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스펜서>
1.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21세기 초 지난 천 년을 대표하는 인물에도 선정될 정도로 유명세와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매력을 지녔던 그녀는 영국 왕실에 들어간 이후 역사상 최고의 신데렐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찰스 왕세자의 불륜 및 왕실과의 갈등 속에서 이혼 후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영화 <스펜서>는 다이애나가 겪었을 왕실과의 갈등 및 남편과의 불화를 그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그녀의 고향 근처에 있는 영국 왕가의 별궁에서 벌어진 3일간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10년이 지난 결혼 생활의 파국을 결정짓는 시간이었다.
2. 왕실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고 통제되어 있는 삶이었다. 식사 시간 뿐 아니라 식사 때 나오는 음식 및 서빙 절차는 완전히 표준화되어 있고, 식사에서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때마다 지정된 옷을 입고 참가해야했다. 다이애나 방에 걸려 있는 행사 때 입을 옷의 목록은 그녀의 삶을 옥죄이는 통제의 상징이었다. 파파라치의 촬영을 핑계로 그녀의 방에 있는 커튼을 실로 꿰어버렸으며, 수많은 감시인들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하고 보고하였다. 그녀의 불안과 불만은 잦은 지각과 지정되지 않은 복장 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표출되었고 그러한 그녀의 행동에 사람들은 왕가의 의무와 명예를 언급하며 압박하였다. 결정적으로 찰스 왕세자는 다른 여인과의 공공연한 연애행각에 빠져있었고 애인에게 준 선물을 똑같이 다이애나에게 주는 모욕적인 행동을 꺼림없이 자행하였다.
3.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보조자는 쫓겨나고 모든 것이 감시받는 상황에서 그녀가 읽고 있는 헨리 8세의 아내가 되었다가 비참하게 처형당한 ‘앤 볼린’의 처지는 그녀가 고통받고 있는 현재의 삶을 앤과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막힌 상황에서 그녀는 본능적인 탈출을 시도한다. 왕가의 별장 옆에 있는 자신이 어렸을 적 살았던 성을 방문한 것이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스펜서> 가문의 성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상징적 도전이었다. 철사를 끊고 부서진 문을 열고 어렸을 적 살았던 성으로 들어간다. 그 곳은 아름다운 기억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이다. 추억은 현재의 고통과 대비되어 더욱 아련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문뜩 그녀는 그곳에서 삶을 끊을 생각을 한다. 그때 ‘앤’이 나타나서 ‘탈출’하라고 권고한다.
4. 다시 왕가의 별궁으로 돌아온 다이애나는 ‘스펜서’라는 이름으로 변모한다. 더 이상 왕실의 사슬에서 매어있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꿩사냥에 참여한 아이들을 불러낸 후 그녀는 차를 타고 왕가 사람들과 작별을 고한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유기농 식품으로만 만들어졌던 왕가의 음식 대신 페스트푸드 음식을 아이들과 함께 맘껏 포식한다. ‘음식’이 주는 해방감은 누구도 인정하는 최고의 기분을 선사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그녀는 영국의 왕가를 벗어난 것이다.
5. 영화 <스펜서>는 다이애나가 겪었던 왕실에서의 치명적인 불행과 자유와 개성이 속박된 삶의 고통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어떤 물질적인 부유함이나 사회적 명예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자체의 자유와 존엄의 중요성이다.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 힘이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성에서 그것을 회복한다. 찰스 왕세자의 부인이 아닌, <스펜서> 가문의 독립적인 여인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왕실과의 이별이 결코 자신의 아들과의 이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영화는 그녀의 고통스럽지만 용기있는 탈출의 순간을 보여준다.
6. 다이애나 역을 맡은 배우는 얼마 전 <세버그>에서 흑인민권 운동을 지지하는 여배우의 역할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워트이다. 강렬한 개성과 내면의 혼돈을 매혹적으로 표현했던 배우는 이번 역에서도 비슷한 갈등적 상황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약간은 다른 인상을 주었지만 심리적 불안과 불안이 표출하는 행동의 모순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흡혈귀 영화 시리즈로 알려진 그녀의 초기작들과는 완전히 달라진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배우의 탄생이다.
7. 하지만 다이애나가 그 후 파라라치 촬영을 피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과 연결하면 영화 마지막 ‘자유’를 찾는 장면은 묘한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그녀의 자유가 그녀의 종말과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할거야”라는 어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원치않은 삶을 거부할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를 지지하고 싶다. 삶은 어떤 방식이든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때론 그것이 희생일지라도, 때론 그것이 실패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한다는 점이다. 영화 <스펜서>의 마지막은 <쇼생크 탈출>처럼 위대한 하나의 탈출 장면일지 모른다.
* 영화 속 다이애나의 고통과 불안에 완전히 공감할지라도, 최근 벌어지는 전지구적 불안과 공포 속에서,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사치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순간순간 인간이 죽어가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현장은 수많은 비난과 압박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그것도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행위가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진행되고 있다. 모든 고통은 분명 해결되어야 할 과제임에도, 고통의 등급 또한 분명 존재한다. 인간의 파괴가 일상화된 지금, 내면의 불안과 슬픔은 상대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닐까?(진보의 실패는 더 중요한 것 대신에 어쩌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최우선 해결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몰두하는 태도와 행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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