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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과 대박!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슬픈 일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행복한 일은 있기 마련이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사느냐, 그것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거야. 웃고 살면 인생 대박이지만
징징 짜면 인생 쪽박이야!
그래서 어느 날 인생 정책을 수립했지.
웃고 살자! 그랬더니 간단명료해졌어."
"우와! 대박과 쪽박의 차이가 그렇게 간단하군요
투자의 법칙 중에 ‘-50% 10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내가 1천만 원으로 투자를 할 경우 처음에 -50%의 손실을 내게 되면 그 다음에는 100%의 수익을 내야 원금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계산해보면 1천만 원에서 -50%의 손실을 보게 되면 5백만 원이 되고, 여기서 100% 수익인 5백만 원이 더해져야 1천만 원의 원금 회복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가치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투자 원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박과 쪽박!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대박인생을 살려고 별의별 행동을 서슴치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쪽박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다보니 대박 인생이 되는 것이고 또한 살다보니 쪽박인생이 되는 것이다.
파랑새증후군 요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들어 볼 수 있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고 가는 병적인 증세를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별다른 노력 없이 이상을 크게 생각하고 꿈같은 포부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분들 중에 꿈꾸는 이상을 생각으로 실천하는 카타르시스가 커지는 것이다
이러다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면 절망하게 되고 우울증 비슷한 병을 동반하게 되고 그러면서 화병을 키워가는 그런 사람들이 요즘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을 느끼며 이번 주제를 대박과 쪽박으로 결정을 하고 많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글이 조금이나마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또한 너무 큰 이상의 차가 있는 분에게는 경종을 울리게 하기 위하여 이런 글도 쓰게 된 것이다.
위에 글 중에 웃고 살면 대박이다 하는 글과 같이 쪽박과 대박은 자신의 생각에 마음먹기 달린 것이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워렌버핏의 투자의 원칙에 관한 글을 잠깐 올린 것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한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혹시나 하여 주식에 투자하여 원금을 까먹는 일들이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저의 회사 아래층에 증권회사가 있다
거기의 손님들 중에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정말 많이 있는 것 같고 남녀의 비중도 비슷하게 이루어진 느낌이다.
많은 여유 돈을 갖고 가는 사람도 있고 아주 적은 돈을 갖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박의 꿈을 갖고 가는 많은 개미들의 인생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며 증권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남의 돈이 그리 쉽게 들어 올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롯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다.
이전에는 아주 작은 오백 원짜리 복권은 몇 장을 사본적은 있었지만 롯도 복권은 나에게 그런 행운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요행이란 단어는 나에게는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또한 한번도 경품 비슷한 요행을 바라다본 것들 중에 한번도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보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비단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들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복권 사는 돈을 가볍게 생각하고 복권을 산다.
당첨의 비중이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도 그 꿈같은 대박의 생각을 갖고 쪽박인생을 살면서 대박인생을 그려보며 사는 인생들이 우리 국민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굳이 내가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들 일 것이다.
내가 직접 느껴본 실 예들을 들어보는 글들을 아래의 글처럼 하나만 예를 들어본다면 이런글로 표현을 해보고 싶다.
쪽박 집과 대박 집!
쪽박 집과 대박 집을 우리는 보통 음식점을 비유해서 그렇게 부를 것이다
나 역시도 대박 집과 쪽박 집의 얘기를 듣고서 조용히 생각을 해보니 처음부터 쪽박집이 되기 위하여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가 음식점을 시작할 때 대박 집을 노리고 시작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을 할 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인드가 대박집의 마인드를 가지고 시작을 한다.
누구나가 인정을 하는 깔끔한 운영을 하며 많은 손님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그런데 처음부터 손님들의 비중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별탈은 없겠지만 음식점이 계절적인 요인도 있을 거고 광우병, 경제의 어려움등 여러 원인들로 손님들이 감소하는 시기가 있다그러면서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원가를 줄이고 인건비를 줄이고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이런 것은 모두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행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손님들의 입맛은 예민하다
점점 손님은 떨어지고 나중에는 쪽박집이 되었다는 말이 있듯이 또한 대박 집은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노력을 하며 갔더니 자연히 대박집이 되더라 하는 말처럼 넉넉하게 연구하며 노력을 하였더니 언젠가는 대박집이 되더라는 이런 쉬운 논리가 보통사람들에게는 아주 가볍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가벼운 얘기가 사실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육십 평생을 욕심도 많이 갖고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며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솔직히 본인에게 좋다는 것이 무언지라는 단어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일에만 매달리고 검소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았다.
그러다보니 자기관리의 소홀로 인하여 지금은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내가 쉬어야 하는 곳을 찾아 환경을 생각하고 있지만은 이전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 처지였기에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렸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몸이 망가지고 여러 군데 위험신호가 와서 공기 좋은 곳을 찾아 먹는 것부터 제약을 받아가며 휴양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에서야 느껴지는 것이 조금 덜 벌고 환경과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후회를 하고는 있지만 한번 나빠진 건강을 되돌릴 길이 없는 것이다.
솔직히 필자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보면 사회복지재단 이사장에다 경제적인 부도 쌓아놨겠다 누가보아도 대박인생을 살았다고 할 정도로 모양새는 갖추어 놓은 것은 사실이다.
경제적인 면이나 사회에서 바라다보는 위치의 모양새는 대박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면 사실적인 삶은 정말 소 서민 입장에서 생각하며 衣食은 물론 걸어 다니며 버스와 전철 그리고 급하면 택시를 타며 모든 것을 편하게 살아왔다고 누구에게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한 내 관리를 하며 쪽박인생에 가깝게 살아온 것을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얘기 할 수 있으며 맹세코 조금이라도 위선적인 거짓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는 인도네시아에 일과 같이 완전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서 요양을 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곳에서 있어야 하는 부자병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누구나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조금 현명한 삶을 살자고 했으면 경제적인 면도 대박 건강도 대박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와 지혜와 현명한 판단력을 가지고 행동을 했다면 모든 사람들이 대박을 누리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 이글을 읽으면서 대박인생이 그렇게 쉽게 되겠냐고 묻는 분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 되는 것은 아니고 필자도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그 진리를 알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정말 된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고 노력을 한다면 안되는 것은 없다 이렇게 결론을 맺고 싶다
위의 글에 식당의 예를 든 내용을 다시 얘기한다면 모든 사람들의 첫 번째 생각은
후덕하고 넉넉하고 신선도 있는 음식만 제공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가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 한다 다른 변화가 생기면 조금씩 깨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 한없이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무너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기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들을 많이 한다
그저 운이 없어서. 자본이 짧아서.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노력과 성격과 예의에 어긋나는 생각에 문제가 없었다고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지금 이런 분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고
내 자신이 모나게 행동하는 생각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번 내 자신이 어떻게 하면서 살았나 하는 깊은 생각을 골똘히 하면 정말 답이 나온다.
얘기를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짧은 시간에 대박이 났었는지 스토리와 쪽박으로 치닫는 현재정치권의 모습등 역사적인 사실들을 곁들여 이야기를 전개해보겠다
한국의 이전 역사를 보면 보존이 되어있지 않은 거의 싹쓸이 문화에 가깝지 않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을 해보았다.
이전에 글에도 표현을 했듯이 4.400년의 역사치곤 역사의 보존이 되어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본다.
고조선 기자조선 가야문명 그나마 삼국시대의 역사 중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 신라의 문화라고나 할까 신라가 고려에 항복을 하므로 자연히 보존이 이어질 수 있었고 고려는 조선에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조건 때문에 그나마 조선 500년 역사를 일부나마 보존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6.25때 낙동강까지 밀리지 않은 덕분에 신라의 유물과 문화가 유지 되었을 뿐 모든 조선시대의 문화가 6.25전쟁으로 전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 이처럼 역사의 문화가 보존이 힘들었으며 왜 이전의 역사를 싹쓸이 하려고 한 것을 이렇게 진단을 하고 싶다.
필자의 생각은 대한민국의 지형이 2/3가 산으로 되어있고 농토도 매우 척박한 상태에서 예전의 농사법으로 근근이 살아왔던 우리조상들이 먹고살기 수단으로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유행어를 퍼트리듯 서로 물고 물리듯이 배려할 줄 모르는 정치권의 지금의 형태처럼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으로 조선시대 말에 일본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환되는 아픈 상처들이 바로 척박한 대한민국의 조건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인들의 단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6.25의 잿더미 속에서 국민1인당 소득 65불의 시대를 살아가던 대한민국이 대박이 나기 시작한 것이 정치 안정을 이룩한 시점인데 바로 박정희대통령이 정권을 잡고난 뒤 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글을 보는 분들이 필자에게 편견을 갖고 박정희대통령을 추앙하는 글을 올린다고 할까봐
노파심에 필자의 입장에서 당연한 변명을 해보려고 한다.
필자의 할아버지는 49년도에 남로당 박헌영을 따라 월북을 한분인데 그 이후 필자의 부친은 월북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박 정권 밑에서 오만 수모와 학대를 받아가며 정말 어렵게 살았으며 필자도 11살의 나이에 신문을 돌리고 아이스케키를 팔아가며 생활전선에 뛰어든 박 정권 밑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런 필자가 박정희 대통령과의 좋은 인상이 있을 수 없는 인연이고 그런 상태에 부친은 반체제로 야당에서 골수로 활동을 하시던 분이였다.
글의 방향이 이상한대로 흐를까봐 이 정도에서 필자의 입장을 정리하고,
박정희하면 대한민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오게 한 한마디로 모든 경제의 기초를 다지게 만든 장본인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한 칭찬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좋은 이미지도 많이 남긴 것도 사실이며 이러한 과정은 대박이었지만 자신의 마지막은 쪽박인생으로 끝난 실패한 인생이다.
독재의 말로가 바로 쪽박으로 부부가 비참하게 돌아가신 것이다.
조금만 욕심을 덜 부리고 정권이양을 하였다면 그분은 만고의 영웅이 되었을 텐데 장기독재로 인하여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분만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무엇인가 있었지 않나 그런 덕분에 모든 산업에 기초가 되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분의 대박신화에 약간의 퍼온 글을 인용하여 몇 자 소개를 할 까 한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의 지도자답지 않게 부끄럼 타고 겸손하며 남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면서 면전 칭찬에는 겸연쩍어했다고 한다. 그는 인기를 의식하여 그럴듯한 수사를 늘어놓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나 무책임하고 비생산적인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으며 특히 경제에 대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여 웬만한 학자보다 더 박식하다는 소리를 기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박정희 이어 대통령직을 계승한 지도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처음에 경부고속도로, 울산공업단지, 포항제철건설을 반대했었다. 철학과 비전, 국가경영능력은 물론 도덕·윤리 수준에서도 박정희에 미치지 못했다. 두 대통령은 반란·부패혐의로 투옥됐었고, 두 대통령은 그들의 자식들이 불법축재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 대통령은 그의 최측근들이 불법자금수수로 줄줄이 감옥에 가고, 뇌물 받은 그의 친형은 법정에 서기도 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세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앞에 내세웠지만, 결국 국민들에게 잇달아 실망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대규모 불법 비자금 조달, 선동적 좌파기회주의 포퓰리즘으로 국정을 농단했다. 진정성과 숙고원려가 결여된 수도이전계획 등은 계층간 갈등 분열을 일으키고, 거기다 김정일과의 회담을 위해 퍼주고 매달리면서 북한주민 인권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결국 국가의 목표는 실종되었으며, 박정희에 의해 함양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사회적·제도적·도덕적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다. 그리하여 박정희 정부가 닦아놓은 경제적 기반까지 무모하게 와해시킴으로써 국민들에게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 등 아시아의 여러 지도자들이 한결 같이 박정희 경제모델을 벤치마킹하여 국가경제를 일으키려 노력했다. 그들 모두 박정희를 가장 존경스럽고 본받을 지도자로 꼽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권의 발전을(?) 매일 메스콤을 통해 알고 있으며 식상한 여야의 정치를 우리는 매일 접하고 있다.
비록 독재정치로 장기집권을 하였지만 역대의 대통령 중에 가장 확실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웠다 이렇게 얘기를 해도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이전까지와 달리 시진핑 주석이 올라오고 난 뒤 중국에서도 부패척결이라는 캐치푸레 아래 연일 부패에 대한 보도를 하고 있다.
보시라이 총칭서기등 요즘 신문에 보도되는 저우융캉 전 정법위원등 공안부부장등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는 부패에 칼을 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강한정치가 존재하고 있고 국민은 강한정부를 신뢰하고 강한정부는 국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부분에 싱가폴등 동남아와 중국이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하며 그를 따라 배우려는 자세가 바로 발전과 연결이 되었던 사실이다.
아래 글은 특별한 자료가 있어 거르지 않고 그대로 옮겨본 글이다
2005년 10월 26일,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국립묘지를 참배, 박정희 대통령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고 있었다. 그는 박정권에 반대, 민주화를 부르짖던 운동권 일급 수배자였었다. 현상금 200만원과 2계급 특진이 걸려 있던 1979년 10월, 부마항쟁 현장에서 체포되어 혹독한 조사를 받던 중, 朴대통령이 시해되어 풀려났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죽음은 그에게 큰 허망함을 가져다주었다. 손학규는 영국으로 늦깎이 유학을 떠났다. 그는 영국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박정희와 한국의 경제발전은 큰 화제였다. 이념적 대립관계였던 공산권 국가 유학생들조차 ‘한국의 박정희가 자신들 비전의 모델’이라고 했다. 손학규는 이런 혼란을 겪으며 차츰 세상을 넓게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 이제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 시대 선배들의 국가경영경륜을 겸손하게 평가하고 받아들인다고 고백한다.
다시 한번 얘기를 하지면 절대 박정희를 영웅시 하려고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중에 합당한 내용을 필자의 의견을 적은 것 뿐이기 때문에 어떠한 오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혀둔다.
그러면 박정희 시대에 경제 변화를 얘기한다면 이렇게 표현을 하고 싶다.
60년도 그때에 십대기업은 삼성.삼호.삼양.개풍.동아.현LG(락희)대한 동양 화신 한국그라스.
이중에 그대의 인생을 사신분들은 서울의 부자 삼호건설을 연상 하시겠지요 서울의 땅부자
70년대 말까지 십대기업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진 기업들이다.
지금 현재는 삼성과 LG만 십대기업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 기업은 없어졌거나 날개 없는 추락을 한 것이다.
70년대 십대기업도 삼성 삼호 현대 락희 한화 동국 효성 신동아 한일합섬 선경등이 었는데
이중에 현재까지 십대기업으로 이어진 기업이 삼성 현대 락희 한화 선경등이 현재까지 십대기업으로 존재를 하며 대박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60년대에 쟁쟁하던 기업들이 전부사라지고 몇 기업만 남아 존재를 하고 있는가 그것은 2세경영이 실패를 했다고 보면 맞는 말일 것이다.
돈 많은 아버지를 둔 자식은 대박인생을 흥청망청하면서 공부는 뒷전이고 칠공자라는 유명한 2세들의 대한민국의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박동명 신앙촌 박태선 장로의 아들이 그 실 예이다.
결국 신앙촌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종교단체가 되어있지만 그때만 해도 최고로 값비싼 물건에다. 박태선장로의 인기도 하늘 높은줄 모르는 그런 대박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앞에 6-70년도에 십대기업으로 있다가 사라진 기업들 대부분이 1세의 경영에서 2세의 허약한 경영수업으로 인하여 쪽박으로 빠져든 기업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지금의 삼성은 어떤가?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80년대 중반까지 경영을 하다가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물려줘 장남과 차남의 유산상속에 대한 법정싸움이 얼마 전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병철 회장의 선경지명이 이건희의 후계자수업을 강하게 시킨 결과 지금의 삼성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싶다.
지금도 삼세경영의 준비를 혹독하게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5년의 먹을거리를 준비하라고 호통을 치며 아직도 일선에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대박의 사나이 이건희 회장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우겠는가?
현대그룹도 정주영회장의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힘을 안고 현대차그룹이 쌩쌩 잘 달리는 결과도 2세 훈련을 톡톡히 잘 시킨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대우 한일합섬 국제 우리귀에도 낮익은 기업들이 하나둘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 잊혀지고 있다.
셀러리맨 들의 대박의 신화 김우중의 대우도 잊혀져가는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전신의 힘을 이어받아 아직도 선전을 하는 GM대우나 대우조선해양등은 특별한 경우라고 해야할 것 같다.
40~50년 전의 기업 변동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급변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흐름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00년 초반에 오면서 50년 동안 삼성그룹이 우리나라의 1인자 기업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1970년과 비교해볼 때 삼성, 현대, LG, 한화 그룹을 제외하고 이름조차 생소하거나 망하여 사라진 기업이 많다는 것을 앞에서 소개를 했었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통계를 볼 때 100년 이상 살아남는 기업은 0.5 %에 불과하다고 한다.
2009년 10대 기업의 통계자료 인데 6년 전의 2003년과 비교 해 볼 때 신흥 기업이 새로이 올라와 있고 기존의 10대기업에 속했던 기업이 순위권에 밀려나 사라져버렸다.
순위권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고, 영원한 기업은 없다는 것이 얼마 전에 동양그룹
이 거의 해체 수준이고. 또한 M&A신화를 남긴 STX그룹도 사라져간 것이다.
웅진코웨이로 단번에 재계 높은 순위로 껑충 뛴 웅진그룹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신세로 떨어져버렸고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줄지어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 많은 대박기업들이 쪽박기업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져 가는 것인가.
필자의 능력으로 감히 이모든 부분을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첫 번째는
무리하게 방만한 경영을 한 것이다.
이모든 것이 욕심으로부터 출발을 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재벌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돈,권위.명예. 등등 자기들의 재산도 아닌 것을 하나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가지고 비자금을 조성하고 분식회계를 통하여 적자가 난 부분도 흑자로 둔갑시켜 기업은 망해도 개인은 망하지 않는 신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문어발확장, 순환출자등 기업의 윤리등을 망각하고 무리한 경영을 계속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결과가 빚어진 것이라고 필자는 얘기하고 싶다.
대박과 쪽박의 내용과는 약간의 거리는 있지만 이런 의지의 한국인이 많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자료를 찾다보니 많은 훌륭한 분들의 기록도 많지만 의외의 인물을 소개하는 자료를 찾았고 이 분을 우리 기업들이나 우리국민들이 대박이 무엇이고 쪽박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싶어 몇 자 옮겨 담습니다.
김정식 목천문화재단 이사장, "공학자들이여, 야생초가 되어라"
한국전쟁 전 가족들과 월남해서 신문‧껌팔이 해가며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하였으며 수학을 좋아해 전기과 진학했다 형 어깨 너머로 본 건축에 매료되어 형제 건축가 '정림건축' 설립…
금융·산업분야 대형설계프로젝트로 두각 건축에 조직설계와 컴퓨터 최초 도입…독특한 직원 교육제도로 '정림 건축사관학교' 별칭 인천공항·청와대본관·국립중앙과학관 등 2000여개 설계 프로젝트 진행 현재 친환경 건축, 건축아카이브 구축 등으로 공헌 목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얘기를 한다 “종종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죠. ‘야생초가 되어라’.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고생을 통해 자립정신을 키우는 것은 아주 값진 일입니다. 나는 중학교 2~3학년의 나이에 ‘내가 살려면 공부밖에 도리가 없구나’를 깨달았는데, 아직도 그 교훈을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난 아버지가 가난했던 것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 성장기 초기부터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해온 건축가 김정식 목천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 현대건축계의 대부(代父)이자 원로 중 하나다. 1967년 국내 대표 설계사무소인 ‘정림건축’을 세워 수 십 년을 건축계 일선에서 활동했다. 외환은행 본관,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 인천국제공항,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등 그가 작업한 굵직한 건축물만 열거해도 우리나라 현대사가 보일 정도다.
그의 화려한 건축 설계 경력 뒤에는 어렵고 고생했던 과거가 있다. 소년시절 일본학교를 다니며 차별 받았던 경험이며, 한국전쟁 직전 고향 평양을 떠나 삼팔선을 넘던 기억, 명동거리에서 껌과 신문을 팔아 학비를 마련했던 청소년기,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대학원을 8년 만에 졸업한 것 등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들은 그의 아름답고 세련된 건축물들과 대비되어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한 가지만 열심히 목표를 세워 인생을 설계한다면 성공을 못 할리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 나의 노력보다는 남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려고 하는 마음이 크면은 절대로 성공 못한다는 보편적인 이 얘기를 대박과 관련하여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인생의 삶 중에 대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필자는 권위 명예. 그리고 부자가 하는 짓 모든 것을 자제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필자는 항상 욕먹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주변의 친척들은 밤과 낮 구분하지 않고 필자에게 무엇을 요구한다.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바로 욕이 나온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내용증명을 받고 부친을 요양원에 가시게 했다고 불효자식이라는 오명을 씌워 사회매장을 시키겠다고 협박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본인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이런 식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로 오는 전날 밤에도 매달 몇 십만 원의 돈을 지금도 보내주고 있는 친척에게 새벽에 전화가 와 잠을 깨우며 방을 얻어내라고 무조건적인 요구를 한다.
그 자식들도 손주도 그런대로 살고 있다.
본인이 쪽박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대박의 삶을 살고 있는 니가 돈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이렇듯이 나 하나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를 봐주라는 얘기는 이제는 이골이 나있다.
본인들의 위치가 그렇게 나븐 위치도 아니고 한때는 대박의 위치는 아니지만 비슷한 위치까지 갔었던 분들이다.
우리사회는 강자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강자는 약자에게 당연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도 대박과 쪽박의 인생을 살런 지는 모른다.
성공한 대박의 인생은 당연히 그 댓가를 치러야 하는데 왜 치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가 약간의 혼돈 속에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힘들게 살아와서 살만하니 별의별 인간들이 날뛴다는 어느 부자의 푸념이 남의일 같이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처럼 욕을 먹고 사는 것이다.
필자는 특히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할 수 있다.
쪽박인생도 반드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야 당연하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우리사회는 정말 힘들고 자기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배려가 필요한 사회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함부로 내밷는 선심성의 공약을 믿고 그 것에 의존하려는 많은 쪽박인생들이 있다.
우리사회가 진정한 복지가 이루어지려면 강자의 대박인생이 약자의 쪽박인생에게 무한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쪽박인생들도 자신의 노력 없이 받는 기쁨으로만 일관한다면 지금과 같이 반목과 대립의 시대를 살아야하는 절대 절명의 위기의 시대를 살 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들의 목적만을 위하여 국민의 발목을 잡고 파업을 벌이며 개인의 利略 단체의 利略에 자신의 운명을 대박인생으로 걸고 간다면 어느 단체든 똑같은 방법으로 반복을 거듭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며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남유럽사태의 교훈을 잃어버리고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쪽박의 의미는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단어이며 대박은 쪽박으로 갈 수 있는 단어의 뜻이기도 하다는 필자만의 고집이 있다
이글을 쓰기위하여 많은 생각도 했고 또한 이 글이 과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도 했지만 쓰고 나니 글의 연결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졸필의 한계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을 하며 비오는 인도네시아 숙소에서 능력의 한계를(?) 원망하며 대박과 쪽박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며 이글을 멈출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