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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56 - 평행선 1
S#1. 전산과 1층 로비
마이클과 규한이 걸어오고 있다. 마이클이 학교 안내를 하는 중.
마이클 : 저기 피아노는 전기 안 들어와. 그래서 소리 안나. 폼이야. 폼. 그리고 저 쪽에 학생 휴게실 있어. (앞서 가려는데)
규한 : 잠깐.
마이클 : 왓.
규한 : 저기 누구냐.
규한은 유리창 밖에 서있는 여학생 한명을 가르켜보이고 있다. 그 여학생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마이클 : 누구?
규한 : 저기. 여자.
마이클 : (보고) 몰라. 우리 과 아니야.
규한 : (못마땅한 듯 마이클을 보며) 쓸데없는 놈이구만.
앞서 간다. 마이클, 여학생을 다시 돌아보며 따라간다.
S#2. 휴게실
문이 열리며 들여다보이는 내부.
마이클 : 여기가 전산과 휴게실이야. 낮잠 잘 때 아주 좋아. 데이트하기도 좋아.
규한, 안을 기웃거려 보다가 도로 나가며.
규한 : 누가 이런데서 데이트를 하냐. 바보 아냐?
S#3. 복도
마이클, 규한의 뒤를 따르며.
마이클 : 돈 없을 때 아주 좋아. 여기서 CC들 많이 만나.
규한 : 저렇게 훤한데서 어떤 놈이 여자를 만나. 여자는 자고로 컴컴하고 조용한데서 만나야지. 그래야 발전이 있지.
마이클 : 발전... (어리둥절해서 따르는)
그들 앞으로 유리창 복도.
규한 : 저쪽은 어디야.
마이클 : 저기 넘어가면 전자동이야. 전자동도 볼래?
하는데 저쪽에서 자료를 안고 오고 있는 정태.
마이클 : 정태형.
정태 : 여 마이클. 느이 랩에 사람들 있지?
마이클 : 남희누나. 지원이 누나 다 있어. 아참 여기는 우리 랩에 새로 온 규한이 형이야. 정태형하고 같은 석사일년.
정태 : 안녕. 자주 보겠는데요. (악수하려다가 양손에 잔뜩 들린 자료를 보이며) 악수는 나중에 하죠.
규한 : (정태의 팔을 툭툭 치며) 반가워.
마이클 : 여기는 전자과에 정태형. 머리 아주 좋아.
정태 : (마이클에게) 선배라며 벌써 말놓냐.
마이클 : 오우 규한이형. 터프해. 말 높히고 그런 거 신경 안쓴대.
정태 : 터프...(규한의 옷차림을 아래위로 보며 웃으며)하고 자유로워 보이는데.. 머리색이 맘에 듭니다. 그럼 나중에..
바삐 가는 정태를 보는 규한.
규한 : 맘에 드는데.
마이클 : 오 노.. 정태형은 임자 있어. 너무 마음에 들면 안돼.
규한 : 임자? 누구?
마이클 : (괜히 은밀하게) 우리 랩에 지원이 누나.
규한 : 뭐야. 그럼 지원이한테 CC가 있었단 말야.
마이클 : 쉬이.. 그거 비밀이야. 모두 다 아는 비밀. 오케이 다음은 전자동.
마이클 앞서 가는데, 규한은 정태가 가는 쪽을 다시 돌아본다.
S#4. 박교수 랩
들어서는 정태. 내부는 책상들 구조를 바꾸느라고 어수선하다.
지원이 혼자 책상 위의 책들을 가운데로 쌓고 있다. (그 책상을 끌기 위해 위의 물건을 모아놓는 중)
정태 : (손에 들린 자료 때문에 발로 열려진 문을 툭툭 차서 노크)
지원 : (돌아본다)
정태 : 방 구조 바꾸는거야? 우리 랩도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지원 : 안그래도 느이 랩, 대청소 했다는 말을 남희선배가 들었나봐. 그래서 우리도 시작하게 됐고.
정태 : 혼자 해? 다른 사람들은.
지원 : 남희선배는 수업 들어갔고, 다른 사람들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하며, 책상을 힘들여 끌어낸다. 정태, 재빨리 들고 있던 자료를 옆에 던져 놓고 다가선다.
정태 : 비켜봐.
지원 : 됐어.
정태 : (책상을 잡으며) 어느 쪽으로 옮길건데.
지원 : 혼자 할 수 있다니까.
정태, 좀 화나는 기분으로 본다. 지원은 고집스레 책상을 잡고 힘들여 끌어 낸다. 책상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정태 : 비켜.
지원 : 됐다고 했잖아.
정태, 책상을 잡고 왈칵 끌어낸다.
순간, 책상 위에 쌓아놓았던 책들이 무너지며 그 중의 몇권은 지원의 발로 떨어진다.
지원 아픈 듯, 주저앉아 발등을 감싼다. 정태, 놀라고 당황해서 보다가.
정태 : 괜찮아?
지원 :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정태 : 다쳤어?
지원, 떨어진 책을 주워들고 일어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원 : 혼자 하는 게 낫겠어. 혼자 할게. 그게 편해.
정태 말없이 보다가 입구 쪽으로 가며..
정태 : 세미나 자료 갖고 왔어. 남희선배한테 전해줘.
지원 : 그래.
지원은 다시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책상 위의 책들을 옆으로 옮겨놓고 있다.
정태 잠시 보다가 돌아서 나간다.
문이 닫기자, 지원 손을 멈춘다. 그대로 잠시..
S#5. 복도
걸어가는 정태의 뒷모습. 뒷모습인 채로 잠시 선다. 서있다가 다시 걸어간다. 계속 뒷모습으로...
S#6. 이교수 랩
거의 다 정리가 되어가는 랩 사무실.
중희는 어지러진 코드 정도를 어리하고 있고. 해성은 책꽂이 앞에서 책들을 정리 중이고
만수는 무거운 무엇인가를 옮겨놓고는 온몸을 비틀어 기지개를 켜며..
만수 : 으아아아 이거 간만에 육체노동을 했더니 뼈마디가 심상치 않구만. 성장기에 이렇게 무리하면 신체발달에 문제가 있는데 말야.
선배. 우리 가서 농구한판 어때요. 예? 몸풀기 농구.
중희 : 안그래도 힘없어 죽겠는데 무슨 농구야. 이럴 땐 그저 사우나가서 땀을 좌악 빼야 개운해지는건데.
만수 : 사우나? 사우나아.. 하아 난 그런 거 즐기는 인간 진짜 이해안가드라. 지 돈내고 고문 받을 일 있습니까? 찜통 안에 들어앉아서
헥헥대는 게 그게 좋아요?
중희 : 니가 아직 어려서 그 맛을 모르는데.. 내 언제 한번 한증막에 델구 가지. 넌 입장료만 내.
만수 : 한증막? 그거 가마니 뒤집어쓰고, 아궁이 안에 들어가서 구워지는 거 맞죠. 으아. 그런데를 즐긴단 말입니까?
중희 : 마. 너도 무협지 읽어봤잖아. 최고의 내공 수련법이란 것은 차가운 빙옥침상 위나 뜨거운 용암 옆에서 하는거야.
만수 : 얼마나 뜨거운데요. 그 한증막이란 거.
중희 : 섭씨 98도 이상, 공기 온도는 100도쯤 된다지..
만수 : 에에 설마. 그 정도 온도면 화상을 입어도 이삼도 화상이다.
중희 : 맞어. 거기 써있었대니까. 100도.
만수 : 근데 어떻게 인간이 멀쩡해요.
중희 : ..그러게.
해성 : (불쑥) 보일샤를의 법칙이잖아요.
만수중희 : (돌아보면)
해성 : (책들을 하나씩 제 자리에 꼽느라고 애쓰며) PV=nRT. 우리가 화상을 입는 경우는 물온도가 100도에 가까울 때인데
그 경우는 밀도가 높구요. 한증막의 공기 밀도는 아주 낮으니까 초당 우리 피부에 닿는 분자의 양이 적어서 화상을 입지 않는거죠.
(마지막 책을 꼽고 기뻐서 돌아서며) 다 됐다. 정리 다했어요.
만수 중희 벙해서 보다가.
중희 : 수고했다.
만수 : (정신차리고 다가서며) 아니 근데 너 말야. 아는 게 많아서 좋긴 한데. 이게 뭐냐. 이렇게 아무렇게나 꼽아버리면 어뜩게 해.
내가 순서대로 정리하랬지.
해성 : 순서대로 한건데요.
만수 : 무슨 순서. (권위있게) 난 작년에 이거 나 혼자 분야별로 다 정리했던 사람이야. 논문은 논문대로. 컴퓨터는 컴퓨터대로..
빨간표지는 빨간 표지대로..
해성 : 모든 책을 출판년도순으로 정리했어요. 그럼 찾기가 쉽잖아요.
만수, 말이 막혔다가 중희를 돌아본다.
만수 : 출판년도순이라는데요.
중희 얼른 다른 일거리를 찾는데 문이 열리며 이교수가 들여다보며.
이교수 : 오늘 세미나 몇시부터였지?
중희 : 전산과 통합 세미나라면 다섯시부턴데요.
이교수 : 아 그래 다섯시였지. (문 닫고 나간다)
만수 : (다시 근엄하게 해성에게) 넌 지금 우리 랩의 인간들이 모든 책의 출판년도를 다 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해성 : 그럼 알파벳순으로 정리할까요? 저자의 알파벳은 다 외우죠?
만수 : (다시 중희를 돌아보며) 알파벳 순이라는데요.
다시 문이 열리더니 이교수가 들여다본다.
이교수 : 근데 세미나를 어디서 하기로 했지?
중희 : (한숨이 나오며) 207호 세미나실입니다.
S#7. 세미나실
양쪽 랩의 석사 이상의 학생들 분분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명환이 앞에서 자료를 정리 중이고, 옆에서 남희가 돕고 있고.
만수가 특유의 걸음걸이로 들어서다가 나란히 붙어있는 명환과 남희를 보고 재빨리 그 사이로 끼어들며 남희에게.
만수 : 드디어 제가 도착했습니다. 뭐. 뭐 도와드릴까.
남희 : 얼른 가서 자리에 앉어. 정신사납게 굴지 말고.
만수 : 자리? 아 자리. 선밴 어디 앉을건데.
남희 : 그건 알아서 뭐하게.
만수 : 그래야 내가 그 옆에 자리를 잡지이.. (하다가 들어서는 지원을 보고) 오오 구지원. 어서 와라. 넌 저어기 김정태 옆에 앉어.
이제부터 우리 통합세미나는 커플끼리 나란히 앉기로 했으니까. 김정태 뭐하냐 임마. 옆에 의자 탈탈 털어놔.
명환 보다못해 만수를 밀어내며.
명환 : 너 증말 살고 싶지 않니? 후배들 앞에서 꼭 맞아야겠어?
만수 툴툴대면서도 여전히 명환과 남희 사이를 경계하고,
그 사이 지원은 만수의 말을 못 들은 척 저만치 다른 곳에 가서 앉았다.
이만치 앉아 있던 규한이 벌떡 일어나더니 지원의 옆으로 가서 앉는다. 앞의 의자 혹은 책상에 두 다리를 올리며.
규한 : 어이 동기. 사실이야?
지원 : (언짢아서 돌아보는) 뭐가.
규한 : 너하구 저기 저 친구가 커플이라는 거. 맞어? 그래?
정태에게 그 얘기가 들린다. 자료를 넘겨보는 척하며 신경이 쓰이고 있다.
지원 : (빤히 규한을 보다가) 여기 대부분 니 선배들이야. 다리 내려.
자기 책상 앞의 자료를 넘겨본다.
규한, 재밌다는 듯 다리 걷고 일어서더니 이번에는 정태의 옆으로 와서 앉는다.
나머지 아이들, 슬그머니 모두 보고 있다가 얼른 다른 데를 보는 척.
규한 : 그러니까 어떤 상황인거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약속한거야?
아니면 너는 적극적인데 저쪽에서는 내숭을 떨고 있는거야? 아니면..
정태 : (듣다 못해) 어이.
규한 : 그래 말해봐. 도와줄게.
정태 : (보다 웃기로 하고 웃음기로) 그렇게 심심해? 여기 농구장도 있고 수영장도 있으니까 거기 가서 놀아.
규한 : 에에이 그러지 말고 나한테 자문을 구해. 내가 세상에 자신있는 게 딱 한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게임이야.
그 중에서도 특히 연애게임에 자신있으니까 내 도움을 받으라구우.
정태 난감해서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아이들 모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해성이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순간 들리는 목소리.
이교수 : (E) 뭣들 하고 있어.
아이들 놀라서 일어서며 인사한다. 이교수가 어느새 들어서고 있다.
이교수, 이상한 내부분위기를 둘러보며.
이교수 : 니들끼리 먼저 시작한거야? 어째 분위기가 이래?
해성 : (얼른 진지하게) 지금 우리 랩의 김정태하구 저쪽의 여학생하구 커플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질문 중이었는데요.
모두 썰렁하다. 지원, 찌푸려지며 자료만 들여다본다.
이교수 : (대충 파악되면서 남희에게) 박교수님은.
남희 : 아.. 혹시 잊으신 건 아닌지 핸드폰을 넣어보겠습니다.
이교수 : 아니 교수가 세미나를 잊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수가 없잖아.
S#8. 처장실
울리는 핸드폰 소리. 박교수 얼른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끄며.
박교수 : 죄송합니다. 난 정말 핸드폰이 싫어요. 얘는 시도 때도 몰라요.
처장은 책상 앞에서 바쁘게 뭔가를 작업하는 중이고, 박교수는 옆에 붙어서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박교수 : 드디어 정확한 연구소 명칭이 정해졌습니다. 이름하여 카이스트 정보보호 교육연구센터. 좀 길죠?
처장 : (바삐 서류들을 넘기며 체크하며) 개소식이 이달 말이라고 했죠.
박교수 : 그렇죠. 참석해주시겠다는 분이 많아서 저도 놀랐거든요. 어디 보자..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꺼내보며)
경찰청의 사이버범죄 수사대에서도 와주실 거 같구요. 그리고 각 대학의 전산과 교수님들. 그리고..
처장 : (결국 일손을 놓으며) 결국 박교수가 일년 내내 주장해온 해커 양성소가 생겨난 거군요. 애쓰셨어요.
박교수 : 어어.. 그냥 해커양성소라고 하시면 좀 서운한데요. 이건 말이죠. (다시 종이를 펼쳐 보며) 정보보안에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양성하여 관련기관에 기술이전 및 인력공급. 그리고 해킹 기술을 가진 학생들이 건전한 기술을 연마할수 잇는 환경 제공.
또한 새로운 보안관리기법 연구를 통한 국가정책 지원.
처장 : 압니다. 박교수가 주장하던 5천 해커 양병설이라는 것도 알아요. 아는데 어째 좀 불안합니다.
박교수 : 아이구 전혀 불안해하실 거 없어요. 우리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학생들은요. 해킹 기술에 앞서서 윤리교육부터 할거거든요.
그리구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다섯 개 학과 열명의 교수님들이 같이 교육해주실 거구요. 또..
처장 : 제가 불안한 건 박교수에요. 설마 개소식에도 그런 옷을 입고 올 건 아니겠지요?
박교수 : 제 옷이요? (유아적인 무늬가 그려진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는데)
소리 : (핸드폰 벨소리)
박교수 : 아하 참. 중요한 때면 계속 이래요. (핸드폰을 꺼내며) 이거 아주 꺼놓는 기능이 어떻게 하는거드라..
처장 : 그리고. 개소식때는 제발 손님들 모셔놓고 사라지면 안됩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참석을 하셔야 되요.
박교수 : 아니 제가 그렇게 정신나간 사람인줄아세요. 적어도 저는 중요한 약속이라면..약속..(하다가 생각났다) 에구..에구. 지금 몇시죠?
(핸드폰의 시계를 보더니 문으로 뛰어나가며) 이게 뭐야. 시간이 왜 이렇게 된거야. 에구에구..
S#9. 센터 세미나실
전등불이 들어오며 세미나에 참석해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서교수가 앞에서 자료를 챙기며 일어서며.
서교수 : 다들 수고했어. 그런데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자신있게 해보자구. 오정식.
불리워진 학생이 난처한 듯 고개 숙이고.
서교수 : 준비가 엉성하니까 발표하는 자세가 그 모양이지. 뭐야. 밥 몇끼 굶은 사람처럼. (웃고)
아.. 여러분 중에 해킹에 관심있는 사람 있나?
일어설 준비들을 하던 학생들 서교수를 본다. 그 중에는 석우나 민재나 경진도 있고.
서교수 : 이번에 정보보호 연구소가 개설되는 거 알지? 정식으로 학제 전공 수업은 9월부터 시작되지만, 이번 학기에는 희망학생들을
워크샵 형태로 실습위주의 수업을 한다고 하든데.
경진 : 전공하고 상관없이 학생들을 받는대요?
서교수 : 개인전공하곤 상관없이 정보보호과정만 이수하면 졸업장에 명시해준다고 들었어. 정보보호 부전공이라고.
석우 : (얼른) 우리 중에는 그런 거에 관심가질 사람 없습니다.
서교수 : (경진을 보고 웃는) 왜. 이 세상 모든 일에 관심가진 사람도 있잖아.
석우 : 관심은 있어도 시간이 절대로 없을 겁니다. 민경진. 맞지?
경진 : 어유 그럼요. 전 위성밖엔 모릅니다. 세상에 위성 말고 다른 일도 있습니까?
S#10. 센터 내 도서실
좁은 서가 한쪽에서 논문들을 찾고 있는 민재. 다른 열에서 경진이 고개를 내밀며.
경진 : 그러니까 정식으로 해커들을 양성하는 연구소란 거야. 재밌겠지?
민재 : 위성 말고 세상에 다른 일은 관심없대매.
경진 : 이건 관심이 아니고 호기심이지. 솔직히 난 해킹하는 사람들 절대 이해 못해.
민재 : 니가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어? 자 여기 하나 찾았고. (논문 하나 경진에게 넘겨주고 다른 걸 찾는)
경진 : 뭐하러 컴퓨터를 갖고 싸우고있냐. 그렇게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보고 싶으면 말이지. 직접 그 프로그램의 주인을 찾아가면 되잖아.
찾아가서 내가 니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 이러면서 인간대 인간으로 설득을 하는거야. 그게 빠르지 않겠냐?
민재 : (들고 있던 쪽지를 건네주며) 너도 이것들 같이 찾아주면 훨씬 빠를거라고 생각한다.
경진 : 지원이는 거기 등록할 건가봐.
민재 : 해킹 연구소에?
경진 : 박교수님이 그 연구소 핵심 멤버시잖어. 지원이는 원래 해킹에 관심이 많구. 걔 졸업논문도 그 비슷한 거 아니었나?
민재 : 그랬나... (책들만 뒤지는)
경진 : 그래서 말인데. 정태는 거기 안들어가나?
민재 : 정태가? 왜?
경진 : 정태는 저번 해킹대회에서 우승도 했잖아.
민재 : 아이구. 요즘 랩일 하나 하는데도 거의 비몽사몽이든데 그 녀석이 무슨 정신으로.
경진 : 아깝다. 좋은 기회일 수 있는데.
민재 : 민경진.
경진 : 어.
민재 : 니 발등에 불부터 꺼. 그거 얼른 찾아가서 오늘 내로 정리해야 돼.
경진 : 알어. 자알 알고 있다구..
경진, 서가 저쪽으로 가버리고, 민재 책을 주욱 살피다가 잠시 멈춰서 생각 해본다.
S#11. 전자 세미나실
박교수가 참석한 세미나가 진행중이다.
이교수 : 대성반도체에서 칩이 도착했어요. 샘플 받으셨죠?
박교수 : 네. 저야 봐두 잘 모르는데요 뭐.
이교수 : 패키징만 남았는데... 그전에 성능테스트를 해야 되거든요.
자막 - 패키징 Packaging : 공정이 완료된 반도체칩을 밀봉해서 제품화하는 단계
박교수 : 그런데요?
이교수 : 반도체동에서 당장은 테스트가 어렵다구 하네요.
박교수 : 왜요오?
이교수 : 우리가 측정의뢰할 다이가 18개나 되는데 반도체동이 요즘 너무 바쁘다구요.
자막 - 다이 Die : 패키징하기 전 상태의 반도체칩
박교수 : 계속 손놓구 기다리자구요? 시간이 아깝잖아요. 우리가 직접 테스트하면 안되나? 어차피 있는 장비 쓰는건데.
이교수 : 그럴순 없죠. 성능테스트를 하려면 라이센스두 있어야 된다구요.
박교수 : 그럼 어쩌죠?
이교수 : 명환아, 알아봤니?
명환 : 이달 말에 반도체동 주최 학술회의가 있답니다. 저희쪽에서 거기 일손을 조금 거들어주면
시간을 내서라두 성능테스트를 해주겠다구요.
박교수 : 그럼 당장 가서 도와줘야죠. 상부상조. 기브앤 테이크.
이교수 : 우리 랩두 그렇구, 박교수 랩두 다른 프로젝트 많잖아요. 애들을 다 빼줄 순 없는 일이죠. (명환에게) 몇 명 정도 보내주면 되지?
명환 : 두명은 보내줘야 될 거 같은데요.
이교수 : 그래. 명환이랑 중희는 유진실업 일 마무리해야되니까 안되구 만수는...(만수 보다가 그만두고) 정태가 가봐라.
해성이는 아직 낯서니까.
정태 : 예.
박교수 : (이교수가 말하는거 열심히 보다가) 남희양은 센터 개소식땜에 안되구 지원양은 하는 일이 많고..
규한이가 가보지. 낯선데 적응도 할겸.
규한 : 저는 안되겠는데요.
박교수 : 하아.. 고대로 따라 했는데 왜 내 말은 이교수님처럼 안먹혀들죠?
이교수 : (어이없고)
남희 : (답답해서) 교수님. 잊으셨어요?
박교수 : 뭘?
남희 : 규한이 퍼지세미나 준비하라구 시키셨잖아요. 어려워두 새로 왔으니까 배우는 셈치구 해보라구요.
박교수 : (이교수 눈치보며) 내가 그랬나봐요. 하하... 할 수 없네 뭐. 반도체동 작업은 지원양이 해줘야겠어.
정태군하곤 같은 석사 1년차니까 일하기두 편할거야.
지원 : (할 수 없이) ....네.
이교수 : (정태에게) 우리가 아쉬워서 돕는 거니까 성의있게 해줘.
정태 : 알겠습니다.
정태, 대답하고 슬쩍 지원을 본다.
지원, 아무렇지 않은 척 회의내용만 메모하고 있다.
S#12. 기숙사 전경 / 밤
그 위로 들리는 경진의..
경진 : (E) 하이구 이젠 남의 랩에 학술세미나까지 도와준단 말야?
S#13. 경진/지원의 방
지원과 경진이 청소를 하는 중이다.
지원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고, 경진은 빗자루를 들고 가운데 서서..
경진 : 너 그런 식으로 살다간 마흔도 안되서 늙어죽는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최소한 환갑은 넘기고 죽어야 되는 거 아니냐.
지원 : 넌 계속 빗자루 들고 서있기만 할거야?
경진 : 도대체 밤 열두시가 다 되서 청소를 꼭 해야 되겠냐?
지원 : 내가 계속 시간이 없을거니까 그렇지.
경진 : 내 말이 그 말이야. 왜 청소할 시간도 없이 살아야 되는거며, 그리고 시간이 없으면 청소를 건너뛸 수도 있지
이렇게 오밤중에 꼭 해야 되는거냐고.
지원 : 하기 싫으면 이리 줘. 나 혼자 할게.
경진 : 내가 또 의리상 그럴 수는 없지. ...아 추자현.
지원 : 뭐?
경진 : 자현이네 청소기 있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청소기를 만들어놨단 얘기를 내가 들었어. 맞어맞어.
(빗자루를 던져버리고 문으로 가며) 너 암것두 하지 말고 고대로 있어. 내가 청소기 빌려와서 오초만에 끝낼거니까...
문이 쾅 닫긴다. 지원 한심해서 경진이가 던져놓은 빗자루를 집어들어 치우는데 다시 문이 열리더니.
경진 : 우리 방에 휴지나 비누 남는 거 없니?
지원 : 휴지나 비누?
경진 : 새학기 되고 자현이 방에 처음 가는 거잖아. 빈손으로 가면 좀 섭섭하지. 우리 방에 오디오며 스탠드며 자현이가 다 고쳐줬는데...
그럴게 아니라 너도 같이 가자.
지원 : (한숨) 경진아. 청소하는 중이야 우리.
경진 : 알어. 그러니까 청소기 빌리러 같이 가자구. 휴지나 비누 아님 다른 뭐 선물로 갖고 갈 거 없냐?
S#14. 기숙사 내부 복도 / 밤
경진은 두루마리 휴지 세 개 정도를 가슴에 안고 오고 있고, 옆에는 지원이 내키지 않아서 오고 있다. 지원이 시계를 보며...
지원 : 전화라도 하고 올걸 그랬다. 자고 있는 거 아닐까?
경진 : 에이 벌써 잘 리가 있나.
지원 : 룸메이트 있을 거 아냐. 싫어할 수도 있지.
경진 : 야야 세상 사람이 다 너같은 줄 알어? 그리고 싫어하는 분위기면 재밌잖아. 싫어하는 사람과 한시간동안 수다떨기.
그래서 결국 더 싫어하게 만들기.
지원 : (결국 웃으며) 그렇게 청소하기가 싫은거야?
경진 : 으윽 들켰다. ...아 이 방이다.
기세좋게 문을 두들긴다. 잠시 대답이 없다.
경진이 입모양으로 자나...하면서 다시 문을 두들겼을 때 안에서 들리는 숨가쁜 자현의 목소리.
자현 : (E) 누구요? 암호를 대!
경진 : (어리둥절해서) 나야 민경진.
S#15. 자현/해성의 방
문을 열어주는 자현.
자현 : 야 깜짝 놀랐잖아. 들키는 줄 알았단 말야.
들어서는 경진과 지원.
자현 : 여어 지원이도 왔네. 얼른 들어와. (문을 잠그고) 니들 오늘 이 방에서 본 거는 절대 비밀이다.
경진과 지원, 방으로 들어서며 둘러보는데 정말 놀라버린 얼굴이다. 그제야 보여지는 방 내부.
자동차 부품 같은 것들이 온 방에 너질러져 있고 (나름대로는 진열되어 있는 것임),
곳곳에 벗어놓은 옷가지며 책들이 잔뜩 널려져 있다. 침대 위에도 마찬가지.
자현 : 앉어. 왜 그렇게 서있어.
경진 : 그러니까 어디 앉으란 거야? 앉을데가 없어보이는데.
자현 : 아.. (하더니 대충 침대 위의 것들을 좌악 쓸어내버린다) 여기 앉으면 되겠다.
경진 : (조심스레 앉으며) 근데 이 방에서 폭탄 터졌니? 어떻게 하면 방이 이렇게 될 수가 있지?
자현 : 아 하하하 좀 지저분하지? 이달 말에 한번 청소할거야. 아직 일주일은 버틸 수 있어.
지원 : (아직 선 채로) 근데 뭘 비밀로 해달란거야? 이 방이 이렇게 더러운 거를 비밀로 하라는거니?
자현 : 아..그게.. (방 한쪽을 향해) 해성아 이제 나와. 괜찮아.
방구석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던 형체가 이불을 벗고 웃는데 해성이다.
해성 : 안녕.
하는데 보면 이불에 감춰졌던 해성의 앞에는 전기곤로 위에 냄비가 올려져 있다.
경진 : (펄쩍 뛰어 다가서며) 이게 뭐야. 이거 전기곤로잖아. (냄비 뚜껑 열며) 아니 이건 라면이잖아.
지원 : 자현아. 기숙사에서 취사는 금지되있어.
자현 : 알어. 아니까 몰래 하고 있잖아.
지원 : 전기는 어디서 끌어 쓰는거야. 이거 불법인 거 알지. 위험하다구.
자현 : 아아 그참. 안전장치 다 한거야. 우리 이걸로 볶음밥까지 해먹었어두 끄떡없었어. 그치.
해성 : (끄떡이는)
경진 : 우와 이거 기가 막히네. 나 이 방에 자주 놀러와도 되지. 라면 다 끓은건가? (아예 자리잡고 들여다보는)
해성 : 불 껐어. 놀래서.
지원 : 자현이 너 새로 온 친구까지 공범으로 끌어들인거야?
자현 : 아아.. 그러니까 새로온 친구를 소개해야지. 여기는 전자과에 새로 온 이해성이고. 그리고 여기는 물리과에 민경진.
경진 : 반가워. (해성의 손을 잡아 흔들며) 근데 젓가락 더 있냐?
자현 : 여기는...
해성 : 알어. 구지원이지. 전산과.
지원 : (다가 앉아서 곤로 주위의 이불이며 물건들을 치우며) 너무 위험해. 그리고 너도 그래. 아무리 놀라도 그렇지
곤로위에 이불을 씌우면 어뜩하니.
해성 :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어.
지원 : (곤로 옆으로 늘어진 전선을 들어보이며) 이 전선 어디로 연결된 거야?
자현 : 야야 너무 딱딱거리지 마라. 해성이 봐라. 놀라서 눈이 더 커졌잖아. 해성아 걱정마. 지원이가 겉으로는 이래도 속은 아주 착해요.
고자질하거나 그런 짓은 안해. 그러니까...
경진 : 아 고만 떠들고 일단 먹자고. (벌써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 먹고 있다) 아직 덜 익었는데..라면은 또 이 맛이잖어.
근데 느네 방에 김치는 없냐?
자현 : 아하하하 맞어 일단 둘러앉아 먹으면서.. 서로 친해가는거야. 해성아. 너 질문 좋아하지. 뭐 질문할 거 있으면 해.
(경진의 젓가락을 뺏어서 한입 먹고)
경진 : 김치 없어?
자현 : 이거 김치라면이야. 그냥 먹어.
해성 지원을 본다.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는다.
지원, 좀 한심한 기분이 되서 방안을 둘러보는데.
해성 : 저기.. 너하구 정태 사이.. 물어봐도 돼?
지원을 비롯해서 모두 해성을 본다.
해성 : (좀 당황하면서) 만수선배하구 중희선배가 계속 그 얘기 했거든. 지원이 너하구 정태가 커플인데 어디까지 간 커플일까.
손을 잡아봤나. 키스도 해봤나. 그걸로 내기도 했거든.
지원 : (말없이 해성을 보다가) 그래서 너도 내기에 끼었니?
해성 : 아니. 난 잘 모르니까. 그래서 모르니까.. 물어보고 싶어서..
자현과 경진이 먹다말고 둘의 눈치를 본다.
지원 조용히 일어서더니 경진에게.
지원 : 나 먼저 가서 청소하고 있을게.
경진 : ... (엉거주춤 일어서며) 같이 갈까?
지원 : 다 먹고 와.
지원은 문으로 나가고 있다.
경진 : 빨리 먹고 갈게. 너 가서 그냥 쉬고 있어.
자현 : 잘가라.
문이 닫긴다.
해성 : (걱정스러워서 자현에게) 내가 또 말실수한거지.
자현 : 어.. 글세. (경진을 본다) 어떤 거 같냐.
경진 : 뭐...때가 되었다고 보아진다.
자현 : 무슨 때.
경진 : 가을이 되고 오곡이 무르익었으니 이제는 바로 추수할 때.
자현 : 뭔 소리야.
경진 : 근데 식은 밥 같은 거 없냐. 이 국물에 말아먹으면 딱 좋겠는데.
S#16. 민재/ 정태의 방 / 밤
민재가 세수를 하고 들어오고 있다.
정태가 책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민재 : 야아 요즘 너 책상 앞에 있는 꼴을 자주 본다. 웬일이냐. 침대가 바로 옆에 있는데.
정태 : 오죽하면 이러겠냐. 나도 괴롭다.
민재 : 너보다 먼저 침대에 들어가려니까 어째 이상하네..(침대로 들어가며) 잘 때는 불 꺼. 여긴 전기료 따로 받는다구.
정태 : 알았어. 임마.
작업하는게 잘 안되는 듯 찡그려서 책을 뒤적이는.
민재 : 넌 거기 안들어가?
정태 : 거기 어디.
민재 : 정보보호 연구센턴가. 해커들 양성한다는 데 있잖아. 그거 이수하면 부전공으로 인정해준다던데.
정태 : 내가 미쳤냐. 이교수님 밑에 있으면서 부전공까지 넘보게.
민재 : 그래? 지원이는 신청한 모양이던데.
정태 : (일손이 멈추는)
민재 : 우리 학년에서 해킹이라면 너하구 지원이잖아. (슬쩍 정태의 기색을 살피는)
정태 : (돌아보며) 그래서.
민재 : 뭐..그렇다구. 먼저 잔다.
돌아눕는다. 정태, 다시 책을 보려다가 에이... 옆으로 던져버린다. 심란해졌다. 멍하니 앉아있는데.
민재 : (E) 너 구지원 생각하지.
정태 : 시끄러.
민재 : 구지원 생각하면 답답...하지.
정태 : (돌아보고 뭐라 한마디 해주려다가) .... 그렇다 왜.
민재 : (일어나 앉는) 널 보는 나도 답답하다.
정태 : 사실은 이젠 좀 화가 날려구 그런다.
민재 : 그럴 거 같어. 근데 나도 그쪽으론 영 아는 게 없어서 도와줄 수도 없구 말야.
정태 : (웃는) 말만이라도 고맙다.
민재 : 저번에 집에 갈 때 기차에서 잡지를 하나 읽었거든. 누가 버리고 갔드라고. 그래서 그냥 읽어봤는데..
정태 : 용건만 간단히 말해.
민재 : 거기 사랑의 단계인가 뭔가 그런 기사가 있드라구.
정태 : ...그래서.
민재 : 사랑은 서로를 알아가는데서 시작된다.. 뭐 그런 글이 있던데.
정태 : 서로를 알아 가?
민재 : 그런 점에서 보면 말이지. 정태 넌 지원이에 대해서 대충 알잖아. 지원이 성격이나 가정환경이나 뭐.. 기타 등등.
정태 : (흥미가 있다) 그런데.
민재 : 그런데 지원이는 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냐.
정태 : 나에.. 대해서?
민재 : 느네 10분 이상,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어? 서로간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말야.
정태, 생각해보는...
S#17. 캠퍼스 외경 / 낮
지원 : (E) 우리가 해야 될 일이란 게 정확하게 어떤거야?
S#18. 박교수 랩
랩에는 정태와 지원만 있다. 회의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작업에 관해 상의중이었다.
지원은 복사물을 들춰보고 있다.
정태 : 프리젠테이션화면은 거기 나온대로 맞추면 되지만 자료집을 만드는게 시간이 좀 걸릴거같아. 아무래도 우리가 잘모르는 분야니까.
지원 : 다른 작업은 없구?
정태 : 나중에 반도체동에 가서 장비클리닝도 해야 돼. 단순작업인데 다들 바빠서 미루고 있나봐.
지원 : (낮게 한숨쉬고) 프리젠테이션부터 시작할께. 자료집에 들어갈 내용은 니가 찾아봐 줘.
지원, 자기 자리로 가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정태, 복사물을 탁탁 챙기다가 문득 지원을 본다.
작업하는 지원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정태.
지원, 정태의 시선을 느끼고.
지원 : (돌아보며) 아직 할 얘기 남았니?
정태 : 나 말야. 사실은 육사에 갈 뻔 했었어.
지원 : ..뭐?
정태 : 우리 아버지, 내가 군인이 되길 바라셨거든. 아 우리 아버지 대령이셔. 육사를 나와서 평생 군인이시지.
큰아버지도 군인. 큰집의 사촌들도 다 군인이야.
지원 : (가만히 보는)
정태 : 우리 아버진 집에서도 군인이셔. 엄마도 나도 아버지 앞에선 무슨 당번병 같았다구. 그래서 그랬나. 철들고 나선 계속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아버지한테 반항하나.. 그 생각만 했던 거 같애. (웃으며 지원을 보지만)
지원 : (말없이 보고만 있다)
정태 : (점점 어색해지면서) 과학고에 들어갔던건 단지 아버지 밑에서 도망치기위해서였어. 과학고에 들어가면 기숙사생활을 한다고해서.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고. 아버진 지금도 나만 보면 화가 나시나봐.
지원 : (문득 냉정한 얼굴이 되더니) 조언을 바라는거니? 아님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돼?
정태 : ...뭐?
지원 : 조언을 바란다면 나보단 민재가 나을거구 들어주는 거라면 내가 시간이 없어. 미안해.
다시 키보드를 치기 시작하는 지원.
정태, 조금 민망하고 김이 샜다.
정태 : (일어나며) 커피 마실래?
지원 : (돌아보지 않고) 아니 괜찮아.
정태 : (짜증스레 보고 있다가) 난 우리 랩에 가서 작업할테니까 필요하면 연락해.
지원 : 그래.
정태, 밖으로 나간다.
지원, 정태가 다 나갈 때까지 계속 키보드를 치고 있다가 멈춘다. 그제야 비춰지는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오타들이 잔뜩 쳐져있다.
지원, 화면을 보다가 백키로 한글자씩 지워나간다.
S#19. 센터 세미나실
석우가 앞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고, 민재와 경진을 비롯한 석사과정 두엇이 앉아있다.
책을 뒤적이며 부지런히 종이를 메꾸는 아이들. 오픈북으로 퀴즈를 보는 중이다.
경진, 앞의 석우 눈치를 보며 옆의 민재에게 낮게..
경진 : 서로를 알아보라고? 어이구 그것도 충고라고 했냐?
민재 : (역시 석우의 눈치를 보며) 퀴즈시험 시간이야. 나중에 토론하자고.
경진 : 랩원들 데리고 퀴즈시험보는 우리 대장이나, 말도 안되는 충고를 늘어놓은 너나 진짜 한심하다. 한심해서 하품이 나온다.
민재 : (결국 말려들어서) 내 충고가 어디가 어때서. 책에도 그렇게 나와있었대니까.
경진 : 그 책은 90퍼센트의 일반인을 위한 거고, 구지원이나 김정태는 나머지 10퍼센트에 들어있는 인간이잖아.
민재 :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잘 알아봐라. 좋은 말이잖아.
경진 : 답답씨야. 구지원은 지금 고슴도치야. 자기 가시를 하나씩 빼는 걸 좋아하는 고슴도치 봤니?
민재 : 그래서. 니가 생각하는 고슴도치 공략법은 뭔데.
경진 : 으흐흐.. 있지. 기가 막힌 필살의 치트키.
석우 : 민경진.
경진 : (헉..해서) 네.
석우 : JERS-1 위성은 OPS와 SAR, 두가지 방식으로 자료수신이 가능하지? OPS에 대해서 설명해봐.
경진 : 어.. 그러니까... OPS는 광학적 방법, 에.. 그러니까 일반 카메라와 같은 원립니다. 지구에 반사된 태양빛을 렌즈로 포착해서
CCD 센서가 전기적 신호로 바꿉니다. 이걸 디지털로 변환, 영상을 저장해서 지구로 전송하는거죠.
석우 : 그럼 SAR은 어떤 식이야.
경진 : 어.. 맨 끝의 단어가 레이더의 R이니까..레이더의 원리같은데요.
석우 : 같은데요? 넘겨짚는 거냐?
경진 : 틀..렸나요?
석우 : 맞았어.
경진 : (활짝 웃는데)
석우 : 그럼 SAR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봐.
경진 : 아니 왜 나한테만 질문하십니까? 여기 이민재도 있고 저기..
석우 : 딴 친구들이 조용히 시험보는 동안 넌 옆에 친구까지 방해하면서 놀고 있었잖아.
경진 : 제가요?
석우 :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니까 증명해보라고. SAR의 특징이 뭐야?
경진 : (중얼중얼 책을 뒤지며) 에.. 레이다니까.. 그러니까...
민재 슬그머니 책의 한곳을 펼쳐서 경진의 앞으로 밀어준다.
S#20. 이교수 랩
정태, 중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만수와 해성,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십자낱말 풀이중.
만수 :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절기.. 봄에 있고.. 두 글잔데...
해성 : 춘분.
만수 : 확실해? 맞아? 그대로 적는다?
해성 : 백로랑 한로사이에 있잖아요. 올핸 3월 20일이에요.
만수 : (열심히 적고) 이번엔 춘으로 다섯 글자. 봄이 왔는데 봄같지 않다..?
해성 : 춘래불사춘.
만수 : 캬아. 너 아주 사전이구나 사전. (적다가 고개 들고) 봄인데 봄같지 않다... 이거 딱 우리 얘기 아냐? (돌아보며) 안그래요?
우리 꼴이 이게 뭐야? 맨날 랩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당최 봄인지 가을인지 알 수가 있나.
중희 : 정만수. 니가 언제 랩에만 틀어박혀 있었냐? 틈만 나면 빠져나가서 노닥거리는 녀석이.
만수 : 제가 언제요? 저야말루 개미처럼 부지런히 랩일하구 연구에 몰두하구 있다구요. 사랑하는 남희선배 얼굴 볼 시간두 없어요.
해성 : 불개미.
만수 : 아니, 불개미가 아니구 그냥 개미라니까.
해성 : 춘래불사춘에서 세로로 세글자. 불개미에요.
만수 : 어? 어디. 여기?
S#21. 이교수 랩 앞 복도
명환이 걸어오다가 보면 지원이 랩의 문 앞에서 서있는 것이 보인다.
명환 : 구지원?
지원 : (돌아보고 고개 숙여보이는)
명환 : 뭐하구 있어. 거기 서서.
지원 : 저.. 프레젠테이션 자료 가지러 왔는데요.
명환 : 아 정태하고 하는 거? 들어와. 정태 안에 있을거야.
명환이 먼저 들어간다. 지원, 망설이는 기분.
S#22. 이교수 랩 내부
명환 앞서 들어서며..
명환 : 정태. 넌 같이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서포트를 해야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정태, 뒤따라 들어오는 지원을 보고 일어선다.
중희 : 여 지원이구나. 어서 와라.
만수 : 이야 화사하다. 화사해. 우리 랩에 여학생이 둘이니까 그림이 되네요. 그쵸오.
지원. 대충 고개 숙여 인사해보이고 정태의 책상으로 간다.
지원 : 자료 다 찾았니?
정태 : 대충. 정리해서 줄려고 그랬어. 전화를 하지 왜.
지원 : 그럼 심부름 시키는 거 같아서 그냥 왔어. 이거니? (화면을 들여다보는)
정태 : 그건 개요만 정리한거고.. 내용은 이걸 봐봐.
옆의 자료들을 챙겨주고 옆의 의자를 하나 끌어서 지원을 앉게 하고..
그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그들을 보고 있다가 얼른 시선을 돌린다. 해성은 여전히 신문을 보고 있고.
만수 : (감탄한 듯 그들을 보다가 해성에게) 어때 그림 좋지?
해성 : 개살구.
만수 : 뭐?
해성 : 여기 개로 시작하는 세글자요. 빛좋은? 개살구.
만수, 으이그해서 일어선다. 해성, 아예 신문을 자기 앞으로 끌어놓고 칸을 메꾸고.
만수 괜히 나란히 있는 정태와 지원의 뒤를 오락가락하며.
만수 : 지원아. 지금 너의 그 기분. 더하지도 빼지도 말구 나의 남희선배한테 고대로 말해주겠니?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뭔가를 하는 기분.
지원 : (거북하고)
만수 : 연인끼리 연구하믄 능률이 몇 배는 뛴다 이거다. 그게 바루 시너지효과거든.
그니까 퀴리부부가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거 아니겠냐?
명환 : 정만수.
만수 : 왜요. 노벨상 두 번 받은 거 맞잖아요.
명환 : 너 석사 논문 준비한다구 해서 랩일에서 빼줬어. 석사 포기했어? 지금부터 일 시켜두 돼?
만수 : 우씨.. 겨우 하나 빼준거 가지구.. (하며 자기 자리로) 하루에 열두번씩 생색을 내요. (중얼중얼)
정태, 자료 하나를 지원에게 건네주는데 지원은 받지 않는다. 정태가 지원을 보면.
지원 : (문득)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어.
정태 : 뭐가.
지원 : 좀 나갈래.
지원 먼저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간다. 정태, 의아하지만 따른다.
만수 : 어라. 둘이 나란히 어디 가니? 둘만 나가는 거니?
문이 닫긴다.
중희 : 하여간 정만수 저 입이 문제라고 봐요.
명환 : 어디 입만 문제냐. 저 귀도 문제지.
보면 어느새 만수가 문에 귀를 대고 붙어 서있다.
만수, 문을 빼꼼이 열고 밖을 내다보는 위로.
중희 : 그렇게 따지자면 저 머리통 전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해성,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해성 : 쥐! 맞다. 낮말은 새. 밤말은 쥐. 그러니까 두더쥐. (하며 쓴다)
S#23. 복도
앞서 걸어오던 지원. 어느만치에서 선다. 따르던 정태도 그 뒤에 선다.
지원 : 앞으로 우리 자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태 : (웃으려 하며) 이제까지도 우리 별로 자주 만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지원 :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잖아. 이렇게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대상이 되는 거 너도 기분 나쁠거야. 그러니까..이번에 일 맡은건 확실하게
작업분담을 해서 하자구. 소문이란 건 별거 아니라서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테니까. 그때까지는 쓸데없이 만나서 같이 있는 모습,
남들한테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태 : (이제 웃지 않는) 언제부터 그렇게 남의 시선에 신경쓰게 됐어?
지원 : ...넌 괜찮다는 거야? 남들이 우릴 마치 무슨 연애질이나 하면서 학교 다니는 걸로 보고, 이 사람 저사람 우리 얘기를 수근대는 게
괜찮어? 챙피하지도 않니?
정태 : 그러니까 넌 나하고 같이 소문에 오르는 게 챙피하다는 건가?
지원 : ...프리젠테이션 부분은 내가 준비할게. 넌 자료집에 넣을 걸 정리해줬으면 좋겠어. 연락은 메일로 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정태 : 아직 대답안했잖아. 그러냐? 나하고 같이 소문의 대상이 되는 게 챙피해?
지원 : 소문이란 게 어떤건지 알잖아. 있지도 않은 사실까지 만들어내고. 자기들 재미있자고 우릴 우습게 만들어버리고 말거야.
정태 : 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이 뭘 말하는지 상관없어. (너무 격하게는 하지 말고) 난 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지원 : (보는...)
정태 : 나 김정태하고 너 구지원이 커플로 소문이 나는 게 넌 챙피한 거야?
지원 : .... 그래.
정태 : ...
지원 : 대답했으니까 이젠 내 말대로 해줘.
정태 : 거짓말.
지원 : 뭐?
정태 : 넌 챙피한 게 아니고 겁이 나는거야. 안그래?
지원 :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맘대로 생각해. 어쨌든 내가..
정태 : (잘라서) 니가... 뭘 겁내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이만큼 오래동안 내가 니 옆에서 기다려왔으면 너도 알잖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원 : 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정태 : 모를 리가 없어. ...그냥 내가 포기할까? 그래줬으면 좋겠냐? 그럼 소문도 없어질거고. 너도 편해질거야. 그걸 바래? 포기해 줘?
지원 : (잠시 보다가) 뭔가 잘못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린 아무것도 시작한 거 없어. 그러니까 포기하고 말고 그런 얘긴 성립이 안돼.
미안하지만 나 먼저 갈게. 자료는 메일로 보내줘.
지원, 돌아서서 또박또박 걸어간다. 정태, 암담해서 보고 있다가 짜증이 솟구친다. 그 위로 음악이 시작되고...
정태의 시선에서 지원이 점점 멀어져가더니 코너를 돌아간다.
S#24. 석학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서던 정태. 내부를 본다. 중앙에서 대욱이 병석이 자현이 지민이 미순이 등이 모여서 떠들고 있는 중.
(이 위로 아까의 음악이 계속됩니다. 떠들썩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정태의 심정을 중심으로)
대욱 :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아 글세. 덤비라니까요. 팔씨름 몰라요?
병석 : 야야 밥은 내가 산다고 했잖아. 고만하자구.
대욱 : 뭐야. 이거 시시하게. 진짜 비겁하게 이럴겁니까? 내가 팔이라도 부러뜨릴까봐 이러는거에요?
자현 : 임마. 팔씨름하기 싫대잖아. 왜 자꾸 시비를 걸고 그래.
대욱 : 시비? 어쭈 시비? 이젠 아주 둘이서 한패가 되가지구 후배 하나 잡아보겠다 이건가본데..
지민 : 아유 대욱이 오빠 왜 이래. 밥 먹으러 왔으면 주문이나 해 얼른.
미순 : 아니 놔둬봐. 이게 뭔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모양인데. 강대욱 할말 있음 해봐.
대욱 : 아 다들 왜 이래요 정말. 이 선배하고 팔씨름 한번 해보겠다는데.
미순 : 글세. 조용히 오무라이스 주문하는 사람을 붙잡고 왜 갑자기 팔씨름을 하겠다는 거냐고. 난 어디까지나 이 가게 주인이고.
내 가게에서 벌어질 모든 불상사를 예방해야 되는 사람이야. 뭐야. 말을 해. 말을..
정태, 입구에 기대서 보고 있다가 그냥 돌아서 나간다. 지금은 떠들썩한 아이들에게 끼어들 기분이 아니다.
S#25. 박교수 랩
음악 계속되며...
규한과 마이클이 각자 모니터 앞에서 스타크를 하면서 떠들어대고 있다.
규한 마이클 한시로 러쉬 간다.
마이클 : 오 노우. 웨잇. 나 유닛 얼마 없어. 기다려.
규한 : 뽑는대로 와. 내가 먼저 깨고 있을게.
그들 떠드는 저쪽의 지원이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희가 뭔가 자료를 읽으며 그 뒤를 지나가다가 지원의 모니터를 보고 다시 지원을 본다.
지원의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채, 커서만 껌벅이고 있다.
S#26. 농구장 / 밤
음악 계속..
백곰이 어슬렁거리며 안으로 들어와 내부를 둘러본다.
백곰 : 아무도 없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문 닫습니다.
그러다가 굴러 다니는 농구공을 본다.
백곰 공을 들어서 멋진 폼을 잡고 골대에 슛을 해보지만 엉뚱하게 떨어지고 만다.
백곰 김이 새서 공을 잡더니 통통 튕기며 나간다. 아이들처럼 발을 돌리기도 하면서.
불이 꺼지고, 문이 닫기는 소리. 철컹.
관객석의 한 구석.. 눈에 띄지 않던 곳에 정태가 누워있었다. 정태, 무겁게 일어나 앉는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일어선다.
S#27. 캠퍼스 / 밤
세갈래 길.. 정태가 자전거를 타고 천천이 오다가 문득 멈춘다.
저쪽길에서 오고 있는 지원, 걸어오다가 정태를 본다.
잠시 서로 마주보다가 지원, 가던 길로 가버린다.
정태, 잠시 서있다가 역시 가던 길로 간다.
S#28.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신청서를 읽어보다가 고개를 든다.
박교수 : 정보보호과정에 등록하겠다구?
정태 : (그 앞에 서있었다) 네.
박교수 : 지금?
정태 : 안됩니까?
박교수 : 그야.. 안될 건 없지. 정태군은 작년 교내 해킹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잖아. 나로선 대환영이지.
정태 : 신청서는 양식대로 다 기재했습니다.
박교수 : (넘겨보며) 그렇구만. 빠짐없이 적어넣었네...
정태 : (지켜보고)
박교수 : (계속 서류보면서) 근데 무슨 이유지?
정태 : 네?
박교수 : (고개 들고) 모집기간엔 가만 있다가 이제 와서 신청하는 이유가 뭐냐고?
정태 : (망설이다) 최근에... 해킹하고 싶은 사이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거기 도전해보려구 합니다.
박교수 : (눈 가늘게 뜨고 보다가) 정태군.
정태 : 예. 교수님.
박교수 : 정보보호연구센터는 방어하는 기술을 배우는 곳이야.
정태 :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도 바로 그 방어 프로그램입니다.
박교수 : 으음.
정태 : 이런 이유로는.... 안됩니까?
박교수 : 천만에. 되고도 남지. 근데 한가지 더.
정태 : ....?
박교수 : 왜 그 사이트를 해킹하구 싶은거야?
정태 : (생각하다가) 이제까지 본 사이트 중에 가장 방화벽이 튼튼한 곳이거든요.
박교수 : (눈 가늘게 뜨고 보다가) 단지 그런 이유만이라면 크래커와 다를 게 없는데?
정태 : ...그런데 그 방화벽은 어딘가 잘못되있거든요. 그 사이트 주인은 그게 최선인 줄 알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아주 잘못되었다구요.
박교수 : 그래서.
정태 : 그래서. 그 벽을 깨고 그 주인한테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게 아니라구요.
박교수 : 그 주인이 테스트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나?
정태 : ..아뇨.. 하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는 아주.... 소중한 게 들어있거든요.
박교수 : (빙긋이 웃더니) 퍼펙트. 완벽한 대답이었어.
S#29. 정보센터 강의실 건물 외경
그 위로 들리는...
박교수 : (E) 지난번에 해외 유명 사이트들이 해커들의 집중공격을 받아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태가 급히 뛰어가고 있다.
S#30. 강의실 내부
20 여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고...칠판에는 "정보보호교육연구센터 워크샵"이라고 써 있다.
박교수 : 해킹유형은 DoS로 추정되지요.
자막 : DoS - Denial of Service 서비스 거부
박교수 : (학생 1보며) DoS 공격방식은 어떤거죠?
학생1 :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를 웹사이트에 보내서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게 합니다. 서버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면
서비스가 중단되구요.
박교수 : (학생 2에게) DoS 해킹툴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요?
학생2 : 트리누나 TFN2K, 스테첼드래트입니다.
박교수 : 그중에 제일 유명한 해킹툴이 트리누인데.. 누가 설명해 줄래요?
지원이 강의를 듣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본다. 뒷문으로 들어서는 정태. 가쁜 숨을 내쉬며 박교수에게 고개 숙여보이고 자리를 찾는다.
지원 놀라서 정태 쪽으로 보고 있는데.
박교수 : 지원양. 설명해볼까.
지원 : 해커가 여러 개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마스터나 데몬같은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합니다.
마스터는 서버, 데몬은 클라이언트 역할을 하면서 마스터가 데몬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공격이 이루어지구요.
박교수 : 그 옆에 박인식군. 그 다음엔 어떻게 되지?
학생3 : 해커가 마스터에 원격으로 접속합니다. 그 담에 여러개의 IP주소를 대상으로 서비스거부를 지시하면 데몬이 집중공격을 해서
시스템을 다운시키죠.
박교수 : 김정태군 마스터나 데몬을 미리 찾아내 제거할 순 없나?
정태 : (아직 숨가쁜 상태) 공격명령이 있기 전까진 해당 시스템에 잠복해 있기 때문에..미리 발견하는 게 쉽지 않죠.
박교수 : 좋아요. 역시 해킹에 한가닥하는 학생들의 모임다워요. 나 아주 신나고 있어요.
자아.. 그럼.. (실내 둘러보며) TFN2K는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흩어진 머리를 쓸어올리던 정태, 지원과 시선이 마주친다.
지원, 고개를 돌린다.
S#31. 컨테이너 안마당 / 낮
안마당에서 보이는 컨테이너 벽들 주욱 팬..
온갖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각 동아리 방들의 벽이 주루루 보여지면서...그 위로.
백곰 : (E) 보시다시피 이 옆은 각 동아리방들이 자리잡고 있어요.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즉, 낮이고 밤이고 수많은 학생들이 이 옆에서
우글거리고 있을 거란 얘기지.
백곰과 민재가 빈 컨테이너 앞에 서서 얘기중.
백곰 : 그러니까아.. 절대로 이 안에서 위험한 실험을 한다든지.. 그러지 말라고. 위험한 생각도 안돼. 알았지?
민재 : 알아요. 걱정마세요.
백곰 : 하아 참. 내가 어떻게 걱정이 안되겠니. 이 학교의 구석구석에 위험물들이 이렇게 걸어다니고 있는데. 니들 머리통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그걸 볼 수가 있어야 미리 예방이라도 하지. 하아 참...(하면서 열쇠를 내어준다) 이게 열쇠. 그리고.. 이건..
(옆에 놓았던 소화기를 들어주며) 사용법을 꼭 숙지하고..
민재 : (받아들며) 제발 걱정마시고.. 가서 일 보세요. 아저씨를 기다리는 데가 많잖아요.
백곰 : 그렇지. 날 기다리는 곳이 많지. 그럼.. 안전하게.. 유비무환 알지?
민재 : (짐짓 진지하게 경례를 해보이고)
백곰 영, 불안해하며 간다. 백곰이 가는 것을 보던 민재, 거기 서서 보고 있던 경진을 본다.
경진 : (가는 백곰에게) 안녕히 가세요.
백곰 : 오냐오냐..
민재 : 웬일이야.
경진 : 이민재의 벤처 사무실이 개업한다는데, 내가 안와볼 수는 없지.
민재 : 아직 개업한다고는 할 수 없어. 일단 학교측에서 6개월 한정으로 방을 하나 빌려준 거 뿐이야.
경진 : 에헤.. 사설이 길다. 일단 문이나 열어봐. 안에 좀 구경하게.
민재, 아무래도 좀 긴장이 되면서 괜히 웃어 보이면서 열쇠를 연다.
S#32. 벤처 사무실 내부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민재와 경진.
내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쓰레기 몇 개, 낡은 신문지며 빈 박스 쪼가리 몇 개만 딩굴고 있다.
경진 : 멋지다.
민재 : 내 눈에는 썰렁해보이는데.
경진 : 미래를 봐야지. 이 안에 펼쳐질 미래.
민재 : 미래라.. 일단 청소를 해야되고.. 여기를 지킬 사람도 필요하고..
경진 : 충고 하나 할까.
민재 : 해줘.
경진 : 여길 개방해.
민재 : 뭐.
경진 : 여길 지키려고 애쓰지 말고. 아예 개방하라고. 누구나 와서 놀 수 있게 만드는거야. 그럼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구.
민재 : 내 사업의 비밀은..
경진 : 개방해. 그럼 이미 비밀이 아니니까 누가 훔쳐갈 필요도 없잖아.
민재 : 참나.. (웃는데)
경진 :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며) 정태하고 같이 올려고 연락했었는데 말야.
민재 : 어 나도 전화했었어. 랩에 없든데.
경진 : 김정태, 박교수님 워크샵 들어갔대.
민재 : 박교수님 워크샵이라면.. 설마 그 해킹하는..
경진 : 맞어. 구지원이 듣는다는 바로 그 수업.
민재와 경진 잠시 서로 마주본다. 경진 아주 재밌다는 듯 웃음기가 가득하고. 민재 흠흠... 생각해본다.
경진 : 우리 언제 한번 도강 들어갈까. 살짝 구경이라도 하게.
민재 : 니가 그랬지.
경진 : 내가 뭐?
민재 : 고슴도치를 공략하는 필살의 치트키를 안다고.
경진 : 알지.
민재 : 뭔데.
경진 : 고슴도치가 앞에 있다. 고슴도치를 향해 걸어간다. 고슴도치가 바늘을 세운다. 그래도 상관없이..
민재 : (진지하게 듣는)
경진 : 안아준다.
민재 : 뭐?
경진 : 그거야. 고슴도치의 바늘이 나를 찔러도 상관없이 꼬옥... 안아주는 거.
민재 : (의심스러워 본다) 뭔 소리야.
경진 : 넌 이해 못할거라고 생각했어. (방 둘러보며) 근데 벽 색깔이 칙칙하다. 페인트칠할 생각없어?
S#33. 정보센터 강의실 / 낮
칠판에 어지럽게 판서된 상태. 박교수, 소매를 걷어부치고 강의중이다.
박교수 : 현대는 사이버전쟁의 시댑니다. 육해공군 다음의 제 4군 정보보호군의 창설이 요구되는 시대라 이겁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중에 우리나라의 제 4군을 이끌어갈 사람이 나타나 줘야 하구요. 제 4군. 정보보호군의 무기는 뭐냐. 키보드. 마우스
이런거에요. 그런데 무기라는것은 대단히 골치아픈 겁니다. 평화를지키기 위해서 미사일을 개발하지만 바로 그 미사일이 사람을
죽이는 거니까. 여러분의 무기도 마찬가지. 이게 잘못 사용되면 아주 무서워집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되나.
학생1 : (눈이 마주치자) 최소한의 룰..을 지켜야겠죠.
박교수 : 룰이라면?
학생2 : 해커 윤리강령같은거요. 해킹을 통해 타인의 정보를 침해해선 안된다.. 이런거..
박교수 : (지원 보며) 그리구?
지원 : 허락받지 않은 해킹이 명백한 범죄란 걸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 실력을 자랑하느라구 범범행위를 저지른다는 생각을
못하기 쉬우니까요.
정태 : (얘기하는 지원을 보다가 손을 든다)
박교수 : 어, 정태군?
정태 : 방금 그 얘긴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지원 : (거북한 눈길로 보고)
정태 : 허락받은 해킹이라면..그건 벌써 해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해커는 자유로와야하구, 어떤 시스템에두 구속받지 않아야 되니까요.
지원 :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작년만 해두 600건 가까이 해킹사건을 저질렀다고 알고 있는데요.
정태 : 사고를 치잔 말이 아닙니다. 순수한 해커들의 목적이 돈이나 시스템 파괴가 아니라 패스워드를 뚫는데 있다는 거죠.
지원 : 그것 자체가 범죄행위에요. 전산망법 25조에는 단순한 열람을 목적으로 한 해킹두 엄연한 정보침해행위로 보고 처벌하구 있어요.
패스워드는 다른 사람이 내 정보를 보지 못하게 걸어놓는 건데..그걸 뚫고 들어왔다면 범죄가 되는 겁니다.
정태 : (지원을 똑바로 보더니) 법이란 걸 너무 믿고 있군요.
박교수 : (흥미진진해서 보고 있다)
정태 : 법이란 건 사람이, 상황에 따라 만든 겁니다. 평화시의 법이 다르고 전쟁 때의 법이 달라요. 그런 법에 매여 있으면서
무슨 해커 수업을 받는다는 거죠.
지원 : 지금 그 말은 해커윤리강령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인데요?
정태 : 누군가 우리 국방부 서버를 뚫고 들어왔는데, 윤리니 법만 찾고 있을래요? 누군가 구지원양의 서버를 뚫고 들어가면
전산망법 25조 얘기만 할겁니까?
지원 : (박교수를 보고) 이 논쟁을 계속해야 되나요?
정태 : (아랑곳없이) 해커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해킹 기술만 갖고 있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만든 방화벽이란 건 아주 한심할 수 밖에 없죠.
지원, 정태를 노려본다.
박교수를 비롯한 학생들 흥미진진해서 보고.
정태, 말없이 지원을 마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