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의사회 연수교육>
‘시인으로 사는 의사의 삶’ 강의노트를 대신한 짧은 메모
광주보훈병원 내과 김완
부족한 저에게 광주시의사회 연수교육에 ‘시인으로 사는 의사의 삶’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요청 받아, 개인적으로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첫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의 출판을 광주시의사회의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고, 또한 광주시의사회의 공식 연수교육의 일부로서 시간을 할애해 주어 감사드립니다.
‘문학과 의학’ 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화두일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학’과 ‘의학’이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의 영역이 어떻게 나란히 놓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여기에는 문학은 인문학이고, 의학은 자연과학이라는 전통적인 학문 분류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즉, 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고, 의학은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냐는 의문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조금만 바꿔보면, 문학과 의학은 서로 창조적인 만남과 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내과의사 뿐 아니라 모든 의사들에게 친숙한 닥터 Tinsly R. Harrison의 내과학 교과서 첫 장에"art of medicine" 이란 말이 나옴을 기억할 겁니다. 미국 앨라배마버밍햄(University of Alabama Birmingham)대학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Dr. Tinsley R. Harrison 교수의 동상이 그곳 의과대학에 있음을 보고 부러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해리슨 내과학 교과서를 처음 접했을 때 첫 장에 나오는 '의학은 예술이다(=art of medicine)' 라는 글귀는 20대 젊은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아 제가 내과를 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50대인 지금도 제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후 예술(art)의 어원이 라틴어 ars와 희랍어 techne의 합성어 이며 원래는 '기술' 이라는 의미에 가까웠고 오늘날의 '예술' 개념을 지니게 된 것은 18세기경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우선 문학과 의학은 그 궁극적 목적에서 일맥상통합니다. 의학의 목적이 인간의 육체적 질병을 직접적으로 치유하는 것이라면, 문학 또한 인간의 영혼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을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문학은 의학처럼 인간의 육체적 질병을 ‘직접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린 환자나 교통사고를 당해 위급하게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에게 세익스피어나 푸슈킨의 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환자에게 당장 그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상처와 질병으로 인한 직접적인 통증을 완화시킬 수는 없지만 비인간화된 영혼에 구원의 빛을 던질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학의 ‘간접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문학가(=시인이나 소설가)는 메스를 들지 않는 훌륭한 의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문예부 시절부터 개인적인 감정만을 토로하는 시가 아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 고통 받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희망을 줄 수 있는 시,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담는 시를 쓰려고 하는데, 시를 쓸 때마다 매번 말할 수 없는 말의 큰 한계에 부딪혀 낙담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파스테르나크의 소설『닥터 지바고』를 통해서 의사이며 시인인 한 인간의 이중적 정체성이 파스테르나크가 보여주고자 한 삶의 진리에 대한 상징에 다름 아닐 것 입니다. 삶과 죽음, 역사와 개인, 전쟁과 사랑, 두 사랑(아내와 연인 라라), 두 이데올로기(혁명과 반혁명), 글쓰기의 두 장르(시와 산문), 본성과 현실, 사회와 개인에 대한 동시적 충실성은 다시 말해 사회적 인간 Homo politicus과 사적 인간 Homo privatus으로서의 양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수용한 인물 지바고야말로 ‘살다’라는 어원에서 비롯된 이름 그대로 ‘삶’ 그 자체의 체현인 셈입니다. 왜 소설의 제목이 ‘시인 지바고’가 아니라 ‘닥터 지바고’ 였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시인 파스테르나크가 소설을 썼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말년의 파스테르나크는 좀 더 단순한 언어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산문으로 ‘낯익은 것의 위대성’을 낯익은 것들의 일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은 시가 아닌 일상의 주제가 되어 삶과 죽음 앞에 가장 가까이 선 한 의사의 문제로 남겨지는 것, 그래서 시인으로 이름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시로써 살게 되는 것” 이 과정을 말하기 위해 파스테르나크는 ‘닥터지바고’를 소설의 주인공이자 제목으로 삼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광주시의사회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닥터 지바고'. 아내와 예전 집에 머물려고 갔을 때 책상 위의 먼지를 손으로 닦아내는 장면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의사와 시인으로서 너의 삶에 대해 잘 이해되도록 잘 썼다. 사랑한다.
석구형,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