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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장 행복한 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참마음
고려산 청련사(高麗山 靑蓮寺)
사 찰 명: 고려산 청련사(高麗山 靑蓮寺)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550
종 단: 조계종직할교구 조계사말사
전화번호: 032-930-3626
고려산 청련사 전경
고려산 청련사(高麗山靑蓮寺)는 강화도(江華島)에 있는 여러 사찰들 가운데 읍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찰이다.
고려산 기슭에서 삶을 꾸려가는 강화읍내 사람들은 국화(菊花)저수지를 거쳐 청련사에 가는 것을 즐겨한다.
이처럼 오늘날 강화사람들이 청련사 나들이를 마을가기 쯤으로 여긴다면
옛날 스님들은 고려산에서 수도하는 것을 극락왕생(極樂往生)으로 생각했다.
고려산에 전해오고 있는 다섯 색깔의 연꽃이 만발한 오련지(五蓮池) 설화가 그 증거이다.
오련지는 부처님이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서 설한 극락의 연못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다.
설화에는 고려산에 처음 절을 세운 스님이 오련지(五蓮池)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을 꺾어 하늘에 날려 보내고
꽃들이 떨어진 곳에 각각의 꽃 색깔을 따라 이름을 지은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 중 청련(靑蓮)이 떨어진 곳에 세운 것이 청련사이다.
청련사는 여름이면 이웃한 국정동천(國淨洞天)의 맑은 물소리와 짙은 녹음으로
극락을 느끼게 해 바로 고려산 오련사(五蓮寺) 중 여름극락(夏極樂)에 자리 잡은 절인 셈이다.
고려산 청련사 전경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인도스님이 창건>
청련사 역시 이웃한 백련사나 적석사처럼 인도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5련사의 창건설화 가운데 유독 청련사에만 전하는 색다른 이야기도 있다.
창건주인 인도스님은 절터를 찾기 위해 다섯 색깔의 연꽃을 던졌는데 청색연꽃만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아 원통하다는 뜻에 원통암(圓通庵)을 세웠는데 뒤에 청련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원통암과 청련사가 가까이에 있다가 한 절이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사하촌인 국화리가 나라국(國)자와 꽃화(花)자를 합쳐 국화(菊花)리로 된 것처럼
이두(吏讀)식 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분명해 보인다.
원통암의 원통(圓通)은 분하고 억울하다는 뜻과는 전혀 달리
불보살의 미묘한 깨달음을 가리킬 뿐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금당 편액은 큰법당>
경내로 접어드니 일주문이나 천왕문 등 문루들은 보이지 않고 둥치가 여러 아름을 넘는 노거수들이 고찰임을 알려준다.
사지를 조성하느라 축대들을 쌓았는데 높이는 낮지만
작은 석성처럼 유난히 돌들이 돋보이고 축대 주변 곳곳은 화단이 아름답다.
비구니스님들의 정성이 엿보인다.
청련사 경내는 3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큰법당 구역과 원통전 구역, 그리고 요사체들이다.
잔디밭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령 700년이 넘는다는 느티나무를 지나
첫 번째 축대위로 올라서니 남북으로 길게 터가 조성돼 있다.
큰법당구역이다.
남쪽으로부터 큰법당과 종무소가 옆으로 늘어서 있고 종무소 뒤편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큰법당은 편액 자체가 큰법당이다.
여느 사찰의 대웅전이다.
종무소는 큰법당을 새로 짓기 전까지 법당으로 사용하던 구법당이었다.
큰법당과 종무소 사이로 들어가면 있는 삼성각은 짧지만 높게 축대를 쌓아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었다.
전에는 툇마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 끝까지 벽을 물려 내부를 넓혔다.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편액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불단
석가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극락을 상징하는 고려산에 있는 사찰의 금당으로서는 모신 부처님이 석가여래라는 것은 뜻밖이다.
큰법당은 1979년에 신축해 부처님도 새롭게 조성해 모셨으나 탱화들은 구법당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상계(上界)교주 천장보살(天藏菩薩)과 유명(幽冥)교주 지장보살(地藏菩薩)
음계(陰界)교주 지지보살(地持菩薩)을 그린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와 현왕탱(現王幀)은 고종 18년(AD1881)에 조성됐다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불단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불단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신중탱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감로왕탱
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 (강화군)
감로탱은 망인의 천도를 위해 우란분경(盂蘭盆經)의 내용을 도상화한 그림이다.
화면 가운데 커다란 상에 성반(盛飯)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는 광경을 중심으로
위에는 7불이 나란히 서 있고 좌측편에는
아미타삼존불이 우측편에는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이 묘사되어 있다. 성
반 아래에는 두 마리 굶주린 아귀가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로 지옥과 현세의 여러 생활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은 대정(大正)5년(1916)에 제작된 것으로 전반적으로 색이 둔탁하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166.5cm, 세로 146cm이다.
감로왕탱(甘露王幀)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조성됐다.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주련
온누리 끝세어서 알고
큰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네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부처님 일생 벽화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꽃살문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꽃살문
고려산 청련사 큰법당 꽃살문
고려산 청련사 삼성각
고려산 청련사 삼성각
고려산 청련사 삼성각
고려산 청련사 삼성각 편액
고려산 청련사 삼성각
고려산 청련사 삼성각
고려산 청련사
고려산 청련사원통전
올라가는 입구를 수행중이라 막아놓았습니다
당연히 내부 관세음보살 뵙지 못했지요
먼거리에서 원통전 찍었습니다
<통합된 원통전>
종무소 북쪽 옆에는 수각이 있고, 수각 옆으로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따라 가 보면 원통전이 나온다.
원통전 구역이다.
원통전은 원래 원통암(圓通庵)으로 별도의 암자였으나 1984년 청련사에 합쳐 원통전으로 이름이 고쳐졌다.
안으로 올라서니 상단에 극락도사 아미타불(보물1787호)이 계신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덥석 무릎을 꿇었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삼아 원통전이라고 하였으나
관세음보살이 대세지보살과 함께 본원의 서원공덕으로 일생보처(一生補處)에 머물지 않고
바로 극락에 태어난 보살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좌우보처 보살이 되었고,
그래서 두 보살의 가운데에 아미타불이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청련사 원통전은 당호의 상징성을 넘어
극락의 주인인 아미타여래와 관음 세지보살이 봉안돼 있는 극락세계이다.
강화읍지인 1932년 판 강도지(江都誌)에는 청련사를 경치가 빼어난 국정동천에 있으며
흔히 국정상하사(國淨上下寺)라 부른다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국정동천에 있는 윗절 아랫절로 불린 셈이어서 그 시기에도 거의 한 절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또 이들 절에는 당시에도 비구니들이 수도하고 있었으며 국정승방(國淨僧房)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원통전의 창건정신>
청련사 역시 창건 이후의 연혁은 다른 사찰들처럼 제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기록으로 보이는 것은 조선 순조(純祖) 21년(AD1821) 비구니 포겸(包謙)스님에 의해 중창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 후 고종(高宗) 18년(AD1881) 부급(富給)스님이 탱화들을 조성하고
광무 10년(AD1906) 계근(戒根)스님이 법당을 중수하는 등 근현세의 기록들이 전부이다.
역사를 소급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면 원통전에 모셔진 부처님뿐이다.
이 부처님은 2012년 강화청련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란 이름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우아한 상호, 단아하고 세련된 조형미, 완급조절이 잘 표현된 옷주름 등으로
미루어 세련되고 품격 높은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경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이 부처님은 13세기 즉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종(高宗) 19년(AD1232)에서
원종(元宗) 11년(AD1270)사이에 개경(開京)에서 건너온 우수한 장인들이 조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련사의 연혁 또한 고구려 장수왕 이후 희미해 졌다가
고려의 강화 천도 이후 불상이 조성 되는 등 사세가 다시 커졌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원통암은 주불로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이 역시 고려산을 극락으로 여겼기 때문에
극락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본존부처님으로 모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근의 일이지만 청련사가 대웅전을 지어 큰법당으로 삼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데 비하면 원통암의 후신인 원통전이
오히려 고려산 기슭에 세워진 여러 극락도량들과 시대정신을 함께하는 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청련사에서도 고려산 정상으로 올라 봄이면 우거지는 철쭉 군락지로 갈 수 있지만
이는 산꾼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부처님을 찾아뵙는 불자들로서는 나를 확인하는 마음자리를
짚어보는 일 외엔 여름철 국정계곡의 시원함이나 들머리에 있는
국화저수지에서 고려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명경지수를 살펴보는 것으로 풍광을 즐기는 일을 가름하게 된다.
이것이 고려산의 하극락(夏極樂)을 즐기는 방법이다.
<청련사 가는 길>
청련사 가는 길은 강화읍에서 시작한다.
강화도에는 국도48호선이 섬 북단을 동서로 가로지른다.
청련사로 가려면 군청 앞에서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1km 가량 간 서문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고비고개로로 접어든다.
강화고등학교 앞을 거쳐 2km가량 가면 국화(菊花)리 삼거리에 이른다.
국화리 일대는 읍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너그러운 자연의 품이 느껴진다.
이 지역의 여유로움은 바로 청련사가 있는 국정동천(國淨洞天)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산의 큰 골짜기가 국정동천이다.
여기서 발원한 물은 국화리에 이르러 국화저수지를 만들고 계속 흘러
읍내에 있는 강화산성(江華山城) 내성(內城)의 강화석수문(江華石水門)을 지나 갑곶진(甲串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예로부터 청련사 사하촌을 국정(國淨)동으로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국정동에서 국(國)자의 음을 따고
아래에 있는 연화골(蓮花谷)에서 화(花)자의 음을 딴 후
그 뜻이 판이하게 다른 국화리(菊花里)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이런 말을 떠올리며 차를 모니 국화리에서 청련사까지는 1.2km 거리이다.
(백련사-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3.7km, 소요시간 : 1시간 20분
고인돌광장 [2.1km:48분] > 백련사 [0.9km:18분] > 고려산 정상 [0.7km:14분]> 진달래 군락지
(청련사-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2.9km, 소요시간 : 1시간
국화리마을회관[0.5km:12분] >청련사 [1.7km:34분] > 고려산정상 [0.7km:14분] > 진달래군락지
(적석사-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5.2km, 소요시간 : 1시간 50분
고천리마을회관 [2.3km:46분] > 적석사 [0.3km:6분] > 낙조봉[1.4km:28분] >고인돌군[1.2km:24분] > 진달래군락지
(고비고개-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2.4km, 소요시간 : 1시간
고비고개 [1.7km:34분] > 고려산정상 [0.7km:14분] > 진달래군락지
(미꾸지고개-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5.8km, 소요시간 : 2시간
미꾸지고개 [3.2km:64분] > 낙조봉 [1.4km:28분] > 고인돌군[1.2km:24분] > 진달래군락지
고려산 진달래 축제 오는 길
5호선 송정역 1번 출구를 이용 버스전용차로 정류장에서 강화버스 수시로 탑승가능
신촌 아트레몬 극장 앞에서 신촌 직행버스 탑승가능.
신촌(아트레온 극장 앞) → 송정역 → 고촌 → 김포 → 마송 → 강화터미널
주의 : 3100번 탑승시 화도터미널 도착(종점)
영등포(신세계백화점 앞)→ 송정역 → 고촌 → 김포 → 마송 → 강화터미널
일산 호수공원(웨스턴돔 건너편 법원 앞) → 마두역 → 백석역 →
김포시청 → 마송 → 강화터미널 → 서문
인천(70번, 90번, 700번, 800번)
70번(25분간격) : 인천터미널(농산물센터)→석바위→제물포→검단→양곡→마송→강화터미널
90번(15분간격) : 부평역(국민은행 앞)→계산동→검단→양곡→마송→강화터미널
700번(40분간격) : 인천터미널(농산물센터)→동암역→석남동→검단4거리→양곡→대곶→초지대교→강화터미널
800번(50분간격) : 인천터미널(농산물센터)→길병원→인천의료원→서구청→검단→양곡→마송→강화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