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오소재-노승봉-두륜산(가련봉)-두륜봉-대둔산(도솔봉)-닭골재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실제거리 15.0Km(도상거리 12.4km) , 하산 1.4km
- 산행일시 : 2024년 8월 7일(수) 09:30~19:20(9시간 50분)
★ 기록들
7시 25분 해남행 시외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하차 후 9시 정각, 남창행 군내버스로 갈아탔다. 버스기사는 오소재 쉼터에 나를 부려주자마자 휑하니 사라졌다. 사진을 찍느라 오소재 쉼터를 왔다 갔다 하자 오기택의 "구름도 울고 넘는...." 고향무정 노래가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가수 오기택은 해남출신이다.
들머리는 동백나무 숲이 그늘을 이루고 흙길이라 오르막이라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222봉에 가까이 다가가자 조릿대로 바뀌고, 듬성듬성 바위가 나타나더니 큰 바위가 등장한다. 이어서 설악산 저항령과 황철봉 구간을 축소한 듯한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산은 높지 않지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11시 3분, 노승봉에 도착한다. 시야가 확 트이고 아름다운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데크를 따라 내려섰다가 올라서자 가련봉(703m)에 이른다. 가련봉은 정상석이 소박하지만 두륜산의 최고봉이다. 소박한 정상석이 훨씬 보기좋다. 산 같지도 않은 산에다 혐오스럽도록 거창한 정상석을 갖다 놓는 경우가 많다. 어울리지 않은 큰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애초에 산은 정상석을 원하지도 않았다.
만일재로 내려선 다음 나무데크를 따라 올라가다가 두륜봉 직전 그늘진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을 꺼내 밥에다 물을 붓자 이젠 더 이상 마실 물이 없다. 오늘도 32도가 넘는 후덥 지끈한 날씨라 식수소비가 많다. 얼음덩어리만 남았고, 얼리고 온 커피나 미숫가루도 아직 녹지 않았다.
12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내려서다가 통제구역으로 들어갔다. 마루금은 대둔산 넘어 오소재까지 통제구역이다. 본격적인 시련의 시작이라고 봐야한다. 잡목과 조릿대는 헤쳐나가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명감(망개, 청미래)은 다르다. 분명한 것은 최근에 이곳을 지나간 사람은 나 혼자라는 점이다. 올봄 명감(망개, 청미래) 새순이 자라 탄탄한 줄기로 성장하여 마루금을 저인망 그물처럼 포위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명감은 잎사귀, 줄기에 뿌리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약재지만 산꾼에게는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훼방꾼일 뿐이다.
13시 54분 산불감시카메라탑에 도착했다. 그 뒷쪽에는 도솔봉 정상석이 위치해 있다. 물론 정상석이 있어도 진짜 정상은 KT통신탑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솔봉 정상석 옆에는 선은지맥 분깃점 산패가 보인다. 잡목과 풀숲에 덮혀있는 산패를 보자 오늘 같은 여름날은 도저히 헤쳐나갈 엄두가 안 난다. 연화봉에 이어 혈망봉과 향로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지만 그마저도 풀숲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14시 10분, MBC 중계탑 펜스 앞에 이르렀다. 좌측으로 우회하는게 바람직하다. 펜스를 따라 불과 몇 발자국 걸어갔을 뿐인데, 펜스 밑부분에 충분히 몸뚱이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개구멍이 보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편하게 중계탑과 KT통신탑을 넘을 수 있다는 생각했다. 큰 착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MBC 중계탑은 바로 KT 통신탑 입구에서 내려서야 했고, 철조망(펜스가 아니고, 이중 철조망)을 우회하거나 다시 KT 영내로 들어가야 했다. 들어가는 방법은 이외로 간단(?)했다. 아무것도 없는 진짜 대둔산 정상을 밟은 후 이중 철조망을 넘어야 하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다. 철조망을 따라 맨 밑 구석에 이르자 낡은 철문이 보였다. 문을 열자마자 빽빽한 잡목과 억새, 가시덤불이 나를 환영하듯 에워쌌다. 왼쪽으로 돌면서 어렵사리 빠져나와 바위에 올라서자 그 놈들로부터 겨우 해방되었다. 철조망 옆 바위 따라 올라가자 마루금이 보였고, 그늘이 있는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얼린 맥주를 꺼냈다(14:55). 직선거리로는 10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빠져나오는데 무려 45분이나 소요되었다. 암릉구간을 따라 내려선 후 사위가 막힌 308봉에는 16시 37분에 안착했다. 이 역시 1시간 40분 동안 불과 1.7km 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제대로된 암릉구간은 여기서부터 3km 정도 펼쳐져 있다. 스틱도 준비하지 않았고 리찌화를 신고 왔기 때문에 바위를 타고 넘을 각오는 했지만, 커다란 암릉을 보자 멋있다는 느낌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우회길이 있지만 바위를 넘었는지, 아니면 길을 바꾼 것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결국 우회길을 찾지 못하여 410봉, 417봉, 410봉을 전부 리찌로 타고 넘는 상황이 되었다. 410봉을 내려설 때 직벽의 바위를 왼손으로 잡고 발을 디뎠지만 이내 미끌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5m 직벽을 왼손 하나에 의지한 채 몸뚱이가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맨손으로 여유 있게 바위를 오르는 톰크르주(62년생 동갑) 같이 멋있는 모습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목숨을 부지할까 전전긍긍하는 비굴함만 있을 뿐이다. 겨우 오른손으로 더듬거리며 적당한 돌부리를 잡자마자 오른발을 최대한 벌려 나뭇가지에 걸치고 손을 옮겨서 턱걸이하듯이 내려올 수 있었다. 이러한 비슷한 상황은 한번 더 있었다. 내려서고 보니 그제야 우회길이 보였다. 410봉에는 사위가 막혀 있어도 산패도 있고 시그널이 꽤 많이 달려 있지만 더 높은 417봉엔 그야말로 어렵게 오른 대가치곤 무색하게 아무것도 없다.
내려서는 길은 편하게 이어졌으면 월송터미널에서 제대로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리막조차도 호락호락하게 길을 내어주진 않았다. 암봉인 280봉을 우회하자 철탑을 넘어서서 235봉과 230봉 역시 발걸음을 붙잡았았다. 자동차 소음이 크게 들려도 다 온게 아니었다. 봉우리 하나를 더 넘자 그제야 수풀사이로 13번 국도를 빼꼼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19시 20분에야 겨우 닭골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2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휴대폰을 열어 1.4km 떨어진 월송터미널의 교통편을 확인해보니 19시 56분에 영산포 터미널 막차가 올 예정이었다. 시외버스 노선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19시 40분에 도착한 월송터미널엔 19시 20분에 해남이든 광주든 상행선은 모두가 끝났다고 했다. 주변엔 모텔도 식당도 없다. 투덜대고 있을 때 완도행 마지막 버스가 들어왔다. 바로 표를 끊어 승차를 했고, 완도에 도착한 후에는 식당에 들러 내장탕(메뉴가 그것밖에 없다고 해서)으로 배를 든든하게 하고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다음 날 첫차로 목포 숙소에 도착하자 거의 점심때가 되고 있었다.
★ 에필로그
이번 구간은 산행거리가 짧기 때문에 늦게 출발해도 오후 5시에 끝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런데 잠목과 가시덤불이 진행을 더디게 하는데다 암릉구간을 오롯이 리찌산행하게 했다.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무탈하게 하산할 수 있게 된 것을 천지신명께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다. 월출산 사자봉에서 안개비에 젖은 암릉구간을 오를 때는 로프를 제거한 공단을 엄청나게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번 구간은 계절을 잘못 선택한 내 탓이자 내 팔자다. 아마 가을이 깊어지면 이 구간에 창궐했던 가시덤불과 잡목은 풀이 죽고 마루금이나 우회로가 선명하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진행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7구간은 닭골재부터 땅끝까지다. 원래 계획은 비록 2008년도에 이 구간을 완성했더라도 한번 더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그 기록은 공개된 카페에 올라와 있고, 여름날 6구간과 같은 비슷한 산행을 하기가 두려워서 한번 더 진행하는 것을 취소하기로 했다. 7구간은 16년 전 산행기로 대체함으로써 사실상 이번 구간을 끝으로 땅끝기맥을 마무리한다.
땅끝기맥은 월출산 등 아름다운 암릉구간이 휘몰아치며 땅끝까지 이어지는 명품 산줄기다. 땅끝기맥에 갈라지는 산줄기도 여럿 있어서 불가피하게 앞으로 여러번 땅끝기맥을 또 와야 한다. 이번 구간 도솔봉에서 분기한 선은지맥도 마찬가지고... 그때가 되면 또 우렁차게 달려가는 산줄기를 한 번 더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