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산행기(2007.5.19)
옥광빈 기사가 모는 버스가 서면을 돌아 백양산터널을 지나 대저분기점을 지날 즈음 배급이 시작된다. 시내도로에서는 가고 서고 흔들리는 요동이 많아 움직임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통상적으로 해오던 물품 배급에 오늘은 좀 특출한 것이 있어 바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토마토인데, 한 박스를 사서 집에서 정성스레 씻어 회원들에게 두세 개씩 나눠주는 것이었다. 누가 이런 미담사례를 만드나하고 알아보니 김동찬 총무님이 그렇게 준비를 했다는 것.
참 감사하다싶어 함께 받은 생수와 떡을 배낭에 넣고 토마토 맛을 본다. 짭짤하게 간이 되어 한맛이 더 난다. 옆자리에 보니 회장님도 맛을 보는데 먹는 자세가 어딘지 어설프다. 그래서 토마토 통째로 먹는 강의 한 토막.
토마토는 오이 참외 등과 같은 열매채소로서 수분이 많은 관계로 건드릴 때 조심하지 않으면 튀어나와 입이고 손이고 옷이고 범벅이 된다. 그래서 요점정리를 한다면 수분을 없애는 일이 핵심이다. 앞니로 까만 점이 박힌 볼록한 토마토 엉덩이(?) 중심을 살짝 물어뜯어 수분 흡입구를 확보한 다음 사정없이 쭉쭉 빨아 삼킨다. 수분 흡입량이 줄어들면 이제는 영역을 확장하여 가며 육질을 씹어 먹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바깥 부분에서 안쪽으로 진출하여 먹기를 계속하다가 꼭지 부분에 이르면 돌려가면서 육질이 사라질 때 까지 조심스레 씹어 먹고 꼭지는 화장지에 싸서 휴지통에 버린다.
홍시를 먹을 때에도 같은 방법을 도입하면 되는 데 홍시는 더욱 더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5월19일 발명의날, 토요일 정오, 남여치에 밝은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5시간의 기나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이곳 내변산의 산행 들머리는 맑은 공기와 고요함이 회원들을 압도한다. 기지개를 켜고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고 까치발로 치켜세우고 손에 깍지를 해서 팔을 위로 뻗치고 손과 발, 목도 돌리고 하면서 산행을 준비한다. 공터에 있는 화장실로 인해 불편이 없게끔 된 이 곳 남여치는 부안읍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들어오다가 하서면 소재지에서 왼쪽으로 난 736번 지방도를 따라 산을 파고들어 우슬재를 넘고 말라버린 부안호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 중계터널을 지나 내리막을 오른쪽을 빙 돌아내린 곳에 있다.
신발과 배낭, 옷을 추스르고 자연스레 원을 만들며 둘러서 점호를 한다. 새빨간 도이터 캡이 돋보이는 회장님의 ‘하나’로 시작된 번호가 단숨에 마흔을 맞추는 쾌거가 일어난다. 버스정원대로 예약한 40명이 한사람의 유고도 없이 탑승하여 7시 정시에 출발, 여기까지 와서도 한번 만에 점호가 끝난 일은 근래 보기 드문 일이라 모두가 흡족한 듯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박수소리가 여느 때보다 크게 울린다.
산절승(山絶勝)이라 일컫는 내변산은 변산반도의 해안에 있는 해절승(海絶勝)이라는 몇몇 해수욕장이나 새만금방조제 같은 확 트인 바다풍광과는 완전히 다른 깊은 산중의 풍광이다. 시야에 보이는 모두가 캄캄할 정도의 깊은 산악지대이고 짙은 녹색의 숲으로 감싸져 ‘이곳이 바닷가와 지척일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산중에 있는 쌍선봉, 신선봉, 관음봉, 세봉 같은 봉우리들의 해발고도가 400m대로 높이가 부산으로 치면 황령산 수준이지만 출발지점의 고도가 50m 내외라 300m 이상의 고도차를 오르내려야하는 만만치 않은 수고가 따라야 한다.
미풍이 살포시 일렁이는 잡목 숲에 접어드니 푸르름의 그림자가 시커멓게 눌러앉아 써늘함을 연신 내품는다. 오늘 선두는 회장님이, 후미는 차경찬, 김동찬의 ‘2찬’이, 가운데가 산행대장, 최남기 회원이 맡아 안내와 앞뒤 연결을 책임진다. 아기자기한 숲길은 곧은 평지에서 비탈로, 흙길에서 돌길로 변하고 바짝 오르막으로 몰아세운다. 쌍선봉 옆을 돌아 낙조대라고 어림되는 곳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니 출입금지 표시를 한 플래카드로 길을 막아 놓아 왼쪽으로 난 내리막길을 따라 바삐 내려선다.
작은 개울을 지나 대숲을 돌아가니 널따란 황토 길이 나오고 환하게 트인 월명암이 나선다. 배낭을 놓고 해우소(解憂所)에 다녀오고, 예불도하고, 마당에 서서 변산 바다를 조망하는가 하면, 절집 지붕을 넘어선 커다란 전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걸터앉아 땀을 말리기도 한다. 허기가 밀려오는 오후1시경이라 점심을 먹어야겠는데 절집에서는 곤란하다하여 낙조대 산허리를 따라 다시 길을 재촉한다. 직소폭포 2.5㎞ 팻말이 붙은 삼거리에서 넓어진 우둘투둘한 돌투성이 길을 따라 성큼성큼 나아가 오르막을 두어 번 치고 오르니 전망이 트이는 바위봉우리. 나지막하게 소박한 차림으로 놓인 무덤이 있는 펑퍼짐한 공지에 기다랗게 타원의 띠를 이루며 주르르 밀려 앉는다. (산행대장이 미리 이곳 주인께 절을 하면서 장소사용신고를 마쳤음)
오룡골 댁이 돌리는 살얼음이 낀 시원한 생탁으로 입가심 겸하여 시장끼를 누르고 주섬주섬 밥과 반찬을 꺼낸다. 오늘도 상추에 깻잎에 미나리, 촌된장에 멸치젓갈이 큰손을 거쳐 군데군데 나뉘어 신선하고 풍성한 점심식사를 예고한다. 이외에도 고추장에 날로 찍어 먹는 풋고추, 양파, 당근과 배추김치, 무김치, 마늘쫑, 멸치볶음, 오뎅볶음, 두부부침, 계란부침, 콩나물무침, 산나물무침, 쇠갈비구이, 컵라면에 김밥, 맨밥, 현미 보리 조 콩 흑미가 섞인 잡곡밥 등 다양한 소찬이 성찬으로 탈바꿈하여 입을 즐겁게 하고, 쏟아내는 신문지로 싼 동동주와 판촉 이벤트용 소주, 약간의 양주, 집에서 담근 복분자주, 포도주, 매실주의 시음이 이어지다보니 그 흥겨움이 잔치분위기로 변한다.
꽤나 성대한 오찬 탓에 자리를 털고 바위 벼랑을 내려서는 시각이 오후2시를 넘긴다. 한참을 내린 바닥에는 삼거리가 나오고 자연보호헌장비가 있는 소공원이 눈에 들어오는데 우리가 가야하는 직소폭포는 오른쪽 산으로 향하는 방향이고 왼쪽으로 내리면 내변산통제소와 전북대연습림이 있는 임도로 나가게 된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개울을 거슬러 오르자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가 왼쪽으로 시퍼런 물바다를 이룬다. 선녀탕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곳 적막한 산중호수에는 작은 고기들의 움직임만이 생동감을 더하는데 지나는 이들의 탄성이 연발한다.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선명하게 보이는 직소폭포 전망대에서 폭포를 배경으로 추억을 담는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리오? 그렇다. 오늘 좋은 오늘! 지금 여기를 만끽하자 몰입하자.” 몇몇 열성들은 벌써 나무계단을 내려 직소폭포로 달려 내려간다.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목 오르막 그늘에서 물 한모금하며 잠시 숨을 돌리고 바짝 한 땀을 흘릴 순간 재백이 고개에 닿게 되어 왼쪽의 가풀막 바위절벽 길을 따라 오르는데 산봉우리 전체가 온통 한 덩어리 바위다. 관음봉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봉우리에 서서 짙은 숲에 묻힌 내변산을 조망하다가 눈을 올려 세우니 곰소만의 허여멀건 바다가 쑥 다가와 슬그머니 자리 잡는다.
푸름에 감춰지기에는 너무나 큰 바위산이라 하얗게 빛나는 암벽들이 눈부시게 언뜻언뜻 불거져 자취를 드러내는 데 그 형상이 마치 껍질 벗겨진 고목 마냥 세로 줄무늬가 죽 벋어 내리거나 이리저리 휘면서 흘러내린 품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묘한 감이 생기는 데 다른 암산(巖山)에서는 보기 드문 자연의 예술품이다. 푹 꺼진 고스락을 순식간에 올라 관음봉 허리자락을 잘라 낸 길을 따라 휘돌아 오른다. 이정표가 선 내소사로 내리는 삼거리에서 관음봉0.6㎞ 정상을 고집하며 왼쪽으로 나아가 통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니 목책이 서있는 관음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무덤이 조용히 들어서 있고 조망은 안 되는 곳이라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내변산의 주봉(主峰)이 어디냐고 묻는 이들이 많은 데 높이로 치면 하서면 쪽에 있는 의상봉(508.6m)이 정상이지만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 대찰 내소사를 감싼 위치라든가 접근성, 지명도 뛰어난 풍광 등을 고려한다면 단연 관음봉(424m)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관음봉을 보면 그 위세와 당당함이 1000m 급의 문경 봉암사 진산 희양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풍모를 갖추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애써 올라온 관음봉이 밑에서 바라다 본 모습보다 오히려 볼 것이 없어 실망하며 내린 이들이 발견한 곳이 관음봉 아래 전망대. 세봉이 건너다보이는 이곳은 골짜기 아래 빼곡히 들어찬 내변산 전경을 한눈에 집어넣을 수 있어 오해세님, 김병학님 부부사진과 회장님의 홀로사진을 담아 본다. 마침 암릉을 넘어오는 김승녕님의 모습도 한 컷 한다.
이제는 골짜기로 내려야 한다는 산행대장의 설명과는 어긋나게 앞선 회원들의 모습이 세봉 중턱에서 비친다. 어찌된 사연인지 알아보려고 부리나케 고스락으로 내리니 출입구를 막아놓았다. 관음봉보다 9m나 높은 세봉을 끙끙대며 올라 일행의 꽁무니를 따라 다시 고스락을 내려서니 여기도 막혀있다. 누군가 길이 있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들 그 틈새를 빠져나가니 선명한 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흙 벼랑길이 나오는 데 그냥 서있어도 저절로 발이 굴러 내릴 것 같은 가파른 경사다. 10여분을 달리다시피 빠르게 내려가니 시멘트포장길이 나오고 조금 더 뛰어내리니 어느새 내소사 안뜰, 요사체가 있는 곳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틀어 보물인 고려 동종이 간직된 종각에 이른다.
대웅전을 둘러보는 이들이 빠져나오자 종각 돌계단은 부산시청산악회 휴게소가 된다. 20분 동안 사람을 모으니 30명. 종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는데 오늘은 눈이 큼직한 여자 사진사다. 사연인즉 오늘 증명사진에 등장하면 난처한 입장이 되어 빠지려 한다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찍고 욕먹는 게 낫지 안 그래요?)
천연염색을 한 생활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여 ‘무엇인고’ 했더니 종무소가 있는 봉래루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니 이해가 간다.「내소사 트레킹 템플 스테이」라는 표제가 붙어있고 ‘사람 그리고 자연과 동화’라는 슬로건에 매월 두 번 토․일요일에 신청하면 된다는 내용인데 내소사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공동주관하는 행사라고 되어있다.
내소사 900년된 당나무의 위용에 놀라고 전나무 숲에 탄성을 지르며 우리들은 일주문을 지나 매표소 밖 주차장에 대어놓은 길따라관광버스에 올라탄다. 이래저래 지체하다보니 6시. ‘느긋하게 생각하고 늦게 귀가할 각오를 하라’는 아침에 들은 말이 생각난다. 시원한 캔 맥주를 손에 쥔 회원들의 얼굴에 한 뼘이나 넘게 남은 저녁햇살이 올라붙어 환하게 빛난다. 정오에 비치던 그 정답던 햇살 말이다.
글쓴이 부산시청산악회 이원복
내소사 종각에서 하나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