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반가워라..
아닌게 아니라.
가까이 있을적엔.징그럽게도 보기 실었는디.
요즘은 징그럽게도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네..
왜냐구..
너처럼 고돌이 치면 나한테.많이 협조 적이잔혀..
여기있는친구들은 인간도 아니여..
코뭍은 돈까지 따먹는넘들이여..
그중에서..
거 .뭐시냐.
신문사 하는. ㄱㅡ.ㄴㅗㅁ.에.ㅅ ㅐ.ㄲ ㅣ 는 말여.
돈따문. 뻐지도 안주는 넘이여..
오늘 즌화 왔드라고..
잔돈 많이 준비하고 오라고,,
에구 타국에서.쓸쓸이 명절을 보내는 자네가..좀.그렇네...
가까이 있는 은규 형하고..
명절 잘지내거라..
천규 형님 한테 도 안부좀 전해주고..
그형님이 내하고 국토 방위를.같이근무해서 남다르니.
자네가 내 할도리를 다했으면.고맙겠네..
내 대신 가서 세배도 하려므나..
아마 내애기하면서 세배 하면 세배돈 넉넉히 주실분이여..
글구 멀리있는데도.또 바뿐와중에도.우리초등학교친구들.
애경사에 협조적이어서.그렇게 고마울수가 없단다..
그럼 즐거운 명절을 보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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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지, 친구들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하루하루 보고 싶은 생각이 더해 갑니다.
특히, 명절을 맞을 때는 이런 맘이 더해 갑니다.
며칠 안 있으면 또 다른 설날을 맞이 하게 되겠군요.
가까이 있으면 죽도록 미운 놈들도 떨어져 있다 보면 왜 그렇게 보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철 모르고 같이 뛰놀던 어릴적 친구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그런 친구들이 이제는 50을 바라보는 장년으로 성장해서 각자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무엇이지를 떠나, 돈을 많이 벌던 적게 벌던,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고생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이
한없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하는 사업마다 잘 안돼 마음 고생이 심하다가 이제는 운수업으로
제법 재미를 보고 있는 성관이,
사업에 실패를 하긴 했지만 항상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광호,
젊은 시절부터 계속 한우물만 파서 큰돈을 벌고, 이젠 어엿한 기관장으로 자리를 잡은 승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수십년 동안 묵묵히 우리의 모임을 이끌어 오고 있는 은규, 그리고 명숙이,
미모와 재담(才談)을 겸비하면서 친구들을 마냥 즐겁게 해주는 우리의
송녀,
노력과 사업에 대한 통찰력으로 큰 돈을 벌고 어려운 주위 친구들을 수시로 많이 도와 주고 있는 문석이,
적극적이고 성실하다고 법조계 주변으로 부터 칭송이 자자한 우승이,
학교다운 학교는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오고서도 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또 박사 학위 준비를 하고 있는 형덕이,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어려운 성직자 길을 걷고 있는 진규, 영일이,
수년간 가족과 떨어져 외국(홍콩)에서 고생하고 있는 태종이,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주태,
금융계에서 financing의 전문가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학명이,
우리 몸과 마음의 고향인 농촌, 그리고 소들광문(서들광문? 소들강문?
서들강문? 잘은 모르겠다만..)을 지키고 잇는 상복이, 영환이, 양현이,
상묵이, 행철이, 승일이, 재경이, 봉열이 등,
그리고 자기의 사업 분야에서 1등이 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성학이, 병문이, 민수, 기수, 영묵이, 주원이, 왕수, 춘근이, 재식이 등등.........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친구들 섭섭해 하지 마세요)
그런데, 암만해도 누군가의 이름이 빠진것 같습니다.
아무리 머리 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항상 그러 하듯이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나한테 다가 오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는 그 친구가 어떻게 오늘의 그 자리에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그 친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 친구가 전에 열차나 버스 안에서 책을 팔았던 것은 압니다.
그리고 조선호텔 근처 반도아케이드(?) 지하에서 와이셔쓰와 남성용품
(콘돔 같은 것 빼고...)을 팔았던 것 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 꾐에 빠져 아케이드 비상 계단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고스톱을 쳐서 나는 월급을 갖다 바치고 광호는 시골 쌀 팔아 가지고 온 사업자금날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으니까요.
그런 그가 기자증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지금은 직접 신문사도 운영하고
있다 합니다.
책, 와이셔츠 팔던 친구가 신문사 사장이 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얘기
입니다.
요즘은 그런 별난 친구의 글을 가끔 카페에서 대 합니다.
그 글에는 가끔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있지만 따뜻한 이해심과 여유로움이 훨씬 더 많이 묻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글을 대하는 우리 모두에게 천진난만했던 우리의 어린 추억과
사랑이 담긴 얘기를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등잔불 밑에서 들려 주셨던 옛날
얘기 만큼이나 재미있게 주섬주섬 들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