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모까페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율법이 완성되고 새언약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관련하여서 십계명의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글을 보고 답글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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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율법은 폐지되어 없어졌는가? 하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계명의 율법과 여기에 속해 있는 모든 율법들인 모세의 율법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부터 먼저 가져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것이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턱 생긴게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하나로 하나님에 의해서 모세에게 주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 전에 가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신적작정; decree]에 의해서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창세 전에 있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의 작정에 의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일으키는 기인(基因)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란 하나님의 외적 사역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교리적이고도 신앙고백적으로 잘 정리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 3장 1,2항에서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작정하셨으며, 따라서 장차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를 알고 계신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신적작정'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에 따라 정하신 영원한 목적(계획)"이요 이는 곧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으로서, 이 사역이 하나님의 시간적 사역으로 구체화되고 전개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교리적으로 다루며, 그래서 또한 교회에서 가르쳐 말하는 것은 이것이 교회가 만든 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 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3-12).
여기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일로 말씀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중심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때 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가? 할 때 이것은 목적론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성경의 총체적 주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으로서 그 나라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충만히 해 나갈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해 이룰 일을 정하신 것과 함께 여기에 따라서 연결 고리로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백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를 하나님이 친히 보시기에 한 점 흠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는 그분의 사랑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예정을 입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 대신 죽게 하셔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이를 실천하셨습니다.
이 실천의 방식이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 전에 가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실천에 따라 '약속과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이에 이 하나님의 언약은 창조 사역에서부터 주어지고 있으며(창 1:26-28), 아담과 맺은 언약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예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오는 것임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 성경 전체에 도도히 흐릅니다. 또한 사단의 시험을 받아 범죄한 아담에게 형벌을 선언하면서 죄의 시험자인 사단에게도 형벌의 선언을 하는 것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담은 복음을 주셨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단과 대적하는 관계에 있게 하는 '여자'와 '여자의 후손'이 있게 하는 것에서 사단의 머리를 깨부숴 이길 '여자의 후손'을 계시로 주신 것입니다(창 3:15). 그럼으로써 '구원자'에 대한 계시가 빛으로 밝히 비춰졌습니다. 이어서 노아와 맺은 언약에서는 홍수에 의한 구원에 의해서 죽음이 왕노릇하는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의 생명을 보존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셨으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서는 육에서 나오는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오시는 아들에 의하여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으로 주시면서 이에 대한 가시적인 나라로서 이스라엘 왕국을 형성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곧 모세의 언약은 이런 바탕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언약식을 맺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언약은 율법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이제 그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실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에의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따라 우리를 한 점 흠 없는 거룩한 자로 만드실 일인 속죄의 원리를 율법을 통해서 알아 가도록 하셨는데 이를 언약식에서 먼저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식에서 모세와 언약식[언약 체결]을 갖는 것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언약의 책을 낭독하고 희생된 헌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이스라엘에게 뿌리면서 '이 피는 지금까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분명히 하시려고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맺은 언약의 피이다'하고 선언하였습니다(출 24:4-8). 이 언약식은 십계명이 기록된 두 증거판을 두 번째 주어질 때 다시 한번 갖게 되는데 이때에는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하시는 일을 모든 민족이 보고 두려워 떨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청종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출 34:10-26).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왕국은 모세의 율법의 토대 위에서 세워집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짐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 국가임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따르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나가는 것은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인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자인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데 이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율법 아래 놓여져 있으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나가는 것에서입니다. 만일 그들 중에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아서, 그래서 율법을 거역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언약밖에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 내치십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모세의 율법인 언약의 율법 위에 있는 한에는 그 나라는 견고하며 또한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다윗과 맺은 언약에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다윗의 집과 그의 왕국에 속한 백성으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다윗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시는 것은 그리스도는 언약의 율법에 약속된 오실 자로서 이 율법 위에 굳게 세우신 왕국을 통해서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왕국을 통해서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을 온전히 지켜나가지를 못합니다. 힘써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여 지켜 나간다고 하는데, 결국은 여호와의 말씀에서 떠나 있는 자의 상태에 있는 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육체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왕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은혜를 알게 하시는 언약을 주십니다. 그것이 예레미야와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전과는 아주 다른 새언약을 맺는다는 것으로, 돌판에 써서 주는 것이 아닌 각 사람과 개인적으로 체결하여 그들 각자의 마음과 양심에 새겨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 놓아서 그들의 부드러운 살과 핏속에 넣어 주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겠다는 새언약에 관한 것을 약속하시는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렘 31:31-34). 그런데 이 언약은 에스겔에게서 보다 더욱 구체적이 되어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과 맺는 새언약의 체결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영[신]을 부어 주심으로써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겔 36:26-28, 37:14).
예레미야와 맺은 새언약은 에스겔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영[성령]이 부어짐으로 해서 각 사람에게 체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오시는 것인데, 이 성령님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의 복음을 가지고서 오십니다. 성령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과 양심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는 일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구원받기로 작정된 데 따라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그들을 죄에 의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풀려나게 하여 구원의 해방과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돌이켜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에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멸망 받기로 작정된 자에게는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며 배척하는 강팍한 거친 마음의 상태에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대속주로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율법의 진노와 저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율법이 요구하는 하는 바인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행해지는 죽음의 심판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는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으며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않은 이런 저런 것을 들어서 폄론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새언약 속에 놓여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성령님에 따라 삶이 펼쳐집니다. 의와 희락과 화평이 있는 생명의 왕노릇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부르신 각 사람과 새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럼으로써 옛언약인 모세의 율법은 완성되었습니다. 옛언약인 모세의 율법은 새언약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를 새언약이 주어짐으로 해서 옛언약인 율법은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요, 또한 율법의 완성으로 새언약이 주어졌다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표현하여 말하든지 간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제 모세의 율법인 십계명은 폐지되어 없어진 것인가?를 보겠습니다. 단언하여 말하건대, 그 대답은 "십계명의 율법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이 부르신 각 사람에게 새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완성되었습니다.!"입니다. 사실 십계명의 율법만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 모두가 그러하며, 또한 이전의 모든 하나님의 언약이 그러합니다. 즉 이전의 하나님의 모든 언약이 새언약에 의해서 완성을 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은 새언약으로 이 하나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새언약 안으로 다른 모든 하나님의 언약들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 새언약에 의해서 다른 모든 하나님의 언약들은 그 의미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전혀 다른 언약의 성격으로 바뀌거나 또는 폐지되어 없어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더 이상 이 언약의 필요성이 요구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지금까지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구속사에서 새언약이 주어질 때까지 점진적 발전의 모습을 띠며 그에 따라서 언약의 내용이 보다 구체화되어 계시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서 지금에 주어진 것은 이전에 주어진 언약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 감추어진 비밀의 계시가 온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이 완성되었으므로 율법은 폐지되었고 따라서 십계명의 율법도 폐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것을 모세의 율법에서 십계명의 율법이 다른 율법과 함께 갖는 위치에서와 새언약이 주어짐으로 율법의 완성을 이룬 것이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율법은 1. 십계명 2. 의식법(제사, 절기, 성전에 관한 종교 의식법으로 율례라고 말함) 3. 시민법(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법칙으로 규례라고 말함)으로 세분화됩니다.
여기서 의식법으로서의 율법과 시민법으로서의 율법의 모법(母法)은 십계명의 율법이 됩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의 율법에서 의식법의 율법과 시민법의 율법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메시야 언약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서의 언약적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그런 율법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그림자와 실체와의 관계성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성으로도 설명이 됩니다.
율법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 이렇기 때문에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메시야 언약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리키고 있는 실체인 그리스도에 의한 새언약이 오게 되면 율법은 옛언약으로 남습니다. 가령 현재의 우리 나라의 헌법은 그 조항이 무지무지하게 많습니다. 그야말로 법률 전문가가 아닌 한에는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부분을 찾아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럼에도 심지어는 그 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 법 앞에는 지금의 이 법이 출현하기 전의 많은 법들이 시대마다 존재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법의 모법을 추적하여 찾아올라가면 고조선 시대의 '8조금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8조금법은 8개 조항이기에 아주 간단합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재판에서 8조금법을 들이다미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세세하고 또한 지금의 현실에서 법의 효력을 갖는 현재의 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8조금법은 분명 오늘날에서는 사용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8조금법이 말하고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면에서일 뿐이지 오늘날의 모법으로서 법의 정신과 원리로 남아 있으면서 변역이 되어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가령 남의 물건을 도적질한 사람은 몇 배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에서는 그 정도로 다루어지지 않고 징역 몇 년에 재산상 손실도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율법에서 의식법으로서의 율법과 시민법으로서의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한시적(限時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에서 예표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요구에 응하여 성전의 주인으로서 또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시며 또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유월절의 희생제물인 어린양이 되셔서 헌제사역에 드림으로 단번에 속죄 사역을 영원히 끝내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율법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되게 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게 하셨고 또한 더 이상 절기를 지키지 않아도 되게 하셨고 또한 더 이상 성전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하신 것이기에 폐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려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가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하나된 몸이 되게 하여 각 지체를 삼아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게 하셨으므로 시민법도 폐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율법은 완성으로서 폐지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법으로 변역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새언약'입니다. 그에 따라서 십계명의 율법은 이보다 더 나은 법으로의 변역으로 말미암아 예전의 십계명의 율법보다 더 나은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율법에서 나타내 알게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 요 6:40)에 순종하여 지킬 육체가 없었는데, 그래서 결코 사람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행위를 가질 수가 없었는데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십계명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새로운 법이 시작되게 한 법으로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으로 주어진 약속은 또한 성취가 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용서받는 삶을 사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생명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육에서 나오는 죄성에 의한 악이 여전히 그 힘의 위력을 발휘합니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서 나오는 구속의 은혜가 죄를 용서하여 죽음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왕노릇하게 합니다.
십계명에서 4계명이 폐지되었다고 했습니까? 당연히 폐지되었습니다. 십계명에서 4계명은 십계명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나온 의식법(또는 종교법)과 시민법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실 일을 한시적(限時的)으로 예표했던 것이기에 그래서 그 역할로 그칠 것이기에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요구에 응해 다 이루어 완성하심으로 폐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4계명의 법은 완성된 새로운 법으로서 작용을 합니다. 그것이 곧 믿는 자의 마음판에 새겨지는 성령의 법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가지고 성령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해 나가십니다. 그래서 제 칠일로서의 안식일 법은 폐지가 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새로운 법으로 어느 한 날이라고 하는 하루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참 안식의 개념을 갖는 것입니다. 이 법은 우리의 육체의 힘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지켜나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4계명은 제 칠일 안식일법으로서는 당연히 폐지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안식일법으로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법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계명에서도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가령 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거나 그 이하에서 말하는 법들은(또는 그 이상에서 말하는 법들도) 폐법이 되었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 우리의 부모들을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따뜻한 밥을 해 드리지 않아도 되고 철마다 옷을 갈아 입혀 드리지 않아도 되고 때때로 야외로 모시고 나가서 구경을 시켜드림으로 답답한 마음을 좀 벗어나게 하고 하는 일들을 안 해도 되는 것입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의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오히려 공고히 되어집니다. 어떻게요? 모세의 율법은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으나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노니...."로 말이죠.. 이는 조항에 붙잡혀서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의 성취로서 성령의 행하게 하심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부모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모에게도요. 이는 다른 계명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집니다. 그래서 이 계명들은 말입니다. 시민법에 의해서는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이스라엘 외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이 법을 들이대고서 지킬 것을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진 뒤에서 이스라엘에게 한시적으로 주심에 따라 폐지된 이 법으로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에서 말한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요구되어집니다. 살인하지 말라거나 도적질하지 말라는 법도 그렇구요. 어떤 면에서 더욱 요구되어지는가 하면 율법의 모든 계명을 통해서 드러내신 악한 죄 속에 있는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피의 공효로 용서하여 주어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구원하시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품게 하신다는 까닭에서입니다. 이를 새사람의 성품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에서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유대인에 한해서만 말씀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4계명이 그렇듯이 5계명 또한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되어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5계명은 믿는 자들에게서 지켜져 갑니다. 다른 계명도 그렇구요. 이는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각각 얼마나 지켜 나갔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행하게 하심에 의해서 사랑이 실천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렇게 해서 열 번째 계명에 이르기까지에 담으신 하나님의 뜻인 사랑의 행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이웃에게. 이는 말입니다. 십계명의 모든 계명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됨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서는 율법 아래 놓인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받을 악한 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산 자가 되어서 그 몸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서 말한 4계명은 의식법(儀式法)으로서는 폐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법에 담아 계시하여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과 그에 따른 정신(精神)과 원리(原理)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새로운 법인 새언약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새언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새언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법(儀式法)으로서의 4계명이 폐지되었다는 것과 십계명에서 제4계명이 폐지가 되었다는 것과는 그 개념이 다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담고 있는 법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어떻게 진노하시며 저주를 쏟는 것인지를 담고 있는 법이며 또한 이것은 영구한 법으로서의 성격에서 모법이 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과 성취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십계명에서 4계명의 폐지를 언급하여 다루려면 십계명의 4계명의 폐지가 아니라 이 4계명이 의식법(儀式)으로서 지켜져야 했던 것의 폐지를 언급하고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십계명에서 4계명이 폐지되었다고 말함으로써 또한 사실 십계명 자체가 폐지되어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말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십계명의 율법은 폐지되어 소멸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약속의 복'에 따라서 그 약속한 바가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으로 마음에 새긴 법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마음에 새긴 새 언약입니다." 과연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사실 또한 말해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율법을 돌판에 새겨 주셨던 것을 이제는 마음판에 새겨 주셨다는 것이지 마음판에서 조차 영원히 지워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의 율법이 두 돌비에 새겨진 돌판으로서의 성격이 아니라 마음판의 성격으로 변역이 되었다는 것이죠. 즉, 십계명의 율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언약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마음에 새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의 율법도 폐지되었다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사도 바울이 '새 언약은 돌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에 쓴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고후 3:3)"는 것을 듭니다. 그래서 이를 들어서 "(그러기에) 돌판에 쓴 율법이었던 십계명은 완전히 폐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는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이고 율법의 핵심이었던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여 십계명의 폐지를 계속하여 말하며 이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는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 판에 쓴 것'이 새언약인데, 분명히 그런데, 이것이 십계명의 율법과 다른가요? 그런데 십계명의 율법도 폐지되었다는 견해를 말하는 자들은 마치 다르다는 것으로 여겨지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달라진 것은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이 사람의 마음판으로 바뀌어졌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 판에 새긴 새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새언약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는 자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소위 율법의 대강령으로 다루어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곧 '하나님이 너희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1계명에서 10계명에서 드러내신 온갖 추악한 죄성을 지님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말입니다. 성령을 따라서 십계명에서 말하는 선을 행하는 우리에게 또한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끈 불끈, 불쑥 불쑥 일어나고 또 악하게도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공효가 용서를 베풀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언약의 약속(진노와 저주)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룬 성취(사랑)로 모든 믿는 자에게 이렇게 은혜로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다른 율법(의식법, 시민법)의 모법이요 영구한 법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즉 영원히 존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이 율법을 주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율법을 주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이 율법에서 받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율법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대한 이해와 분별을 갖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율법 조차도 완전히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은 믿는 자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우리 육을 완전히 구속하는 부활을 시켜 주실 때입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천국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모여드는 것이 다 끝났기 때문에 십계명에서 나타내신 율법의 약속과 성취의 관계에서 약속의 개념은 없는 성취의 개념만이 남으므로 돌판으로 된 비석으로서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마음의 판으로 새겨 놓으신 십계명 그 자체도 폐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다음의 문제를 짚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이해 속에서 십계명의 율법만 다루면 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의식법의 율법과 시민법의 율법은 폐지가 되었으니 구약 성경에서 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중요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율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모세의 글은 필요 없고 그 외의 선지자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과 신약 성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만 말하는 말씀만 상대하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에서 율법을 말하고 있는 부분은 읽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에서 의식법이 폐지가 되었고, 시민법이 폐지가 되었다는 것이 곧 그 율법을 말씀한신 하나님의 말씀이 폐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과 신약 성경의 모든 말씀이 각 권이면서도 한권의 성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40여명의 저자(기록자)가 1600여년에 걸쳐 기록하였음에도 그 오랜 세월에서 많은 저자는 동일한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서 이제 어떤 말씀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읽을 필요도 없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요 사람들은 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청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청종하는 사람은 언약의 복을 받을 것이요 청종하지 않는 사람은 언약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인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에는 옛언약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언약에 들어오지 않는 한에는 옛언약의 저주를 면할 수 없습니다.
율법에서 의식법이 폐지가 되고 시민법이 폐지가 되었다고 해서 이 율법을 말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는 더 이상 의식법을 좇아서 신앙생활을 하고 시민법을 좇아서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속죄, 하나님 나라의 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아 여기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있습니다.
의식법의 폐지와 시민법의 폐지와 함께 십계명의 율법의 폐지도 말하며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말하는 자들은 여러 성경 구절을 들어서 근거로 제시합니다. 가령 로마서 6장 15절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7장 6절,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선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어매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어서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으므로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에베소서 2장 14-16절과 골로새서 2장 14절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뜻은 율법으로 인해서 생긴 문제들을 두고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셨는데 율법을 유대인에게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율법이 유대인에게만 주어짐으로 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갈라놓았고 이로 인해서 그들 사이에 벽이 세워졌습니다. 유대인만을 사랑하고 이방인들은 배제시킴으로써 이들 사이에는 강한 적대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때문에 생긴 그 벽을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함께 이방인을 위해서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의문에 속한 계명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도 함께 못박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풀려나게 하여서 무효로 만드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에게 율법을 들이대어서 정죄를 운운하며 죽음의 심판으로 끌고가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을 가지고 이를 빌미로 사단이 고발할 수 있는 틈을 완전히 봉쇄하여 버렸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율법이 쏘는 독은 우리에게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즉, 전혀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풀려나게 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공효로 있게 된 의식법의 율법과 시민법의 율법이 갖는 폐지가 십계명의 율법의 폐지를 몰고 온 것이 아니며, 또한 의식법의 율법과 시민법의 율법의 폐지가 곧 의식법을 말해오고 시민법을 말해오고 한 이 율법에서 계시하여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공효는 언약의 율법인 모든 율법에서 계시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공고히 합니다. 모든 율법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그 율법에서 알게 하여 주신 속죄 사역을 하심으로써 죄에서 구원하시는 용서를 하셔서 이 은혜를 날마다 입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율법은 믿는 자들에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분의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법으로 작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그 의미가 바르게 해석이 되고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새언약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옛언약인 율법은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인간을 정죄합니다. 그러한 인간을 율법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서 제사법을 통해서 알게 하신 속죄의 원리를 좇아 십자가의 피공효를 입혀 주어서 죄를 용서하여 다시는 정죄를 받지 않게 하심으로 율법의 효력이 무효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효력이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다 무능력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인해서 여전히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율법을 그 육체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 죄를 스스로 드러내게 하시는 법으로 작용을 하여서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율법은 그들이 자기 육체로 행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을 확증시켜 주는 증거입니다. 그 누구도 이 율법 앞에서 입을 열어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설사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한 부자 청년도, 그리고 율법사조차도 예수님께서 '과연 그런가?' 하며 제시한 율법 앞에서 입을 다물고 추켜세웠던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하여 주시는, 그래서 영생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온전한 지킴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인데 말입니다.
율법은 말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고 책망하며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될 때까지 율법의 보호와 감독을 받아 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죄 아래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설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되기까지는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갈 3:24, 교사이며 안내자)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게 되면 더 이상 자신들을 감시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율법이 필요가 없게 됩니다. 몽학선생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몽학선생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온 그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인 모세의 율법에서 약속하시고 있는 구원과 그로 말미암은 생명의 왕노릇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쓴 계명을 자기 육체로 폐하였다거나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였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십계명의 율법의 폐지를 말하고,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말함으로써 율법 폐지론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으로서의 모세의 율법에 대한 몰이해 또는 곡해에서 되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심각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로 인해서 얼마든지 신앙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의도와는 다르게 가져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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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스크랩 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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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제 정리가 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