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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창조신화가 담긴 티티카카의 우로스 섬 |
여행 시작한 지 열흘 째 되던 3월 31일 화요일.
오늘은 이른 아침 쿠스코에 있는 볼리비아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밤 10시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를 타고 티티카카가 있는 푸노로 이동할 예정이다.
마추픽추에 이어 남미에서의 또 하나의 볼거리인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해발고도가 높은 푸노(3,800m)를 거쳐 볼리비아의 라파즈 (3,600~4,100m)에서 또다시 호흡을 조절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푸노와 라파즈는 우유니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인 셈이었는데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높은 고도와 길고 힘든 버스 이동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여정은 남미를 여행하는 대다수의 여행자들이 거치는 코스인 데다, 처음 리마에 도착하여 이카를 거쳐 이곳 쿠스코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적응 과정을 거쳤던 까닭도 모두 이런 고산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앞섰다.
아침 8시,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 숙소 로비에서 만난 일행들은 지난 밤 늦은 시각 마추픽추에서 돌아와 피곤할 법 한데도 모두들 생생했다. 비자에 필요한 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택시를 타고 인근에 있는 볼리비아 영사관에 가서 단체로 비자를 받았다. 이번 남미여행 중 유일하게 비자를 받아야 하는 나라는 볼리비아 뿐이었지만 비자를 받으려면 갖춰야할 서류가 적지 않으므로 비자를 거부 당하는 낭패를 겪지 않으려면 미리 미리 필요한 서류를 잘 준비해 두어야 했다. 대부분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직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친절하고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니까.
이른 시간에 까다로운 비자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여유가 생겼다. 남은 시간은 쿠스코 중앙시장과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유적을 돌아보면서 오늘 밤 야간버스를 타고 내일 아침 푸노에 도착(아침 6시경)하여 티티카카의 우로스 섬 투어를 한 후 볼리비아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쿠스코의 한식당 '사랑채'에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주문하고 시장에 들러 과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고산증과 추위에 대비해 침낭도 따로 빼서 보온 준비를 마쳤다. (버스 화물칸에 배낭을 싣고 나면 중간에 침낭을 뺄 수가 없으므로 침낭은 미리 꺼내 작은 배낭에 달아두거나 따로 소지해야 한다)
밤 10시, 버스는 정시에 푸노를 향해 출발했다. 희안했다. 버스가 제시간에 출발을 한다?
버스가 정시에 출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그것이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겨우 열흘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이런 감각을 지니게 되다니,,, 적자생존의 예를 달리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는 사이 환한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도심을 지나던 버스가 고속도로에 오르자 주변은 일순 어둠으로 변했다. 반대편으로 마주오는 차량의 불빛을 가리기 위해 2층 버스의 앞 유리창 커튼이 내려지고 창밖을 구경하던 시선들과 나즈막히 속삭이던 목소리들이 하나둘 어둠 속으로 잠겨들자 버스 안은 도로를 달리는 바퀴소리만이 유일했다. 적막이 드리운 밤은 고산의 여행에 지친 여행자들의 피로를 덜어주려는 듯 깊은 잠으로 끌어들였다.
푸노, 티티카카의 우로스 섬
새벽 5시 20분, 어렴풋이 여명이 드는 시각 푸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푸노는 배낭 여행자의 무덤(?)이라고 할 만큼 위험한 곳이므로 버스에서 배낭을 내리는 그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떼에서는 안 된다는 주의가 다시 한번 전해졌고, 티티카카 우로스 섬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를 따라 버스터미널과 티티카카를 오가는 일 외에는 일체의 개인 행동은 금지되었다. 사실 누가 강제로 통제했다기보다는 얼마 전 이곳에서 권총강도를 당한 내 친구의 소식을 전해들은 일행들 스스로가 위험에 노출되는 행동을 억제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이른 시각, 푸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리고 있다
푸노는 페루 남부에 있는 호반의 도시로 육로를 통해 볼리비아를 오가는 주요한 관문이자,
잉카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이곳은 잉카의 기원설화가 서려있는 티티카카를 끼고 형성된 전통의 도시다.
잉카의 여러 탄생 설화 중 하나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태양 신 인티가 안데스 산맥에 짐승처럼 살고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교화시키도록 그의 아들 '망코 카팍'과 딸 "마마 오크요'를 내려보내 잉카부족을 세웠으니 그 곳이 바로 티티카카의 태양의 섬이었다. 이곳에서 시작된 잉카문명은 이후 안데스 지역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하여 잉카제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티티카카는 잉카시대부터 잉카의 뿌리로 신성시되어 왔으며 티티카카를 품고 있는 푸노에서는 매년 시조인 망코 카팍을 기리는 축제가 성대하게 펼쳐진다.
푸노 버스터미널에서 쿠스코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예약한 여행사 앞에 자리를 잡고 밤새 버스에 시달린 얼굴과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어제 쿠스코에서 주문해 가져온 도시락을 펼쳤다. 모양은 조금 사나웠지만 이른 시간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마땅히 식사를 할 곳이 없으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도 우리의 조찬(?)을 특별히 눈여겨 보는 이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이런 일들은 여행지인 이곳의 자연스런 일상이 아닌가 싶었다.
당초 우리의 우로섬 투어는 오전 10시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쿠스코에서 출발한 버스가 제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그 시간을 앞당겨 7시부터 투어를 하기로 했다. 우로스 섬 투어를 일찍 마치면 볼리비아 라파즈에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투어에 나섰다.
티티카카 선착장. 구름이 금방이라도 내려 앉을 듯 흐린 날씨다.
티티카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지대(3,850m)에 있는 길이 190km, 폭64km, 평균수심135m에 이르는 큰 호수로 페루지역에 70%, 볼리비아 지역에 30%가 걸쳐있다. 이 호수에는 약 40여개의 소규모 갈대 섬이 모여 우로스Uros 섬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약 350여명의 '우로스족'이 각각의 섬에서 적게는 2가구, 많게는 10여 가구씩 모여 살고 있다. 이 섬에는 학교는 물론이고 교회와 우체국, 박물관, 축구장까지도 있다. 이들은 티티카카에 사는 물고기와 새들을 잡고, 감자 등을 재배하여 생활을 하며, 공용어인 케추아어와 자신들의 언어인 '아이마라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볼리비아에 사는 아이마라Aymara 부족의 일족으로 호전적인 주변 부족을 피하여 육지를 떠나 호수로 들어온 후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쯤인가 언어는 있으나 문자가 없는 볼리비아의 아이마라 부족에게 한글 표기 사업을 추진한다는 보도를 보았었는데 이후의 진행은 알 길이 없다.
선착장에 있는 우로스 섬 투어 안내표지판
티티카카 주변의 푸노 시내
갈대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운행하는 투어보트들
우로스 섬의 작은 갈대섬인 산 페드로 San Pedro 섬. 우리가 배가 지나가자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각각의 작은 섬에는 Santa Maria, Samary 등등 고유한 이름들이 있는데 이 섬들은 수심 12미터의 수상에 이루어져 있다. 사진 뒤 멀리 푸노 시내가 보인다.
보트로 30여 분을 달려 우로스 부족의 한 작은 갈대섬인 산 페드로 San Pedro 섬에 도착했다. 성인 남성 둘, 성인 여성 셋, 조금 어려보이는 여성 한 명, 그리고 아직 학교에 갈 나이가 되지 않은 듯한 어린 여자 아이가 이 섬에 사는 두 가구의 구성원이었다. 두 갈래로 딴 길고 검은 머리에 전통모자를 쓰고 전통복장을 갖춘 성인 여성들이 갈대 섬 앞에 나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이했다. 검은 얼굴과 손발, 통통한 몸매, 검은 머리에 원색의 전통복장이 눈에 띄었다.
여행자를 맞이하는 순서는 마치 잘 짜여진 프로그램처럼 일사분란했다. 먼저 이 집의 남자 주인들이 갈대섬을 짓기 시작하면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한다. 커다란 톱으로 갈대 뿌리를 작은 덩어리로 잘라 낸 다음 이 덩어리 3개를 하나로 묶는다. 그런 다음 이 3개 짜리 묶음 20-30개를 연결하면 하나의 작은 갈대섬이 이루어진다. 그 위에 갈대 줄기를 우물정자로 깔아 튼튼하게 바닥을 다진 다음 그 위에 갈대로 만든 집을 지어 앵커로 고정을 하면 주거지가 완성된다.
섬의 남자주인들이 갈대로 섬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원래는 호수의 물고기와 새를 잡고 감자도 재배하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이제는 관광객을 받아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팔고 토토라(갈대)로 만든 전통배를 태워주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설명하고 있다.
갈대섬과 집을 짓는 과정이 마무리되면 커다란 천에 수를 놓은 그림과 작은 갈대배가 달린 수공예품들이 소개된다. 그런 다음 여주인들이 나서 환영의 노래를 부르고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나면 기념품을 사고 파는 시간이다.
집 안의 매점에는 마시는 물에서부터 콜라, 막대사탕, 갈대배 모형, 잉카 인형, 모자 등이 두루 갖춰져 있으나 자세히 보면 아쉽게도 이 섬만의 고유한 상품은 아니다. 밖으로 나오면 여주인들이 펼쳐 놓은 판매대에 그림에서부터 목걸이까지 다양한 기념품들이 놓여있다. 각자 취향대로 느낌대로 한두 점 사면 모두가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나서 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들의 전통배인 갈대배를 타는 것으로 우로스 섬 투어를 마무리 한다.
산 페드로 섬 여주인들이 환영의 노래를 부르자 팀원들이 따라 부르고 있다. 사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한다는 의미가 소중했다.
다양한 민예품을 펼쳐놓고 소개하고 있다.
갈대섬에는 작은 공간이지만 아이가 그네를 타고 놀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해 두었다.
이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기념될만한 그 무엇이 있는지를 살폈다. 휴대할 수 있고 부담이 없으며 그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여행하는 나를 위한 것으로,,, 환영인사를 받으며 전통배 토토라를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했다.
규모가 제법 큰 갈대섬이다. 이런 큰 갈대섬에는 10여 가구가 함께 살기도 한다.
멀리 육지처럼 이어져 있는 섬에는 규모가 제법 큰 건물도 보이는데 아마도 학교나 교회, 우체국 박물관과 같은 공공 건물로 추측되었다.
전통배 토토라를 몰고있는 산 페드로 섬의 주인장
토토라에 함께 타고 온 아이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어른들의 영역에서 우리같은 여행자들은 관광상품을 파는 대상이지만 이 아이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작은 흔적이라도 되기를 기대한다.
토토라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자들, 배를 모는 힘든 일들도 이곳의 여성들은 거뜬하게 해낸다.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맑고 건강했다.
무성하게 자란 갈대숲. 티티카카 전체에서 이 지역에만 갈대가 자라기 때문에 이곳에 갈대섬이 형성되었다.
귀로. 시종 어둡던 하늘에서 이내 비가 내렸다.
섬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화장실 문제.
남미를 여행하는 여행자에 예기치 않게 찾아드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있다. 고산증과 물갈이로 인한 배앓이.
팀원 한두 명이 보트를 타고 섬에 내렸는데 그때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섬에서는 화장실이 없어 토토라 투어가 끝나는 섬에 가야한다고 했다. 힘들게 참으며 두 번째 섬에 내렸는데 아뿔사! 그곳에도 화장실이 었었다. 아니, 있었는데 무너졌다며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도대체 이 갈대섬의 구성원들은 인간의 3대 쾌락 중 하나인 그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지? 터미널까지 돌아오는 사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말자. 혹, 우로스 섬 투어를 할 기회가 있거든 사전에 잘 준비하고 가시기 바란다.
낮은 산 주변으로 형성된 도시를 배경으로 들어 앉은 티티카카 선착장. 관광선이 즐비했다. 그러나 선착장 주변에는 녹조가 짙게 끼어 맑은 티티카카의 진면목을 보려면 배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고 했다.
푸노 버스터미널의 벽장식
삶과 문화에 대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느냐 따라 여행의 방법도, 여행하는 장소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쇼핑과 편안한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에게는 푸노는 쉽지 않은 여행지다. 반면에 다양한 사회의 삶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푸노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있는 여행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푸노는 잉카의 기원설화가 깃든 곳이고 호수 안 갈대밭의 삶이라는 색다른 문화가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도, 강탈 등 사건이 많아 배낭 여행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여행지로 소문이 나 있고, 시간적인 제약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우로스 섬 투어에서 여행자가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섬 입구에 있는 몇몇 작은 섬 뿐이어서 우로스 족의 진짜 문화를 들여다보기에 크게 부족하고, 들르는 곳들도 지나치게 상업화 되어 있어서 이미지가 많이 퇴색한 느낌이 들었다.
위험하다는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위험 없이 도심에 숙소를 잡고 자유롭게 여행을 했다는 어느 여행자의 글을 보면 우리의 염려가 지나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우리가 얻은 모든 정보에서 '푸노는 위험하다'는 것 뿐이어서 달리 고려할 방도가 없었다. (푸노에서 권총강도를 당한 친구는 혼자서 당한 것이 아니고 일행 여섯 명이 푸노 시내의 한 언덕에 올랐다가 4명의 권총 강도에게 당했던 것이어서 이를 단순히 운이나 재수가 없었다는 것 정도로 여기기에는 그 부담이 너무 컸다. 더구나 한 명의 배낭 여행자가 당한 것이 아니고 무려 여섯 명이 한꺼번에 당했다는 것은 중동의 테러에 버금가는 극히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푸노 시내 투어를 하려면 특별히 안전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일이다)
우로스 부족의 상업화 이미지에 관해서는 그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고 페루 정부의 관광정책과 연계가 된 것이니 아쉽기는 해도 달리 이의를 달 일은 아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문명의 시대에 영화에나 등장할 원시사회의 순수를 기대한다면 여행이 피곤해진다. 그런 순수의 세계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미 관광화된 도시나 지역을 방문할 때면 원시사회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접어야 한다. 여행자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본 만큼 느끼면 될 따름이다. 여행자는 단지 스쳐가는 나그네니까.
푸노 시내의 풍경. 위험한 환경때문에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전세버스가 서 있는 이곳까지 이동한 것이 전부였다.
페루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로 간다
티티카나 투어를 마치고 오전 10시 반, 예약된 전용버스로 고속도로를 달려 칠레 국경 마을 데사구아데로 Desaguadero로 향했다. 국경까지 가는 동안 주변은 온통 광활한 고원의 초원이 펼쳐졌다. 안데스의 삶이 대부분 농경을 위주로 하는 생활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환경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간간히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티티카카를 따라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풍광을 따라 가는 데사구아데로까지의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티티카카와 고속도로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평원.
누군가를 기리는 고속도로 빈소
처음 남미에 와서 도로변에 있는 있는 저 이상한(?) 구조물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머지 않아 답이 들렸다. 도로변에서 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기리는 잉카 특유의 문화라고,,,,,이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런 장소를 만날 때면 그 누군가의 안식과 평안을 기원했다. 얼굴은 몰라도 그는 누군가의 둘도 없는 가족이었음을 생각하면서.
여행하는 사람이 자기가 지나가는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여행은 단순한 배회에 지나지 않는다. 여행이란 여행자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삶을 체험하면서 그 서로 다른 차이를 이해하고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데 있는 것이니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자기가 쌓은 경험을 확인하면서 여행의 풍요로움을 얻으려면 우선 그곳의 삶을 알아야 했다.
존중하지 않으면 존중받지 못한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하면서 여행지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문화를 얕잡아보면서 비하하기까지 했던, 그야말로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도 보였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었다.
팀원 중 그 어느 누구도 여행지의 사람들에 대해서, 여행지의 문화에 대해서, 여행지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비하하거나 격하하는 것을 듣은 적이 없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여유롭고 세련된 모습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 이 젊은 여행자들을 통해 확연히 달라져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뻤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 점을 꼭 자랑하고 싶었는데 오늘 여기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더 크게 자랑을 해야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페루의 국경마을 데사구아데로 Desaguadero
오후 1시 페루 국경 도시에 도착했다. 길가에 탁자를 내어놓고 무엇인가를 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푸노에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국경마을 데사구아데로는 한적했다. 여기서부터 버스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차에서 내리자 찬 바람이 싸하게 불어 뽀얀 먼지를 일으켰지만 변경의 국경 도시답지 않게 도시는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기념탑이 서있는 도시의 광장에 정차하여 짐을 내리자 주변으로 자전거 수레꾼들이 몰려들어 어수선해졌다. 이들 자전거 수레에 짐을 맡기면 국경 너머까지 날라다 주겠지? 짐을 드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일용할 일거리를 주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이지만 배낭여행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사치였기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국경에서 여러 정황상 그런 것들을 고려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바람이 부는 가운데 가방을 챙겨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향하는데 광장 한켠 길 가에 탁자를 내어 놓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궁금했지만 다가가 물어 보기에는 어딘가 상황이 어색했다. 궁금증을 안고 돌아섰는데 지금까지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앞에 의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것 같은데,,,설마 운수를 보는 것은 아니겠지?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세요' 페루측 빨간 환송 표지판이 산뜻하다. 사진 왼쪽에 페루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다.
어제 아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미리 받아 두었기 때문에 국경 도시 데사구아데로에서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을 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먼저 페루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신고를 마친 후 걸어서 다리 하나를 건너 볼리비아 국경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입국 신고를 마치면 그것으로 되었다.
페루 출국절차는 간단했다. 여권을 펴서 보여주면 가볍게 얼굴을 쳐다보고는 도장을 찍어준다. 그렇게 해서 신분이 제대로 확인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권에 찍힌 도장은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제멋대로다.
'어서오세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다리를 건너자 볼리비아 국경에서 또 시 반겨준다.
이 다리를 건너면 볼리비아다. 하지만 어디에도 국경의 삼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두 나라 국민들과 자전거 짐수레들, 자리를 펼치고 과일과 농산품을 팔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에서 나라는 두 나라지만 민족의 동질성은 여전히 하나라는 것이 진하게 느껴졌다.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여 쿠스코에서 받은 비자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자 특별한 제약없이 볼리비아에서 여행할 수 있는 30일이 주어졌다. 오후 1시 40분. 푸노에서 세 시간을 단축하여 달려온 덕분에 국경에 도착한 지 불과 40여분 만에 모든 출입국 수속을 완료했다. 조금 늦으면 많은 여행자들로 인해 출입국 수속을 마치는 시간을 기약을 할 수 없게 된다니 일찍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볼리비아 입국신고를 마치고 마자 이곳까지 우리를 태우고 온 여행사 여주인이 마련해 놓은 봉고차에 짐을 싣고 또다시 라파즈를 향해 달렸다.
국경 도시 데사구아데로에서 라파즈로 가는 길은 티티카카를 따라 왼쪽에 호수가를 두고 잠시 달리다 내륙으로 접어드는데 아침부터 흐리다 개기를 반복하던 날씨가 내륙고원에 들어서자 제법 모양새를 갖춰 때론 세차게 내리다가 때론 이슬비가 되어 여행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디쯤인가,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차창 앞으로 비 내리는 넓은 고원이 펼쳐지자 박목월의 '나그네'가 떠올랐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만년설이 덮힌 높은 산들로부터 눈 녹은 물이 흘러들어 수자원이 부족한 곳은 아니지만 고원지대에 이렇게 비가 내리니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차창을 스치는 안데스 고원의 푸른 풍광들이 고스란히 눈에 담겼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중간 군인들의 검문이 엄한 것은 마약을 검색하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달려 오후 4시 10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의 멋진 숙소에 도착했다.
첫댓글 어딜가나 여행자의 성숙한자세는 보기도 좋고
모두에게 스스로 만족도를 높여주는군요.
자세한 설명과 티티카카호의
갈대전경이 멋질듯 합니다
현지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받는게 참저렴하고 좋죠
누가 리더했는지 현명하네요 ㅎㅎ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일상의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유로움이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지나친 모습은 불편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더 나은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더 배우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
때묻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느껴져요,즐감~~^^
높은 곳이다 보니 늘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듯했고, 대도시처럼 반듯하고 깔끔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농촌과 하나도 다름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
이곳은 고지대여서 사고나
쓰러지는분도 계시다던데 괜찬았나봐요
화장실이 제일큰 사고였나보네요 ^^
고지대여서 당연히 힘들어 한 일행들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티티카카 투어시 가장 힘들었고요^^
캐리어 가져가면 안되나요? 배낭 짊어지고 다닐 생각하니 암울해서 캐리어도 가져갈까 하는데,,,
캐리어 가져가셔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저도 캐리어 가지고 갔었는데 배낭보다 편하더군요
나이가 조금 있으면 배낭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명시대 감사합니다...^^
^**^ 즐감...감사..
즐겁게 감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녀온길을 사진과 설명으로 다시보니 정말 새롭고 추억이 새록 반갑네요 ^^*
허상님의 여행길도 멋진 시간이었을 테지요?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 의견주시면 수정하고 보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