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레인콤, 팬택앤 큐리텔 같은 회사는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힘들어졌다. 천하의 소니도 신제품 개발에서 뒤지자 예전의 영화가 빛이 바래고 있다. 죽었던 애플이 살아나면서 스티브 잡스가 다시 스타가 되었지만 그 역시 몇 년이나 갈 지 알 수 없다. 기술 발전이 빨라지면서 제품 주기가 짧아졌고 기업 수명 예전에 비해 짧아졌다. 예전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이었는데 최근에는 15년 정도로 줄었다. 그래서 요즘 경영의 최대화두는 지속가능경영이다. 지금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풍요로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저자인 예종석 교수는 경영학과 교수인 동시에 아름다운 재단 기부문화소장이다. 이 책에서 나눔을 통한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여러 철학을 얘기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내세운 경영 패러다임이다. 기업이 경제적 성과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투명 경영, 환경 보존,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등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주제이다. 가진 사람이 베풀어야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에 대한 철학 확립
우선 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여러분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꼭 해야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기는 싫지만 사회적 압력 때문에 하는가? 반드시 필요하고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공헌이 기업의 제 1차 목표는 아니다.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데 무슨 사회적 공헌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존재만으로 이미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직업을 창출하고 이익을 내고 세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여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기업이 글로벌화되고 사이즈가 커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거기에 따른 역할과 책임 또한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기업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기업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망가지면 기업 역시 망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회사는 내 것이다. 내가 피땀 흘려 만든 것이고 여기서 번 돈 모두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쓰면 된다. 사회가 어떻게 되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나는 이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빚을 많이 졌다. 오늘날 이만큼 살게 된 것도 국가와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동안 진 빚을 여러 활동을 통해 갚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에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중소기업 오너들을 만나면 상속세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상속세로 다 낼 것이면 무엇 때문에 힘들여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부 아래서 여러 기대를 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이다. 하지만 같은 아젠다에 대해서도 빌 게이츠, 워렛 버핏, 조지 소로스 등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감세정책의 일환으로 상속세를 폐지하려 하자 선두에서 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빈부격차를 크게 하고 결국 기부문화에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 이유이다.
사회적 공헌에 대한 몇몇 사람의 얘기이다.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 회장은 “21세기에 나이키를 비롯한 여타 모든 글로벌 기업들은 그 성과를 평가 받을 때 매출 및 이윤의 증가와 똑같은 비중으로 인간의 삶의 질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빌 게이츠는 “사회에서 부를 쌓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회에 부를 환원하고 불평등을 개선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사회 전체가 가난하다면 그 개인의 부는 보장 받지 못한다. 사업가는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앞서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메이지 시대 “일본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던 시부자와 에이치 (1840-1931)가 한 말이다. 그는 일본국립제일은행장으로 무려 500여 개의 기업을 창설하는데 앞장섰고 그 자신도 왕자제지를 창업한 인물이다.
사회 공헌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잘 하면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는 펄프를 갖고 기저귀와 생리대와 휴지를 만드는 회사이다. 근본적으로는 환경친화적인 업종이 아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란 캠페인을 벌이고 나무 심는데 많은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유한킴벌리 하면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매출과 이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사회공헌 활동을 하건 자선을 베풀건 올바른 전략을 세워 시행을 하는 것이 좋다.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TV가이드로 유명한 출판재벌 월터 아넨버그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기부를 통해 자선사업의 귀족이란 말을 듣고 있다. 그는 문화예술 단체와 공영라디오 NPR에 집중적으로 기부를 한다. 플록 크레스너 재단은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한다. 이 재산은 교통사고로 요절한 천재화가 폴록과 자신 역시 화가인 부인 크레스너가 그림을 매각한 돈으로 만든 재단이다. 이 재단은 재능은 있으나 가난한 예술가를 집중 지원한다.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경영자 에블린 로더는 여성으로부터 번 돈은 여성을 위해 쓰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방암 퇴치 사업에 집중한다. 석유왕 폴 게티는 예술사 연구와 문화유산의 보호활동에 전력투구를 한다. 빌 게이츠와 공동창업자였던 폴 앨런의 별명은 시애틀의 메디치이다. 자신의 고향 시애틀의 환경, 예술, 문화발전을 위해 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곳곳에 박물관, 음악당, 미술관을 짓고 자신이 좋아하는 시애틀 출신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 추모사업을 지원한다. 시애틀을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한국의 웅진그룹도 전략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정수기를 만들기 때문에 물에 집중을 한다. 우선 윤석금 회장은 고향의 더러워진 유구천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주기적으로 강을 청소하고 주민들을 계몽했다.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 지은 쌀을 회사 차원에서 구입했다. 환경부 차관 출신을 부회장으로 영입해서 환경경영을 전사적으로 펼쳤다. 그러다 캄보디아 사람들을 위해 우물 파주기 운동까지 확대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대외적인 이미지도 좋아졌지만 무엇보다 내부직원들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성과가 좋아졌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혁신적인 공익연계 캠페인을 통해 카드 사용률과 신규 가입률을 크게 상승시킨 경험이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사업도 잘 된다. 기업이 지역사회에 이익을 되돌려 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 사업 측면에서도 현명한 선택이다.” 전 회장 하비 골럽의 말이다. 우리 사회의 공헌 활동은 아직 상당 부분 장학사업 쪽에 치우쳐 있다. 이를 도서관, 박물관, 병원, 대학, 문화예술단체, 자선봉사단체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진 자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오랜 세월 경험한 결과 나온 산출물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일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에 비해 부자들이 욕을 먹는 이유도 자본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누는 것의 즐거움을 알면 나누지 말라고 해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사회 공헌을 많이 한 카네기와 록펠러 같은 사람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카네기는 초기에 “미국 산업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수완가”라는 평을 들었다. 워낙 잔인하게 피도 눈물도 없이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뀐다. 그러다 66세 되던 1901년 자신의 철강회사를 4억 8천 만불 받고 JP모건에 팔고 이를 사회에 환원한다. 말년에 이런 얘기를 한다.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자식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주는 것은 독이나 저주를 남겨주는 것과 같다.” 록펠러도 비슷한 경우이다. 그는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해 경쟁자를 몰락시키고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하며 미국 석유시장의 95%를 장악한다. 그래서 “당대에 가장 혐오스런 자본가”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록펠러가 아무리 선행을 해도 그 부를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을 갚을 수는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그만큼 악명 높은 독점 자본가였다. 그러던 그는 50대에 이르자 중병에 걸린다. 기관지,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겼고, 위궤양도 앓았다. 잠도 자지 못했다. 소화불량은 중증이었다. 나중에는 지독한 피부병까지 얻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하면서 외모가 노인처럼 변했다. 나중에는 비스킷과 물만으로 식사를 대신할 지경이었다. 하루에 수백만 달러씩 벌어들이는 돈도 아무 소용 없었다. 그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 사실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의사는 1년 이상 살지 못할 거란 사형선고를 내린다. 절망감을 느낀 그는 엄청난 재산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에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면서 점차 건강해진다. 잠도 잘 자고 음식도 잘 먹게 된다. 1899년 이후 그는 자선사업가도 변신한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면서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처럼 나눔의 첫째 수혜자는 자신이다. 사회 공헌 활동을 할 때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직원들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자신이 얼마나 혜택을 받고 있는지 깨닫게 되고 일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36조에 달하는 재산을 기부한 워렌버핏 역시 기부하는 이유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얘기한다.
아직 인색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자를 존경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구나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재벌을 존경하는 사람 또한 별로 없다.” 한국 사람들의 심정을 잘 드러낸 말이다. 왜 그럴까?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고 그에 따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부자가 적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선은 할머니들이 다 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만 보자. 영등포 송부금 (70) 할머니는 평생 저축한 돈 23억 원을 한국복지재단과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은행에 기부했다. 수원 양로원에 사는 김갑순 할머니(86)는 돈이 없어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불우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평생 모은 5천 만원을 KBS 강태원 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전북 남원에 사는 박순금 할머니 (92)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년 지급되는 노령교통수당을 9만원을 5년 동안 모은 50만원을 한일장신대학에 기증했다. 광주의 이순례 (84)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고 싶다며 10억 원 상당의 땅을 전남대에 기부했다. 유한양행을 만든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라고 얘기했다. 그에게 기업은 목적이 아니라 나눔의 수단이었다. 가치기준은 국가, 교육, 기업, 가정의 순이었다.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갑을 정신도 버려야 한다. 갑은 파워를 행사한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을이야 어떻게 되건 무리하게 가격을 후려친다. 가격을 후려치니 이익을 남기기 위해 갑 몰래 값싼 자재를 쓰기도 하고, 품질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둘 다 손해를 본다. 도요타가 세계 1위가 된 것은 갑을 정신을 버리고 승승정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도요다 생산방식의 아버지 오노 다이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모회사의 사업성과는 부품업체를 협박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존중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부품업체의 가격이 좀 낮다고 해서 업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마케팅도 중요하다. 마케팅의 목적은 영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케팅은 만들어서 무조건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릴 것을 만드는 것이다. 마케팅을 고객을 생각하는 것이다. 마케팅은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작업이다. 소비자의 주파수에 끊임없이 맞추어야 하는 힘든 일이다. 마케팅은 튜닝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 맞게 튜닝을 해야 한다. 아파트도 입주자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맞춤설계와 맞춤시공 서비스를 한다. 냉장고도 맞춤형 개념을 도입한다. 인형도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옷과 액세서리, 피부와 눈의 색상, 머리 모양을 선택한다. 자동차를 튜닝한다. 핸드폰이나 PC도 튜닝한다.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고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생명체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 조직, 존재할수록 괴로움만 주는 조직은 사라져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고객은 누구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주고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고객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잭 웰치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