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지맥4구간(가락재-홍천고개)산행기
일시;2014년 11월 2일(일)
등산경로: 가락재-가리산(1051m)-새덕이봉(935m)-등잔봉(833m)-홍천고개, 총 17.2km
산행하신 분: 강용구, 곽승일, 최문구, 김봉섭, 이상진, 유우정, 최광현, 총 7명
동서울 터미널에서 새벽 6시 40분 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만에 홍천에 도착하니 강풍에 차가운 가을비가
많이 내립니다.
홍천의 단골인 엄마네 순대국밥집에서 따뜻한 순대해장국(5000원)으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모처럼 막걸리 한잔을 하니
차가웠던 몸이 따듯하게 녹아듭니다.
식사 후 택시 두대로 나눠 타고 가락재 터널입구로 향하였습니다.(택시비 3,3000+34000)
인적이 거의 드문 오지여서 낙엽이 무성하게 차곡차곡 높게 쌓인 등산로가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더구나 낙엽길은 차가운 가을비로 심하게 젖어 있어서
등산로 바닥이 매우 미끄러운 관계로 산행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낙엽으로 인해 등산로가 구분이 안되는 구간도 많았습니다.
봄 여름산행이면 훨씬 수월하리라 여겨집니다.
홍천고개는 거의 차량 통행도 드문고개로 홍천에서 넘어가면 소양호가 나오며 길이 끊어진다고 합니다.
도상거리 19.9KM, 총소요시간 9시간 46분입니다.
동원형님 개원하신 병원에서 기념품으로 며칠전 받은 만보계로는 47500보였습니다.
가락재에서 가락재 터널입구로 내려오는 길은 임도에서 우측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지난달 영춘지맥 3구간에서 70-80m만 더 진행하여서 우측으로 내려왔어야 했습니다.
아래는 지난번 3구간때 야간에 고행하면서 길이 없는 곳을 내려온 궤적입니다.
가락재에서 가리산으로 가는 등산로에서 6.25 때 전사한 국군 유해발굴로 땅을 판 참호 등이 수없이 많이 나타납니다.
용구형님의 제안으로 등산로에서 멈춰서서 묵념을 하고 갑니다.
가리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멀리 능선에서도 우뚝솟은 산의 모습이 대단합니다.
유우정이는 과거에 스노우 보드를 타다가 무릎부위 골절로
고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산행중에 이 부위의 통증이 나타나 중간에 문구의 도수치료를
받았는데 워낙 길고 미끄러운 낙엽길의 악조건 산행이어서인지 호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가리산에서 상진이와 같이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였습니다.
가리산을 지나 새득이봉 등잔봉을 가는 길은 위의 지도에서와 같이
좌측이 경사가 심한 절벽이고 낙엽이 심하게 쌓여 일부는 얼어 있는 구간도 있는 등산로로
계속 산비탈 옆으로 트래버스를 하여서 가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모두들 가면서 다리 아픈 우정이가 중간에 내려가기를 잘했다고 이야기 하면서
내려 왔습니다.
저와 문구도 과거에 무릎이 많이 아파 보아서 우정이의 고통을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직업상 수술이나 내시경 등 검사시 foot switch도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저와 문구의 경우는 더욱 많이 걸어서 무릎주위 근육이 강화되니
무릎통증이 많이 회복된 듯합니다.
홍천고개에 가까이 와서는 미리 연락한 택시가 고개 꼭대기에 기다리고 있었으며 우리는 서있는 택시의 불빛을 보고도
내려 오다가 어두워 길을 일부 잃었습니다.
좌측으로 내려가서 20분정도 더 아래의 도로로 내려가서 택시을 탔습니다.
공신콜택시(010-4308-7679) 여자 기사분이었는데 혼자서 차량도 거의 다니지 않는 홍천고개 위에서 기다렸는데
무서웠고 우리가 오지 않아서 119에 조난 신고를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가락재 터널입구에서 택시에 내려서 산행을 시작하기 전 사진
작년 8월 한강기맥을 시작한 이후 7명으로 최대의 인원입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새로운 분들이 참여하셔서 우리도 전세 버스를 타고 남 부럽지 않게 지맥 등반을 할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현재도 모두들 아파트 10평에서 살다가 30-40평에 사는 기분일 것입니다.
낙엽이 많이 쌓여서 처음에는 쿠션작용으로 푹신하여서 무릎이 덜 아플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수북하게 쌓이고 비에 젖고 미끄러워서 안 넘어지려고 힘을 쓰다 보니
통상 산행보다는 몸에 무리가 더 합니다.
광현이는 아직 혈기가 많은 젊은 나이여서인지
등산하는데 스틱도 없이 미끄러운 길을 쉽게 편하게 산행합니다.
승일형님의 의견으로는 넘어지려는 것을 좋은 몸의 유연성으로 카바하고 등산하는데 아주 이상적인 체격조건이라고 합니다.
참나무라 추정되는 엄청난 크기의 거목
국군 유해 발굴지: 등산로에 이런 지역이 수없이 많습니다.
궁금하여서 가리산 전투에 대하여 찾아보았습니다.
1951년 3월 23,24일 해병 1연대의 1대대,2대대가 가리산을 점령한 중공군과 북한군을 2일간 전투로 탈환한 전투라고 합니다.
5월 15, 16일에는 이 지역을 다시 차지하려고 중공군, 북한군의 총공세에 대하여 저항하여서 이지역을 지킴으로서
이 주위 지역의 확고한 지역 지배권을 공고히 하여서 38선 이북의 인제 춘천지역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동부전선에서
적으로 반격할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잘 알려진 아군 3400명, 중공군 1만명의 사상자가 난 철원의 백마고지전투에 이은 대대적 전투라고 합니다.
당시 전투를 지휘한 공정식 6대 해병대사령관에 의하면 3중대장 강용대위가 미군 군견 세파트를 잡아 먹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워낙 용맹하고 전투공로가 많아서 용서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늘목고개, 가삽고개, 홍천고개가 모두 대대적인 전투지역입니다.
중공군의 전술은 여러 곳에서 공격하여서 뚫리면 에워싸서 포위하여 승리하는 작전인데
1951년 5월 15, 16일 총공세에서는 여러 곳에서 공격을 잘 방어 섬멸하여서 지켜낸 전투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수많은 목숨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훌륭하게 잘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사명일 것입니다.(한북정맥 1구간 산행기에 이어서 두번째로 나왔습니다.)
산은 나라 사랑하는 것과 무관할 것 같지만 애국심도 고취시키고 있었습니다.
늘목고개
평평한 능선길은 낙엽이 풍성하게 쌓여서 덕수궁 돌담길보다 더욱 낭만적인 가을길입니다.
일기예보의 강풍주의보에 맞추어서 산행중 계속 센 바람이 우리들을 몰아 부쳤고
체감온도는 영하입니다.
저와 승일형님은 장갑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손이 시러워 혼났습니다.
점심은 햇반과 청정원카레, 미역국,시금치국(인스탄트식품)으로 하였습니다.
추운날씨로 가스버너가 기화가 되지 않아서 앞으로는 휘발유버너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승일형님이 가져오신 양주와 소주를 물에 섞어 미즈와리로 만들어 반주를 하여서 얼은 몸을 데웠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이 가리산으로 1,2,3 봉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리산 정상 능선 전에서
가리산 정상
겨우사리가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 보았습니다.
홍천고개로 내려오는 중에 상진이는 우정이와 가리산 휴양림으로 내려와 홍천으로 택시를
타고 가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여서 홍천 백리향에 기다린다고 최종연락이 왔습니다.
오늘도 해드랜턴을 하고 홍천고개로 야간산행을 한 후 나머지 5명도 예약한 택시(40000원)를 타고 홍천에 도착하였습니다.
연태고량주에 탕수육, 유산슬, 짬봉으로 저녁을 잘 먹고 8시 30분, 40분 서울행 버스로 나눠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우정이는 MRI 검사 후 문구에게 치료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구간인 영춘지맥 5구간(홍천고개- 거니고 ) 산행은
12월 7일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ㅏ.
경비: 햇반, 청정원카레, 미역국, 시금치국 22,270원
동서울-홍천 버스비 7명 46,200
아침 엄마네 순대국밥 4,1000
가는 택시비33000+34000 67,000
오는 택시비 40000+30000 70,000
백리향 20,7000
홍천 동서울, 센트랄시티터미널 51,200
첫댓글 아니 6.25 격전지 지도까지, 봉섭형의 산행기는 대단합니다.
봉섭형님의 첫번째 태극기 확인하러, <한북정맥 1구간 산행기>를 다시 읽어보고 왔습니다^^.
형님의 후기는 산행의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추억과 감동을 되새기게 할 뿐 아니라, 역사공부와 함께 애국심도 고취하게 되는 주옥같은 글입니다.
(중학교 때 문학소년이었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이번 산행에 함께 못해서 무척 아쉬운데,
제일 궁금한 건 지난 번에 못찾고 헤매던 임도에서 가락재 터널로 이어지는 소로입니다.
소로 초입 사진도 올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자난번 내려온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임도삼거리가 나옵니다. 지난번 철탑에서 100m를 더 진행했으면 임도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에 소로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진을 찍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른 산행기의 소로와 전신주가 있는 임도가 만나는 사진입니다.
낮에는 너무나 평범한 길입니다.
아침에 보면 가락재 터널입구(x표)에서 능선까지는 고도차이도 크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문학적 소양도 없는데 어느날 일어나 보니 갑자기 산행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래 산행기는 제일 아래 후배가 쓰는게 전통인데 한북정맥때 동구형님이 산행기를 쓰라고
한때부터 계속 쓰게 된것 같습니다. 사진 정리,시간적으로 고된 작업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 닿는데까지 해 볼테니 앞으로 후배들은 산행기 쓸 걱정말고
부담없이 산행에 많이 참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