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버이에게 불효한 사람이 나라에 충성할 수 있다고만는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요지음 충효에 대한 캠페인이 일고 효의 정신과 윤리의식이 있음은 그만큼 불효 불충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증거일 것입니다.효와 충은 강조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내일을 거머질 청소년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까닭에 주로 교육에 종사하고 있거나 관심 깊은 분들의 시급한 사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어버이날만 효를 상기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효에 대한 캠페인이 일어야만 새삼스러운 효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진대 어버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는 세상 ‘효는 온갖 행위의 근원이 된다’는 한 말에 동, 서양의 누구라도 수궁할 것입니다.
《효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서 효의 정신과 윤리의식의 동양사회의 현실》
사회에서 효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해 왔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우리 사회 특히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효를 많이 말하고 가르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중국이나 북한은 사회주의 정책을 펴는 동안에 효라는 가정윤리를 약화시켰고 일본은 우리보다 일찍 서구화 문명을 받아드림으로 전통적인 가정윤리의 변화를 가져왔슴니다.
보수적인 사고의 틀을 지키려는 지도층의 효의 정신적 울타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효의 사상이나 어울리는 움직임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외국 어디에 가도 우리와 같은 효 문화가 보이지 않으며 효가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으로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타당한 이유를 자성(自省)해 보는 자세가 강해지고 있슴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효의 사상》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보다는 국가적 삶이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세계화 풍조가 우리를 국제화의 무대로 손짓하고 있는데 농경사회의 가족문화 유산인 효를 어디까지 끌고 갈수 있는가? 하는 회의감 때문입니다. 세계화와 역사는 개방적이며 진취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효가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져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효의 근본적인 개념과 기본은 언제나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동양의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근원적인 대화가 있고 효를 받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 가정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동,서양이 통하는 가치의식으로 되어 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부모와 자식관계를 평등관계보다 유교적인 상하관계로 이끌어 갈려는 노력이 정당한가 등을 문제의식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교적인 상하관계로 이끌어 갈려는 노력이 정당한가 등 》
특히 서구사상과 기독교 정신이 유입되면서 미래지향적인 가정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가족관계로 위상를 평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현재의 효의 정신이 그 임무를 다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도 제시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그리고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 물어보십시요.
지금 우리사회의 많은 병폐가 우리의 고유사상인 효의식 교육이 건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책임이 부모들에게 있는가 아니면 자녀들에게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부모가 제구실을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가 더 많지 않은가!. 또 학교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슴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왕조 518년동안 유교(성리학) 전통을 이어왔으며 그것이 현대까지 교조주의적 성격을 뜨면서 효에 대한 관심과 교훈은 여전히 계승되어 왔슴니다.
《우리는 효사상을 시대에 맞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맞도록 우선 인간이 되고 》
가정을 다슬리며 국가를 다슬리면 평화가 된다는 사상으로 수신이 최고 디딤돌이며 제가를 하며 국가를 다슬린다는 말로 자기의 가슴속에 파뭍쳐 있는 제가가 우리 세대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사명입니다.현대 사회의 무진장으로 발전하는데 옛 농경사회의 유산 같은 수직적 효 문화가 현대사회에 맞게 수평적 효방식을 개발하여 야 백세 시대에도 맞고 그 문화의 정수을 가족적이나 사회적으로 발전할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의무와 책임은 묻지 않고 자녀들과 젊은 세대들에게만 효를 강요한다면 원만한 가정과 가족관계가 일어 질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드릴 수 있다면 전통적이며 인습적인 효의 개념에도 오늘날의 현실에 맞는 상당한 발전적 변화가 요청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사회 지도층인 시욱지 지성인들이나 관련 교육자들도 못다하는 솔선수범을 하여야 하나 우리의 현실은》
이것은 자기 아들딸에게는 ‘효도를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내 부모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다운 부모는 자녀들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효는 언제나 말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존경도 받지 못하면서 감사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효를 말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형식적 규범에 치우쳐 우리를 위선(僞善)대상으로 이끌어 갈수도 있슴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소망스러운 효의 열매를 거두일은 무엇인가.
진정한 효는 인류가 존속하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며 또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값지게 살며 행복과 성공을 찾아 누린 사람들은 모두가 효를 따르며 지킨 인물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생존과 삶의 의미 즉 효와 사랑을 부모로부터 물러 받고 그것을 발전시켜 후손에게 물려 주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 그 일이 거듭되는 동안은 인간적 삶의 내용이 풍부해지며 정신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이때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뜻을 찾아 실천하는 것부터 효라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효는 행동이자 실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우리나라 현재의 노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여가를 보내고 있는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우리네 노인끼리 모여 노인정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화투를 치거나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슴니다. 그것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시 말입니다.
막말을 부끄럼도 없이 예사로 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우리도 이제는 이기심이 적은 사회 봉사활동에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립할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국가 안전차원에서 범 국민적인 차원에서 개선하는 조치가 작금의 세태는
요지음 부모가 건강에 조그만한 이상이 있을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져는 것이 현대판 고린장으로 처리하여 孤獨사하는 것이 예삿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작한다는 말이 "산에나 게시나 집에 게시나 다름 없는데 하는 풍토를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의식개량의 조성하여야 할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러고도 東方禮儀之國이라고 말핤 수 있는 지 우리 주변이 아닌 나신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