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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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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과 조선사[朝鮮史]
환국고려 추천 1 조회 536 13.04.21 23:5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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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4.22 09:51

    첫댓글 알타이산맥의 최고봉인 "금산"이 "불함산이요, 장백산이며, 백두산"이라는 설명, 좋은 배치며, 훌륭한 설명같습니다.
    조선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결고리는 "백두산"입니다.
    "백두산 곧 장백산 곧 불함산"은 산해경으로부터 시작되는 기록에 등장하며, 숙신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위치가 항상 문제였습니다. 금산(알타이산=벨루하산 4508m)! 이 산이 백두산일 가능성은 항상 대두되었으며, 거의 확정적인 것이었는데, 님께서도 그곳을 낙점하시고 현장 답사까지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서의 기록과 그 지형지리가 부합되는가일 것입니다. 좋은 글,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 13.04.22 20:14

    일목요연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환국고려님의 명문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쁩니다.
    반도의 남해도 금산에 묻힌 이성계 마눌의 무덤의 원본이 알타이 근처 어딘가에 있겠지요?
    남해금산이란 시집을 쓴 시인 이성복의 시를 보면 뭔가 냄새를 맡은 흔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상징과 은유를 평론가들은 단무지(단순.무식.지랄)스럽게 해석하지만요.

    이성복의 연작시 '겨울 비가, 와 시집 '남해 금산'은 분명 조선사를 은유한 한 세트라고 봅니다.

  • 13.04.22 23:21

    "요(堯) 임금 때인 무진년(B.C. 2333년)에 신인(神人·성인보다 한 단계 위의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태백산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니, 조선인(朝鮮人)이 그를 임금으로 모시고 단군(檀君)이라 칭했다. 이것이 조선이 나라를 세운 시초다.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략’(通志 )에 이르기를 조선이라는 나라는 왕험(王險)에 도읍을 정했는데, 한(漢) 시기의 낙랑군이 그곳이다.
    모씨(茅氏)의 ‘상서록’(象胥錄)에 의하면 단군(檀君) 도 (후에) 기자(箕子)도 왕양(王壤)에 도읍을 정했다.
    역사에서는 위만도 왕험에 도읍을 정했는데, 곧 평양이다. (하략)” 사고전서 四庫全書

  • 13.04.22 23:24

    2002년 심백강 박사가 사학계를 맹렬히 비난하며 단군에 대해 발표했던 것이라 합니다.
    1772년 겨울, 건륭제는 각 성과 현의 관리들에게 그들이 관장하는 모든 서고에 보관된 희귀본과 귀중본을 조사하여 보고하고 필사하여 그 성과물을 북경을 보낼 것을 명령한다. 이것이 바로 <사고전서>의 편찬사업의 시작이다. 이 책은 <사고전서>의 편찬과정을 통해 건륭제시대의 학자와 국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것이다라 적고 있습니다.

  • 13.04.22 23:28

    무엇보다도 지명이 왕험,, 창려에 험독현이 있고 여기에 왕검성이 있다라. 많이 혼돈스러운 지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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