 하지만 비록 기다림이 힘들다 한들 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또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많은 소설 속에서 아낙네들이 집 나간 남편이나 자식을 기다리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은 그래서 필경에는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덥게 하는 것이리라. 하필 우리 민족에겐 전쟁이나 가난 때문에 집을 떠나간 남정네들이 유독 많았던가 했었는데,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余華)를 비롯한 많은 중국 소설들에서도 그런 애잔한 장면들이 많이들 나오긴 하더만...
우리나라의 근대 미술사에서 작품활동이나 후진 양성에 꽤나 큰 역할을 한 화가 안중식의 대표작「성재수간(聲在樹間)」을 감상해 보자. 선비가 글을 읽다 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듯하여 동자를 내 보내 살피게 하지만...인기척은 없고 나무들 사이에 바람소리만 들리더라 고(告)한다. 문에 비친 선비의 그림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마음을 애들러 애잔하게 그려낸 듯하여 늙은 나의 마음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가슴에 와닿긴 하지만...
원래 그림의 재목「성재수간(聲在樹間)」은 당송(唐宋) 팔대가 중 한 명인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의 '추성부(秋聲賦)'란 글에서 따온 것이라는데...책을 읽던 선비가 밖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나는 듯하여 동자에게 나가보라 하니, 동자가 밖을 둘러보고 와서 고하는 말이,
'星月皎潔 明河在天 별과 달이 교교하고 은하수 둥실 떠있으나
四無人聲 聲在樹間 인기척은 간데 없고 나무 사이 바람소리만 있더이다.'라고 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