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경북매일신문칼럼2009,10,16,금>
어린시절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흥미진진했다. 개미는 여름에 열심히 일하는데 베짱이는 어영부영 놀았다. 개미는 착한모습을 대변해주었고 베짱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 되었다.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노래나 부르고 기타를 치다가, 겨울이 와서 먹을 것이 없자 개미네 집에 가서 구걸을 한다는 이야기다.
선진국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사는 사회다 그리고 선진국은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다. 반면에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면 힘들고, 어렵게 살게 되어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선진사회의 모습이다. 요즘 '개미와 베짱이의 21세기형 버전'이 이어령님이 쓰신<젊음의 탄생>이라는 책에 소개되었다.
<일본판 개미와 베짱이>
베짱이가 겨울에 개미의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개미가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을 알아보니 여름에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과로사한 것이었다.
<러시아판 개미와 베짱이>
베짱이가 문을 두드리니 개미가 문을 활짝 열고 "동지여, 어서 오시요. 우리는 프로레타리아 형제, 함께 나누어 먹읍시다."하고 환영했다. 그들은 동지가 되어 겨우내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개미와 베짱이는 이듬해 봄에 함께 굶어 죽었다.
<미국판 개미와 베짱이>
베짱이가 문을 두드리니 개미가 안에서 소리쳤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곡식을 왜 너하고 나눠 먹어야 되냐? 자기 밥벌이는 자기가 하는 법, 어서 꺼져!" 베짱이는 집에 돌아와서 그 슬픔을 노래로 불렀는데 마침 지나가던 음반 기획자가 그 노래에 반해서 음반을 내게 되었다. 베짱이는 노래만 부르다가 너무 노래를 잘 하게 되어 가수가 된 것이다. 음반은 대히트를 쳐서 베짱이는 돈 방석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개미는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 디스크에 걸려 눕게 되었다. 그 동안 벌어 놓은 재산은 병원비와 생활비 등으로 온데간데없어져 거반 빈 털털이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현대판 이야기이다.
한편 이야기는 또 다른 길로 진행된다. 그 후, 개미는 치료도 열심히 받고, 나름대로 건강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몸이 다 나았다. 그리고 전보다 더 열심히 성실히 일하여 다시 부자가 되었다. 베짱이는 그 많은 돈으로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까지 하다가 몸도 망가지고, 다시 구걸하여 먹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것이 역시 나로 끝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아직도 상식과 진실이 통하지 않는 혼란스런 사회이며, 부도덕과 부정, 부패뿐 아니라 때로는 모순이 도리어 득세하고 인정받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너무 심하다. 가진 계층은 더 많이 갖게 되고, 덜 가진 자는 그나마 가진 것도 점점 잃어버리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와 관계없는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그 기능이 전락하고 말았다. 나눔의 삶, 베푸는 삶을 통한 우리 사회의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주역들은 ‘개미의 가치관’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그들이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자,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바뀌고 자신의 후배 또는 제자들은 자신들과 사뭇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가치관은 문화와 창의성과 놀이 정신을 지닌 ‘베짱이의 가치관’이다. 돈 많은 사람들의 오락거리나 특수한 재주꾼들의 개인적인 활동으로 여겼던 베짱이의 문화예술 활동이 지금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거대한 경제활동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분야의 일을 지망하고 그러한 정서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사회구조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서 동화도 바뀌는 것 같다. 어릴 적 개미와 베짱이가 주는 교훈은 부지런하고 성실함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동화가 주는 교훈은 삶을 효율적으로 살고 인생을 적당히 즐기면서 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혜로울 수 있겠지만 왠지 마음이 쓸쓸함을 느낀다. 개미와 베짱이 버전을 보면서 인생이 잘나가고 호황 일 때,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은 20세기를 지켜 온 '개미의 가치관'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베짱이의 가치관'이 대립하고 충돌되어 생기는 것이다. <김기포, 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