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다음날 딸애가 산엘 가잔다. 언젠가 조령산을 따라 갔다와서 몸살을 앓았는데
따라 나선다니 이만봉 갔다가 일행의 발병으로 중단한 코스를 잡는다.
만만히 볼 길이 아닌 12KM 등산로를 따라 오려나.
분지리에서 황학산 삼거리로
이번 겨울은 충청북도 괴산군 은티마을과 분지리 주변만 맴을 돈다.
마분봉,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시루봉, 이만봉에 이어서 백화산 황학산까지
산골마을을 둘러싼 산에 끌려 몇주간을 들락거린다.
분지리 주차장까지의 도로는 빙판이라 코란도도 가끔 휘청이나
모처럼 딸과의 산행에 힘을 얻는다.
황학산 삼거리로 가는 길은 흰듸뫼까지 농로로 이어지고
백두대간 능선인 삼거리 가까이 부터 다소 비탈이 가파라 땀을 배게 한다.
황학산에
산 오름이 잦지 않은 딸애가 힘겹게 대간까지 오른다.
그래도 대견하다. 힘든 오름을 감내하기에
이제는 능선 길이라 오르고 내리는 헐떡임과 쉼을 반복하는 게니 산행의 묘미를 스스로
즐길 때다. 봉긋한 봉우리에 스르르 미끌어지듯 황학산을 오른 게다.
산을 오름이 인생의 흐름과 같다는 걸 알 겨를이 있을까마는
그럴 만큼의 관록을 가질 때까지 산을 가려나.
황학산 정상이라 즐거워 하니, 나도 덩달아 처음 산을 오르는 기쁨에 쌓인다.
백화산으로
황학산에서 백화산까지는 암릉이 이어진다.
몇번이고 다닌 길이나 처음 오르는 아내와 딸의 발길에 신경이 곤두 선다.
의외로 눈 입은 바위를 두려움버리고 잘 따라온다.
등산 입문을 단단히 하는 게다. 옥녀봉을 거쳐 마성으로 가는 이정표는 겨우 글씨를 알볼 만큼
낡았지만, 기점을 잡기에는 도움이 된다.
정상에
1064고지 백화산에 선다. 이미 와서 식탁을 편 이들이 헬기장과 정상을 장식한다.
포근한 날씨이기에 굳이 정상을 벗어나지 않아도 자릴 펴면 따스한 햇살이
추위를 몰아내 버린다. 겨울 산 오르기에는 요 근래 최적의 날싸가 계속되고 있다.
1000고지 답지않게 정상은 따뜻한 안방같은 공간을 제공하여 점심을 먹는 게라기 보다
만찬을 즐긴다는 게 적당하리라.
평천치로
분지리와 문경 마성의 상내리를 이어 주던 고개로 사다리재처럼 문경 쪽의 길은 희미하고,
분지리 길만 등산로로 이용된다. 평천치에서 하산을 잡는 팀과 헤어져 우리는 사다리재까지의 능선을
더 즐기고자 방향을 잡는다.
뇌정산 갈림길에
이만봉에서 백화산까지 대간의 능선에서 문경 가은 쪽으로 시원하게 산줄기
를 늘어 뜨려 우뚝 봉우리로 맺힌 곳이 뇌정산이다.
갈림길에서 뇌정산을 거쳐 문경 가은으로 빠질 수도 있으련만 차를 가지고 다니면
종주의 어려움은 어쩔 쑤 없는 게다.
사다리재로
하산 기점 사다리재까지 백화산에서 4KM의 길을 불평없이 잘 따라와 주었기에
예상에 맞는 시각에 사다리재에 닿았다.
능선의 오르내림은 여기서 마무릴 하고
내려가야지
이만봉을 오른 날도 이 길을 미끌어지듯 내려왔는 데 그동안에 눈이 더 내린 듯하다.
17:30 예상한 데로 주차장에 오고서 딸애가 '휴유' 한다.
허긴 고된 하루지. 눈 덮인 산길 12KM 이상의 산행이었으니.
더워진 몸에 아이스크림 생각이 날 밖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수석을 한답시고 문경의 각서리에서 분지리로
넘어오면 꼭 들러서 노 부부와 소줏잔을 놓고 사람 그리워하는 회포를 풀어드리곤 한
분지리 꼭대기의 집은 폐가가 되었다.
빤히 쳐다보이는 백화산의 모양은 그대로 이련만 노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루 턱에 앉아
'허허 이사람들아 돌은 무슨 돌인가. 이리 와 내가 담근 국화주나 마시고 가게나.'
금방이라도 인심좋은 할배가 술을 들고 나오고, 부엌 문 밀치며
'안주는 김치가 젤이라유.' 하고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할매가.
그러나 문짝이 달아난 시커멓게 드러난 방안과 부엌은
서글픔을 쏟는다.
오순도순 오늘을 살아 왔던 노 부부가 빌어 쓰던
오두막은 서서히 자연 속으로 복귀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게 그런 게 아닌가.
2008/02/12
구미야은의 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