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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도 식힐 겸 백제의 고도 충남 공주관광 갑니다.
☞출발일시와 장소: 6월26일(금요일) 08:00 광주역앞(송광관광) (서방시장. 동신고. 홈푸러스 경유) ☞회 비 : 15,000원(남), 13,000원(여) ☞준비물 : 도시락과 식수, 간식, 등산복장( 우의,여벌옷 ),구급약등.
☞목적지 : 충남 공주 공산성 ☞등반코스: 마곡사, 성곡사,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 공산성.
☞ 연락처:회 장:정대진;010-6397-4794 총무:이정례:010-2434-5892 산행이사:김등부:017- 620-7566 광 주 금 광 산 악 회 장
공주 공산성-도로변에 비석이 즐비하게 세워저 있다.
백제왕국의 옛수도 공주(고마나루→곰나루→웅진<熊津>→公州) 초기 백제는 원래 한강유역(지금 서울성동구의 잠실부근, 풍납동,서초동,방어동일대)에서 출발한후, 점차 경기 충청 전라도까지 영역을 설정 세력을 확대하여, 고구려 신라와 겨루는 큰 나라로 발전하여 그 영향력은 중국 일본까지 미첬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책으로 한강유역을 점거당한 백제는 개로왕이 살해 당하고, 475년에 22대 문주왕이 하남 위례성에서 고무나루로 천도함에 따라, 백제중흥을 꾀한 성왕이 16년(538년)에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하기까지 5대 64년간(문주왕2년 심근왕2년 문성왕22년 무령왕22년 성왕16년)백제의 왕도가 되어 찬란한 백제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따라서 공주는 사적지와 유물을 많이 간직한 역사 문화 관광 교통의 중심지이고 장차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된 도시이다. 마곡사(麻谷寺): 공주시 사곡면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선생이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 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성곡사(聖谷寺) : 공주시 우성면 뒤로는 고불산(갈마봉) 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좌우로는 천마산과 문필봉으로 에워싸인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성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로 주지 관묵스님의 원력으로 이룬 “참회기도 도량”이다. 참회도량은 중생들이 부처님 전에서 참회를 함으로서 마침내 구원을 얻는 도량이다. 1983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1995년 회향식을 가진 성곡사는 절의 규모보다 불전마다 모신 불상의 규모가 무척 크다. 이곳에 불사를 일으킨 현 주지스님이 이곳에 참회도량을 짓기로 하고 중생들이 와서 참회를 할 때, 부처의 큰 뜻을 친견하고 참회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의미로 불상조성을 크게 했다고 한다. 천불전에 모셔진 청동좌불은 국내에서 가장 큰 좌불로 높이가 12.5m이며, 대리석 좌대를 포함할 경우 18m에 이르러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환희심이 나오게 한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을 둘러싸고 반원형으로는 부처님의 상수 10대 제자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뒤로는 동판에 새긴 금강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길이 210m 에 이르는 말굽형 10개의 계단에는 1천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 높이 또한 사람의 키보다도 큰 1.9m로 웅장함을 더해준다. 그 뒤로는 개인의 서원을 담은 원불로 야광 여래 333,333불을 모셔 참회기도 도량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광경은 바로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 영취산에서 10대 제자와 1천2백50여 아라한을 모아 놓고 금강경을 설법 하시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것 이다. 그밖에 대웅전, 팔부신장, 명부전, 영산전, 삼성각, 아미타불, 지장보살, 종각, 탑, 포대화상, 무심돌, 십일면관음전 등이 있다.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 : 공주시 금성동. 사적 제13호 1500년만에 모습을 들어낸 25대 무령왕릉을 포함한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으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 무령왕릉과 5.6호분,29호분, 동북쪽에 1~4호분과 7~9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6호분의 배수로공사때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피장자와 축조연대를 정확히 알수 있는 지석이 나옴으로써 가치가 있고, 많은 양의 중요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고분 문화연구와 백제사 연구의 새전기를 마련하였다. 여기서 발굴된 부장품은 108종, 2,906점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만도 12점이나 된다. 출토유물은 공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전시중이다. 무령왕릉과6호분은 현제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시대의 벽돌무덤이며 터널형 현실앞에 짧은 터널형의 연도가 있다. 1971년 발견후1997년까지 공개하다가, 누수 훼손 등으로 영구 폐쇄하고, 고분군 내에 모형관을 재현하여 2003년에 개관했고, 모형관에 전시된 부장품은 모두 모조품이다. 공주 공산성 : 공주시 산성동,금성동,옥룡동 사적 졔12호 백제의 수도가 공주에 있을때 64년간 공주를 지킫던 백제의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도 불렸다. 금강변 야산의 분지를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였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으로 사방에 문터가 화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암문 장대등 여러 가지 방어시설이 남아있으며 성안에는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영은사 광복루 명군삼장비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조선시대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피난했던 곳이기도하다. 산성의 성격에 대하여는 군사적 목적을 가진 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무령왕의 지석에 나오는 방위나 기타 자료를 들어 웅진시대의 왕궁터(추정 왕궁지)로 보는 경해도 있다. 금강과 공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어 명실공히 공주 역사 문화의 1번지로 불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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