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주소복사 마지막 수정 시간 : 2007-05-11 12:24:42
드디어 하나의 대륙-오세아니아-을 마치고 두번째 대륙 남아메리카에 들어섰다.
이스터섬도 칠레의 영토이긴 하지만 지리적으로나 생활습관적으로나 남미보다는 폴리네시아에 가깝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남미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남미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한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륙.
불안한 정세와 치안 등에 대해서만 들어왔기 때문에 왠지 낙후된 모습일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미에서는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긴장도 많이 되었다.
칠레는 남미에서도 가장 안정된 나라 중 하나다.
또한 Oneworld 가입사 중 하나인 LAN air의 중심이기도 하기 때문에 Oneworld 세계일주 항공권을 사용하는 여행객들에겐 남미의 관문같은 곳이기도 하다.
남미에도 한인 이주민이 꽤 많다.
칠레는 적은 편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용케 한인 민박집을 하나 찾았고 그곳에 예약을 했다.
원래 산티아고에서는 하루만 묵을 생각이었다.
대도시는, 그것도 특별한 문화가 없는 나라의 대도시는 별 볼일 없기 때문에 바로 남부 파타고니아로 날아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복병인 카메라 고장이라는 변수가 생겼고, 새로운 카메라를 받기 위해 산티아고에서 한없이 머물게 되었다.
한인민박을 찾은 것도 카메라를 받을 안정적인 장소가 필요해서였다.
3월중으로 Lonely planet 남미편의 개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남미편은 구입하지 않고 출발했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사면 될꺼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막상 론리를 구입하려고 돌아다녀보니 크다고 하는 서점에서도 남미편은 씨가 말랐다.
아직 초판 물량이 달리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어영부영하다 산티아고까지 흘러들어왔고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불안한 남미를 돌아다니게 된 것.
그렇지 않아도 정보가 부족한 남미를 어떻게 돌아다닐지 막막하다.
산티아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팔자에 없이 택시를 잡아타게 되었다.
일단은 시내로 나가는 정보가 부족한 것과, 행여나 돈 아끼려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길을 잃고 한없이 해메고 자칫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작용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택시 접수하는 곳에 주소만 들이댔고 그쪽에서 섭외한 택시를 타고 민박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8000페소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필자는 10000페소를 내고 탔다. -아~! 정보의 부재 ㅡ.ㅜ
차종이 SM5에 우리로 치면 모범택시급의 택시였던가 보다.
지리도 모르는 채 민박집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바라본 산티아고는 다소 낡은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람보기 힘든 폴리네시아에서 거의 2주 가까이 있다가 사람과 차가 북적이는 대도시를 오니 감회가 또 새롭다.
아무 문제 없는 상태였다면 또 사람 많은 대도시로 와버렸구나 하고 생각했겠지만 카메라는 고장났는데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속수무책으로 지내다 보니 문명세계가 눈물나도록 반가웠다 ^^;
결국 필자의 대도시의 번잡함에 대한 투정도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필자가 머문 한인민박은 한인교포들이 밀집해 있는 '레꼴레따'라는 지역에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머지 않은 곳이라 시내로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민박집은 팔순의 할머니 혼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두달만에 '집밥'을 먹게 된다.
오클랜드 한인타운에서 전형적인 백반을 먹긴 했지만 집밥을 먹은것은 또 한국을 떠나서는 처음이다.
두달만에 받아든 김치, 깍뚜기와 콩나물, 깻잎, 攘떳? 된장국 등으로 차려진 밥상은 눈물나도록 반가워야 할텐데 솔직히 시큰둥하다 ^^;
물론 집떠나 오랫동안 여행하다보면 집밥이 그리운 사람도 있을테고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동안 혼자서 너무 잘챙겨먹고 다니다 보니 그다지 밥이 아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일부러는 먹기 힘든 집밥을 5일동안 실컷 먹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밥으로 든든하게 챙겨먹고 다니면 기운차리는데는 또 좋다. ^^
그러나 이 민박집에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할머니 혼자서 운영하다보니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OTL
현지인에게서는 어디서 어디로 가려면 무엇을 타고 어떻게 가야하고, 무엇이 필요하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등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텐데 할머니는 별로 아는것이 없었다.
결국 민박집에 먼저 머물다 간 사람들이 남겨둔 지도만 들여다보고 혼자서 다닐 수 밖에...
이왕 산티아고에서 장기로 머물게 된 이상 산티아고는 구석구석 다녀보기로 했다.
산티아고 시내는 그리 크지 않다.
신시가지 중심에서 구시가지 중심까지도 걸어서 한시간 남짓 걸릴까?
일단은 카메라가 도착할 때까지 대체품을 찾는 것과 론리플래닛을 구하는 것을 당면과제로 삼고 산티아고 중심지를 구석구석 훑어보기로 했다.
구시가를 거닐다 우연히 다다른 곳에는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뭔가 싶어 살짝 멈칫하니 경찰이 말을 걸어온다. -살짝 긴장했다. 다행히 영어로 물어온다.
어딜 가느냐?-그냥 둘러보며 돌아다니고 있다.-여기는 대통령궁이다.
헛! 내가 오면 안될데를 왔나보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예상범위를 넘어섰다.
관광객에게는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천천히 둘러봐라.
허~ 대통령궁인데 관광객에게 개방되고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를 하다니...
칠레가 정세적으로 얼마나 안정되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궁 내부는 별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카메라와 론리 뿐 ^^;
몇군데의 서점을 둘러보았지만 남미편 론리는 찾을 수 없었다.
전략을 바꿔서 칠레편 론리를 뒤져 산티아고에서 가장 큰 서점을 찾기로 했다.
칠레대학교 앞에서 서점을 하나 발견했고 거기서 칠레편 론리를 찾아 뒤적였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을 찾았다.
근데 위치가 이 근방인거 같다.
고개를 들어 서점 이름을 보니-여행관련 코너는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 거기가 바로 내가 있는 서점이다. ㅡ.ㅡ;
사정이 이러니 남미편 론리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산티아고에는 의외로 PC방이 많다. 우리나라만큼이나...
가격도 저렴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
그리고 숙소에서의 인터넷 사용도 무료다. ^o^/
원래 그게 당연한건데... 호주랑 뉴질랜드가 이상한겨!!!
아무튼 IT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것 같다.
다음으로는 카메라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산티아고의 카메라 가게에는 디카들이 칠레 국내산으로 보이는 투박한 모델의 성능을 가늠하기 힘든 모델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메이저급 회사의 모델들도 사용주기가 한참은 지난 모델들이 위주다.
결국은 그냥 이것 저것 다 포기하고 여행에만 충실하기로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카메라가 없으니 여행이 전혀 흥이 안난다. ㅡ.ㅜ
구시가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아르마스 광장이다.
주위엔 대성당, 박물관, 시청, 우체국 등이 밀집되어있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노천카페, 거리의 화가, 거리의 악사, 광대들이 많다.
정자같은 것이 보이는 곳으로 가보면 기원(?)이 있다.
물론 바둑을 두는 곳은 아니고 체스를 두는 곳이다.
여러 사람들이 붙어서 체스를 두고 이긴 사람에게 계속 도전하곤 한다.
구시가지는 충분히 둘러보았고 신시가지까지 걸어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진열장에 전시된 골동품 카메라를 발견했다.
유심히 지켜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헌책방이 보인다.
갤러리로 들어서니 이 골목 전체가 오래된 동네다.
서울로 치면 골동품 가게가 밀집해 있는 황학동 같은 곳이랄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가운데라는 공간의 틈에 시간의 틈이 생긴것 같은 묘한 분위기다.
이 오래된 가게를 오래된 카메라를 사서 사진으로 남겨볼까 하고 아까 본 골동품 카메라를 다시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나 가격은 착하지만 카메라의 관리상태가, 특히 렌즈의 관리상태가 영 소홀하다.
5분여를 망설이다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신시가지쪽은 구시가지와는 달리 현대적인 분위기다.
구시가지쪽은 유럽스런 느낌이 많이 풍기는 반면 신시가지쪽은 현대적인 느낌이다.
사람들도 더 많고 북적거리고 바쁜 느낌이다.
그리고 미국자본의 패스트푸드, 커피점-까놓고 말해서 맥도널드, 스타벅스도 보인다.
역시 대도시는 어딜가도 비슷하다.
다시 걸어가자니 피곤하고 왔던길 그대로 돌아가봐야 힘만 들것 같아서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 요금은 러쉬아워에는 할증이 붙어 420페소, 그 외의 시간엔 380페소다.
러쉬아워 아닐 때 여분으로 사두고 러쉬아워에 사용해도 된다. ^^;
티켓은 들어갈때만 사용되고 그냥 삼켜버린다.
나올땐 그냥 나오기 때문에 구간 차등 요금이 적용될 수 없고, 들어가서는 하루종일 있다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노마진 같은 지하철의 벤처 사업가들은 시간제한 걱정할 필요 없어 좋을듯 싶다.
버스는 노선도 잘 모르고 요금체계도 잘 알지 못해 도전해보지 못했다.
택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싸다.
공항으로 가고 공항에서 오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택시, 버스, 미니버스.
택시는 흥정하기에 따라 다른데 구시가까지 8000~10000페소 정도 나온다.
미니버스는 4000페소 정도로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루 전 예약을 하면 되고, 공항에서 시내로 나올때는 호객꾼이 알아서 접근하니 굳이 찾을 필요는 없다.
어느방향으로 가는지 이야기 하면 호객꾼이 해당방향으로 가는 미니버스를 찾아 안내를 해주고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면 문앞까지 데려다 준다.
버스가 한 차 다 차야 출발하므로 조금 기다려야한다.
버스는 지하철 Los Heroes역까지 왕복운행하며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정차를 한다.
가격은 1200페소. 지하철과 연계하면 대충 1600페소로 공항을 오갈 수 있다.
Los Heroes역은 구시가지의 끄트머리에 있으며 공항버스의 종점이자 버스터미널이 가까우며 주위에 유스호스텔과 백패커 숙소가 많기 때문에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와도 같다.
또한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교차점이라 교통도 편한 편이다.
★
그리고나서 찾아간 우리의 최종목적지 "아씨슈퍼"
이스터섬으로 내일 날아가기위한 준비를 하기위해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대형슈퍼로 찾아갔는데 오랜만에 보는 고추장, 간장이며 라면, 오뎅, 만두 등 없는게 없어 무엇을 얼만큼 사야할 지 고민이었다.
맘 같아서는 슈퍼를 통째로 들고가고 싶었지만 그나마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신라면과 짜파게티 18개, 고추장 한통, 쌀 두봉지, 떡, 만두 등 양손가득 들 수 있을정도만 쇼핑을 했다.
쇼핑하는 동안 냉장고에 진열된 박카스를 보고 반가움에 환호성을 지르자 주인아주머니께서 한 병씩 서비스로 주셨는데 정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 방에 싹 날아가는 듯 했다.
★ (06/02/04) 신비의 섬 이스터로!
이스터 섬에 가는 설레임때문인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새벽 3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여섯시가 되어 지현이 형이 나를 깨운다.
벌떡 일어나 부지런히 짐 챙겨 버스타고 공항으로 갔는데 이런 연착이다....
9시 반 출발이었는데 두시간이나 연장되어 11시 반이 되어야 출발할 수 있다니..
정말 이스터 섬에 가는 것이 쉽지는 않군...
그래도 무료로 아침을 제공한다하여 항공사 직원이 알려준 공항 내 식당으로 갔는데 각종 과일, 햄, 치즈 등이 뷔페 형식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연착도 할 만 하다 생각하고 군침을 흘리는데 식당 직원이 연착비행기 보딩패스를 가진 우리들은 샌드위치와 음료 밖에는 안된단다.T.T
에잇! 그럼 그렇지...
할 수 없이 간단히 아침 먹고 밤을 샌 지현형은 공항 의자에 앉아 눈 좀 붙히고, 난 그사이 지현형의 노트북으로 화제의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보고...
자 이제 신비의 섬 이스터로 출발!
이스터섬(라파누이)은 세개의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져 세 부분이 점점 확장하며 합쳐진 남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남미 대륙에서 37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도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섬의 이곳저곳에 모아이 석상이라는 신비한 돌 동상들이 서있어 비싼 비행기 값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섬 위를 왼쪽으로 한바퀴 선회하더니 비행기 한 대 없는 이스터섬 국제공항(항공편이 칠레 산티아고와 타이티섬 등 단 두 노선만 운항)에 착륙한다.
비행기를 나서자마자 남태평양의 열기가 후끈 느껴지고, 마중나온 섬 사람들이 몇몇 방문객에게 환영의 꽃 목걸이를 걸어주는 걸 보니 남태평양이 확실하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하와이에 온 듯...
공항 한 쪽에 각 숙소의 안내원들이 있는 곳에 가니 우리가 가려고 하는 캠핑장의 주인아주머니가 나와계시고, 바로 얘기해서 일본인 4명의 여행자와 함께 캠핑장으로 왔다.
은영이와 준원이는 벌써 차까지 렌트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둘이 먹고 있던 새참을 뺏어먹고 바로 이스터 섬 투어를 나섰다.
마을이 위치한 항가로아에서 북쪽으롷 조금 올라가 서있는 다섯개의 부서진 모아이 "아후 바아우리", 홀로 점잖게 서 있는 주인공 "아후 타하이", 그리고 바로 옆에 눈동자까지 선명하게 박힌 "아후 코테리쿠"를 보고, 비포장도로를 이리저리 헤매서 겨우 찾아낸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후 아키비"까지..(아후란 모아이 석상이 위치한 단을 의미하며 신성하게 여겨진다)
아후 아키비는 일곱개의 모아이가 나란히 서있는데 이스터 섬의 모아이들 중 유일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내륙에 서 있는 모아이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아무리 경치가 좋은 이스터 섬도 배고프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법!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먹은 파스타가 꺼진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어서 빨리 한국슈퍼에서 장 봐온 음식을 위해 캠핑장으로 서둘러 돌아와 바로 요리 시작!
해변의 오두막에서 넓은 태평양의 시원한 파도소리와 함께 간장과 사이다로 재워놓은 소고기를 굽고, 시원한 맥주 한 잔까지 함께 하니 이 좋은 이스터 섬이 더욱 천국처럼 느껴진다.
★ (06/02/05) 아후 통가리키에서의 신비로운 일출!
15개의 모아이 석상이 서 있는 섬 동쪽의 "아후 통가리키"에서의 신비로운 일출을 위해 아침일찍 일어났다.
시간이 늦은 듯 벌써 동이 터오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데 길을 잘못들어 섬 북쪽의 아나케나 해변 쪽으로 가고야 말았다.
다시 길을 찾아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달려 아후 통가리키에 드디어 도착!
작은 섬인데도 헤매다보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다행히 일출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섬안의 수많은 아후들 중에서 가장 큰 아후 위에 서로 다른 모양의 15개 모아이가 일렬로 서 있고, 그 뒤로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떠오르는데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나를 누르는 듯 아무 움직임도 할 수 없이 이 장관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사실 어제 모아이 석상들을 봤을 때는 제주도의 돌하루방과 크게 다를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오늘 일출의 후광을 받은 15개의 모아이 아후 통가리키를 보는 순간 그 생각이 산산히 부서지고야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모아이를 제작하던 석산 "라노 라라쿠"에 들렸는데 수십개의 모아이들이 깍이다만 채로, 땅에 묻힌 채로, 넘어질 듯 기울어진 채로 널려있는 모아이 동산에 온 듯하다. 이중 넘어질 듯 고개를 숙인 모아이와 맞절을 하고, 입술을 쭈욱 내민 모아이와는 뽀뽀를 하는 등 엽기 사진을 찍으며 모아이 동산에 소풍온 듯 한껏 즐기고 나니 또 배가 꼬르륵...
오늘의 점심 메뉴는 고추장 수제비..
밀가루 반죽해서 수제비 뜨고, 국물은 다시다와 감자, 양파 그리고 한국인의 매운 맛 고추장으로..
두세그릇씩 든든히 먹고 나서 이번엔 붉은 돌로 만들어진 유일한 여자모아이를 보고 화산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크레이터 "라노 카우"로..
이끼낀 바위처럼 검은 호수 위에 풀들이 여기저기 둥둥 떠있는데 이 거대한 호수가 주변의 산을 한입 베어먹은 듯 저 멀리 태평양 바다쪽의 땅이 움푹 패어져 있다.
이스터섬의 신성한 의식이 펼쳐지는 오롱고 ceremonial 마을까지 가기에는 렌터카 시간도 다되고, 입장료도 10달러나 되어 포기하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이번엔 냉면으로 점심먹고...
이스터 섬에 놀러온 게 아니라 마치 먹으러 온 듯 하다.
이스터 섬에 요새 관광객이 넘쳐나는데 여름 성수기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축제!
2월 초부터 약 보름간 각종 전통 공연과 경연대회, 쇼 등이 펼쳐지는데 오늘 밤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꼬마아이들의 춤잔치가 펼쳐진단다.
캠핑장 주인아주머니의 딸 미히노아도 공연에 참가한다길래 해가 지기를 기다려 밤 10시 바닷가 바로 옆의 공연장에 갔다.
초등학생 학예회 같은 무대장치와 어설픈 공연이었지만 그래도 땀흘리며 열심히 춤을 추는 꼬마아이들의 모습이 자못 진지하기만 했고, 전통을 이어가려는 섬사람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만 했다.
캠핑장에 돌아와 또 시원한 맥주와 함께 어제 못다본 영화 "웰컴투 동막골"까지 보고 나니 이스터 섬의 하루가 또다시 지나간다.
★ (06/02/07) 이스터 섬의 마지막날
섬에서의 하루하루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이 벌써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일어나서 짐챙기고 떠나면 그만이니..
그래서 마지막 일정으로 이 섬의 유일한 박물관으로 지현형과 함께 걸어갔다.
걸어가는 사이 뜨거운 햇살에 등과 팔, 이마는 벌써 벌겋게 익어버렸다.
작은 방 하나에 판넬 십여개와 유물 몇개가 고작인 작은 박물관이었지만 산호초로 만든 모아이 석상의 실제 눈, 그리고 아직도 해석되지 못한 이 지역의 상형문자 `롱고롱고´등이 신기할 따름이었고, 거기에 역사적 지식에 해박한 지현형의 설명까지 곁들이니 무슨 가이드 투어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제 쓴 엽서 우체국에서 이스터 섬 도장찍어 한국으로 보내고, 태평양 바닷물에서 헤엄치며 몸 한 번 적셔주고..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동해바다 빼고 태평양에서 즐기는 해수욕은 처음이다^^
ç핑장으로 돌아와 그동안 남은 음식 재료를 총동원하여 만든 최후의 만찬은 바로 떡볶이!
떡과 오뎅, 만두를 익혀 고추장과 설탕, 그리고 간장으로 맛을 낸 이 떡볶이..
지금까지 여행중 만들어본 요리 중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남은 국수 삶아 국수 사리까지 곁들이고 만두를 후라이팬에 구워 군만두까지 부록으로 곁들이니 이게 최고의 밥상이 아닐까?
어제 못다 쓴 엽서마저 쓰고 또 축제 공연장으로..
오늘은 이스터 섬의 역사를 연극으로 꾸며 연사의 설명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았는데 스페인어와 토속언어로 설명이 나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의 사실적인 연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두시간 가까이 서서 보았는데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