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헛된 기대라는 것은 없다.
헛된이라는 단어와 기대라는 단어는
함께 병립해서 쓸수가 없는 거라.
기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진정을 갖고있어
참의 속성을 담고 있다.
기대하지 마라, 는 말은 애초에 참일 수 없으면
가끔 나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대하면서
헛심을 쓸때가 있다.
오지도 않을 사람을 올것처럼 기다리고
이루어질수도 없는 일을 이루어질것처럼 기대하는.
그래서? 그러니 헛된거다?라고
말할수 없다.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실수를 고쳐보겠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헛된거라고?
그러니 우리는 고쳐지지도 않는 것을 붙들고 씨름할 것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흘러 망각으로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래서 루드빅이 그렇게 루치에를 떠나보낸 것처럼?
글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은 기억에 밀려나서
더 또렷해지지 않는가. 그때 그날 있었던 것들,
그녀의 옷자락과 전등과 눈빛과 눈동자까지도 점점 더 선명해지지 않냐는 거다.
회한은 갈수록 더 짙어지고
무거움은 시간에 비례해서 가중되고 있었다.
잊었다고 여겼던 것들은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창조된다.
그래서 그러는데 망각은 약이 아니다. 헛된 기대는 없다. 기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시 또 다시 퍼져 나온다.
모든 비켜나는 것들은 헛되다.
루드빅의 유린이 루치에의 유린과 어긋나면서,
헬레나의 증오가 루드빅의 증오와 어긋나면서,
야로슬라브의 소망이 블라스타의 소망과 어긋나면서
헛된 것들이 된다.
헛된 기대는 없고, 기대가 헛되는 것은 있다.
내가 너와 비켜나면서, 나의 기대와 너의 기대가 비켜나면서
헛물을 킨다.
슬쩍 농담한마디에 루드빅은 백명이 넘는 그들로부터,
루치에는 여섯명의 남자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마을로부터,
헬레나는 젬메마가 아닌 루드빅으로부터,
야로슬라브는 아내와 아들로부터 비켜났다.
루드빅. 클라리넷을 든다.
야로슬라브는 술꾼들이 아닌 저 벌판으로 가자고 한다.
다시.. 그곳으로 간다.
그곳은 과거가 아니다. 저기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