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지리로 세상을 읽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개성은 이미 그 기운이 다 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지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풍수지리가 매우 발달했으며, 지금도 무덤을 쓸 때 지관을 불러 명당자리를 찾는다.
일전에는 김대중 대통령도 대통령에 오르기 전에 명당자리를 찾아 조상의 묘를 옮기기도 했었다. 지세가 모든 것을 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맥과 강을 경계로 이쪽과 저쪽으로 국가나 도시가 세워지고 그곳 각각에 사는 사람들의 말투가 다르고 생활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강의 생김새에 따라 쓸모가 있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유럽 대부분의 강은 너른 평원을 유유히 흐른다. 그 바람에 그런 강들은 교역을 활발하게 한다. 유럽이 다른 대륙보다 일찍 부를 쌓은 것은 바로 그러한 지리적 이점이 힘입은 바 크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은 전적으로 지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러므로 글을 시작하는 첫 마디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 세계의 여러 지역의 지정학적 문제들
중국과 관련해서는 국제적인 해군력 없이는 패권국이 되기 어려운 현실을 논하고 있다. 드넓은 땅을 평정하느라 혼돈의 4천 년을 써버린 중국은 이제는 막강한 대양 해군력을 구축해 해양 강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남중국해를 비롯해 여러 해협에서 치르고 있는 영유권 분쟁은 해상 수송로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남중국해는 우리나라 역시 매우 중요한 해상 수송로이다. 만약 이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는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할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대만을 자국 영토로 복속시키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어서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그곳이 바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가르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극해까지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진정한 강대국이 되기 어려운데 이는 러시아의 지리적 제약 조건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러시아는 한마디로 지리에게 복수의 일격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드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사방의 바다길이 막혀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대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를 경유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부동항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이와 관련이 있다.
미국은 유럽의 이주민들이 만든 나라이지만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드문 국가다. 현재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독립을 한 후 불과 200년이 조금 지난 시간 동안 이루어낸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 주요 지역들에서 자국의 영토를 확장했던 기민한 결정들과 어떻게 그 나라가 오늘날 두 대양을 아우르는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지리적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
미국은 현재 동쪽으로는 대서양을,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대륙을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자국의 영토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으로는 캐나다 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이다.
사실 미국이 독립을 할 때의 영토는 지금과는 천지차이였다. 그러던 것이 루이지애나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였고, 그 후로 멕시코와 전쟁을 통해서 현재의 미국 남부 땅을 획득했으며,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했다. 특히 괌이야말로 필수적인 전략적 자산이었다. 1962년, 소련과의 분쟁에서는 소련이 마지못해 굴복함으로써 위협을 제거하고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최강 군사 대국으로 성장했다.
한편, 인류가 최초로 탄생한 아프리카는 지리가 최대의 장애물이며 따라서 고립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리로 인한 ‘복’은 형편없는 곳이다. 산은 험준하고 강은 경사가 급해 유럽을 이리저리 흐르는 강들과 달리 쓸모가 별로 없다.
이런 조건은 실제로 무언가를 운반하는 교역로로 이용하는 데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반면 유렵의 경우는 라인 강, 다뉴브 강 등이 평지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천연 국경 역할을 했고 쉽게 배를 띄울 수 있는 조건은 이 지역 교육 시스템의 발전을 부추겼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남유럽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서유럽이 누리는 지리적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유럽에 불어 닥친 재정 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북쪽의 유럽과 남쪽의 유럽 사이에 이념적 분열과 함께 지리적 분열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중동 지역은 지형학적 특성을 무시하고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인위적으로 그은 국경선들과 그와 같은 조건에서 지리적 문화와 종교문제로 서로 충돌하며 현재까지도 언제든 발화할 수 있는 화약고 같은 입장에 처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아프리카와 인도 및 파키스탄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영국 등 식민주의 권력은 그 지역의 지리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국경선을 그었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상 유례없이 인위적인 국가들이 탄생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저마다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섬나라이며, 분단된 한국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한때 한국은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강대국들의 경유지 역할을 해왔다
만약 다른 나라가 북쪽에서 침략을 해온다 해도 일단 압록강을 건넌 뒤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천연 장벽이 거의 없다. 반대로 해상에서 육로로 진입한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는 책의 말미에 지구의 지리 문제를 그 범위를 넓혀 우주까지 확장한다. 미래에는 지구뿐만 아니라 더 넓은 우주에서도 지리적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망은 북극해에서 벌어지는 주변국들의 눈치 싸움이 먼저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머리 위에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 같은 위인이 주민을 볼모로 잡고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지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내부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사사건건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내 잘못은 별 것 아니지만 남의 잘못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희한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극일에 대한 일치된 정의도 없는 형편이라 한쪽에서는 사과를 외치고 한쪽에서는 협력을 논의한다. 우리에겐 논리라는 것이 없는 듯하다. 마치 아프리카 르완다의 부족 간 대결처럼 끝도 없이 남의 실수를 찾아 공격하기로 일관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눈치 보기로 일관한다. 그런데도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을 상당하다. 일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눌러 이기려고 안달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유사시에 현재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찌 된 일인지 한반도에 감도는 불안한 기운은 애써 외면한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세계 여러 곳의 분쟁 지역을 통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