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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공동선> 2014년 1~2월호에 실린 글
치우침을 통해 본 공동선
프롤로그
전라도 광주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 초청되어,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들과 부모를 위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노래로 풀어보는 교육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강의의 내용은 초,중,고교의 교사연수나 학부모연수에 초청되었을 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 부적응의 원인을 살펴보면 학생 당사자보다 부모에게 있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관심은 오~예(Yes)! 간섭은 노우(No)!’라는 자녀들의 불문율을 부모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강원대학에서 있었던 힐링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문학이 주는 삶의 치유>라는 주제로 진행된 후 식사 겸 뒤풀이 자리에서 함께 참석했던 교수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힐링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 대학의 여러 캠퍼스에서 교수나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찬가지다.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나로서는 문제의 책임이 학생들에게 있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교수들이나 학교운영 책임자들에게 있다고 보고 있기에, 그런 내용의 강의를 들으면서 학생들이 책임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을 힐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그 자리에 참석한 교수들이 그런 의도를 알아차림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이 힐링을 누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힐링이 ‘달라짐’으로 까지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거나 도태되었을 것이며, 달라질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편식장려
삼남매를 낳아 길렀다. 물론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이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첫째는 아들 이삭이고, 둘째는 딸 이슬인데 두 아이를 합하면‘삭슬이’가 된다. 그래서‘싹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막내인 딸 이랑이까지 더하면‘삭슬랑’이 된다. 이 삼남매는 생김새부터 성격 그리고 취향까지 모두 너무 다르다. 또한 싫어하는 것도 다르며, 경우에 따라 치우치기도 한데 아마도 아빠인 내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편견과 편향 그리고 편협한 사고에 관한한 나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본인이 잘 모르고 사는데 내 스스로 알아차릴 정도이면 무척 심한 편이다.
이삭은 호박과 작은 열매에 대한 편견이 있다. 크기가 작은 열매를 먹지 않는데 아마도 영유아기 때 가까이 살면서 육아를 도왔던 내 누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누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된 후까지 늘 큰 과일을 선호하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이 편견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닌데 영양소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포도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라 여겨진다. 또 하나 호박은 국을 끓이거나 생선찌개에 넣으면 먹는데 호박 자체를 삶아서 그냥 먹는다거나(단호박의 경우) 호박으로 죽을 끓이면 먹지 않는다. 왜 안 먹는지는 본인을 포함하여 아무도 모른다. 또한 그것을 안 먹음으로써 타인을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안 먹을 뿐이다.
이슬이는 파를 먹지 않기에 음식 앞에 앉으면 국이나 찌개에서 파부터 골라낸다. 이랑이는 콩이나 팥을 먹지 않기에 엄마가 공들여 지은 현미잡곡밥에서 콩만 쏙쏙 골라내고 먹는다. 이른바 편식이라는 이런 음식 습관 또한 아빠인 내게서 물려받은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꾸준히 편식을 하고 있고, 편향적인 음식취향이 독특한 범위를 벗어나 가히 엽기에 가까워서 늘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어릴 때부터 섞인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가능하면 음식을 원재료에 가까운 상태로 먹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찌게나 국을 잘 먹지 않으며, 이유 없이 처음부터 섞어서 먹는 김밥이나 짬뽕 같은 음식은 곁에 가는 것도 싫다. 여러 가지 재료가 입안에 들어가서 한꺼번에 씹히는 상상을 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따로 먹어도 각각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왜 처음부터 잡탕을 만들어 먹는지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간다. 김밥의 경우,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면 먹는다. 그래서 내 어머니는 김밥을 말 때 내 몫으로 따로 말아주셨다. 결혼 후 아내는 한 동안 그렇게 해 주더니 평생 그럴 수는 없다며 어느 날부터 따로 말아주는 특혜를 멈추었기에 원하면 내가 따로 말아먹어야 한다.
이런 독특한 취향 때문에 살아오면서 무척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96세로 돌아가신 내 할머니는 그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무척 공을 들였지만 결국 장손과 사이만 나빠진 채 포기하셨다. 나 또한 조용히 먹지 않을 뿐 따로 요구를 하거나 불편을 야기 시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런 편식 습관을 지녔다는 사실 자체가 함께 사는 사람에게는 불편과 부담을 준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소탈하셨으니 아마도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 때문에 어머니의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한 데서 기인한 편견이 아닌가 짐작된다. 동생에게 엄마의 젖을 뺏긴 채 다른 이유식으로 강제 대체된 아기는 그 이유식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음식은 본인의 마지막 검열을 통과해야 된다는 까다로움이 생겨났을 수 있다고 본다. 쉽게 말해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내면아이에게 각인되었을 것이고, 그러니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식이 성장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런 삶의 경험을 지닌 나는 다른 사람의 편식에 대해 너그럽다 못해 장려 혹은 예찬에 이른다.‘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옛날처럼 음식이 귀한 시대도 아닌데 왜 먹기 싫은 것까지 먹고 살아야 하느냐?’‘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기에도 세상은 충분히 복잡하며 어딜 가나 넘쳐나는 것이 먹거리이다.’ 이런 지론을 펴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편식장려’라는 표어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러니 직접 육아를 책임지고 있으며 힘들게 음식을 만들어 늘 어렵게 먹여야 하는 아내의 고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지원군이어도 시원치 않을 남편이‘편식장려’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오히려 훼방꾼을 자처하고 나서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밥상을 앞에 두고 음식 때문에 세 아이들과 씨름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전의 날이 왔다. 아마도 막내 이랑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03년으로 기억한다. 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이것 또한 아무 때나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는 내 편향의 주특기) 내가 그날도 늦잠을 자고 있는데 식탁에 앉은 이랑이와 엄마가 음식 때문에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엄마. 왜 콩을 이렇게 많이 담았어. 난 콩 못 먹잖아~~”
“못 먹긴 왜 못 먹어! 니가 안 먹는 거지. 다른 사람은 다 잘 먹는데. 콩이 얼마나 영양가가 높은지 알어? 먹기 싫다고 콩을 계속 안 먹으면 영양실조로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군말 말고 어서 먹어. 자꾸 아빠 쪽 보지 말고. 아빠가 편들어 주지도 않지만 들어줘도 소용없어. 오늘은 반드시 다 먹어야 해.”
“먹어도 목에서 안 넘어가고 토 나온단 말이야. 먹기 싫고 넘어가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먹어~~~”
“다른 사람은 다 잘만 넘어가는데 왜 너만 안 넘어 간다는 거야. 니가 일부러 안 넘기는 거지.”
“그게 아니라니까. 엄마 말 듣고 아무리 넘기려고 애를 써도 안 넘어가. 그리고 엄마 나 학교 늦었어. 그냥 밥 안 먹고 갈 거야.”
“콩 안 먹으면 학교 못 가. 오늘은 결판을 내야 되겠어.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듣는 애가 학교에 가서 뭘 배우겠니? 자라서는 뭐가 되겠니? 오늘은 꼬옥 다 먹어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 아주 오늘 그냥 뿌리를 뽑을거야.”
“이제 더 늦으면 지각이라니까~~”
“지각 같은 거 신경 쓰지 마! 콩을 먹지 않겠다면 넌 오늘 결석이야!”
엄마의 서슬도 만만치가 않아서 요즘 인기 절정인 개그콘서트의‘전설의 레전드’에서 나오는‘확~그냥! 막 그냥! 여기저기 막 그냥’에 버금갔다. 정말 가슴이 아팠지만 그럴 때 나서거나 끼어드는 건 금물이다. 오히려 일이 꼬여서 해결이 더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간절한 이랑이의 눈빛에 녹아서 내 견해와 소신을 밝힌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면 이랑이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의기양양해 하며 콩을 쏙쏙 골라낸다. 오늘은 애써 외면하며 다시 잠들었다 깨고 보니 둘 다 없다. 누구의 승리인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볼 일 보러 나갔을 것이고 이랑이는 학교에 갔으리라.
무심코 신문을 집어 들었다가 특별한 칼럼을 보게 되었다. 미국서 의학자들이 30년 동안 편식연구를 한 결과였다. 첫 번째 연구는‘왜 편식을 하는가?’에 관한 것인데 결과는 놀라웠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99.8% 어머니의 태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편식뿐만이 아니라 음식물 씹는 소리를 낸다거나 다리를 떠는 것을 비롯하여 반듯하게 앉지 않고 몸을 뒤틀고 앉는다거나 한 쪽 다리를 꼬거나 의자 위로 올려놓고 앉는 것 등 자세나 습관까지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런 자세나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어머니의 태에서 이미 만들어졌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쉽겠다.
또 하나의 연구는 그렇게 편식을 한 결과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편식의 결과는 결코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한다. 편식으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게 되면 우리 몸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른 음식에서 그 영양소를‘과잉섭취’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콩을 먹지 않아서 영양소에 결핍이 있게 되면 다른 야채나 과일에서 그 영양소를 우선적으로 섭취를 해낸다는 것이다. 놀라운 인체의 신비여! 그러므로 편식 때문에 영양을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며, 굳이 편식에 관한 책임소재를 따져 물어야 한다면‘어머니의 태’라는 것이다. 와! 미국에 사람이 많이 산다는 것과 잘 사는 나라이므로 별별 연구를 다 한다는 것에 대해 특별한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 칼럼을 곱게 오려 식탁 유리 밑에 넣어두고 어서 아이들이 돌아와서 이‘복음(Gospel福音기쁜소식)'이 전파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초,중,고 순으로 아이들이 돌아왔다.
“이랑아. 놀라지 마시라~! 아니 충분히 놀라시라~~! 너에게 복음을 전하노라. 너는 오늘부터 콩과 팥이 들어있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됨을 엄숙히 선포하노라. 그래도 너의 영양 상태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으며 굳이 그 이유를 따지자면 네 어머니의 태에서 결정되었으므로 전혀 네 탓은 아니니 오늘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콩을 골라내고 더욱 행복한 마음으로 편식을 누리거라~~!”
그러면서 참고로 해당 칼럼을 한 번 거룩하고 성스러운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반색을 하며 감격해하는 아이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이어서 이슬에게도 비슷한 선포식이 거행되었다.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억지로 파를 먹어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네가 파를 쏙쏙 골라내는 태도가 전혀 네 탓이 아니니 더욱 더 날렵한 손놀림 더하기 젓가락놀림으로 우아하게 파를 골라 내거라. 맛없어 먹기 싫은 파를 아무런 저항 없이 먹고 있는 수많은 군중들의 우매함을 조롱하면서 승리의 여전사가 되어 너의 음식 레시피 사전에서‘파’라는 식물을 아예 빼 버리거라. 너와 비슷한 음식취향을 지닌 수많은 후예들이 너를 뒤따르리라~~. 여기서 잠시만요. 우리 이슬공주니~임. 집중 한 번 하시고 가시께요. 그 동안 왜 엄마가 그토록 너에게 파를 먹이려고 애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오해가 없길 바란다. 우선 의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밝혀지기 전이었으니 엄마는 딸의 영양 상태에 불균형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직접 몸으로 너희를 낳지 않은 아빠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극한 모성애의 발로이다. 또한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정성들여 만든 음식 중 특정 재료를 골라냄으로써 타인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될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거라.”
이삭에게까지 거룩한 복음선포식을 마치고 나니 아내가 성당에서 돌아왔다. 아내에게도 그 칼럼을 읽어주고 애들에게 전파한 복음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애들은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아무것도 먹지 않을 권리를 얻었으며, 그러 인해 어떤 장애나 어려움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예상대로 아내의 반응은 냉랭했다.
“체! 세상이 앉아서 연구한 대로 혹은 이론대로 돌아가면 얼마나 살기가 쉽겠어. 정말 할 일없는 사람들이 별 연구를 다 하고 있네. 열심히 잘 먹을 방법을 연구해도 시원찮은데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네. 가뜩이나 모든 성격이나 취향이 완전히 다른 세 아이, 아니 당신까지 네 아이를 먹이고 입히면서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생트집을 구실삼아 방해만 하고 있네. 몰라~~! 오늘부터 애들 당신이 다 키워! 뭘 먹이든지 뭘 입히든지, 안 먹어서 굶어죽든지 병 걸려 죽든지 내 책임은 아냐! 난 몰라!”
우리에게 해방의 기쁨을 알려준‘기쁜소식’을 아내는 거실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그러나 6개월 쯤 지난 어느 날. 나는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이슬이가 파를 먹고 이랑이가 콩을 먹고 있었다. 자기 때문이라는 부담감에서 해방되니 콤플렉스가 없어져서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용히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갔다. 이삭은 여전히 작은 열매와 호박을 아직까지 먹지 않고 있다.
Let it be(그냥 냅 둬)!
우리가 바라볼 세상을 우리의 노래에 담아서
온 세상 사람들 가슴에 안겨 주고 싶어
세상에 태어난 그 모습으로 기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착하게 보이지 않아도 사랑받는 그런 세상을 만나고 싶어
남들의 시선은 별거 아냐. 이 모습 이대로 당당할 수 있다면
우릴 봐요. 이 모습 이대로도 행복하게 노래하며 살잖아요.
세상에 태어난 그 모습으로 기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사랑받는 그런 세상을 만나고 싶어
우리가 바라볼 세상은.
(김정식 사/곡 <안 고친 여자들> 노래 「우리가 바라볼 세상」가사전문)
인성교육에 관하여 교육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착하게 만들려고 인위적으로 애를 쓰면 쓸수록 사람은 더욱 질이 나빠집니다. 사람을 착하게 만들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 사람을 ‘기쁘고 자유롭게’해 주면 됩니다. 특별히 종교단체 지도자들에게 권고합니다. 사람을 착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더 나빠질 뿐입니다.
보스톤에 초청강의를 갔다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범죄심리학> 전문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 또한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교정사목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1975년부터 38년째 교도소를 드나들면서(?) 쌓인 나름의 견해가 있었고, 인성교육에 관한한 관심도 지대했다. 그런 우리가 서로의 견해에 완전하게 일치를 이룬 내용이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바뀔 수 없고, 다만 사랑과 감동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며, 그 사랑과 감동이 지속된다면 오랜 기간이나 어쩌면 영원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뿐, 본질적으로 그 사람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나이 20대 말에 그런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께 심심찮게 설파한 신흥종교에 관한 교리가 있다. 인간의 원죄는 ‘이기심’이므로 내가 새로 만들고 싶은 종교의 이름은 ‘이기심극복교’라 하고 교리는 딱 한 줄인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이다. 형님처럼 가깝게 지내던 어느 수도회 신부님께서 교리가 너무 쉽고 단순명료해 마혹(?)적이라면서, 종교법인체로 등록만 하면 신부증(神父證) 반납하고 바로 입교하시겠다고 농담을 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범죄나 악행 또한 병으로 간주한다. 일시적인 간단한 병도 있지만, 치유가 몹시 어려운 병도 있고, 난치나 불치병도 있다. 이런 병에 대처하는 다양한 의술처럼 인간 내면의 병으로 간주되는 범죄나 악행에도 ‘치유’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교도소에서의 인성교육이나 교화교육이 사라졌다. 대신 사랑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수용자들은 본인의 선택에 의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화나 예술 혹은 인문학을 통한 치유체험’이 주를 이룬다. 가끔씩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소개되는 미국이나 서구사회 교도소의 자유분방한 상황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는 이유이다.
사람이 착하기를 바란다면 ‘기쁘고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데, 자유에 관하여 쌩떽쥐페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백화점에 가서 내 돈 내고 내 맘에 드는 물건을 마음대로 골라 살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유는 ‘가장 자기다운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부가 물고기를 낚고 있을 때 자유롭고, 조각가가 조각을 하고 있을 때 자유롭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다운 일을 할 때 자유롭다.’
자기 멋대로 살도록 내버려둘 때 기쁘고 자유로우며, 그러면 착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부모나 교사를 포함)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일을 가장 어려워한다. 서양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 거 같다. 1960년대 젊은이들에게 신흥종교 교주 이상의 추앙을 받았으며, 오늘 날 그들의 음악을 클래식의 범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비틀즈교의 교리는 무엇인가? 바로 Let it be!(그냥 냅 둬!)이다. 오죽했으면 그 한 줄의 교리를 신앙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지구촌에 ‘내버려두기’ 광풍이 몰아쳤을까?
내 멋대로 사는 세상
그래도 낙오되거나 실패할 수도 있기에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어른들에게 교육 혹은 가르침에 관한 본질적인 내용을 전하고 싶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의해서 주장된 상기설(想起說)에 의하면 가르침(교육)이라는 영어 Education(교육)의 어원인 라틴어 에듀까레(Educafp)의 본디 뜻은 ‘집어넣어 주는 것’이 아닌 ‘끄집어내어 주는 것’이므로‘교육이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이끌어내는 것’이기에, 많은 경우 교사의 역할이 ‘내버려두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 어른들께 무라까미 하루끼가 말한다. ‘설명을 안 해 줘서 몰랐다면 해 줘도 모른다.’
아내가 종종 하는 하소연이다.
“당신처럼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은 첨 봤어.”“어, 그래? 정말 그렇게 보여? 인생 성공이네? 내 인생 최고의 소망이 내 멋대로 사는 건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봤다면 맞는 거야. 행복한 일이네.”
“문제는 당신만‘제 멋대로’사는 것이 아니라 애들도 셋 다 모두‘제 멋대로’ 살고 있으니 나만 힘들어 죽겠다니까.”
“아니 애들까지 다 성공을 했다구? 근데 뭐가 힘들어? 당신도 당신 멋대로 살면 되잖아.”
“알았어. 나도 내 멋대로 살거야. 집안 꼴이 뭐가 되는지 보자구. 정말 쟤네들이 커서 뭐가 될는지 몰라.”
“어른이 되겠지 뭐.”
“어떤 어른이 되느냐가 문제지.”
“뭐가 그렇게 문제가 많아? 나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글쎄 그게 문제라니까? 당신처럼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 될까봐.”
“아니 내가 내 멋대로 살았다고 해서 남을 해친 적이 있어 짓밟은 적이 있어. 남을 돕고 위로했으면 했지 남을 힘들게 한 적은 없잖아?”“그건 그렇네. 그 말은 맞네.”
“그러길래 뭐가 문제냐구? 내 멋대로 살고 싶어서 내 멋대로 사는 건데. 잘 생각해 봐. 요즘 같은 세상에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인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쉽냐구.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세상에서 내 멋대로 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축복 아닌가?”
프랑스의 사상가 폴 부르제 는‘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나중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내 버려 두기’에 관하여
내버려 둔다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형제들과 나를 맡았던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셨다. 대부분 나를 내버려 둬 줬다. 그렇게 가까운 내 주변에서 삶의 스승들이 모두 매번 나를 내버려 둬 줬다면 그 원동력은 내게 있다고 봐야한다. 이를테면 상기설을 신봉하면서 내버려 둬도 내 안에 끄집어 나올 것이 많다는 신앙에 가까운 신뢰와 확신을 스스로 지녀야 한다. 내버려 둘 때 가장 기쁘고 자유로우며, 그럴 때 선에 대한 갈망이 우러나온다는 교리를 꼭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들여다본다. 타고난 것이나 배우고 익히느라고 기울인 것에 대비해서 이토록 효율 높은 삶이 또 있을까? 특별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무엇도 열심히 한 기억이 없다. 따로 음악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작곡과 연주가 가능했다. 특별히 혜안을 지닌 내 생애 단 한분의 스승께서는 내 멋대로 음악을 하게 내버려두는 배려를 함으로써, 배우지 않고 내 안에서 나온 것만으로 작곡을 하여 독특한 자기표현이 가능하게 도와 주셨다. 물론 간섭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를 하셨다. 또한 글쓰기 지도를 받지 않았어도 글을 곧잘 썼으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가 과정을 거치거나 자격증을 따 본 적이 없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잤으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기쁘고 자유롭게 했을 뿐이었고, 그러다 선의지가 생긴다면 타인에게 나누고 베풀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억지로 하지는 않았다. 가식과 위선이란 내 인생 사전에서 빼고 싶은 낱말이다. 그러므로 가만히 내버려 둠으로써 에듀까레(끄집어내기)가 극대화된 경우임에 틀림없다. 모두가 나를 내버려 두었고, 나 스스로 내버려 두어도 된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넣어줄 수 있는 것보다 끄집어내줄 것이 더 많다는 상기설을 깊이 신뢰하였고, 내버려 두어도 아이는 내 의지로만 커나가는 것 아니라 세상과 이웃이 함께 키운다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또한 세상과 이웃 안에 하느님 스며계시기에 나보다 세상을 더 신뢰했다. 세상 안에 하느님 와 계시기에 하느님 나라(天國)는 지금여기이며, 내 아이들을 그 세상에 맡긴 채‘내버려둘 수 있다는 것’은 그대로 나의 신앙이 된다. 그래서 삭슬랑에게 종종 이메일 편지를 썼다.
“어떤 간섭이나 반대도 하지 않은 채 너희들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고 싶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어른들이 너희들에게 무엇이든 집어 넣어주려고 안간힘을 다할 것이다. 나이가 차면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겠지만 책임이란 지고 싶다고 져지는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도 나 말고는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성인이 되었으니 독립해야한다는 의지를 굳이 갖지 않아도 독립하고 싶으면 독립을 하는 것이며, 그러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독립을 하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독립하고 싶지 않거나 독립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또한 독립했다가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와도 된다. 늘 기다리고 있다가 너희들의 의지처가 되어주고 싶다. 하느님이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처럼 아빠도 끝까지 함께 해주고 싶다. 다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될 때까지의 얘기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빠가 힘이 되어주고 격려해 줄 수 있을 때 해야 할 일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보거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자신의 능력이 극대화 되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쁘고 자유로우며 그것이 행복이란다.”
에필로그 - 다시 치우침에 관하여.
이렇게 글을 써 놓고 내가 읽어 봐도 나는 정말 한 쪽으로 너무 많이 치우친 사람인 거 같다. 물론 치우침이 없다는 것이 좋은 덕목(德目)일 수 있다. 이른바 중용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매우 약하고 여린 존재이다. 그러니 모두의 취향이나 성향을 획일화 시키고 일반화 시키려고 애쓰기보다 서로의 치우침을 다름으로 수용하려할 때 공동선과 평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 치우침이 다른 이를 해치거나 짓밟는 것이 아니라면 괜찮고, 다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면 애교 정도로 서로 수용해 주면 좋겠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며,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치를 이룰 때 아름다움이 배가된다는 것을 무지개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모두가 똑 같아질 것을 바란다면 무지개를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편식, 편애, 편협, 편견, 편향 등 모든 치우침을 예찬하고 싶다. 어차피 세상은 제 멋대로 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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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휴....
편식 이야기에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가
그냥 냅둬! 에서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소공동체에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내 생각을 너무나 강요하고 산 것 같아 반성되는데
40줄 넘은 이 나이에 고치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