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6일(목)
아침을 일찍 먹고 바롱댄스(Barong & Kris Dance)를 보러 바뿌불란(Batubulan)에 갔다. 매일 09:00~10:00에 공연을 한다.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성수(聖獸) 바롱은 발리 힌두교에서는 선의 상징이며, 악령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을을 누비고 다닌다. 이 선의 상징 바롱에 대항하는 악의 상징, 악녀 란다가 등장하여 이 둘의 무서운 싸움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 선과 악의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고 막을 내린다. 결국 선은 항상 악과 함께 존재한다는, 인간은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므로 자기 속에 악을 잘 달래면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리인 특유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낀따마니 화산지대(Kintamani)를 갔다. 덴빠스르에서 북쪽으로 68km 정도이며 구불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약 40분 정도를 갔을까...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고 바뚜르 호수의 장관이 펼쳐진다. 이곳은 칼데라의 비탈에 있는 시원한 기후와 아름다운 바투산의 경관, 그야말로 근사한 파노라마이다.
낀따마니 화산은 높이가 1,460m 이며, 아주 옛날에 폭발했었고 그 분화구에 칼데라가 있는데, 이 칼데라의 중간지점에서 1927년, 1929년, 1947년 세 번에 걸쳐서 화산이 다시 폭발을 일으켰다.
이 화산을 지척에 두고 바뚜르 호수를 바라보며 먹었던 점심 뷔페(Puncak San Reataurant)는 지난 화요일의 Sunset Dinner와 함께 오랫동안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간곳은 ‘발리 사원의 어머니’로 불리우는 브사끼 사원 (Pura Besaki)이다. 브사끼 사원은 발리 힌두교의 최고 성지이다. 올림푸스산이 그리스인들에게 위대한 산 인 것 처럼, 발리인들에게는 아궁산(3,142m)이 바로 그것이다. 발리인들은 이 산은 세계의 배꼽이라 생각하고 잠잘 때는 머릿방향이 아궁산을 향하도록 하고 잔다고 한다. 그래서 브사끼 사원이 아궁산 기슭에 있는 것이다.
이 브사끼 사원은 발리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훌륭한 힌두사원이다. AD 10C 경에 건립된 이 사원은 수백 년간 힌두 종교의 활동의 중심지였다. 이 사원은 크고 작은 30개 이상의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족이 죽을 때 마다 기념으로 작은 사당들이 세워지곤 했다.
이 사원 출입시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발목까지 오는 긴 싸룽치마(Sarung, 발리 전통 의상)를 착용해야 하는데, 싸룽치마는 사원 내에서 맨살을 보이는 것을 금기시 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임산부와 생리중인 여성은 원칙적으로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 반바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룽치마를 걸친 남자들의 모습이 왠지 우스워 보인다. 음식과 꽃바구니를 인 아낙네들이 부지런히 걸어간다. 제단에 쓰일 물건이란다. 장식을 한 듯한 대나무가 집집마다 국기 게양대처럼 서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 1963년 아궁산이 폭발했을 당시 주위의 것은 모두 대규모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 사원만은 아무런 해가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 둘, 1990년대 이 사원을 폭발시키기 위해 자바섬으로 부터 발리까지 향하던 테러단 무리들이 가던 도중에, 소유하고 있던 폭탄이 폭발하여 자멸하였던 사건이 있었는데, 발리인은 이 사건을 당연히 여기고 있으며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동남아 지역의 전형적인 계단식 농지를 보았다. 왠지 베트남 전쟁영화, 플래툰의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기분, 저쪽 너머로 찰리 신이 M16을 들고 뛰어 나오고, 곧 전투용 헬기가 나타날 것만 같다.
저녁을 먹으러 왔다. Abian Boga Restaurant. 바롱 댄스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도 기둥마다 형형색색의 우상의 아이콘이 양각되어 있었다.
이곳 발리는 거대한 우상의 지역이며 그 한 가운데에 내가 서있다는 영적 자각이 날 더욱 긴장시켰다. 거리와 식당 등등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힌두교 우상의 아이콘이 서있거나 양각되어 있으며, 숙소인 호텔의 곳곳에도,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우상의 아이콘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을 진정한 참 신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이 가득한 곳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그러고 보면, 여기에 머문 지금까지 십자가 기둥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그리 흔하게 보았던, 십자가를...
부분적인 관찰력(지극히 주관적인)이란 프리즘으로 투사해 볼 때, 농아인 교역자들의 질적 수준은 단연 한국이 최고이다. 개인적으로 관광 후의 느낀 점을 얘기하면서 표현력과 기독교적인 마인드 그리고 설교와 논리 등을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아마 드문드문 떨어진 곳에서 나 홀로 별다른 자극없이 목회하는 사람과 잦은 교류와 나눔으로 도전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차이랄까... 함께하는 동료의식의 소중함을 다시 배운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타국 농아인 교역자들 개개인의 영성이나 인격까지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만큼 우리나라의 농아인 교역자들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 6월 27일(금)
4일 동안 머물렀던 호텔을 떠나자니 서운한 맘이 앞선다. 참으로 넉넉하게 쉬었던 곳이고 편안함을 주었던 곳인데... 이젠 papaya 와 sakata 과일의 맛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떠난다니 아쉽기만 하다.
발리 공항에서 그리 멀지않은 Tanjung Benoa에서 해양 스포츠를 체험하러 왔다. 패러 세일링, 제트 스키, 바나나 보트, 스노클링, Glass Boat, 거북이 섬 관람 6개의 항목 중에 2개를 선택해서 하면 된다. 이미 짐을 따로 보냈기에 갈아입을 여벌의 옷이 없는 관계로 패러 세일링과 Glass Boat를 선택했다.
먼저 Glass Boat를 탔다. 10인용의 작은 쪽배의 밑에 투명 유리창을 깔아서 해저의 식물과 어류를 볼 수 있도록 만든 관광용 배이다. 가다가 멈추고 유리로 해저를 보고, 그렇게 가다가 거북이 섬에 갔다. 그곳에서 한 원주민이 “FUCK TERRORIST"란 글이 등에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작년의 테러에 대한 현지인의 소리없는 아우성일까?
1시간 가량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패러 세일링을 했다. 구명 조끼를 입고 대기하다가 보트에 연결된 패러슈트에 링크로 연결해서 보트의 전진하는 힘에 의해 날아오른다. 비상의 기분이 이럴까... 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상큼한 기분, 가벼운 현기증이 인다. 아마 지상에서 100m쯤 올라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청량감도 잠시 바로 착륙을 한다. 기껏 3분~4분 가량의 비행. 솟아오름의 쾌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저런 체험 스포츠를 마치고, 근처의 EMA(Thai & China food) 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Kuta 시내에서 쇼핑을 했다. 생각보다 평온한 거리였다. 불과 8개월전에 테러로 외국인 200여명이 죽었던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어느 물건이든 값을 흥정해서 정하는 것은 색다른 재미이다. 기념옷 몇 벌을 구입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발리에서 자카르타로 가는 국내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기사의 착각으로 국제선으로 갔다가 국내선으로 왔다. 이제 한국인 일행과 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지난 이틀동안 관광 가이드로 봉사하며 함께했던 인도네시아인 5명과의 이별하는 시간... 석별의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한 인도네시아인 농아인의 눈에 고인 눈물이 그동안의 쌓인 서로의 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국내선을 타고 자카르타로 가는 길, 탑승 수속절차가 복잡하다. Gate 앞에서 대기하던 중, 그 옆의 어느 room으로 승무원이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무슨 방일까 하며 바라보니, Musholla praying room이다. 공공장소에 이런 기도실이 있다니 이게 이슬람교의 힘인가? 발리에서 자카르타를 가는 국내선(1시간 가량 소요)인데도 기내식이 나왔다.
자카르타에 도착해서 시간을 다시 1시간 늦췄다. 시차의 신기함. 자카르타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서 서울행 9시 10분 비행기를 탔다. 탑승하고 보니 대한항공이다. 괜한 반가움이 와락 밀려든다.
▶ 6월 28일(토)
선교대회를 오가는 동안, 뒤에서 동행한 일행을 위하여 묵묵히 챙기시는 G 전도사님의 섬김이 돋보인다.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수고하셨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기내식을 먹고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하고 책을 들었다. 1시간쯤 읽었을까... 그러다가 졸았는지... 착륙의 묵직한 충격이 잠을 쫓아낸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0분, 7시간의 비행이었다. 시차를 계산하여 한국 시간으로 시계를 2시간, 6시10분으로 앞당기고 나니 갑자기 2시간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피로감이 조금 남았을 뿐 상쾌하다. 모두들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안도감이 따스한 공기와 함께 온 몸에 스며든다.
이번 선교대회에서 만난 멋진 신앙인으로는 Mark Penner 선교사를 꼽고 싶다. 미국 국적이며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선교사로 파키스탄에서 사역하다가 지금은 일본에서 농아인 선교를 하고 있는 분이다.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일본 수화 세 개 언어를 구사한다.
인도네시아 건청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 그걸 어느 건청인이 영어로 음성통역을 하는데 이 Penner 선교사님이 그걸 듣고 일본 수화로 통역을 하셨다. 참으로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재밌는 것은 이 선교사님이 모국인 미국의 수화는 전혀 모른다고 한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부르심의 그 상을 바라보고 사는 자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선교사님의 부인과 고등학생 같은 딸이 함께 왔는데 모두 일본수화를 잘 능숙하게 사용하였다.
이러한 준비를 갖출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춘 자, 그 자가 바로 향후 농아인의 세계선교를 이끌어 갈 재목이며 주님의 사랑스런 도구이다.
어느 선교이든 첫 교역자를 배출하는 1호 교역자가 있을 때,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는 100여년의 역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농아인 기독교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8년에 농아인 최초로 이상휘 목사님(더러는 강주해 목사님으로 알고 있는데, 강목사님은 1980년대에 안수를 받으셨으며, 굳이 말하자면 우리 장로교단 최초 농아목사님이시다)이 배출되었으니 30년 채 되지 않았다. 이젠 농아인 선교사를 배출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아울러 이제는 편협하고 미시적인 시야를 넘어, 세계의 농아인 영혼을 바라보며, 더욱 넓은 거시적인 눈으로 농아인 선교를 지향해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같은 마인드를 바탕으로, 즉흥적인 감정이나 뜨거움 만이 아닌 냉철한 판단과 준비로 기독 농아인 인재를 키우고 양육해야 할 것이다.
토마스 카일라일이 그랬던가, “우리의 중요한 일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뚜렷하게 보이는 그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짧으나마, 학부 때 읽었던, 오리발을 닮은 기업마크의 회장이 쓴,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를 몸소 체험해 보았다. 내가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들이고 감사한 것들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하나의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에 접속한 그런 기분
이런 귀중한 경험의 기회를 함께하지 못하고, 삶의 무게에 눌려 생업에 바쁜 많은 농아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울러 이런 좋은 기회를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대한 고마움은 말로 다 형용하지 못할 것 같다.
미국 수화가 세계 공용어는 아니지만, 보다 다양한 교류를 위해서는 다시(1997년에 세계밀알선교회에서 미국수화 초급과정을 수료했다) 배워야 겠다. 2년 후인, 2005년 캐나다에서 열릴 제3회 세계농아선교대회와 2006년 말레이시아에서 펼쳐질 제10회 아시아 농아선교대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 이번 선교대회를 통하여 얻은 몇 가지 유익한 점
1. 이번 선교대회에서 받은 가장 큰 도전은 언어이다. 국내의 모임이 아니라 국제적인 모임이라면 의사소통의 수단을 구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타국 농아인들의 신앙과 문화 등을 교류하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국의 수화를 잘 한다 하더라도, 미국수화를 모른다면, 이런 모임에서는 그야말로 침묵하던지, 원시적인 몸짓의 유치한 대화 밖에 나눌 도리가 없다. 물론 미국 수화를 잘하는 사람에게 의존하여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24시간 계속 함께 다닐 것인가?
미국 수화가 세계공용어는 아니지만, 적어도 인도네시아, 싱가폴, 필리핀, 호주 등에서는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국의 부족한 어휘를 보충하는데 자주 차용되는 수화이다. 아울러 영어권 나라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수화이고, 이 기회에 다시 배워야 겠다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2. 동료와의 나눔과 교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구비한 교역자라도, 교제가 단절된 곳에서 나 홀로의 사역이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타국의 농아인 교역자들이 바로 반증이다.
서로에게 건강한 자극을 주고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배움과 코이노니아의 장(場)이 자주 개설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농아인선교회(한농선)의 위상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3. 내가 이 땅에서 향유하고 있는 혜택 - 종교의 자유, 지역마다 농아인 교회(농아부)가 있고 그곳에서의 예배와 기도 그리고 찬양, 수화통역사의 도움, TV의 자막방송, 장애인 할인 등등 - 이 얼마나 고마운 것들인지 알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한국에 태어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 참고로, 해외여행을 한다면,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서 갖고 가는 것이 좋다. 비행기 표를 들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신청하면 발급해준다.
▷ 보태기 - 인도네시아 말
아침 인사 (AM 11시까지) : Selamat Pagi / 슬리맛 빠기
점심 인사 (AM 11 ~ PM 3) : Selamat Siang / 슬리맛 시앙
오후 인사 (PM 3 ~ PM 6) : Selamat Sore / 슬라맛 소레
밤 인사 (PM 6시 이후~ ) : Selamat Malam / 슬라맛 말람
안녕하세요 : Apa Kabar / 아빠까바르
감사합니다 : Terima Kashi / 뜨리마 까시
어서오세요 : Selamat Datang / 슬리맛 다땅
나는 한국인입니다 : Saya Korean / 사야 꼬레안
값이 얼마에요? : Harga Berapa / 하르가 브라빠
비싸요 : Mahal / 마할
화장실 : Kamar Kecil / 까마르 끄찔
예 : Ya / 야
아니오 : Tidak_띠닥 / Bukan_부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